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식민지_그 양극의 스펙트럼

2002 인천영상미술展   2002_1028 ▶ 2002_1103

김병직_남자는 울지 않는다_단채널 비디오 영상_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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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2_1028_월요일_05:00pm

참여작가 강선미_강혁_비됴-광_김명신_김재화_김태준_김홍희_박황재형 손정목_안현숙_원웅_이상희_정진아_조근직_조영아_최재훈 최재훈'_정윤희_양승수_한준희_강신덕_김병직_강상훈_김미경

개막행사 퍼포먼스_성능경_홍오봉

주최_한국미술협회 인천광역시지회 주관_인천영상미술연구회 후원_인천광역시 기획_한미애

인천 연수구청 전시장 인천시 연수구 원인재길 33번지 Tel. 032_817_1011

한 인간이 살아가는 데에는 많은 주변과 관계하면서 삶의 내용을 만들어 가는 것이 필연적인 것이다. 한 지역의 문화도 마찬가지이다. 반드시 다른 지역의 문화와 교류하면서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 간다고 할 수 있다. 그럴 경우 내가 남의 것을 이용하든지 적당히 받아들이는 것은 주체성이 있는 것이지만 내가 내 것을 버리고 남이 되어버린다든지 남의 것만으로 나를 무장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고 본다. 그런데, 그동안 우리가 우리문화와 외래문화를 대하는 태도는 어떠하였는가? 더러는 나를 남과 같이 만드는 것이 발전적이라고 생각한 적은 없는가? ● 한편, 예술 역시 시대의 변화를 반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며 특히 매체에 민감한 미술로서는 혼돈이라 할 정도로 너무도 많은 변화를 겪을 수밖에 없었다. 도쿄 국립근대미술관의 수석 큐레이터를 지낸 치바 시게오(千葉成夫)는 일본 현대미술을 한마디로 '근대의 극복 과정이었다'고 말하고 있다. 즉 서구를 수용해서 서구라는 모델의 테두리 안에서 어떻게 개성을 발휘할 것인가에 급급하였기 때문에, 항상 서구라고 하는 본가의 뒤를 따르는 아류의 위치를 감수해야만 했던 구체체 미술에서 벗어나기 위한 길이었다는 뜻이다. 그러나 그 길 역시 서구 현대미술의 수용을 통해 이루어져, 진정한 의미의 분가(分家)가 이루어졌는가 하는 점에서 의문을 표시했다. ■ 한미애

양승수_상호침투적 소통의 차이-런닝머신_단채널 비디오 영상_00:04:30_2002

양승수 ● 이분법적 사고에 대한 반발은, 진리의 내용 자체보다 각 진리의 차이를 강조하는 다원주의를 탄생시킨다. 절제와 생산이 미덕이던 고전적 사회가 소비와 레저 중심의 현대사회로 전환되면서 인간의 신체를 소비사회의 문화적 사물로 인식하게 된다. 몸과 정신의 이원론이 무의미해지고 몸과 정신의 동일성을 주장하며 신체는 시각적 언어로, 사회적 실천의 소재로, 문화적 텍스트로서 인간의 세계와 자연적 세계와의 통합언어로 부각된다. ● 본인에게 있어서 신체는 하나의 예술적 실천의 기호이며, 환경과 삶에 대한 자아의 미적인 행동지표라고 할 수 있다. 전인적 신체를 전제로 인간의 본질과 자기확립의 의욕을 표현하고자 한다. 특히 본인은 동양인으로서 음양오행의 일상적 전통의 환경에서 전인적 신체개념을 당연시 해 왔는지 모르겠다. ● 현금에 있어 신체는 인간과 문화, 인간과 동료인간, 신체와 신체와의 소통(comunication)과 상호텍스트성(Intertextuality)의 역할이 증대되고 있다. ● 예술이 그 시대의 사고와 보편적인 진리의 요소를 반영한다면 예술에 있어 신체는 그러한 소통에서의 간주관성(Intersubjectivity)을 파악하여 인간의 본질과 현실의 문제성, 새로운 인식의 변화를 예술 작품을 통해 대안적으로 제시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

강혁_치유_비디오 영상설치_40×40×40cm_00:05:15_2002

강혁 ● 저급한 대중문화양식들이 만들어지고 번식 또는 도태하는 이면에는 인간본성의 흐름이 자리하고 있을 것이다. (여기서 번식, 또는 도태라는 생물학적 용어를 쓰는 것은 그러한 문화 현상이 가지고있는 자생적인 힘에 근거한다.) 그것은 보다 깊이 보다 내부적으로 음밀히 일어나기에 우리는 그 속내를 들여다보기가 여간 힘들지 않다. 그것은 부지불식간에 우리들 본성에 파고들기에 좋은 구조를 가졌으며 인간 욕망을 포장하는 기술을 필요로 한다. 성욕과 폭력적 성향등의 욕망은 대표적인 저급문화가 가지고 있는 무기이며 이것은 어떤 보여지는 권력구조보다 방대하며 강하다. 자신의 국가적 이익을 위해 아편을 넘겨주던 구미열강의 식민주의 정책은 이미 옛말이다. 글로벌세계가 안고 있는 국경없는 자본확장의 전쟁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문화의 잠식력은 그것을 뛰어넘는다. 어쩌면 문화 식민주의라는 말은 지금의 문화 현상을 언급하기에 적절치 못한 단어일지 모른다. 국가대 국가 정책대 정책에서가 아닌 거대 자본과 욕망을 파는 욕망안에서 더 이상 서지지 않는 길에서의 길 잃기를 말하고 싶은 것이다. 개인(개인들이 모인 국가)이 가지고 있는 정체성의 부제는 그들(국가이든 기업이든 또다른 무엇이든)에게 거스를 수 없는 문화 권력을 선사한다. 이는 인간본성의 혼미와 그 지리멸렬한 소모적 특성에 기인한다. 결국 이러한 문화 식민주의라는 담론 또한 인간의 본성의 흐름에 대한 이해와 개인 내연의 자연성을 수많은 욕망과 조화시켜 나가는 미시적이며 실존적인 장 안에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나는 그것이 자연 안에서 치유되어지는 상징적인 꿈을 그려내고 싶다."■

박황재형_"be"_디지털 프린트_2002

박황재형 ● 존재, 혹은 존재한다는 것은 시간과 공간 그리고 각 개인에 따라 다양한 의미와 방식으로 정의될 것이다. 그럼에도 존재의 문제는 늘 "있다"와 관련되어 일방적으로 수용되어 온 측면이 강하다. 하지만 만일 그것이 옳은 방식이었다 하더라도 바로 그 옳은 방식의 증명을 위해 이를테면 "없다"의 문제가 먼저 이해되어져야 한다. 그럴 때 문화적 흐름인 소통의 주체로서의 개인이 왜 항상 소외되어 왔는지의 아이러니뿐만 아니라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끊임없이 흔들리는 '사건-들'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 우리는 보는 것과 듣는 것, 다시 말해 우리가 지각하는 것을 믿는다고 믿는다. 그러나 오늘날 대부분의 경우는 매스미디어와 같은 간접적 매개물을 통해 지각하는데 이는 우리의 믿음을 구성하는 조건들이 강력한 진화의 국면에 접어들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진은 매체화된 기억과 매체화된 현실을 합성하는 과정을 통해 잃어버린 공간을 새로이 입체화하며, 이렇게 생성된 공간은 현실의 차용을 통해 현실의 본질적 의미를 회복한다. 이는 생동하는 외부와의 모든 직접적 접촉이 제한받는 오늘날 사진이라는 형식이 낳은 새로운 상상력을 통해 존재한다는 것의 의미와 그것을 둘러싼 환경과의 소통가능성을 다시 회복하는 하나의 방법이다.

안현숙_세탁제_영상설치_2002

안현숙 ● 한 민족이나 국가의 정체성은 교육을 통해서 재생산된다. 고정되어 있는 듯이 보이는 사회에서 인간은 사회의 통념과 배치되는 자아를 발견하고자 갈구하며 투쟁하여 왔다. 과거 제국주의 시대의 식민지는 종료가 아니라 진행형이다. ● 재현된 폐교의 의자는 과거와 현재 식민지의 정체성을 확대 재생산하는 상징물이다. 폐교되었지만 여전히 자아를 억누르는 틀의 도구로서 현재에도 변형된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오는 상징물인 것이다. 교실의 의자는 정해진 자리와 질서 정연한 줄은 마치 우리 사회의 질서이며 개인에 대한 명령이다. 개인의 자아는 자신이 무엇인지 알기도 전에 그리고 진정한 자신의 문화가 무엇인지 알기도 전에 교실의 의자에서 자신의 자아를 억누르며 당위성으로 현재의 문화를 받아들이기를 강요받는다. ● 폐교 의자의 나열은 단절된 개인 자아의 시간과 공간을 연결하는 길로서 시발점이다. 폐교 의자는 과거 자아의 압박과 강요의 교실에서 현재 연수구청에 새로운 자아로서, 해방된 문화의 자아로서 새로운 역할을 부여받은 것이다. 과거의 상징물인 폐교 의자는 새로운 자아를 깨우치는 도구로서 새로운 문화의 통로인 것이다. ■

이상희_생명에 대한 보고서_사진설치_2002

이상희 ● 여기의 사진은 분명 타살의 흔적 또는 기록을 모아 놓은 것이다. 이 작업의 키워드는 '낙태'이다. 즉 인간의 생명경시현상에 대한 일종의 보고서 형식의 작업이다. ● 이와 같은 사건들은 대부분 사회적으로는 드러나지 않는 모양세로 자행된다. 이 초음파 사진들은 하나 하나가 모두 존엄한 생명체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이 사진 속의 생명들은 모두가 세상의 빛을 보지 못한 채, 삶을 마감한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 이 한장의 감추어진 기록에 의해서 이들의 존재가 있었음을 알 수 있을 뿐.... ■

정진아_도시인의 일상_영상설치_00:05:20_2002

정진아 ● 현대인들은 매일 바쁜 일상 속에서 많은 기계 문명들을 사용하며 문명의 이기를 누리며 살아가고 있다. 전문화되어 가는 사회에 따라 소통의 매체가 많고 미디어도 늘어가지만 오히려 인간 내면의 거리는 더 소원해져 가고 있다. 각자의 목표를 위해 부지런히 행진 하지만 어디서도 따뜻한 공감대를 기대하기는 쉽지 않다. 도시라는 생활 공동체 안에서 이루어지는 하루 일상에서 얼마만큼 소득하고 잃어지는 지, 발전하는 것은 무엇이고 퇴보되는 것은 과연 어떤 형태가 되는 것인지... 거리를 활보하는 사람들의 발걸음 속에서 그들의 욕망과 사랑 그리고 삶의 공감대를 느끼기는 매우 힘들다. 어디로 갈지,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군중들의 발걸음 속에서 왠지 모를 낯설음과 이질감이 다가온다. 그와 더불어 밑도 끝도 없이 밀려드는 외로움은 누구에게나 있는 느낌일 것이다. 이 낯설고 외로운 정서가 단지 혼자만이 느끼는 감정은 아니리라. 도시인들이라면 누구나 이 감정을 갖고 있으면서 서로 어우러지기도 했다가 흩어지기도 하면서 외양상으로는 서로 협조하며 화합하는 것 같지만 결국은 외로움과 이질감등은 남게 되는 부분이다. ● 본 작품에서는 도시인들의 허무한 일상, 모두가 혼자라는 공통적인 외로움을 담아내어 화려한 도시 생활의 이중성을 드러내고자 한다. 특히 지하철이라는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익명의 사람들이 오가는 발길 뒤로 묻어 나는 하루 일과의 피곤함, 집으로 향하는 마음들이 서로 엇갈리는 방향 속에서 각자 흩어져 각자 자기만의 세계로 다시 들어갈 수밖에 없는 도시인들의 일상의 굴레 같은 것도 느껴 볼 수 있다. ● 작업방식은 공공장소나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곳(주로 지하철역을 이용)에서 카메라의 앵글을 낮게 잡아 지나가는 사람들의 걷는 발들만을 촬영하여 편집하였다. 부분만을 이용한 촬영으로 보다 밀접한 느낌과 상상력의 확장을 시도하고자 하였다. 서로 다른 장소에서 지나는 사람들의 발 부분을 촬영한 뒤 다른2개의 영상을 겹쳐서 흑백의 느린 화면으로 보여준다. 각각의 사람들이 처한 서로 다른 상황과 느낌들에 대한 이질감, 거리감 등을 보이지 않는 유리벽처럼 투명하게 처리하였고, 현대인의 빠르게 살아가는 모습과는 반대로 느린 속도의 영상으로 처리함으로서 현대인의 숨가쁜 생활을 역설적으로 표현하였다. ■

Vol.20021024a | 2002 인천영상미술展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