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일시_2002_1009_수요일_06:00pm
관훈갤러리 신관 1층 서울 종로구 관훈동 195번지 Tel. 02_733_6469
자연이 그림의 본원적인 근간으로 이해되고 있다는 사실은 오늘날 한국현대미술에서도 여전히 매력적으로 잔존한다. 나무줄기와 이파리, 산과 바위의 형태, 우거진 잡목과 나무등치, 낙엽과 꽃, 물과 바위, 싱그러운 바람과 청명한 하늘, 무심하게 부유하는 구름과 허공을 떠도는 아련한 바람의 내음 혹은 향기 같은 것들이 사람의 눈과 마음에 스며들어 그것이 자연스레 선으로, 형상으로 흡사 꽃망울이 터지듯, 줄기가 자라듯, 물이 구름이 되고 대기가 되어 떠돌 듯 그렇게 발아하는 것이 동양의 그림이었을 것이다. 이러한 관조적인 미적 체험과 경험, 그리고 생태주의적인 유기적 조화의 연관 속에서 그림 그리는 이는 자신의 몸·생명을 둘러싸고 있는 자연·세계와 함께 호흡하고 있다는 사실을 새삼 인식하면서 그런 깨달음이 그림 그리는 행위로 다시 한번 추인 되는 것 같다. 그것은 삶의 자각 같은 것이자 생명의 깨달음, 자연과 우주의 이치나 질서를 몸소 수행하는 차원과도 관련이 깊어 보인다.
하늘이 배경이 되고 그 사이 사이 떨리며 움직이는 나무의 끝자락을 본 경험이 작업의 모티브로 발생한다는 구미경의 그림은 섬세하고 민감한 자연대상의 관찰과 그로 인해 파생하는 심리의 결, 잔상과 여운 같은 것들을 선적 유희를 통해 표출해 낸다. 자연을 서정적으로 감응해내는 마음의 자락이 그림의 바탕이 된다. 그러한 정서적 반응은 하나의 선으로 풀려 나온다. 동양화를 전공한 작가의 최근작은 자유로운 드로잉·선 작업을 통해 우연적인 요소와 필연 사이에서 생성과 변화를 거듭하는 자연의 속성을 최대한 자유롭고 자연스러운 선으로 표출시키고자 한 것이다.
그로인해 붓의 놀림과 선의 자취, 자연에서 받은 감흥의 이미지화, 다양한 시간의 흐름이 공존하는 양상, 구체적이고 명확한 대상의 재현이 아니라 현상 너머에 존재하는 생명과 흐름, 호흡 같은 것들을 선만으로 표현해내고자 하는 욕구 등을 만난다. 무엇보다도 그녀는 하늘과 나무·가지와 잎사귀, 꽃망울을 본 시각적 경험, 지극히 개인적인 만남을 환기시킨다. 일상 속에서 늘 동경의 대상인 하늘을 바라보는 한편 그럴 때마다 시야에 걸려드는 나뭇가지의 형상은 하늘과 사물이 만나는 경계에서 생성의 변화, 자연계의 미묘한 반응, 생명현상의 경이적인 체험을 접하게 하는 동시에 다채로운 정서와 감흥을 마냥 유발시켜주는 것이다. 따라서 그녀의 그림은 바탕·표면이 하늘이 되고 그 하늘공간에 서식하며 자라는 줄기의 실루엣이 등장한다. 그것은 일정한 시간, 속도로 생명의 생성과 존재의 과정을 따라가는 일이기도 하다. 어쩌면 자연현상을 다시 한번 자신의 화폭위에 올려놓는 일, 경험해 보는 일에 가깝다.
자연이 스스로 그렇게 이루어졌듯이 화면 속의 선적인 요소들 역시 지극히 그렇게 자연스럽게, 자신의 몸과 마음의 결을 고스란히 따라가는 것이다. 아마도 그런식의 그림이 작가에게는 가장 자기다운 그림, 자기만의 선을 찾는 방법으로 추구되는 것 같다. 따라서 그 선은 결국 자기의 분신처럼 미끄러지고 얹혀지며 허공·화면 안에서 떠돌다 잠시 숨을 고르고 또 다른 이동의 경로를 보여주는가 하면 그 순간순간의 흔적과 자취를 생생히 호흡하면서 한정된 시간, 생명을 보여주다 그친다. 아니 잠시 유예의 시간을 갖는다. 다른 화면에서 그 삶은 다시 연장되고 지체되다가 또 다른 삶으로 이동한다. 그것은 끝없이 순화하는 자연질서를 닮았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해파리처럼, 섬모처럼 유영하는 선, 선의 현란한 육체성을 종이의 피부와 일치시키는 자태, 흡사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지렁이나 뱀처럼 자기 몸으로 밀고 다닌 흔적들이 재미있게 그려져 있다.
장지와 캔버스 천 위에서 이루어지는 작업은 우선 석회와 호분으로 밑 작업을 하고 작업을 하고 채 마르기 전에 먹과 혼합한 재료를 그 위에 흘려가며 붓는다. 그렇게 적당한 수분을 함유한 석회 사이로 먹과 색이 제자리를 찾아가듯 물들어가면서 서서히 응고되어 하나의 배경으로 자리잡아나간다. 그런 과정에 순응한다. 그런 후에 그 안에서 영상을 떠올리고 빈 공간 안에 몸, 손을 맡긴다. 그래서 얹혀진 이미지·드로잉은 여전히 나무나 꽃을 은연중 연상시키기는 하지만 구체적인 사물의 형태로는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 자체로 독립된 하나의 선, 서로 엉키고 풀리면서 만들어지는 가늘고 굵은 선들의 조형적인 몸짓, 제스처이며 그 순간에만 존재할 수 있는 자연의 이미지이기도 하다. 투명한 깊이와 얇은 마티엘을 머금은 단색조의 화면·하늘을 배경으로 꿈틀대면 지나가는 선의 궤적은 부드럽고 유연한가 하면 섬세하고 날카롭고, 매우 유니크하면서 서체의 획을 닮았다. 붓 이외의 여러 도구를 사용하면서 선의 맛을 다양화시키는 한편 밝은 바탕면에 대비되는 어둡고 강한 선으로 표현했으며 아울러 생성과 소멸, 다채로운 변화를 겪는 자연현상 자체를 가시화 시키기 위해 선의 궤적은 이어지고 끊어지듯, 떨림과 겹침, 멈춤과 이동을 리드미컬하게 보여준다. 그 선들은 하나의 음율적인 선으로 기능한다. 동시에 전적으로 미묘한 중성톤의, 금분과 은분을 머금어 시선의 이동과 빛에 변화에 따라 약간씩 편차를 드러내는 유동적인 변화의 뉘앙스 또한 접한다.
매우 서정적인 이 선은 몸의 감각 자체를 한정된 공간에 유영하는 일이자 우연과 의식적인 행위 사이의 교차를 통한 긴장과 모험을 동반하는 일이며 동시에 목적론적 그림그리기를 지워내면서 직접적이고 순간적인 감각으로 그려진 선, 자동기술적인 그 선을 통해 매순간 자신의 삶, 감각, 호흡을 발견, 환기하려는 그런 그림으로 다가온다. 반면 그 경험과 감각이 제스처로 머물지 않기 위해, 단조로운 선의 유희 안으로 잦아들지 않기 위해 치밀한 자연체험과 경험, 자연과의 유기적 관련 속에서 몸과 감각을 환기하려는 수행의 차원으로서의 그림 그리기, 선에 대한 독특한 감성과 그것의 적절한 구사, 방법론의 확장 같은 것들도 새롭게 모색되어야 할 것이다. ■ 박영택
Vol.20021006a | 구미경展 / KOOMIKYOUNG / 具美暻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