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일시_2002_1016_수요일_06:00pm
공평아트센터 2층 서울 종로구 공평동 5-1번지 공평빌딩 Tel. 02_733_9512
實景과 歷史 그리고 想像과 現實 ● 벌써 1년하고도 1개월이 지났다. 아니 곰곰이 생각해보면 고작 1년밖에 되지 않았다는 것이 그저 신기할 따름이다. 2002년 여름밤의 월드컵 열기 때문인지 작년 9월의 충격은 정말 옛날 일처럼 느껴진다. 다른 사소한 일들은 몇년이 지나도 바로 엊그제 일처럼 생생한데 유독 9.11테러는 오래된 과거처럼 느껴지는 까닭은 무엇일까? 티비화면을 통해 무수히 반복되는 장면들을 보면서 이미 불멸의 역사 이미지로 9.11테러가 자리잡았기 때문일까? 아니면 테러는 아니었지만 우리가 경험했던 와우아파트, 삼풍백화점, 성수대교, 아현동 가스폭발 등의 대형사고들 덕택에 아수라에 둔감해진 탓일까? ● 테러, 사태, 반란, 전쟁, 참사, 난동, 폭동, 학살, 혁명, 운동, 사건 등 1980년 5월 광주를 지칭하는 단어들이 각양각색이듯 2001년 9월의 뉴욕을 지칭하는 단어도 세계관과 정치관에 따라 다르다. 하지만 9.11테러로 얻어진 분명한 교훈은 세계를 지배한다고 하는 '미국'이 더 이상 '美國'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선 오히려 미국 밖에서보다 미국 내에서 자성하는 목소리들을 더 크게 들을 수 있다. 20세기에 미국이 야만적인 방법으로 세계를 지배했다면 21세기부터는 그 야만의 방법은 더 이상 통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21세기 첫해 마천루가 뿌우연 가루로 무너지면서 경고했던 것이다. ● 한편으로 9.11은 인류역사상 가장 경제적이고 가장 예술적인 방식의 테러로 기억될 것이다. 아무도 감히 상상하지 못했던 방법이었으며 미국의 자원으로 미국을 테러하는 마치 영화와 같은 불가능한 작전이 감행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9.11테러로 희생당한 사람들의 아픔과 슬픔을 생각할 겨를도 없게 만드는 묘한 공포가 9.11테러에 자리잡고 있다. 다시 말해서 휴머니즘적 견해를 무색하게 만드는 상상을 초월한 기습테러의 당혹감이 미국을 좋아하건 싫어하건 상관없이 새로운 21세기에 들떠있던 전지구 사람들을 놀라게 하였다. 그리고 현명한 사람들은 20세기의 야만적 삶에 대해 반성의 계기를 가졌다.
9.11테러 1년을 약간 지나 열리는 성태훈의 이번 전시는 『역사현장-공존』이다. 그는 이미 1999년 첫 개인전인 『역사현장실경』전에서 배들평야, 만석보, 백산, 황토현, 우금치, 곰나루 등의 동학혁명의 현장들과 광주도청 등 광주민주항쟁의 장소를 답사하여 그려낸 서정적 실경을 보여준 바 있다. 그리고 2000년 두 번째 개인전인 『유배지 역사현장 기행』전에서 강진, 신지도, 흑산도 등 유배지를 다녀와서 그곳의 인상을 화폭에 담았다. 두 번의 개인전 모두 답사나 기행 후에 그린 실경산수의 방법을 채택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번 세 번째 개인전 『역사현장-공존』은 이전의 작품들과 심한 차이를 보인다. 일단 성태훈이 이번 전시를 위해서 미국을 다녀온 것도 아니지만 9.11테러라는 최현대사라고 불리우기에도 너무나 가까운 과거에 주목하고 있다. 사실 9.11은 굳어진 역사라기 보다는 시사적이라고 불러야 자연스러울 아직도 살아있는 사건인 까닭이다.
그렇다면 성태훈은 이전의 화폭에서 지켜왔던 실경과 역사를 버린 셈이다. 다만 이전의 전시에 비해서 점점 더 강해지는 것은 성태훈 자신의 삶이다. 실경과 역사 모두 일정의 객관을 담보하는 것이었다면 『역사현장-공존』에서는 주관이 강조된다. 과거 그림들은 직접 체험하지는 않은 서적과 전해들은 이야기들로 구성되어있다. 그래서 그 당시의 감정을 어슴푸레 유추하면서 실경을 취해야만 했다. 반면 『역사현장-공존』에서는 비록 미국에서 직접 테러를 목격하지는 않았지만 생생하게 실시간으로 전해오는 정보를 받아들이며 성태훈 자신이 직접 느낄 수 있었던 감정을 그려내고 있다. 물론 이 또한 직접적이지 않은 매스컴이라는 가상의 텍스트를 받아들이고 있으나 문제는 실시간으로 성태훈이 느끼게 되는 감정의 또렷함에 차이가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인지 폐허가 된 맨해튼을 배경으로 아주 맑고 천진무구한 꼬마가 화폭에 등장한다. 이 꼬마는 다름 아닌 성태훈의 딸 윤서의 모습이다. 9.11 당시 반복되어 상영되는 티비 테러장면을 윤서를 비롯한 가족들과 함께 보면서 느꼈던 그 묘한 감정을 화폭에 담으려 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實景과 歷史 그리고 想像과 現實 사이를 오가는 성태훈의 생각을 『역사현장-공존』에서 읽을 수 있다. 앞서 성태훈이 실경과 역사를 버렸다고 하였으나 한번 더 되짚어보면 그런 것도 아닌 것 같다. 우리에게 史實과 事實의 차이만큼이나 애매한 그리고 너무나 분명한 경계를 구분해야 한다는 부담은 결코 역사와 실경을 팽개칠 수 없게 만들기 때문이다. 이미 화석처럼 굳어져버린 역사라면 史實과 事實이 분명 다를 수도 있겠지만, 현재 진행중인 역사라면 그 구분은 매우 버거운 일이 된다. 그래서 그 버거운 성태훈의 화폭에 想像과 現實이 스며들었다. 좀더 꼼꼼하게 따져보자면 '事實과 現實'은 또 '事實과 史實'만큼이나 차이가 난다. 이 둘을 구분할 줄 아는 능력 그것이 바로 想像이지 않을까 한다. 그 상상의 힘으로 성태훈은 테러로 인해 흩날리는 뽀얀 먼지를 배경으로 그려진 텅 비어있는 앙상한 새장을 화폭에 담았다. ■ 최금수
Vol.20021012a | 성태훈展 / SEONGTAEHUN / 成泰訓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