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과 역사적 기억

2002 하남국제사진페스티벌展   2002_0928 ▶ 2002_1006

2002 하남국제사진상 수상작가_김아타_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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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퍼런스_2002_0930_월요일_02:00pm~06:00pm

발표자_이영준_천썬(陳申)_구스모토 아키 질의자_이경률_최봉림

하남시청 대회의실 경기도 하남시 신장2동 520번지 하남시청 Tel. 031_790_6533

역사적 기억은 어떻게 사진을 통해 환기되는가? ● "사진과 역사적 기억"이라는 주제는 두 가지 층위에서 논의될 수 있을 것이다. ● 1. 특정한 역사적 사건은 어떻게 사진을 통해 형상화되고, 그것은 어떤 식으로 보는 이의 기억을 구축하는가? ● 이 물음은 역사의 기록이라는, 사진의 특수한 면에 대한 것이다. 역사적 사건의 구축을 위하여 사진의 코드는 어떻게 동원되는가? 코드는 보도, 다큐멘타리, 예술, 상업 등 사진의 여러 분야에 따라 다르게 동원되고 엮어질 것이다. 이 주제는 코드와 기억이라는 문제를 탐색하게 된다. 예를 들어 한국전쟁을 찍은 미국의 사진가들은 한국전쟁을 미군들의 활약상을 중심으로 찍음으로서 한국전쟁을 '한국민들의 전쟁'이 아니라 '미군들의 전쟁'으로 만들고 있을 뿐이다. 한국전쟁은 그런 식으로 기억된다. 여기서는 구체적인 역사적 사건에 대한 사진기록의 정확성, 해석의 타당성에 대해 검토하게 될 것이다. 아울러, 한국, 중국, 일본의 역사에서 특정한 계기를 사진이 어떻게 묘사하고 있는가를 살펴보게 될 것이다. ● 2. 사진은 역사적 기억을 환기시키는데 적절한 매체인가? 이는 사진의 본질적인 측면에 대한 의문제기이다. 사진은 문서기록, 유물, 설화 등 역사적 기억을 환기시키는 다양한 형식에 대해 우위를 가지는가? 이제까지의 대답은 그렇다는 것이다. 사진의 객관성과 현존성의 보장이 그 우위를 가져다 주는 근거였다. 그러나 최근 들어 사진의 그런 특성에 대한 비평적인 검토들은 사진이 일방적으로 우위에 있지 만은 않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문제는 역사적 기억의 증거로 기능하는 사진이 적절한 증거인가 하는 것이다. 사진의 증거능력은 어떤 틀에 의존하고 있는가? 그리고 사진이라는 증거를 토대로 구축되는 역사적 기억은 얼마나 믿을 만한 것인가? 거꾸로, 사진이 없었던 시대에 대한 기억과 인식은 사진이 있었던 시대에 비해 희미하기만 한 것인가? ■ 2002 하남국제사진페스티벌 컨퍼런스

2002 하남국제청년작가전 출품작_Jin Yongquan_중국

사진술이 중국 전입 당시의 상황 ● 1. 사진술은 1844년 프랑스에서 직접 중국에 전입. 그 이전인 BC 400년부터 중국에서는 광학에 대한 연구를 시작, 당시 일부 학자들은 Camera와 감광판에 대한 연구를 시작하였다. ● 2. 1844년, 사진술은 주로 외교, 통상, 선교사에 의해 중국에 전입되었고 또 중국인들이 외국에서 배워온 예도 기록에서 볼 수 있다. 초창기 사진서적의 출판도 사진의 발전에 기여했다. ● 3. 중국 초기 사진관의 상황: 외국 사진인들의 활동, 청나라 황제의 사진 및 황족들의 사진촬영 상황에 대한 고찰. ● 4. 이외, 여러가지 진귀한 역사사진 슬라이드. ● 발제 소요시간: 60분 ● 별도로 준비된 논문: 1.사진대가 낭정산(1822-1995, 슬라이드 80점)_ 2.중국의 기자 방대증(1912-1937, 슬라이드 80점)_ 3.세계사진술 발명사(1822-1880, 슬라이드 80점) ■ 천 썬(陳 申)

2002 하남국제청년작가전 출품작_Arimoto Shinya_일본

카메라를 통한 일본의 재발견: 오카모토 타로(岡本太郞)의 경우 ● 오카모토 타로는(1911-1996)는 전후 일본의 가장 영향력 있는 작가 중의 하나였다. 그는 회와, 조각, 저술 등으로 유명하지만 최근에는 현장답사에서 많은 사진들을 찍었다는 사실이 주목을 끌고 있다. 그의 사진들은 창작작업을 위한 단순한 참고자료로 찍은 것은 아니다. 오카모토는 파리에 있는 동안 마르셀 모스 밑에서 인류학을 배웠고 조르주 바타이유 같은 사상가와 접촉했다.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그는 일본의 여러 곳들을 찾아다니고 사진을 찍으며 전후 시기 자신의 문화적 토대를 밝혀 보려 했다. 그의 사진은 이 여행 동안 가꿔낸 통찰력 있는 시선을 반영하는 것이다. ■ 구스모토 아키

2002 하남국제청년작가전 출품작_김혜선_한국

현대한국에서 사진은 어떻게 '지금'의 순간을 구성하고 있는가? ● "올림픽에서는 전통을 보여주었으니 월드컵에서는 미래를 보여주자"_2002 월드컵 개막행사 총책임자의 말 ● 이 말은 한국에서 '현재'라는 시간의 위치를 상징적으로 대변해 준다. 한국의 현대사에서 현재는 표상 불가능한 영역이었다. 그것은 70년대부터 있던 박정희식의 수사에서 잘 나타난다. 80년대가 되면 수출 100억불, 국민소득 천불의 시대가 온다는 것이 박정희 시대의 구호였다. 90년대가 오자 구호는 바뀌었다. 21세기가 구호였다. 그들은 미래를 앞당기기 위하여 21세기를 1년 먼저 오도록 바꾸어 놓았다. 현재를 바라본다는 것이 어느 정도의 역사적 트라우마이길래 한국의 정치가들은 그들의 수사에서 현재를 이렇게도 빼버렸는가? 실은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5.6쿠데타, 동백림간첩단사건, 10월유신, 긴급조치, 대통령 암살, 광주민중항쟁 등, 80년대까지의 한국 현대사의 현재는 고통의 시간들로 채워져 있었고, 이것들을 제대로 표상한다는 것은 실제로 내면적, 외면적 검열에 의해 가로 막혀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 결과로, 한국에서는 '현재'는 표상 불가능한 영역이 되어 버렸다. ● 왜 한국현대사는 망각의 역사인가? 망각은 왜 일어나는가? ● 역사적 기억의 소실은 내면 속의 기억 뿐 아니라, 집단적인 기억마저도 소실시키고 있다. 근대적 아카이브에 대한 경시나 소홀은 그 자체로 한국의 근대를 특징지울 수 있는 현상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만연해 있는 현상이다. 많은 양의 사진들이 생산되지만, 항상 철거되는 한국의 건축물처럼, 과거에 대한 텍스트로 남지 못하고, 또한 현재를 '체험할 수 있는 어떤 것'으로 만들어주는데 기여하지 못 하고 망각 속으로 사라져갈 뿐이다. ● 그러나 한국의 현재라는 것이 사진가들의 노력만으로 표상해낼 수 있는 것인가? 문제는 노력이나 시각의 확장이 아니다. 끊임없이 현재를 잊도록 만드는 한국 특유의 표상의 정치가 문제인 것이다. 그 표상의 정치는 다른 곳에서도 인용했던, 발터 벤야민이 말한 '클레의 신천사'가 갇혀 있는 근대적 역사시간 속에서 작동한다. ● 여기서 의문은, 왜 한국사람들은 현재를 표상할 수 없는 것일까? 하는 것이다. 또한, 왜 현재를 부정(disavowal)하는 일은 왜 생겨날까? 사진은 현재를 인식하는데 얼마나 도움이 될까? 현재 한국의 사진이 보여주는 시간대는 언제인가? 왜 사진에서 시간성이 중요한가? 등의 의문들이 추가로 따라나온다. ● 무엇보다도, 한국에서의 '현대'라는 시간은 매우 빠르다는 것을 전제로 해야 할 것이다. 그것은 끊임없는 역사적 텍스트의 삭제와 덧씌우기를 통하여 매우 밀도 있게 구성되는 시간이다. 그 시간 속에서 사진은 과거의 표현형식과 내용을 답습하는 식으로 뒤쳐진 시간을 보여주기도 하고, 새로운 내용과 형식의 제시를 통해 앞서 가는 시간을 보여주기도 한다. 문제는 둘 다 우리가 '현재'라고 알고 있는 것을 초과해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항상 눈앞에 현존의 형태로 붙잡고 있다고 생각하는 '현재'는 사실은 사진의 현존성이 우리에게 가져다 주는 약속일 뿐이다. ● 사진의 가장 큰 장점이 기억의 대체수단이라는 점을 상기할 때, 이는 큰 아이러니이다. 사진은 기억을 대체하는 것처럼 보이는 바로 그 순간 끊임없이 '현재'에 대한 기억을 구축해내기 때문이다. 이는 과거, 현재, 미래의 세가지 차원이 다 구체적인 모습으로 존재할 수 있는 역사적 연속성을 박탈당해 온 한국에서는 매우 특수한 문제이다. 한국사람들이 '현재'를 표상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음은 비단 사진 뿐 아니라 다른 여러 가지 표상에서 나타난다. 과거로 돌아가는 음식점 인테리어, 개량한복, 복고풍의 술집 등은 역사의 시간축에서 자기 자리를 잡지 못 하고 표류하는 한국의 현대를 표상하며, 과거 자체의 기록도 점차로 풍화되어 가는 중이다. ● 이런 와중에서 한국의 현대는 끊임없는 과거회귀와 과거망각이라는 두가지 극단을 오가고 있다. 그 간극을 메워주는 것이 사진이다. 사진은 역사에 확실성과 현존성을 부여해 주어, 믿을 수 있는 어떤 것으로 만들어 준다. 이는 비단 먼 과거의 사건에 대한 기록 뿐 아니라, 가까이는 2002 월드컵에서부터 7,8,90년대를 거쳐오면서 일어난 무수한 쿠데타, 시위, 사고, 재난 등의 사진에서도 나타난다. 그러나 사진은 기본적으로 선택가능하고 편집가능하며 이동가능한 표상의 형태이기 때문에 사진이 보여주는 과거는 항상 가변적일 수밖에 없다. ● 문제는 그 가변성을 고정성으로 치환시켜 주는 구조이다. 그 구조에 의해 사진을 통한 역사적 기억의 환기는 사진을 보는 주체들을 과거에서 현재로 이르는 시간의 흐름 어딘가에 못박아 준다. 그것이 우리가 '현재'를 인식하는 방식이다. 이 '현재'가 어떻게 역사적 기억의 영역으로 들어가는지를 탐색하는 것이 이 발표의 목적이다. ● 그래서 두가지 불행한 일이 벌어진다. 과거의 사진이 없고, 사진의 과거가 없다. 결국 문제는 과거를 회상하는 내러티브의 전략은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앞으로 이 점을 집중적으로 검토할 것이다. ■ 이영준

Vol.20020929c | 2002 하남국제사진페스티벌展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