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성갤러리 서울 종로구 관훈동 27-5번지 단성빌딩 Tel. 02_735_5588
인간은 자유로움을 꿈꾼다. 특히 예술가는 더욱 그러하다. 자유로운 여행, 자유로운 생활, 자유로운 만남, 자유로운 창작 등 모든 자유로운 활동에 목말라한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정치적인 이유, 사회적인 이유, 가정적인 이유, 그밖에 자신의 삶과 관련된 너무나도 많은 이유 때문에 예술가는 생명이나 다름없는 몸과 마음의 자유로움을 저당 잡힐 수밖에 없고, 이러한 되먹지 않은 구속에 길들여지면서 자유로움을 꿈꿀 권리를 상실해 가는 아픔을 감수해야 한다. 생활인으로써 겪어야하는 예술가의 이러한 소외와 갈등은 결코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 우리는 늘 무엇이든 규정하고 명명하며 형식의 틀에 끼워 맞추는데익 숙해져 있으며, 또 그것을 삶을 이끄는 지혜로 여기며 안도하고 길들여지는 것이 현대인의자화상이다. 이처럼 많은 사람들은 거울에 비친 자신의 겉모습을 통해 살아있음을 확인하며일상의 삶속에 자신을 안주시키고자 한다. 우리들은 자신을 에워싸고 있는 피상적인 관계와 모습 속에 너무 길들여져 있는 탓으로 자신의 참모습을 보여주는 마음의 거울을 들여다보는데 매우 인색하며 심지어는 두려움을 느끼기까지 한다. 스스로의 마음을 끄집어내어 바라봄으로써 자신을 자유롭게 하고 다른 사람도 자유롭게 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용기와 고집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삶을 얽매어 온 틀과 형식으로부터 한발 비껴서 있는 이각현의 작품 속에는 자신과의 새로운 만남을 위해 미지의 세계로 길을 떠나는 자의 용기와 고집이 배어있다. 2000년대라는 새로운 밀레니엄을 맞이하여 창조적 활력을 일깨우며 세 번째로 준비한 이번 전시에서 이각현이 담아내고자 한 것은 자신의 삶 깊숙한 곳에 또아리를 틀고있던 원초적 외로움과 자유로움을 찬찬히 응시하며 분출하듯 풀어내고 있는 고집스러운 자신의 존재 확인과 자신의 삶에서 비껴서 있는 듯하면서도 자신이 꿈꾸는 예술적 삶과 정신에 기웃거리며 파고드는 타인과의 만남을 위한 수줍은 화해의 몸짓이라고 할 수 있다.
그동안 자신의 삶을 답답하게 짓눌러왔던 맺힘이나 꼬임을 훌훌 벗어던지고 이른 새벽잠을 깨우는 지저귀는 새소리와 화사한 아침햇살처럼 마음 속에서 용솟음치는 활력으로 넘치는 이미지를 막힘 없이 분출하듯 펼쳐내고 있는 이각현의 열정적이면서도 수줍은듯한 표현 속에서 순수한 감성의 멜로디의 속삭임이 아련하게 들리는 듯하다. ● '바람이 분다. 떠나야겠다'라는 생각이 들면 이를 스스럼없이 실천에 옮길 수 있는 보헤미안적 기질을 타고 난듯한 이각현은 걸림없이 넘나드는 순수한 바람처럼 현실적 삶과 예술적 삶의 문턱을 넘나들며 어느덧 불혹의 나이에 이르렀으며, 이제 '치열한 작가정신을 견지하며 노력하는 가운데 체득한자신이 올바르다고 믿는 예술세계를 선택하여 흔들림 없이 고집하는(擇善而固執)' 덕목을 갖추고 마음이 원하는 방향으로 물꼬를 트고 있는 중이라고 할 수 있다. ● 모든 가치판단을 비워버린 고요한 '마음의 자리'로 나아가 정신의 자유해방과 창조의 역동적 모습을 찿아내고자 하는 이각현의 작가적 열정은 수묵과 화선지라는 전통적틀을 벗어나 나무판과 같은 오브제의 차용이나 아크릴 같은 재료를 통하여 '날로 새로운' 표현양식의 모색과 방법론의 추구로 이어진다. 물론 이러한 오브제를 비롯한 다양한 매체들의 활용 또한 자신의 마음의 흐름을 역동적으로 표출하기 위한 소도구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자신의 마음의 상태를 가장 자유롭고 적절하게 표현[사의(寫意)]할 수 있는 수묵의 자유분방한 운용이 주조를 이룬다.
가장 전통적인 화법인 화선지 위에서의 용필과 용묵의 자유롭고 활달한 운용이야말로 이각현이 빛어낸 자유로운 마음의 모습인 정신적 유토피아의 세계「장자(莊子)」의 '무하유지향(無何有之鄕)'에 도달할 수 있는 확실한 방법 가운데 하나라고 할 수 있다. ● 물아일체(物我一體)인 물화(物化)의 경지에서 이루어지는 몰입의 유기체적인 흐름을 따라 실험적 조형 언어를 조율하는 두려움 없는 도전의식을 내세우고 있지만, 이각현의 이번 작품들은 아직까지는 믿음과 불안이 교차하는 가운데 정돈되지 못한 어수선함이 엿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어쩌면 그동안 이각현이 현실적 삶과 예술적 삶 사이를 오가면서 가슴 속의 젊음과 열정을 담금질하며 자신이 나아가야 할 예술적 목표를 찾기 위해 방황했으며, 이제야 비로소진정한 탐험가로써 자신의 예술세계로 길떠나는 모습을 보여주기 시작한 때문일 것이다. ● 예술가적 정체성을 조심스레 담금질해 오던 이각현은 이번 전시를 통해 오래도록 내면에 깊숙이 도사리고있던 자신의 참모습을 발견하여 의도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이것은 그동안 방황과 모색의 과정을 통해 찾아낸 작가로서의 나아갈 길에 대한 다짐이자 몸짓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자신이 추구하는 삶에 책임을 져야하는 40대를 맞이하는 시간과 공간이 넓고 막막하게 펼쳐지는 와중에서 응시하는 자신의 불안한 모습의 투영이기도 하다.
이제는 지금까지 보여주었던 소극적 관조를 통한 자신 및 대상에 대한 이해와 관계방식으로부터 한발 더 나아가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적 삶과 예술이 힘들고 불확실하더라도 자신감을 갖고 구도자적 자세로 묵묵히 받아들여 적극적으로 실천하고자 하는 예술의지를 표명해도 좋을 것이다. ● 앞으로 작가로서 갖추어야 할 덕목과 조건들에 대해 많은 노력을 통해 다듬고 가꾸어 나간다면 꾸준히 발전하며 거듭나는 작가로써 우뚝 자리매김 할 수 있을 것이다. ■ 안영길
Vol.20020925a | 이각현展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