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갤러리 룩스 홈페이지로 갑니다.
초대일시_2002_0911_수요일_06:00pm
갤러리 룩스 서울 종로구 관훈동 185번지 인덕빌딩 3층 Tel. 02_720_8488
야생의 꽃에서 예술의 꽃으로 ● 과연 언제부터 인류는 식물의 꽃과 열매 그리고 잎을 배고픔을 달래기 위한 식용으로서가 아니라, 그 색과 형상을 보고 즐기며 그 향기를 흠뻑 맡기 위한 관상용으로 생각하기 시작했을까? 병을 고치기 위한 약용으로서가 아니라, 아름다움의 대상으로서 식물을 고려하기 시작한 것은 언제일까? 식물을 음식물, 약초로서의 사용과 같은 실제적인 효용의 측면에서 고려한 것이 아니라, 유용성과는 관련 없는 순수한 아름다움, 미적 쾌감의 대상으로서 바라본 것은 언제, 어디에서일까? 이태리 남서부의 베수비오 화산의 폭발로 묻힌 스타비아에 Stabiae에서 발굴한 1세기경의 한 벽화는 꽃이 그 아름다움만으로 인간을 유혹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꽃바구니 혹은 꽃 항아리를 든 한 젊은 여인이 춤추듯 걸어가며 가볍게 꽃을 꺾는 순간의 동작을 재현하고 있는 이 벽화는 꽃의 이미지에 상응하는 우아함, 가벼움, 상쾌함을 구현하고 있다. ● 이 벽화에 대한 미술사가, 곰브리치 E. Gombrich의 해설은 「꽃을 꺾는 젊은 여인」이 현실의 여인이 아니라, 세 명의 사계(四季)의 여신 중의 하나라고 말하고 있다. 왜냐하면 아테네 사람들에게 있어서 사계 여신의 세 이름은 '발아'라는 뜻의 탈로 Thall , '성장'이라는 뜻을 갖는 옥소 Aux , '결실'이라는 의미의 카르포 Carp 였고, 그 이름들은 식물의 생장과 직접적 관련을 맺고 있었기 때문이다. 식물의 생장과 계절의 순환을 연결시키는 사고 방식은 농경국가의 보편적인 양상이므로, 식물을 대변하는 '꽃'을 꺾는 여인이 계절의 여신이라 단언함은 그리 억지 해설이 아닌 듯싶다. ● 그러나 「꽃을 꺾는 젊은 여인」에 대한 이 해설은 하나의 의문을 남긴다. 농경문화를 주관하는 계절의 여신이 곡식이나 열매를 만지지 않고 꽃을 따기 때문이다. 그것도 꽃바구니 혹은 꽃 항아리를 품에 안고 꽃을 꺾기 때문이다. 따라서 꽃만을 보면서 사뿐히 걷는 계절의 여신은 식물에 대한 관점의 변화양상을 보여주고 있는 듯하다. 즉 늦어도 로마시대의 귀족문화와 더불어 지배계급은 이제 식물을 생존의 양식으로서 고려할 뿐만 아니라, 미와 쾌락의 대상으로서 관조하고 음미하는 취미를 가졌다는 것이다. 생존의 우려에서 멀리 벗어난 로마의 귀족계급은 농경문화의 시간을 다스리는 여신이 이제는 곡식과 열매의 생장에 관심을 갖기보다는, '식물의 아름다움과 꽃의 향기에 몰두하고 있다'고 믿고 싶어했다는 징표이다. 최소한 그들의 별장을 장식하는 벽화에서는 생활의 우려, 농경의 걱정에서 홀연히 벗어나, 꽃의 아름다움에 빠진 사계의 여신을 원했던 것이다.
식물을 실질적 관점, 실용적 목적에서만 보기를 그치고, 그 꽃과 잎을 미학적 관점에서 관조하는 시선이 자리잡는 상황을 분명하게 역사적으로 해명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것을 밝히는 일은 인류가 언제부터, 어떤 사회적 조건 속에서 거친 토기의 사용에 만족하지 않고, 시각과 촉각에 쾌감을 주는 매끄러운 도자기를 원하게 되었는가를 밝히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문제이리라. 하지만 그 둘 사이에는 분명히 상호연관성이 존재한다. 식물을 음식의 재료로서만 보지 않고 아름다움의 대상으로 보는 심미안은 음식물을 담고 보존하는 토기의 실용성에 만족하지 않고, 보석의 색상과 광택을 가진 그릇을 원하는 욕망의 바로 곁에 있기 때문이다. 경제적으로 풍요롭고, 시간적으로 넉넉한 유한계급은 언제부터인가 식물을 아름다움의 측면에서 바라본 것처럼, 그릇을 실용적 측면에서만 보지 않고 미학적 관점에서 고려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들은 미학적 쾌감을 주는 도자기를 바라보고 그것에 음식물을 담기 위해, 또 미학적으로 훌륭한 도자기를 통해 경제적 실리를 챙기기 위해 적지 않은 연구와 돈을 서슴지 않고 투자했다. 이러한 연고로 도자기 제조 기술은 한 사회의 문화적, 경제적 역량을 가늠하는 지표가 되었고, 개인이 사용하고 수집하는 도자기의 질은 사회적 신분과 심미안의 상징이 되었다. 훌륭한 도자기를 생산한 사회는 그렇지 못한 사회보다 거의 언제나 경제적, 문화적 역량에 있어서 우위를 점했고, 부와 예술을 독점한 계층은 도자기를 미학적 관점에서 수집하고 소비했다. 간단히 말해 도자기는 한 사회와 개인의 경제적 부, 예술적 역량의 척도로 자리 잡았다.
정창기가 보여주는 칼라 정물들은 꽃에 대한 미학적 접근과 도자기에 대한 심미안이 빈틈없이 결합된 작업이다. 작가는 자신의 예술적 역량을 꽃과 도자기가 결합하는 꽃꽂이를 통해 과시하고자 했다. 작가의 예술 욕구가 가장 자유롭게 드러나는 정물 still life을 통해 그는 자신의 미에 대한 섬세한 감각을 유감 없이 드러내고자 했다. 작가의 구성감각에 따라 원하는 꽃과 도자기를 선택하고 배열함으로써 그는 자신의 창조적 역량을 만끽했다. 작가가 오랜 시간 종사했던 초상작업과는 달리, 모델의 기대지평을 고려할 필요가 없는 정물 작업은 그에게 현실의 우려에서 벗어난 예술의 자유를 부여했던 것이다. 따라서 작가의 최근 작업이 정물에 집중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경제적 실리와 모델의 반응에 직접적으로 연결된 초상작업에서 억압받은 그의 순수한 예술의지는 정물이라는 가장 격의 없고 자유로운 장르를 통해 보상받고자 하는 것이다. ● 무엇보다 작가의 정물작업이 우리의 주목을 끄는 것은 자연 nature을 통제하고 길들이는 기예 arts가 문화 culture의 본래적 뜻임을 은밀하게 암시하는데 있다. 문화는 '적절한 지적 훈련을 통한 정신의 능력의 개발', 혹은 '한 문명의 총체적 지적 양상'이라는 의미 이전에 본래, '인간이 필요로 하는 식물의 경작'이라는 뜻이었다. 다시 말해 문화는 자연에 존재하는 야생의 식물을 인간의 요구에 맞게 가꾸는 기예라는 의미를 갖고 있었다. 다듬어지지 않은 상태로 무질서하게 자라나는 자연의 식물을 인간의 필요에 알맞게 인간의 기예를 동원하여, 식물을 적절히 재배, 경작하는 행위가 '문화'의 제1 의미였던 것이다.
작가는 자신의 정물작업을 위해 길들여지지 않은 자연에서 때가 되면 자라나는 야생화를 꺾었다. 일반의 정물화, 정물사진처럼 관상용으로 재배된, 이미 인간의 필요에 의해 적절히 길들여진 꽃을 택하기보다는, 그는 사람의 손길 밖에서 핀 야생의 꽃을 정물의 재료로 삼았다. 조팝나무, 애기똥풀, 돌배꽃, 황매화, 쑥갓, 처녀주름치마 등, 들이나 야산에서 자연스레 피어나는 꽃들을 정물의 오브제로 택했다. 화병이나 수반에 꽂기에는 너무나 방만이 자란 꽃들을 작가는 우선 그의 형태감각, 조형의식에 맞추어 가다듬고 잘랐다. 즉 야생의 꽃들을 미학적으로 손질하여 일종의 '문화'로 전환시켰다. 그리고 그는 문화적으로 다듬어진 이 꽃가지들을 우아한 귀족문화에 상응하는 도자기에 결합시켰다. 그리하여 야생성이 사라진 꽃들은 세련된 도자기와 혼례를 치름으로써 섬세하고 고상한 귀족문화 속에 편입되었다.
그러나 꽃꽂이는 상류문화의 일시적 장식품, 혹은 종교적 제단에 바쳐지는 덧없는 헌정물에 불과할 뿐이다. 아무리 정밀한 꽃꽂이도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의 운명을 벗어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정창기의 야생화는 보다 고답적이고, 보다 지속적인 문화의 영역 속으로 들어가야 했다. 해서 작가는 문화의 영역 속에 자리잡은 야생화들을, 다시 말해 그가 행한 꽃꽂이들을 서구의 미술이 17세기경에 확립한 정물이라는 장르를 통해 항구적으로 남기기로 했다. 정물이라는 미학적 형식을 통해, 덧없이 시들 야생화를 예술의 이름으로 보전하기로 했다. ● 그리하여 야생화의 본래적 형상을 거스르지 않으며 꽃줄기를 가다듬는 섬세한 조형감각과 꽃의 색상과 형태를 돋보이게 하는 도자기의 꼼꼼한 선택은 시들 운명의 야생화를, 식탁에서만 빛날 자기들을 정물의 예술로 남게 하였다. 정결하게 빛나는 꽃의 용기(容器)들은 탐미적이고 유미적인 도자기 예술로, 야생의 꽃들은 '아름다움을 위한 아름다움'의 꽃으로 변모하였다. '스타비아에'의 벽화, 「꽃을 꺾는 젊은 여인」을 그린 화가가 사계의 여신이 꺾은 야생화를 예술을 통해 길이 축성했듯이, 정창기 역시 자신이 꺾고 꽃꽂이 한 야생화를 정물의 형식을 통해 미의 여신에 헌정하였다. ■ 최봉림
Vol.20020920a | 정창기展 / photograph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