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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2_1129_금요일_06:00pm
스페이스 사진 서울 중구 충무로 2가 52-10번지 고려빌딩 B1 Tel. 02_2269_2613
어제란 추억 속에 있는 한 페이지의 그림과 같은 것. 거기에 어제의 단절 없는 프레임이 있다. 한 사내의 눈은 붉은 담장 속을 관통하여 과거의 시간을 더듬는다. 영화이다. 사내는 현재로부터 먼 과거의 시간으로 아주 천천히 건너간다. 그가 과거로 되돌아가 만났던 것은 추억이라는 이름의 시간 풍경. 후미진 뒷골목, 잿빛 하늘, 물기어린 아스팔트, 30년대 대공황 시기의 암울했던 연민의 시간들이 사내가 시간의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여린 세피아 색으로 갈아입고 나타난다. 이 영화가 아름다웠던 것은 추억의 리얼리티 때문이다. 사랑과 미움과 배신과 고통의 아픔 속에서 그러나 미쳐 헤아리지 못했던 것들, 주변에 있었으나 미쳐 돌이키지 못했던 것들에 대한 새로운 눈길. 그 사소한 것의 사소하지 않음을 읽는 리얼리티와 시간을 사랑한 눈길이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과거와 현재라는 두 가지 충돌된 시제 앞에서 한 사내가 깨닫게 되는 것은 과거의 아픔마저 사랑하는 시간의 향수(nostalgia)이다. 향수는 잃어버린 것을 되찾는 시간의 잔영이 아니라 사랑하지 못했던 것을 사랑하게 되는 시간의 잔영임을! 영화는 보여준다.
김정의 사진이 그렇다. 그래서 그녀의 사진은 사진이라기보다는 추억의 이미지에 가깝다. 분명 거기 샌프란시스코에서 찍혀진 사진이지만 그녀가 미래 완료를 예정했기 때문에 과거의 이미지에 속한다. 그 이미지 속에서 추억은 그리움으로 물들어 있다. 김정이 존재의 거소로 삼았던 샌프란시스코는 슬프다. 서부 연안의 아름다운 그곳이 그녀에게는 꼭 아름답지만은 않았던 것이다. 삶은 비정했고, 현실은 때론 가슴아팠다고 이미지들은 말한다. 그러나 이제 자신에게 비정했고, 가슴아프게 했던 그곳이 그리움의 노스텔지어가 되었다고 말한다. 샌프란시스코는 절망과 절망 사이에서 꿈꾸었던 곳, 삶의 흔들림이 있었고 소외로 가슴아팠던 곳이지만 오늘의 모습은 이렇게 꿈처럼, 기묘한 노스텔지어로 자리한다고 말한다. 어제의 사진이 이렇듯 추억의 이미지가 되어 매혹적으로 탈바꿈하는 사진의 아름다움. 비정했던 삶도, 지독했던 소외도, 인간에 대한 비애도 시간의 향수 속에서 이제 그리움으로 물들여졌다. my heart in san francisco. 추억을 건너간 시간의 풍차가 멈춰선 곳은 하나같이 그녀의 삶의 근간, 존재의 거소였던 공간들이다. 머물렀던 공간과 눈길을 줬던 시간이 포착한 것은 소외, 고립, 단절의 표상들이다.
김정은 그렇게 추억을 묘사한다. 한 순간 삶을 각인하기 위해 찍혀진 사진이지만 이렇게 영원히 기억하기 위해 새롭게 만들어진다. 삶의 실제성이 삶의 충만성으로 대치됨으로써 새로운 시간과 공간으로 태어난다. 영화에서 주인공이 사랑의 숨결로 아름다운 시공간을 유랑하듯이, 김정 또한 샌프란시스코만에 불어오는 미풍처럼 여린 아름다움으로 시공간을 유랑한다. 유랑은 시간과 공간으로부터 해방이다. 시간의 유랑에 의해 고통이 그리움으로, 슬픔이 아스라함으로, 그리고 갈등이 화해의 속삭임으로 다가선다. 유랑의 이미지가 진한 휴머니즘의 향기를 듬뿍 날리는 것은 김정 만의 감수성이자 음색이다. 부드러운 톤과 여린 파스텔 색조는 매혹의 시간과 공간 속으로 빨려들게 하는 진공과 같다. 삶이 아름다울 수 있는 것은 결국 흐르는 시간 뒤에 만나는 이미지를 통해서이다. 소외마저 얼마나 아름다운가를 알게 하는 것도 역시 이미지를 통해서이다. 울림은 결코 진폭에 구애받지 않는다. 새털처럼 작고 미세한 떨림에서도 감정의 울림은 충만할 수 있다.
김정의 사진은 작은 울림과 여린 진폭이지만 울림은 크다. 그녀가 너무도 외로워서 세상을 바라보면 모두가 외로운 듯 보였던 사람과 사물들, 금새 탄로 날 값싼 외로움이지만 사랑하고 싶은 외로움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며, 또한 그녀가 너무도 비참해서 세상을 바라보면 모두가 비참해 보였던 사람과 사물들, 금새 탄로 날 설익은 비참함이지만 사랑하고 싶은 비참함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삶을 사랑하는 것이 단지 매혹적인 이미지 때문이어서는 안될 것이며, 또한 이제는 용서할 수 있는 시간의 잔영이 아니라 영화처럼 사랑하지 못했던 것을 사랑하는 시간의 잔영이어야 할 것이다. 진정 삶을 사랑하는 것은 삶을 긍정적으로 수용하는 것이다. 사랑이 치유의 향기이듯이, 이미지도 치유의 향기를 머금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이 세상을 살아가게 하는 힘이 되어야 한다.
한때 외로웠던 혹은 비참했던 삶의 노정을 했던 그녀의 사진이 누군가에게 세상을 사랑하는 마음, 인간을 사랑하는 마음, 외로움과 비참함마저도 사랑하고픈 마음을 생기게 한다면 그것은 이미지 때문이 아니라 사소한 것의 사소하지 않음을 읽는 리얼리티, 그리고 현실의 리얼리티를 사랑하는 데 추억은 그렇게 되어야 한다. 사진이 아름다울 수 있는 것은 현실의 아름다움을 일깨울 때이다. 추억 속의 샌프란시스코가, 그 옛날의 샌프란시스코가 영원히 추억의 그림자가 되어 가슴에 자리하기 위해서는 모두 것을 용해시켰던 그때와 지금의 삶의 리얼리티 때문이어야 할 것이다. ■ 진동선
Vol.20021129a | 김정展 / photograph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