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네오룩』에 보내주신 독자님들의 성원과 관심에 감사 드립니다. 모두들 새해에도 건강하고 행복하십시오. neoart.com 이미지올로기연구소
이제 문제는 글로벌(Global)이 아니라 글로컬(Glocal:Global+Local)이라고들 한다. 유난히도 대형국제 미술행사가 많았던 2002년 한해를 돌아보면 정말로 과거처럼 세계화에 대한 열등감 내지 강박은 없어도 될 것 같다. 오히려 남한에서만 지킬 수 있는 것이 있다면 그것이 더 돋보이는 까닭이다. 1988년 서울 올림픽을 전후로 거품처럼 일어난 세계화 강박증은 뉴욕, 파리, 동경, 서울을 동시패션 영역 속에 집어넣었다. 아마도 그때 즈음부터 남한 사회도 단채널에서 스테레오로, 스테레오에서 서라운드로 바뀌고 있었다. 그것이 '80년대 민주화 운동'의 결과이건 '포스트 모던'의 영향이건 말이다. ● 과거 답답했던 군사정권에 맞서 예술표현의 자유를 외쳤던 것에 비하면 요즘 예술표현의 영역은 오만방종을 넘어 엽기발광까지 넓혀지고 있다. 좌편향이건 우편향이건 집단적인 움직임들은 서서히 힘을 잃어가고, 그나마 기댈 언덕이었던 각종 탄탄한 제도들도 이제 믿음직스럽지가 않다. 아마도 이런 사정은 미술만의 상황이 아닌 것 같다. 그래서 무조건 밖으로 나가야 한다거나 교류를 해야 한다는 글로벌 보다는 과연 밖으로 나갈 것과 안으로 들여와야 할 것이 무엇인가를 꼼꼼하게 따지는 글로컬이 더 중요한 시기라고 생각된다. ● 1980년대 중반까지는 비록 짧아서 한계는 있었지만 곧았던 잣대들이 있었다. 아직도 그 좋았던 옛날의 잣대를 잊지 못하는 사람들은 아쉬워하며 신파조의 셈을 읊기도 한다. 하지만 그 짧고 곧았던 옛날의 잣대는 너무 낡고 둔해져서 칼질을 삐뚤게 유도하고 있다. 더 이상 잣대로서의 역할을 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한동안 국산이 아닌 외국산 잣대들이 수입되었다. 그 용도와 상관 없이 각국의 잣대들이 밀려들어와 사람들의 손에 쥐어졌다. 이제야 알게 되었지만 그 잣대는 정밀재단에 쓰이는 딱딱한 자가 아니라 대략의 허리치수를 가늠하는 헐렁한 줄자였다. 우스운 일이지만 그동안 유연한 재질의 돌돌 말린 허접한 줄자를 의지해 곧게 칼질을 하려 노력했던 것이다. 그나마 그것을 알게된 2002년을 넘기면서 남한의 시각 이미지는 더욱 더 글로컬을 재촉하고 있다. ● 물론 2002년 한해동안 『2002 광주비엔날레』, 『2002 부산비엔날레』, 『2002 미디어 씨티 서울』전 등 굵직한 행사들로부터 글로컬의 절실함을 느꼈다. 그리고 년말에는 『2002 국제 대안공간 심포지엄과 대안공간 네트워크』전 등에서 보다 꼼꼼하게 준비된 젊은 글로컬의 힘들을 실감할 수 있었다. 그러나 위 행사들은 모두 공공성격의 막대한 국가예산의 도움을 받는 대형국제행사로서 적극적인 발언이나 특정성향을 극대화시키지 못한다는 한계를 지니고 있다. 예술행사의 경우 예산규모와 관여하는 사람들의 수가 많아질수록 행사의 진행속도가 늦어지며 가치평가의 강도 또한 희석되기 쉽다는 함정에 유의했어야 했다. 그래서 결과물들도 일반적인 선에서 머무르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을 남겼다. ● 이에 비하면 약간은 초라하지만 그래도 아직 살아있는 남한 시각 이미지의 자생성을 이야기하는 전시들 몇몇이 떠오른다. 우선 온라인 『미술행동_www.artmov.com』에서는 기성 미술계에 눈치보는 것 없이 꾸준히 자신들의 감각을 유지하며 기획전을 열고 있다. 그리고 시사 전시기획자로 활동하는 김준기 책임기획으로 8월의 『로컬컵』전, 12월의 『대통령 選擧前』전 등을 들 수 있겠다. 또 국내미술을 외국에 소개시키려는 목적으로 기획된 『한국 發』전은 한동안 움크리고 있었던 남한형상회화의 위상을 점검하는 기회로 기여하였다. 이 전시들은 앞서 말한 대형국제미술행사와는 달리 매우 영세하기는 하지만 작가들의 자발적인 참여와 행사의 순발력이 돋보여 특정성격 내지 이슈들을 매우 극대화시킬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내 땅 갈아 내가 먹자'는 생각 못지 않게 '구슬을 꿰는 힘'에 대해서도 배려를 해야하는 쉽지 않은 과제가 놓여져 있다. ■ 최금수
Vol.20021231a | 남한의 시각 이미지는 글로컬을 요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