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일시_2002_1120_수요일_05:00pm
모인화랑 서울 종로구 관훈동 192-11번지 Tel. 02_739_9291
'우리가 사물을 보는 방식은 우리가 무엇을 아는가 또는 믿느냐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_존버거, 「Ways of Seeing」중에서 ● 이미지는 작가의 보는 방식을 대변하며 의식과 무의식 안에서의 작가의 경험과 직관, 가치관에 바탕을 둔 작가 자신의 감지나 가치의 거울이다. 나는 작업에 제시된 이미지들을 통해 현재 위치에서의 나 자신의 진정한 요구와 또한 일반적 필요에 상응하는 획들을 긋기를 원한다.ː 그것은 내부적 도한 외적 사건들을 친밀하게 제시한 무언의 문구이다. 하나하나의 이미지들은 작업을 위한 전체 필름의 부분 조각들이다. ● 내적 실제성을 찾기 위한 일환으로서, 이번 전시를 통한 나의 작업들을 '추상 풍경'으로서 제시하고자 한다. 특별히 성서를 바탕으로 한 테마들, 그 중에서도 가장 주목할만한 사건들일 수 있는 '천지창조'와 '예수님의 십자가에 못 박힘' 주제들이 작업의 근간을 이룬다. 이러한 주제들은 나 자신의 믿음과 삶의 유리됨을 피하고 그들의 연합을 꾀함으로서 작품 감상자와의 의미 있는 커뮤니케이션을 추구하는데서 기인한다. 작업에서의 이미지들은 정신성과 관련한 이 세계-우주-안에 존재한 다양한 요소들의 표현이기도 하다. 통괄적으로는 추상적 표현이지만 작업 안에서의 전체 이미지들은 위에서 내려다 본 조감도의 시점을 채택하여 다양한 메타포를 갖는다. 예를 들자면, 천지, 태양 혹은 창조 이전의 혼돈의 상태 등의 이미지들로 해석할 수 있다. 때때로 심자가 형성(인간을 표현한 또 다른 추상적 이미지이기도 함)들이 작업 안에 엄숙함의 느낌을 더하기 위해 직접적으로 적용되어졌는데, 그러한 형상들은 상징적 도상으로서의 의미보다는 전체 추상풍경의 한 일부로서 다양한 메타포를 자아내는 역할을 담당한다.
사용된 레디-메이드 오브제들은 일상 안에서 흔히 접하는 물질들이다. 못, 스테이플, 압정, 이쑤시개, 단추, 실, 깨진 우리조각 등등. 하나의 화면 안에서 반복되어져서 사용된 작은 오브제들은 작업 제작과정 안에서 그들 본래의 아이덴티티를 잃고, 대신 추상풍경의 페인팅 표면 위에 용해되어 전체구도 안에서 은유적 이미지로서의 가치와 역할을 획득한다. ː 그들은 거대한 풍경 안에서의 사람들일 수 있으며, 다른 자연의 요소들이거나 인공적인 구조들이기도 하다. 따라서, 나의 작업들 안에는 역설적인 성향들이 서로 공존한다. ː 아름다움과 공격적인 거칠음, 실체와 잔상, 고통과 사랑, 음과 양, 대량생산물로서의 오브제들과 핸드-메이드로서의 종이 펄프, 대지와 천상, 포지티브와 네거티브의 공간영역, 또는 음과 양 등등. 전체를 위한 부분적 파편들로서의 이러한 양면적 측면들은 현시점의 포스트모던 시대와 내 삶의 바탕이 된 뉴욕이나 서울과 같은 대도시가 갖고 있는 성향들을 반영하기도 한다. 전체는 세부적 요소와 개인의 아이덴티티로부터 나온다. 추상 풍경장면은 못과 스테이플, 먹, 녹차, 커피, 한지 등의 서로 다른 형의 재료들의 조합과 또한 작업과정 안에서의 발생하는 재료자체의 역할 변형을 통해 의미와 활력을 갖는다. 각각의 작업은 나 자신의 예술에 대한 비전과 태동의 번안일 뿐 아니라 현재라는 특정한 시기 안에서 채택된 고유방식을 통하여 그 위치를 드러낸다. 그러나 예술은 독백이 되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그것은 결코 개인적일 수 없기 때문이다. 예술은 사회적이다. 그것은 자아발견의 주관성을 통한 객관적 직관의 수행을 필요로 한다. 객관적 그리고 주관적 시점 사이의 하나의 관련성을 갖는 요소로서 작가의 고양된 의식을 들을 수 있는데, 그 안에서 창조의 진실과 이 시대에서의 작가의 가치를 드러내는 역할수행에 접근하게 된다. 나는 세상 안에서 무엇을 보는가? 더군다나 감상자와의 의미 있는 대화를 갖기 위해 무엇을 드러내야 하는가? 예술은 정복해야할 하나의 거인과도 같다. ● 폭력과 감각적 자극, 도덕성의 혼란 등은 원자무기와 전자기술이 우세해 지고 있는 이 시대의 다국적주의, 소비적 자본주의와 개인주의에 의해 파생된 피할 수 없는 증후군들이다. 우리는 인간 사회의 위기에 직면해 있다. 당면한 현재와 미래에 대한 불안정함, 두려움과 초조함들이 결과적으로 발생된다. 사람들은 미덕과 진리보다는 가시적 현상과 상품들에 보다 더 의지한다. 우리는 방향과 주체성을 상실했고 집단문화와 소비사회에 매몰되어져버렸으며, 기술문명과 컴퓨터의 빠른 발전에 대처하기 어렵게 되었다. 예술 안에서조차 모든 것이 상품화 되어가고 있다. 새로운 디지털 이미지들이 회화 안에 침투되어져 새로운 아트의 장르로서 직접적으로 적용되어짐에 따라 영구적인 형태로서의 본질적 회화의 개념은 바뀌어졌다. 그 누구도 무엇이 옳고 그르다고 말 할 수 없다. 우리는 회화의 죽음을 선언해야 하는가?
나는 이 시대의 문제점들의 해결점을 부분적으로 포스트 모던 시대 이전으로의 회귀로서 찾아본다. 여기에서 나는 그리스도 신 안의 종교적 진리를 끌어안는다. - 그것은 신의 사랑, 또한 인간애와 정신성이다. 우리는 자기 자신과 이 시대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 ː 우리는 과연 누구이며 또한 어디로 가고 있는가? 나에게 있어서 작업은 세상과의 의사소통을 위한 작가의 독자적 언어를 표현하는데 초점을 둔 하나의 연구제재이다. 따라서 작가의 역할은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방식을 열기 위하여 하나의 시각적 어휘를 기존의 것에 더하여 창조하는데 있다. 나는 나의 작업들이 개별적 시각언어와 함께 감상자의 감성을 이끌 수 있는 즉각적이고 강한 인상을 드러내기를 희망한다. 이것은 작업을 통한 개인적인 내면의 실체와 관객과의 의미 있는 만남을 여는 하나의 도전이기도 하다. ■ 윤선이
Vol.20021120a | 윤선이展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