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일시_2002_1211_수요일_05:00pm
대안공간 풀 서울 종로구 관훈동 192-21번지 Tel. 02_733_9636 www.altpool.org
욕망과 갈등의 패러다임 : 이미지에서 움직이는 그림까지 ● 존재하는 모든 인간은 욕망을 갖는다. 그리고 그 욕망은 끊임없이 계속된다 프랑스의 정신분석학자 쟈크 라캉은 욕망을 이렇게 묘사했다. 그림은 무엇인가? 그 욕망과 희망을 드러내는 하나의 전달 형식인 언어가 아닐까. 사랑은 영원히 충만 될 수 없는 허상이기에 욕망을 불러올 수밖에 없다고 분석한 그처럼 그림 또한 영원히 완벽한 표현을 위한 끊임없는 욕망의 한 종류라는 점을 벗어날 수 없다. 우리가 신소영의 작업세계를 보면서 욕망을 이야기하는 것은 그의 작업 속에 아주 강렬한 욕망의 끄나풀이 발견되기 때문이다. 화가에게 그 욕망의 끄나풀이란 무엇일까. 우리가 직접적으로 그의 화면에서 욕망이란 어휘를 해석해내기엔 쉽지 않다 하더라도, 사용하고 있는 모티브들은 그가 고뇌하고 있는 부분이 어디인가를 암시하고 있다.
왜 작업과 생활이 하나가 될 순 없을까? 그는 이렇게 자신의 작품 앞에서 묻고 있다. 그는 자기 작업의 기본개념이 단절과 공존이라 말한다. 그리고 내면에 존재하는 이질적인 두 가지 자아의 정체성을 탐구하는 데에서 시작되어 두 자아의 조화를 모색하는 것으로 귀결된다 고도 했다. 이미 여기에 그의 예술적 뿌리는 깊게 내려져 있다. 그는 결혼을 했고, 아이를 가지고 있고, 여느 결혼한 작가들처럼 부단히 창작활동을 지속적으로 해오고 있다. 더구나 우리나라 같은 남성중심의 사회구조에서 결혼한 여자가 작업을 한다는 것은 거의 필연적으로 어떠한 형태로든 갈등의 구조를 가지게 된다. 갈등은 정서나 동기가 다른, 그리하여 모순되어 일어나는 저지되는 현상이며, 이는 인간의 정신생활을 혼란하게 하고, 내적 조화를 파괴한다고 한다. K. 레빈에 따르면, 갈등의 유형은 ① 다같이 매력 있는 목표가 있는데, 어느 쪽을 택하면 좋을지 결정하지 못하는 경우를 말한다. 예컨대, 여성이 결혼과 직장 사이에서 진퇴양난이 되어 있는 경우이다. ② 앞은 낭떠러지요, 뒤에는 호랑이라는 경우이며, 어느 쪽으로 나아가도 화를 면할 수는 없다. ③ 가령 시험에는 합격하고 싶은데, 공부는 하기 싫다는 등의 세 가지 경우로 갈등의 유형이 분류된다. 불행하게도 신소영의 그 기본적인 예술적 욕망은 이렇게 서로 양립하기 힘든 다른 두 자아를 위한 갈등의 중심에 자리하고 있다. 그래서 그는 갈등을 넘어서는 아름다운 조화 그것이 그의 작업에 시작이자 출발이라고 상정하고 있다. 그러나 그런 욕망이 언제나 발생하는 것처럼 욕망은 실현되는 것도 아니며 성취하는 순간 새로운 욕망이 찾아온다. 그래서 욕망의 완전한 충족은 없다고 라캉은 덧붙인다. 신소영에게 있어 내적 갈등은 명백하게 하나의 표현이란 욕망으로 옮겨지고 있다.
1994년부터 본격적으로 전개된 그의 작업은 몇 가지의 변천과정을 보여준다. 1996년까지의 작품들은 나무상자에 투각을 하여 인간과 새의 이미지를 조화시키려는 일련의 작품들로 이루어져 있다. 1996년 2번째 개인전에서는 인간과 자연과의 교감 또는 원초적인 욕망을, 비상을 상징하는 새의 형상을 통하여 진지한 고민들을 드러내고 있다. 그것들은 대부분 나무상자나 패널 위에 혼합 재료들로 완성되어 있다. 이후 그는 「신혼일기」 등의 시리즈를 통해서 접시 등에 다양한 이미지를 오브제에 그려 벽면에 붙이는 형태의 작품들을 발표했다. 이 작품들은 이전의 새를 모티브로 한 입체적 표현양식과는 다르게 개인 삶의 표정이 개입된 주제들이 중점적으로 묘사된다. 예를 들면 남녀가 마주 한 모습, 임산부의 모습, 아이와 반지 등 삶을 공유하고 있는 생활의 소도구와 표정 등으로 가득 차 있다. 우리는 여기서 작가로서만 아니라 인간이 살아가면서 겪게 되는 삶의 다양한 풍경들을 돌아 볼 수 있다. 그러나 2001년을 기점으로 그의 작업들은 구체적인 형상들을 걸러내고 매우 간략화 된 스틸 이미지들을 집중적으로 보여준다. 이 시기는 작가로서의 나와 엄마로서의 나 가 겹쳐지는 갈등의 시기이고 그 공존 속에서 그는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낸다. 그 발견의 주체는 자신의 모습을 가장 리얼하게 보여주는 거울이다. 그것은 자아와 또 다른 자아가 싸우고 있는 진정한 자아의 모습을 웅변적으로 말해준다. 「거울」이란 작품의, 거울을 가운데 두고 양쪽에 있는 자화상은 자신의 존재에 대한 현실을 스틸 이미지로 묘사한 것이다. (이것들은 모두 후에 애니메이션 기법으로 재현된다). 그것은 바로 자신을 찾고자 하는 뜨거운 열정이다. 그리하여 그의 화폭과 작업 공간은 생활과 작품 사이의 일치점을 찾으려는 치열한 만남의 장으로 전환되고 있다.
그는 작년부터 아주 적극적으로 새로운 유형의 작업 스타일을 선보이기 시작했다. 그것은 여러 가지 생활이나 주변환경에서 오는 한계를 극복하려는 차원에서 고려된 작업이었다. 이른바 컴퓨터를 이용한 이미지의 생산이다. 그것들은 단일한 이미지로 만들어지기도 하고, 때로는 서로 다른 이미지들이 만나 합성, 탄생되기도 한다. 배경이 되고 있는 전면적인 무늬의 등장 (그것은 반복적인 삶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미지가 만들어지는 프로세스(과정)이 한 화면에 순서대로 나타난다. 특별히 점진적인 이미지의 순간들이 한 화면에 등장하는 이런 형식들은 그가 점점 이미지의 결합으로 나아가고 있음을 예고하고 있다. 재료와 환경에 의한 필연적인 변화에서 시작한 그의 관심은 이제 이미지 제작을 넘어 애니메이션의 출현을 강력하게 증명 해내고 있다. 「Are you O.K?」는 그러한 작업변화의 징후를 가장 명백하게 드러낸 작품이다. 그는 애니메이션을 위한 프로젝트와 에스키스 북에서 그의 작품세계가 매우 정교한 의도 하에 완성되어 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우리는 이번 전시에서 이러한 갈등이 어떻게 예술로서 형상화되고 애니메이션화 되어 표출되는가를 4개의 작품을 통해서 확인 할 수 있을 것이다. 거울을 통해서 본 자아의 서로 다른 표정이 주제가 된 「The Mirror」(2분 19초), 막힌 현실에서 지쳐있는 인간과 자유로워지고 싶어하는 욕망을 표현한 「Are you O.K?」(1분 58초), 그리고 「Make a Hole」 등 한결같이 이들은 신소영의 예술적 고민들이 적절하게 반영된 작품들이다.
나는 신소영의 이런 작품들에 주목하고 싶다. 그것은 예술가가 욕망의 언덕에서 갈등을 넘어서기 위한 한 여류작가의 원동력이 예술로 형상화되는 과정을 확인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울러 그가 의도했던 이미지 중심의 애니메이션, 회화성이 담긴 애니메이션의 완성이 실현되고 있다는 반가움 때문이다. 그 자신이 밝힌 것처럼 문제는 형식이 아니라 내용이다. 그러나 분명 그가 새로운 형태의 회화성이 담긴 미술언어를 만들어내고 있음은 분명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노력은 마치 정지된 조각에서 움직이는 조각을 만들어낸 칼더의 모빌 에 고민을 떠오르게도 한다. 이제 우리는 그를 통하여 이전에 볼 수 없었던 움직이는 그림을 보게 될 것이다. 그것도 한 여류 예술가의 치열한 자기 고뇌를 통해서, 이것이 내가 그의 작업에 매우 낙관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는 지금 예술적 창작 의지에 있어 매우 지혜로운 선택을 하고 있다. 생활과 작업 사이에서 항상 위태위태하게 외줄 타기를 하는 느낌으로 살았는데 이제는 그 둘이 하나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라는 그의 고백은 그래서 내게 매우 흥미롭다. 그 둘을 잘 버무릴 줄 아는 요리사가 되어야만 허기를 채울 수 있다는 그의 이런 지혜로운 발언은 그가 인지하고 있는 현실의 세계가 얼마나 거부 할 수 없는 삶의 중요한 지평인지를 말해주고 있다. 이것만으로 나는 그가 2차원적인 회화의 지평을 넘어서서 움직이는 그림으로 더욱 넓게 평면의 세계를 확장 시켜 줄 것을 믿는다. ■ 김종근
Vol.20021212a | 신소영展 / painting.vide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