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크고 작은 파티에 관한 짧은 생각

2002_1219_목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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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김없이 연말연시가 다가왔다. 각종 모임 및 파티가 스케줄 표를 가득 채우는 시즌이다. 몸을 챙기는 사람들은 벌써부터 자양강장제와 간장약, 위장약 등을 준비했을 것이다. 여름철보다는 연말연시가 약국들이 더 바쁘다고 하니 우리나라의 연말연시 파티문화는 참으로 요란스럽다. 산술이야 뭐 그리 중요하겠느냐마는 음력으로 헤아리는 명절이 우리 전통의 파티시즌이라면 약력으로 셈해지는 연말연시는 다분히 도회감성의 파티를 연상시키기 마련이다. ● 시퍼런 겨울밤 파티가 끝나고 차가운 공기를 들이마시며 집으로 돌아갈 때 보게 되는 뾰족한 예배당 지붕의 깜박이 장식등과 거리에 어수선하게 울려 퍼지는 캐럴이 한해를 보내는 아쉬움을 더 크게 만들어 저절로 한숨을 내뱉게 된다. 도대체 무엇을 하고 살았던가. 아마도 조금 전에 있었던 술집 또는 노래방의 열기와 대비되는 감정의 기폭 때문인지 매번 파티 때마다 마지막에는 뿌듯함보다는 허탈감을 더 많이 느꼈던 것 같다. ● 2002년을 보내기 위해서 12월 한달 동안 또 몇 번의 술자리와 노래방을 들락거릴 것인지를 생각해보면 벌써부터 정신이 혼미해져 술이 덜 깨인 아침녘의 신트림 같은 소름 돋치는 퀭함이 몸과 마음을 버겁게 만든다. 지겹게 보아온 사람들과 어울려 언젠가 한번은 분명 들었음직한 낯설지 않은 이야기들을 나누면서 서로 웃고 떠들다가 일정 시간이 지나면 다들 시커먼 노래방으로 달려가 매번 부르는 몇곡 되지 않는 똑같은 레퍼토리의 노래들을 부르면서 약간 몸을 흔들다보면 벌써 새벽녘에 가까워진다. 왜 이렇게 살아가는 것일까. 가끔은 한심스럽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이렇게라도 쌓였던 삶의 스트레스를 풀어야지 하는 위안 내지 자족을 하며 연달아 계속되는 연말파티에 참석하게 된다. 그렇지 않다면 그냥 이 모든 것이 다 비즈니스라고 생각하는 영업 마인드를 핑계삼기 일쑤다. ● 그런 까닭에 점점 나이가 들어가면서 사람들간의 관계보다는 몸만 걱정하게 만드는 것이 파티에 대한 생각이다. 그나마 젊었을 때는 새로운 사람들을 만날 수 있겠다는 막연한 설렘으로 파티를 즐겨 찾아다녔지만 이제 그 새로운 사람에 대한 기대는 별로 없다. 나이가 들면서 다들 그만큼 참신하고 또 그만큼 식상한 다양한 경험들을 하여왔기에 웬만한 새로움에는 더 이상 마음이 설레지 않는 까닭이다. 분명 무감각이나 권태와는 다른 차원의 이야기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즘 파티에서는 별 재미를 본적이 없었던 것 같다.

그래도 2002년에 기억될 수 있는 몇몇 파티를 생각해 보면 우선 나의 직업이 전시기획자인 탓에 전람회를 열면서 마련되는 간단한 다과와 음료 또는 술로 차려진 개막파티 몇몇이 떠오른다. 그중에 가장 커다란 개막파티는 물론 3월말에 열렸던 2002광주비엔날레로 기억된다. 확실히 아시아의 심장을 표방하는 대형국제미술행사여서 그런지 많은 작품들과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요사이 각종 국제 비엔날레를 관람하면서 세계미술의 추세가 건축이라는 예술로 집약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우리에게 건축이 과연 예술이었던 적이 있었던가?'라는 자문을 던지며 얼굴을 붉힐 수밖에 없었다. 파티의 손님들도 중요하지만 결국 그 파티의 분위기를 유지하는 측은 파티의 주인인 까닭에 더욱더 마음이 심난했다. ● '대~한민국'을 외쳤던 2002년 6월 월드컵은 온 국민의 가슴속에 붉게 남아있을 훌륭한 파티를 여럿 만들어 주었다. 1980년대 거리에서 울긋불긋한 깃발들을 들고 파티를 열었던 사람들은 새삼 붉은 색으로 도배된 2002년의 거리를 보면서 회한에 잠겼을 것이다. 그리고 아직도 젊음을 분출할 '대~한민국'이 있다는 것에 자부심마저 느꼈을 것이다. 어떤 입장에서 바라보더라도 2002년 6월 한국의 월드컵은 분명 흔치 않은 파티였다. 물론 이 거대한 붉은 파티 때문에 지방선거는 아주 보잘 것 없고 재미없는 썰렁한 행사로 전락해 버렸다.

이제 우리는 2002년의 가장 중요한 파티를 눈앞에 두고 있다. 제16대 대통령선거가 바로 그것이다. 물론 연말연시 파티처럼 매번 대통령선거를 즈음하여 실제로 많은 파티들이 만들어진다. 비슷한 생각을 갖는 사람들끼리 또는 서로 다른 후보를 지지하는 상이한 입장들끼리 밤새 대통령 후보자들을 안주삼아 노닥거리는 것은 6월 월드컵의 술자리와 비슷하기도 하고 다르기도 하다. 비슷하다는 것은 어디서 들었는지 히딩크 또는 선수들의 사생활서부터 체력 및 경기능력 등을 꼼꼼하게 늘어놓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경기가 연달아 이기고 16/8/4강에 올라감에 비례하여 그 입김들은 점점 더 강해져서 결국 영웅과 죽일놈을 확연히 구분해야하는 격양된 분위기가 조장되기도 하였다. 다른점은 물론 정치와 스포츠는 다르다는 것으로 정리된다. 그래서 그 목적이 너무나 확연한 6월 월드컵의 경우 팀이 함께 힘을 모으지 않으면 패배한다는 것을 누구나 잘 알고 있었다. 비록 경기에서 지더라도 선수들과 응원하는 사람들 모두 한마음으로 '대~한민국'을 외치게 만드는 묘한 힘을 2002년 6월 월드컵은 지니고 있었다. ● 객으로서 즐기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직접 파티를 열어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흥미로운 프로그램이나 맛있는 음식들이 아니라 손님에 대해 배려하는 마음이라는 것을. 그렇기 때문에 서로 다른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라고 하더라도 한 파티에 초청된 손님으로서 그들을 한 테이블에 앉게 만들고 인사하도록 엮어주는 파티주인의 역할이 매우 중요한 것이다. ● 2002년 12월 19일. 우리가 사는 나라를 촌스러운 '대한민국'이 아니라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으로 만들어 볼 훌륭한 파티를 손님이 아니라 주인의 마음으로 한번 준비해보자. ■ 최금수

Vol.20021219b | 2002년 크고 작은 파티에 관한 짧은 생각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