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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2_1020_수요일_06:30pm
대구MBC Gallery M 대구시 수성구 범어동 1번지 대구문화방송 1층 Tel. 053_745_4244
가보지 못한 곳을 갈 수 있을까? 들을 수 없는 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 영원이라는 것을 유한한 삶 가운데서 감지해볼 수는 없을까? 가끔 나는 이런 질문을 던진다. 이 글을 읽는 분들도 이런 질문을 해보았을 것이다. 유독 이런 의문을 자주 떠올리는 사람들이 예술가들이 아닌가 싶다. 그들은 현실에서는 보거나 들을 수 없는 것을 알려준다. 충분하지 않더라도 '맛보기' 정도로도 우리는 흐뭇한 미소를 짓는다. 가보지 못한 곳, 들을 수 없는 소리, 영원에 대한 갈망은 그만치 강렬한 것이다. 그 강렬함을 의식하지 못할 따름이지 누구든지 이런 갈망을 품고 있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그 세계를 보여주면 어린 아이처럼 좋아하며 만족한 표정을 짓는다. ● 홍성문 선생은 일상의 지평을 뛰어넘어 상상의 날개를 활짝 펴서 하늘로 비상한다. 그리고 그 날개로 우리가 느끼지 못하는 것들을 느끼게 하고 보지 못하는 것들을 보게 만들어준다. 연세와 상관없이 예술가의 마음은 시공간을 자유로이 넘나든다. ● 홍성문 선생을 직접 뵌 적은 몇 차례밖에 되지 않으나, 아주 조심스럽고 예민한 감수성을 가지신 데다가 오랜 세월 교육계에 종사해오신 터라 넉넉한 인품을 지녔다는 느낌을 전달받을 수 있었다. 사람을 만나면 그 사람이 경유해온 삶을 되돌아볼 수 있는 것처럼, 홍성문 선생을 만났을 때 여유와 예술가다운 섬세함을 함께 느껴볼 수 있었다. 오랜 세월을 살아오신 분임에도 불구하고 그에게서 어딘지 모르게 들판에서 맡을 수 있는 풀향기와 같은 청초함, 그리고 수줍음마저 발견할 수 있었다. 그만치 세상에 닳지 않았다는 얘기이며 현실에서 밀려오는 온갖 풍파 속에서도 순수성을 지켜왔다는 뜻이 된다.
작품세계를 알아보기에 앞서 작가의 예술활동을 잠시 살펴보기로 하자. 선생은 서울대학교에서 조소를 전공한 뒤 귀향하여 95년까지 4회의 개인전 이외에 여러 단체 전람회 참가, 그리고 환경 및 기념조형물을 제작하였다. 그는 해방 후 우리 조각을 이끌어온 대표적인 조각가중 한 명이며 영남권의 조각을 이만치 발전시킨 것은 그가 공들인 덕택이다. ● 선생은 미술교육가로서 교단에 서서 조각을 포함한 시각예술을 알리고 또 후진을 양성하는데 큰 역할을 하였다. 교육가로서 그는 김천고교 미술교사를 시작으로 대구교육대학, 효성여자대학 그리고 79년부터는 영남대학교에 재직하면서 수많은 제자를 길러냈다. 54년 학교에 첫 발을 내딛은 이래 퇴직하던 95년까지 무려 41년을 교단에 바쳤으니 생애를 미술보급과 제자양성에 바쳤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닐 것이다. ● 그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다른 한가지 요인을 덧붙일 필요가 있다. 조소와 함께 전념한 시작(詩作)활동을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다. 그의 시적 감수성은 젊은 시절부터 발휘되기 시작했다. 54년에는 『문화세계』에 당선하여 정식으로 문단에 데뷔하였다. 그리고 58년부터는 『현대문학』에 다수의 작품을 발표해 사람들의 주목을 받아온 터이다. 그간 「문」,「꽃과 철조망」,「얼굴」,「양속의 바다」 ,「생명의 그림자」 등 시집과 작품집만 해도 여러 시집을 냈다. ● 보통 사람은 한가지 일도 힘겨워하는데 선생은 무려 3가지 일을 거뜬히 해냈다. 미술, 문학, 그리고 가르치는 일이 그것인데 이쯤이면 얼마나 풍부한 예술적 자질과 교육가로서의 면모를 두루 갖추고 성실히 자신의 삶에 임해왔는지를 짐작케 해준다. ● {생명의 그림자}(1995)란 작품집에서 선생은 자신의 작업을 크게 4단계로 나누어 설명한 바가 있다. 그리고 그의 분류는 상당히 적절한 것으로 생각되므로 그 분류에 바탕하여 작업특성을 간략히 알아보기로 하자.
제1기(1953-1970)는 국전출품과 향토화단에서 활동한 시기로 나무, 돌, 철재, 시멘트 등을 소재로 '시적 상념의 표출'이나 '무작위적 표현'을 구사한 단계이다. 이 시기는 탐색기로 보이는데 인체의 겉모습을 형상화한 것, 인간끼리의 어울림을 통해 인간애를 드러낸 것, 아예 인체를 추상화하여 구조화한 것 등 여러 가지 방향을 시도하였다. 그런가 하면 「달의 이야기」(1970)처럼 반달모양의 구체 위에 별의 반짝임과 찬란한 광채, 달의 운치를 곁들여 표현한 아름다운 동판작품도 있다. ● 제2기(1971-1980)는 국전출품을 위주로 활동한 시기이다. 수지나 브론즈, 돌 등으로 일관된 인체표현과 서글서글한 여인상에 주목하던 무렵이다. 그의 인체작업은 와상, 입상, 좌상 등 여러 포즈를 망라하였으며 넓은 아량과 포용력을 연상시키는 사랑 많은 어머니상을 주로 다루었다. 나무로 깎아만든 「회귀비곡」(1973)이나 「동방의 시」(1974)는 어머니와 아이의 밀접한 관계를 표상한다. 「동방의 시」의 경우 어린 아이가 어머니를 향해 장난하듯 손을 뻗치고 있고 어머니는 아이가 다치지 않도록 오른 손으로 아이를 붙들어준다. 모자의 정을 따뜻한 눈길로 포착한 작품이다. 나무의 결을 충분히 살려 재질감을 극대화시킨 것이나 그러면서 신체의 곡선과 아름다움을 잘 살린 작품이다. ● 제3기(1981-1990)는 인간의 내면성을 드러내려고 한 시기로 형태의 단순화로 특징지어진다. 이 시기 작가는 인간을 집중적으로 응시한다. 그런 응시에는 군더더기나 외관 혹은 세부 등 부수적인 것의 배제가 요구되며 동시에 인체의 구조를 드러내기 위한 최소한의 요건만 동원된다. 인체는 네모꼴로 압축되고 표정이나 포즈도 단순하기 그지없다. ● 「별곡 2,3,4」(1987-1989),「못다한 노래 1」(1981),「후일」(1981),「하늘」(1984), 「못다한 노래 3」(1982)등은 나무를 두부를 자르듯이 숭덩숭덩 잘라 덩어리로 인체표현을 하였다. 구체적인 묘사나 정교함은 발견되지 않고 인체의 구조적 인식이 주종을 이룬다. 몸통과 머리, 팔,다리는 사각형이나 타원형으로 환원되고 양괴감에 의존한 육중한 무게감이 공간을 압도한다. 작품에 등장하는 여인들도 흔히 생각하는 미인상과 다르다. 그들의 팔과 다리는 굵고 튼튼하다. 얼굴도 우리가 연상하는 예쁜 이미지와 다르다. 입술이 다물어져 있고 강직한 표정이다. 시골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여인들의 얼굴이며 시장터나 어촌에서 흔히 만나는 우리 이웃의 모습이다. 그 형상 안에는 하루하루를 힘겹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감정들, 가령 애환, 슬픔, 고통, 시련, 인내 따위가 실려 있다. ● 마지막으로 제4기(1991년 이후)는 산, 구름 등 시선을 자연으로 돌려 표현영역을 넓히고 보다 자유로운 형태를 도입한 시기이다. 이 때 새로운 공간의 창출 및 부드러운 선조의 감각이 되살아나게 된다. 산과 구름이 등장하고 자연과 사람이 조화를 이루는 모습이 확연히 나타난다. ● 「구름밭」(1993)이란 나무작품은 피리부는 어린아이가 구름에 걸터앉아 즐거이 연주하는 장면을 조각한 것이다. 구름은 아이를 포근히 껴안은 자세이고 아이는 피리연주에 몰입되어 있는 광경이다. 작가의 순수하고 소박한 마음의 단면을 읽어볼 수 있으려니와 자연과 인간의 어울림을 동화의 한 장면처럼 흥겹게 표현하고 있다. ● 이 작품을 보면서 느끼는 것은 미술은 상상을 극대화시키는 기제가 된다는 사실이다. 넌픽션의 세계에서 픽션의 세계를 상상해볼 수 있는 것은 여유가 있다거나 시간이 남아돌아서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다. 사람은 돈이나 음식물로만 사는 게 아닌 존재이므로 정서적 측면을 항상 고려해야 한다. 바로 이런 정서적 측면을 지탱시켜주면서 거기에다가 풍부함을 공급해주는 것이 예술이며 예술을 통해 현실에서 이루어지지 않는 세계를 내다볼 수 있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역할을 훌륭히 담당하는 사람이 바로 이 글의 주인공 홍성문 선생이다.
그의 대표작중 하나는 1999년에 조성된 안동조각공원에 설치되어 있다. 세 타원이 수직으로 얹혀진 모양을 띠고 있는 「구름의 노래」란 작품으로, 하나하나의 석괴는 한쪽 방향으로 쏠려 있으며 비스듬히 쏠린 선을 타고 다른 하나의 타원이 얹혀 있는 형국이다. 이 작품은 그가 평소 탐구해온 구름 연작 중 하나로 자연스럽게 얻어진 선율 속에 담긴 유기적 공간성과 단아한 매스의 반복, 점층 형식의 표현 등을 특징으로 하고 있다. ● 우리는 이 작품을 보면서 한가로이 떠 있는 구름을 떠올리게 된다. 하늘에 피어 있는 뭉개 구름, 그것은 보는 사람을 느긋하게 할 뿐 아니라 세상의 시름을 잠시 잊게 한다. 하늘을 쳐다볼 수 있는 자에게 주어지는 축복이다. ● 고개를 들어 하늘을 봐야만 구름을 관조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의 생활 가운데서 그렇지 못한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오로지 땅의 것에만 골몰하니 여유를 가질 수 없다. 스케줄에 쫓기는 현대인에게 결여되어 있는 잠시의 여유, 이 작품에서 우리는 소중한 마음의 휴식을 찾는다. 근심과 염려뿐인 갑갑한 현실의 굴레에서 벗어나 자연을 꿈꾸며 그와 동화하려는 작가의 생각을 엿볼 수 있을 것이다. ● 그의 작품은 대단히 편안하게 보인다. 세 개의 구름이 크기별로 안정되게 포치되어 있을 뿐 아니라 색깔에 있어서도 황등석을 사용하여 정갈하고 순수한 흰색의 정취를 더해주고 있다. 어떤 더러움이나 티도 없는 맑고 깨끗한 색깔이다. 거기에 동그란 띠 모양의 구름이 어우러져 한층 고요한 시심을 불러일으킨다. 부드러움이 미려한 곡선과 함께 밀려들며 또 순수함이 청아한 색깔과 함께 다가오는데 이러한 부드러움과 순수함은 그의 작품이 친근하게 여겨지는 주된 요인이 되고 있지 않은가 싶다. ● 「산의 이미지」(1992)는 유기적 형태감이 볼만하다. 럭비공처럼 생긴 공을 몇 개 쌓아올린 것같이 생긴 작품이다. 산을 형상화했는데 산의 각진 모양은 부드러워져 완만한 등선을 이룬다. 흡사 구름같이 뭉실뭉실한 느낌을 주며 옛 적 마을의 뒷동산을 연상시키듯이 보는 이로 하여금 아련한 회상에 젖게 한다. 이렇듯 「산의 이미지」는 동기가 순수하고 조형에 있어서도 불필요한 군더더기를 모두 빼 정제된 형태만을 간직한다. ● 그의 근래 작품들, 가령 「어느 예술가의 초상」(2000),「나무의 노래」(2001),「구름의 노래)(2002) 역시 순수성의 추구가 눈에 띤다. 모두가 공통적으로 완만한 곡선의 효과, 동그라미의 중첩 내지 유기적 형태의 강조, 그리고 재료로 사용된 나무의 천연적 무늬를 그대로 기용하였다. 「어느 예술가의 초상」이나 「나무의 노래」의 경우, 형체로 보아 사람인지 구름인지 구분이 잘 안된다. 구름은 사람처럼, 그 반대로 사람이 구름처럼 의인화되어 있다. 구름처럼 떠도는 인생, 나그네로 왔다가 나그네로 가는 삶을 형용하였을까? 문제는 나그네로 살지만 늘 '나그네'임을 잊지 않는데 있을 것이다. 만일 한시라도 '나그네'임을 잊지 않는다면 우리의 인생을 한층 의미있고 유익하게 보낼 수 있게 될 것이다.
그의 인생관은 어떨까? 그는 자신을 어떻게 살았다고 피력하였을까? 그의 시 일부를 들여다보자. ● "이 팍팍한 모랫벌 같은 나날을/ 이 먹먹한 바닷속 같은 나날을/ 지칠줄도 모르고/ 이정표도 없는 휘휘로운 길목마다/ 시를 그림자로 이끌고 조각을 그림자로 이끌고/(중략)/네게로 뛰어와 말없이 지켜주던 그림자가 되었지."(서시(序詩),생명의 그림자중에서) ● 작가는 시나 조각이 자신의 '그림자'가 되었다고 말한다. 여기서 그림자란 '벗'과 같은 친숙한 의미로 사용되지 않았나 싶다. 삭막한 세상을 살면서 그는 시와 조각을 통하여 피로를 삭히고 약간의 위로를 얻으며 삶을 꾸려왔다고 말한다. 반대로 얘기하면 시와 조각이 없었다면 그에게 세상은 끔찍한 것이 되었으리라. 그나마 예술이 있었기에 그는 보람된 나날을 보낼 수 있었으며 행복한 마음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예술과 더불어 '나그네' 인생을 멋있게 장식했노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 서성록
Vol.20020930c | 홍성문展 / HONGSUNGMOON / 洪性文 / sculptu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