이미지 속닥속닥이 2003년에도 한국문화예술진흥원 문예진흥기금 예술정보화부문 지원사업으로 선정되었습니다. 더욱 노력할 것을 약속드리며 다시금 독자님들께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neoart.com 이미지올로기연구소
● 아래 글은 『월간미술』 2003년 1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변할 수 없는 자신을 믿는 작가들
남한의 35세~45세 즈음 작가들의 일상감성
착한 사람은 능력이 모자라고 / 유능한 사람은 사랑이 부족하다. / 뜻있는 사람들은 현실에 어둡고 / 현실을 알만하면 뜻을 저버린다. / 튀는 감각이 있는 아이들은 진지함이 없고 / 진지한 사람들은 어느덧 낡아지고 몸 무겁다. … 변해서는 안될 것을 지키기 위해 / 적극적인 자기변화에 앞장서서 / 진실한 실력으로 이루어낸 친구야 / 아! 그러나 너에게는 건강이 허락되질 않는구나!_ 박노해 詩 「아픈 벗에게」 중에서
1. 환경의 변화 ● 변화다. 물론 식민지를 경험하고 민족분단을 전쟁으로 치른 세대들에 비하면 무척이나 행복한 세대가 3545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활 또는 일상의 변화를 심하게 겪었던 세대가 3545라 생각한다. 왜냐하면 다들 알고 있는 것처럼 남한사회의 1세대들이 겪었던 변화는 상당부분이 외세에 의한 것으로 개개인의 힘만으로는 해결하기 힘든 부분이 존재했던 까닭이다. 더구나 경직된 사회에서 나약한 미술가들에게 부여된 환경은 겨우 한 두 가지 꿈만을 허락할 따름이었다. ● 얼추 3545가 세상을 알게되는 시기는 군사정권이 한창이던 시기였다. 한시도 긴장을 늦출 수 없었던 암울한 시국 탓인지 예술가들의 활동 또한 밝지 못했다. 그리고 다들 '잘 살아보세'를 외치며 먹고살기에 바쁜 시기에 예술은 주목받을 만한 것이 아니었다. 아니 좀더 솔직하게 이야기하자면 예술 또한 잘 살아보려고 현실의 내용을 억지로 외면한 채 맹목적인 형식실험만 되풀이 해왔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그나마 그 시기의 형식실험마저도 없었다면 남한의 현대미술은 존재할 수도 없었을 것 같다. ● 3545에게 힘을 주었던 시기는 1980년대다. 물론 선배인 4.19세대들의 관심도 있었지만 3545는 1980년 민주화운동과 함께 성장했다. 답답한 사회환경과 맞서 좀더 쾌적한 세상을 살기 위해 노력했던 것이다. 물론 미술에서도 '미술의 사회적 효용성'과 '현실참여'를 외치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요즘 진행되는 미술관 밖의 각종 프로젝트들과 유사한 방식의 전시행위들이 이 시기에는 '현장미술'이라는 이름으로 곳곳에서 다양하게 시도되었다. 그리고 1988년 서울 올림픽을 전후로 하여 적극적으로 외국미술에 관심을 갖는 작가들이 많아졌다. 물론 개인사정으로 유학을 가는 작가들도 있었겠지만 대부분 국내 미술환경에 대한 답답함을 피해 좀더 넓은 상상을 허용하는 예술을 바랬다. ● 본격적으로 3545가 활동하는 시기는 1990년대다. 1980년대라는 격정의 시기를 경험한 작가들과 일찌감치 외국에서 활동하였기 때문에 그 시기에 국내에 있지는 않았지만 좀더 세련된 발언력을 갖고자 노력했던 작가들이 결합하면서 스테레오 타입의 남한미술을 서라운드로 구축하기 시작했다. 이전의 양상과 확연히 다른 미술행동들이 신세대 신드롬과 함께 자리 잡아갔다. 그리고 이 즈음에 전시기획자 및 큐레이터의 자리매김도 시작되었다. 아마도 이런 움직임들의 배경에는 화상이 작지 않은 몫을 하였다. 그동안 학계와 결합해왔던 화상들이 불경기가 계속되자 보다 직접적인 효과가 있는 저널과 손을 잡으면서 학계와 거리두기를 하였던 것이다. 그래서 3545의 작품들은 이미지 효과면에서 과거 세대에 비해 매우 생경하고 자극적이다. ● 2000년들어 3545는 글로컬(Glocal:Global+Local)을 이야기한다. 과거 세대들이 세계화와 지역화로 양분되었던 것에 비하면 매우 바람직한 현상이다. 3545는 과거처럼 세계화에 대한 열등감을 심하게 느끼지 않는다. 그것은 유난히 대형국제 미술행사가 많았던 2002년 한해만 돌아보아도 쉽게 느낄 수 있다. 오히려 남한에서만 지킬 수 있는 것이 있다면 그것이 더 돋보이는 까닭이다. 그래서 3545는 국내파와 유학파의 갈등을 지혜롭게 해결하려 노력한다. 해외정보와 국내정보가 모두 실시간으로 전달되는 2000년대에 들어서 과거 국가개념은 이미 낡은 것이 되었기 때문이다.
2. 매체의 변화 ● 변화는 작업에서도 느낄 수 있다. 3545의 처음 전시는 대부분 과거의 미술환경을 기반으로 출발했다. 회화일 경우 탄탄한 천으로 탱탱하게 마무리한 커다란 캔버스로 시작했을 것이다. 그것도 아크릴 물감이 아니라 테레핀과 린시드 냄새가 그윽한 유화물감으로 말이다. 그러다가 1990년대 중반 새로 출시된 아크릴 물감을 의심스럽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하여 몇번 칠해 보았을 것이다. 이때 즈음에 그 이전 미술의 입장에서는 금기되었던 여러 표현과 생각들이 마치 판도라의 상자가 열렸을 때처럼 불안정하고 혼돈스러운 느낌으로 빠르게 퍼져나갔다. 그리고 몇몇 작가들은 한번 맛보게 된 매체에 대한 호기심을 진전시켜 캔버스를 던져 버리고 설치/행위 및 사진/영상으로 점점 더 그 영역을 확장시켰다. ● 한편 3545 작가들 중 회화를 전공한 몇몇 작가들이 탈평면을 주장하면서 조소를 전공한 작가들이 힘을 얻기 시작했다. 그 즈음에 인스톨레이션이라는 설치미술이 수입되었다. 아마도 그 덕분에 당시의 조소는 가장 뒤늦게 변화를 시작했지만 가장 첨단의 장르로 점프하는 묘한 경험을 했던 것 같다. 그리고 설치미술보다 좀 늦게 자리잡은 영상미술이 궤도에 오르기까지는 광주비엔날레를 비롯한 각종 비엔날레의 역할이 컸다. 일찌감치 1980년대 중반 비디오 카메라가 시중에 출시되었으나 그것을 예술의 도구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정말 몇 없었다. 결국 행위미술만이 몇십년이 지나도 아직 그 자리에 머물고 있다. 생각으로는 행위미술의 상당부분을 사진 또는 영상미술이 흡입하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 ● 어찌되었건 3545는 1980년대부터 20여년간 사회의 변화 뿐만 아니라 미술의 변화를 적극적으로 개입하며 직접 일궈온 세대이다. 하지만 3545는 이제 젊은 신세대가 아니다. 대학에서조차 컴퓨터 교육의 혜택을 받지 못하고 성장한 세대가 3545인 까닭에 아직도 이메일조차 없는 작가들이 수두룩하다. 이 인터넷을 기준으로 또 하나의 세대가 갈라서게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다.
3. 생활의 변화 ● 생활에서도 변화는 감지된다. 워낙 3545는 선술집 소주가 익숙한 세대이다. 80년대 말이 되어야 호프집이 낯익어진다. 그리고 노래방이 생겨나자 처음에는 낯설어 하다가 가장 즐겨찾는 세대가 되었다. 그리고 카페에서 춤을 춘다는 '락카페'를 물을 흐리게 하지만 그래도 젊다는 생각에 점령했던 적도 있었다. 그러나 락카페보다 진보한 '클럽'은 왠지 익숙치가 않다. 그리고 이제는 다방커피가 아니라 대형커피 전문점에서 부드러운 커피향을 즐기거나 우아한 와인집을 찾는 후배들을 보면서 늙어가는 것을 느낀다. ● 3545가 이전 세대와 가장 다른 점은 생활일 것이다. 과거 세대들은 어찌되었건 잘 갖춰진 제도로 돌입하여 교수가 되는 것이 목적이었다. 미술운동 자체가 집단적인 양상을 보였기 때문에 당연한 생각이었을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3545는 제일 우선으로 치는 것이 개별 작업이다. 그리고 그 작업이 자기 자신과 어울리냐는 것에 대해서 고민을 한다. 결국 자신의 행위에 대해서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은 자기 자신이지 제도가 아닌 까닭이다. 그래서 3545는 제도에서 키워진 것이 아니라 사회와 호흡하며 움직였던 개별적인 작가들의 고민을 작품으로 보여준다. ● 남한에서 35살이 되거나 45살이 된다는 것은 단순한 산술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우선 작가인 경우 35세 이상이면 더 이상 젊은 신진작가라는 타이틀을 달아주지 않는다. 그래서 얻을 수 있는 혜택도 있지만 손실을 보는 경우가 더 많다. 남한 미술계의 섭리상 1990년대부터 경로우대보다는 계속 젊은 작가들을 우대했던 까닭에 그나마 얻을 수 있는 각종 지원으로부터 멀어지기 때문이다. 그래도 일찌감치 학교쪽에 관심이 있던 친구들은 겸임이나 전임이다 하며 안정된 자리를 찾아가는 것을 본다. 그러나 그런 친구들은 일이 너무 바빠서인지 좀처럼 만나기가 힘들다. 밤을 새며 작품과 생각을 나누다가 끝내 몸싸움까지 갔던 친구들이 이제는 그립다. 다들 담배를 끊고 술을 줄여야 한다고 충고한다. 하지만 계속 되는 변화에 지쳐가지만 정작 자신은 변하지 안겠다고 굳게 믿고 있는 3545에게 있어 작업만큼이나 소중한 것이 꿈과 친구들이기에 쉽지가 않다. ■ 최금수
Vol.20030101a | 변할 수 없는 자신을 믿는 작가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