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unny sculpture·funny painting

박영균_천성명_노석미_홍인숙展   2002_0924 ▶ 2002_1024

천성명_소년, 잠들다_혼합재료, 설치_2002

초대일시_2002_0924_화요일_05:00pm

갤러리 세줄 서울 종로구 평창동 464-13번지 Tel_02_391_9171

요즘 들어 부쩍 큰 전시가 많다. 올 초 광주 비엔날레에서 얼마 전 시작된 부산비엔날레 그리고 서울미디어 시티에 이르기까지 넘쳐나는 비엔날레와 대규모 전시가 줄을 지어 서있다. 외국에서 작가들을 공수해온 이들 전시와는 규모면에서나 작가들의 쟁쟁함에서나 비교할 수 없겠지만, 갤러리 세줄에서 마련한 Funny Sculpture, Funny Painting展은 현대미술의 난해함에 주눅들어 있는 일반 관객들에게는 더할 나위없이 좋은 기회이다. ● 적어도 1년에 1-2회는 기발하고 독창적인 작업을 해나가는 30대의 젊은 작가에게 열린 공간을 준다는 취지로 마련된 이번 전시는 추석 연휴를 맞아 가족들이 다함께 웃음의 의미를 짚어볼 수 있는 좋은 기회로 여겨진다.

홍인숙_Oldersister_지판화_120×210cm_2002

오늘날 현대미술은 지나치게 개념적이고 심각하다. 그래서 우리 관중들은 외롭다. 작품을 설명한다는 기나긴 철학적인 텍스트를 이해하지 못하면 소외되기 십상인 현실에서 살아가야 하니까. 이렇듯 심각하고 어려운 미술에서 벗어나 맘 편하게 보고 웃으며, 더 나아가 그림 속 전복된 사회를 향한 웃음을 키득거릴 수 있는 그림은 없단 말인가? ● 여기 30대 젊은 작가들의 재기 발랄함을 볼 수 있는 전시가 있다. 일상에 대한 범상치 않은 예술적 성찰인 동시에 한치 꺼풀을 벗기고 가만히 들여다보노라면 은근슬쩍 우습기 마련인 우리네들의 삶이 목격된다.

박영균_꽃밭에서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30×180cm_2002

이들 작가들 중 가장 연장자인 박영균은 8,90년대 대학가를 뒤덮었던 수많은 벽화를 그린 장본인이다. 가혹하리 만치 냉엄하고 거칠게 자신을 내몰았던 현장미술 활동과 그 결과 혹독한 수배생활을 경험한 어느 현장미술가가 10년의 시간을 두고, 색깔 하나에 섬세하게 신경을 곤두세우며 붓질 하나 하나에 영혼을 담아 내려하는 그림쟁이로 살아남은 것 자체가 그리 흔치않은 일이라는 점에서 그의 회화로의 귀환은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운동권이었던 그가 90년을 넘어 2000년대의 다원화된 미술흐름으로 전이하는 과정에서, 지난 시대의 강박 속으로 함몰되는 대신 세상을 바라보는 자신만의 느긋한 여유를 찾은 점에서, 더 나아가 그 시대를 살아내어야만 했던 세대들의 현재적 자화상이라는 더 심화된 주제로의 천착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그의 귀환은 성공적이라 평할 수 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자칫 무겁거나 구질스러울 수 있는 주제의식을 섬세한 붓 터치와 환상적인 색조로 완성시켜나가는 그의 조형적 힘이다. 마치 20세기 프랑스의 색채화가 라울 뒤피(Raoul Dufy)나 샤갈의 그것에 버금가는 경묘한 붓놀림과 풍부하고도 명쾌한 색채가 빚어내는 환상적이고 몽환적인 느낌이 감탄스럴 따름이다. ● 반면 영화와 여타 문학잡지나 소설 같은 매체에서 왕성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는 노석미는 잘 알려진 일러스트레이터이자 대학에서 회화를 전공한 작가이다. 일상의 자그마한 순간과 그 순간의 회화적 에센스를 포착해내는 재치와 감수성을 바탕으로 키취와 순수미술 사이의 경계를 신나게 전복시키는 그의 행보에서 오늘날 젊은 세대의 미(美에) 대한 새로운 사고과정과 그 독특한 감수성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 천성명은 조각, 게다가 '설치'라는 매체의 非대중성에도 불구하고, 이러저러한 단체·기획전에 가장 바삐 불려 다니는 작가중 하나이다. 그는 삶의 한 단면, 가령 눈물을 흘린다, 잠들다, 바라보다....등과 같은 한 순간을 포착하여 그 행위를 고정시키고 지속시킴으로써 '익숙해져' 있는 행위에 대한 재해석을 시도한다. 동시에 '광대, 별을 따다' '꽃밭에서 울다'에서 볼 수 있듯이 연극의 한 장면을 보는 듯한 극적이면서도 시를 읽는 듯한 문학적인 상징성과 은유를 내포하고 있는 듯한 그의 인물들은,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아주 강한 리얼리티를 바탕으로 관객들을 강하게 끌어당긴다. 작가의 상상력과 예술적 감수성으로 묘하게 변형된 인물들은 어찌 된 일인지 그 어떤 것들보다도 현실적이다. 몽환과 리얼리티 사이의 변주, 그것이 바로 그의 작품이 갖는 매력이다. ● 마지막으로 젊은 판화가인 홍인숙의 얘기를 해보자. 그녀의 작품 세계는 판화의 장르적 한계를 훌쩍 넘어선 지점에 위치한다. 조형적으로는 모던한 선과 독특한 컬러링 감각, 거기다 골동 그림, 혹은 한국의 오래된 민화의 아취에 키취적 감수성까지 더해져 홍인숙의 작품이 단순히 판화라는 장르의 한계에 박제되지 않고 이를 뛰어넘을 수 있는 든든한 버팀목 역할을 하고 있다. 자신의 첫 번째 개인전 끄트머리에 여보 사랑해! 라고 '엄마'를 향한 멘트를 남겼던 엉뚱한 그녀는, 그 순간 그녀의 모친이 가장 듣고 싶은 말이 그것 일 것이라는 이유로 그렇게 떡 하니 이치에 맞지 않은 망발(?)을 활자화 할 수 있는 기이함과 대담성을 지녔다. 그러한 일면은 보편적인 미술계의 잣대로 그녀의 작품을 '매끈하게' 재단해보려는 입장에서 보자면 입맛에 맞게 딱 떨어지지 않는 작품을 탄생하게끔 하는 원인으로 생각된다. 다행스럽게도 그것이 바로 그녀의 작품의 강점이다.

노석미_누구일까요?_종이에 물감_2002

굳이 찰리 채플린을 인용하지 않더라도 사실 웃음은 울음보다, 희극은 비극보다 심오한 것이다. 왜냐면 웃음은 단순히 웃음으로 끝나지 않기 때문이다. 희극이란 본디 현실세계의 변형 혹은 과장에서 말미암은 것이며, 동전의 양면과 같이 사람들의 웃음은 슬픔의 다름 아닌 표현이다. 그래서 찰리 채플린의 웃음에는 모든 사람들의 슬픔이 스며있다. ● 이번 전시를 통해 소개되는 이들 네 사람은 예술적으로나, 인간적으로나 자신만의 세계를 찾아가는 여정에 있는 젊은 작가들이지만 바로 각각의 작품 세계를 풍요롭게 만들 것임이 틀림없는 독특한 비장의 무기를 저마다 쥐고 있다는 점에서 갤러리 세줄이 그 가능성을 주목하고 있는 작가들이다. 삶의 양식도, 작품의 스타일도 제 각각인 이들 작가들의 기발한 상상력에 의해 펼쳐지는 Funny의 '다양한' 의미를 음미해보자. ■ 박파랑

Vol.20020924c | funny sculpture·funny painting展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