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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움의 전통으로서의 환경조각 ● 배수관은 '세계 안의 존재'라는 대전제 안에서 예술의 보편적 질서를 충실히 반영하는 듯한 작업세계를 보여주고 있다. 그것은 예술에서의 독창성과 자기 목적성이라는 모더니즘의 강령에 충실하면서도 자연 안에 침잠해 있는 섭리 같은 것을 일깨우고자 하는 묵시록적 에너지와도 연관된다. ● 그의 작업은 내부세계(작품)와 외부세계(환경)의 구분을 거부하는 인식선상에 출발한다. 즉 그에게 있어 작품은 인식의 대상이기 이전에 세계 속에 있는, 즉 세계와 더불어 살고있는 유기적 존재이다. 한편, 여기에서 세계라는 말은 주변, 환경, 자연, 우주라는 말과 부합되는 개념이다. 그것은 공간이면서 그곳에 인간이 개입하고, 그들에 의해 예술이 탄생하면서 역사성이 가미되어 시간이라는 의미가 추가된 시공간적 개념이다.
전일적 세계관 ● 여느 조각가와 마찬가지로 배수관은 작업개념을 세우고 나무나 돌, 또는 철과 같은 매재를 선택하는데서 작업을 시작한다. 그에게 매재는 자연을 모방하는 것이든 자아를 드러내는 것이든 간에 대상을 표현하기 위한 수단으로 존재하는 것만은 아니다. 그것 역시 세계 내에 존재하는 유기적 대상물로써 자연의 질서 안에서 이의 역사적 의미를 추동하고 스스로 존재론적 타당성을 확보하는 적극적 실체이다. 따라서 그에게 있어 매재는 사물을 바라보는 창이 아니라 오히려 그 창밖에 존재하는 사물 그 자체로 파악된다. 즉 그의 작품에서 매재는 질료이기 이전에 우주 안에서 우주의 질서를 구축하고 스스로 자기 목적성을 갖는 합목적적 현존재인 것이다. ● 주지하다시피 배수관은 재료 또는 매재를 선택할 때 작품자체의 완성도를 추구하기 이전에 이것이 놓여질 환경과의 어울림을 고려한다. 그는 모더니즘의 산물인 총체예술의 대안으로써 환경미술의 가능성을 상정하고 자연과 이의 어울림에 주목해온 것이다. 그러다 보니 환경론이나 조경학에 관한 인식론적 무장은 물론, 자연 또는 사물을 보는 안목과 조각가로서의 자질, 즉 도구와 재료를 다루는 기술적인 능력과 통찰력이 요구되는 것은 당연하다. 이러한 자질을 연마하기 위하여 작가는 아마도 부단히 노력했을 것이다. 그가 그의 예술과 이의 연관분야에 대한 연구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는 것은 그와 사담을 나눈 바 있는 사람이면 쉽게 간파할 수 있는 점이거니와, 그의 작업 또한 여러 이질적인 요소들을 조합하고 작품으로 생산해 내는 기량이 남다르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가 1992년에 제작한 「무인도」의 경우 소나무 원목의 자연스러운 무늬결과 화강석의 단단한 속성을 경합하여 견고한 미니멀 조각을 함축해 내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자연과 인공, 나무와 돌, 차가운 속성과 따듯한 속성 등 상대적이고 이질적인 요소들이 결합되어 하나의 짜임새를 이루고 있는 이 조각은, 20대 약관의 조각가가 향후 작업세계의 지평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시사적이다. 아울러 이는 그가 대학원 재학시 환경조각에 관심을 갖고 동양적 자연관과 서양 신과학의 새로운 패러다임인 '전일적 세게관'에 대한 관심이 반영된 작품세계를 보였다는 점에서, 그의 수미일관한 관심사가 무엇인가를 짐작케 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형식과 내용의 짜임새 있는 결합 ● 한편, 「또 다른 세계」나 「신념」의 경우 주체를 드러내고자 노력한 작가의 의중이 뚜렷하다. 그러나 관객의 입장에서는 철이나 돌 같은 재료를 자신의 것으로 육화시켜가고자 하는 작가적 노고와 시대적·정신적 등가물로서의 매재에 대한 관심의 정도를 잘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된다. 말하자면 형식적 측면에 주목한다는 뜻이다. 이러한 그의 작업개념은 최근의 작업들에서 그 가시적 성과가 드러나고 있다. ● 이를테면 그가 작년에 한 공모전에 출품하여 조각부문의 최고상을 수상한 바 있는 「확산」의 경우 화강석과 스테인레스 스틸, 그리고 네온 등을 이용하여 초현실적인 자연관을 잘 구현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당시 심사에 참여한 바 있는 필자의 기억에 의하면 그 작품은 인공과 자연, 금속과 돌, 첨단과 고전을 잘 조화시켰을 뿐 아니라, 이러한 상대적 요소들을 조립하는 기량 또한 만만치 않다는 점에서 주목을 끌었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점은 자연적 파생물이나 문명적 편린들을 한 공간에 집약시켜 전혀 예기치 않은 담론을 만들어 내는 작가의 인문적 소양이다. 즉 이 작품은 하나의 작품으로써 모더니즘적 자기목적성을 가지면서도 자연계 내에서 각 피조물들의 상호의존성과 상생이라는 작가의 의중을 짜임새 있게 나타내었던 것이다. ● 이후의 작업적 결과인 「생명」이나 「부활」, 「재인식된 공간과 실존적 자아」 등은 이 작업의 동일, 또는 연장선상에서 바라보아야 할 것이다.
이 지점에서 필자는 모더니스트 조각가로서 배수관의 개인적 관심사와 이를 자연애, 인간애 또는 가족애로 승화시켜 가고자하는 리얼리스트로서 그의 면모에 주목한다. 물론 모더니즘을 기본항으로 인식하고 그 개념의 애매성과 비현실성을 극복하기 위한 대안으로 리얼리즘의 위상을 상정할 때, 이러한 문제제기는 너무도 당연하여 설득력이 반감될 지도 모른다. 하지만 예술작품이 늘 형식과 내용을 포괄한다는 측면에서 꼭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인 것이다. 따라서 예술가로서의 배수관의 면모는 물론 가쁘게 호흡하며 동시대를 살아가는 작가의 개인적 고뇌와 관심사가 우리의 그것과 어떻게 접점을 이루며 공감을 확보하는가의 문제는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이는 포스트모던 담론 이후 점차 비중이 확대되어가고 있는 예술의 사회적 기능이나 인간과 자연(환경)이라는 거시적 패러다임에 관한 작가의 시각과, 작가의 개인적 경험과 삶의 궤적을 추적하면서 풀어야 할 문제일 것이다. ■ 이경모
Vol.20021226b | 배수관展 / BAESOOKWAN / 裵洙寬 / sculptu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