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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익대학교 일반대학원 동양화과 기획展   2002_1211 ▶ 2002_1217

홍익대학교 일반대학원 동양화과 공동작품_3_2002

초대일시_2002_1211_수요일_05:00pm

참여작가 김장수_구정선_권인경_이동원_강만희_문위정_김희수 박정민_김정희_윤원진_이수경_이동협_변내리_장경연 이현정_이종철_성민우_장인석_정재오_한지원_한동호 홍주희_이수향_오정아_홍원표_김지호_하효진_정선경

공평아트센터 서울 종로구 공평동 5-1번지 공평빌딩 Tel. 02_733_9512

왜 3인가? ● 전시를 준비하면서 가장 많이 듣게 된 질문이다. 현대를 살아가는 이삼십대 젊은이들로 구성된 이번 전시 참여자들이 왜 하필이면 너무도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3이라는 숫자를 가지고 기획전을 준비하게 되었다. 현대사회의 문제나 일상의 단상, 그것과 예술과의 관계, 정치와 경제에 대한 의식, 전통과 현대 혹은 국제화에 관련된 다양한 관점에 이르기까지 많은 주제들을 외면하고 왜 우리는 3이라는 숫자에 관심을 가지는가?

홍익대학교 일반대학원 동양화과 공동작품_3_2002

3이란 무엇인가. 동양문화 속에서의 3이란 숫자는 어떠한 설명으로도 명확하게 정의하기 어렵다. 그것은 21세기를 살아가야 할 젊은 작가들에게 동양화란 무엇인가라는 질문과 일맥상통한다. 넘쳐나는 담론들, 현대성과 현대적 조형성, 서구미학, 매체와 미디어, 소통과 일상, 시대적 특수성과 역사성, 그리고 전통의 문제에 이르기까지 혼재하는 화두 속에서 동양화를 그리고 있다. 우리 젊은 작가들은 예술이 무엇인지는 물론이고 동양화가 무엇인지도 모른다. 과학과 첨단기술의 중심지인 테헤란로 한 가운데에서 그저 붓 한 자루, 종이 한 장을 들고 서 있다. 왜 그곳에 서 있지 않으면 안되며, 그것들을 놓을 수 없는지 이유를 알 수 없이 어리둥절할 뿐이다. 어느 누구도 어디로 혹은 어떻게 가라고 말해주지 않는다. 하지만 예술이라는 종이 위에 동양화라는 도구로 뭔가를 해야한다는 의무감으로 길 한복판에 서 있다.

한동호_초심_순지에 먹_300×160cm_2002_부분
이현정_획_장지에 먹_230×324cm_2002

3이라는 수는 세계 여러나라에서 길수(吉數)로 삼고 있지만 동양권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사상에서부터 민간풍속에 이르기까지 최상의 수로 여기고 있다. 1은 최초의 수이며 아무 수와도 섞이지 않은 순양(純陽)의 수로 사물의 전체와 태극을 나타낸다. 2는 최초의 짝수이며 순음(純陰)의 수로 대립과 화합의 의미를 담고 있다. 3인 1과 2가 최초로 결합하여 생겨난 변화의 수로 음양의 조화가 비로소 완벽하게 이루어진다. ● 유달리 3을 좋아한 우리민족의 수 관념은 단군신화에서부터 시작된 것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선인들은 하늘과 땅과 사람이 있음으로서 비로소 세계가 완성되고 살아 움직인다고 보았다. 3재(三才)사상은 천·지·인(天·地·人)을 기본으로 하여 완성과 안정을 상징하고 있다. 단군신화에서도 시조신(始祖神)인 환인·환웅·단군을 삼위일체적 존재로 여겨 그 신성함을 더한다. 그것은 '3은 곧 완성된 하나'라는 것을 시사하고 있다.

이동협_3년_한지에 수묵담채_130×160cm_2002

아이를 점지해 준다는 삼신할머니는 3명의 신을 뜻한다. 그 3명의 신이란 사람의 뼈를 만들어주고, 살을 붙여주고, 영혼을 갖게 하는 신을 가리킨다. 또는 아이를 갖게 해주고, 아이를 낳게 해주고, 아이를 키워주는 신이라고도 한다. 삼신할머니는 '셋이면서 하나'라는 삼위일체의 신앙이다. ● 이렇게 3이라는 수는 우리민족의 철학과 사상, 정서와 기원이 깊숙이 배어있는 숫자이다. 출산풍속이나 세시풍속 등 민속분야에 상징적인 수가 하나의 중요한 관습으로 정착되어 우리생활의 기저(基底)를 이루고 있다. 우리생활의 곳곳에 3이 깃들여 있는 것은 우리민족의 집단적 무의식에 깊게 각인되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성민우_오로지_비단에 먹_170×170cm_2002

동양화라는 것은 내 눈에 비친 것을 은유와 함축으로 담아내는 힘을 지니고 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내 눈에 비친 것이 형상이라면 그것이 상징하는 것들은 문화 속에 존재하는 정신이며 관념이다. 3은 우리들에게 주어진 최초의 주제이자 지도이다. 3이라는 상징이 작가들의 감각기관을 통해 어떠한 형상물로 나타날 것인가, 문화 속에서 우리들에게 채택된 3의 존재와 새로운 형상물로 나타날 3의 존재는 어떠한 관계성을 가질 것인가. 3은 동양문화의 부분이면서 동시에 전체일 수 있다. 3을 통해 우리문화를 읽는 힘을 기를 수 있다는 믿음에서 이번 전시를 만들었다. ● 우리는 아직 예술이 무엇인지 동양화가 무엇인지도 잘 모르는 풋내기들이다. 그러나 그 속에 내용을 채운 가장 동양화적인 노력을 한번 해보고 싶었다. 그래서 3이다. ■ 3

Vol.20021211a | 3展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