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일시_2002_0911_수요일_06:00pm
인사아트센터 서울 종로구 관훈동 188번지 3층 Tel. 02_736_1020
Virtual Architecture 혹은 공간 체험의 가상적 방식 ● 원근법과 공간체험 ● 회화의 역사는 무엇보다도 공간에 대한 체험의 역사라 할만하다. 역사적으로 회화적 표현이란 2차원의 평면에 3차원적 일루전을 제안하는 것이고, 그 공간을 '진짜처럼' 보이도록 하는 것이지 않았는가. 공간의 용적을 자로 잰 듯이 평면 위에 옮겨서 실제처럼 보이게 하는 방법을 처음 발명한 것은 필립포 브루넬레스키(1377-1446)였다. 브루넬레스키는 기하학을 응용해서 실물의 형태와 조금도 차이가 나지 않는 완벽한 자연모방의 방법을 선보였다. 또한 그림은 세상을 내다보는 투명한 창문이라 하였던 알베르티(1404-1472)는 원근법의 창시자로 일컬어진다. 그는 그림 한복판에 소실점을 놓고 모든 소실선들이 소실점을 향해 달려가도록 하는 중앙투시 원근법을 제안했다. 그렇게되면 그림은 기하학적 구성의 뼈대 위에서 말끔하고 정돈되어 보이는 특징을 갖게된다. ● 하지만 알베르티의 중앙투시법이 오히려 부자연스런 결과를 낳았다는 사실은 일종의 아이러니이다. 공간의 느낌을 생생하게 살려내기 위해서라지만, 결과적으로 그의 화면은 너무 경직되어 있어 실제로 관찰되는 자연스러운 공간감과는 분명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오토의 회화가 더 리얼하다는 이야기를 한다. 그는 건축물을 묘사할 때 건축의 외부와 내부가 한눈에 환히 보이도록 그리는 기법을 개발했다. 또 건축물을 비스듬한 관점으로 그려서 공간의 깊이가 그럴듯하게 느껴지도록 했다. 교회측에서는 지오토의 그림 양식을 반겼다. 그림 속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쉽게 알 수 있었기 때문에 사람들이 그림을 보면 대번에 내용을 알아차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본질적으로 원근법이란 주체가 바라보는 지점에서 보이는 대로 그리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보이는 대로의 세계를 그렸다 해서 현실감을 얻어낼 수 있다고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보이지 않는 부분에 대한 연상과 개념적 사유로 인한 공간 표현이 더 설득력있는 현실감을 가져올 수도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있다. 만일 디지털 시대에 이루어낸 지점이 있다면 바로 그런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디지털 기술에 의해 우리는 보이지 않는 부분을 동시에 볼 수 있고, 체험의 영역을 가상의 상태로 확장시킬 수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 차라리 지오토의 공간 체험방식이 디지털적이라 말할 수 있지 않을까.
가상건축, 공간의 확장과 응축 ● 이귀영은 오랜 세월 공간에 대한 관심을 보여왔던 작가이다. 원근법적 바라보기의 방식에 충실하면서도 그 한계를 벗어나기 위한 시도를 회화적 작업에서 일관되게 해왔다. 그녀에게 공간에 대한 체험은 어떤 경계를 두지 않는 것에서 시작한다. 다시 말하면 자연 공간과 인공 공간, 사유 공간과 회화적 표현으로서의 공간 등의 경계를 두기보다는 대비되는 공간 개념을 통합하고, 해체하는 방식으로 공간을 이해하고 표현해 낸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모든 공간은 기본적으로 비물질적인 것이어서, 그 어떤 구분으로도 성격이 달리 규정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도시를 만들어 인공 공간의 의미를 만들었다 해도, 자연과 다른 의미라는 것은 단지 개념적 차이 속에만 존재할 뿐이다. 오히려 공간의 성격을 구분하는 것보다는 얼마나 절실하고 구체적인 삶의 흔적이 그 곳에 각인되어있느냐를 헤아리는 일이 더 중요하리라. 따라서 이귀영은 공간을 바로 그런 삶의 과정, 그리고 사회적 관계 속에서 이해하는 것이다.
삶의 공간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이귀영의 공간은 건축적 개념이다. 그리고 삶의 과정을 담는 공간이라는 점에서 원근법적 바라보기의 방식이 아닌 개념적 차원의 공간 체험까지를 포함하는 '가상적'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지점이 오늘의 디지털 개념과 많이 닮아있다. 기본적으로 공간이 확산되고 무한하게 열려있다는 개념이 그것이다. 그녀는 근대 유럽에서 사용하기 시작한 유리건축의 의미를 빌어온다. 특히 유리의 투명성의 원리를 오늘의 공간 체험으로 적용하고 있다. 공간의 합리적 구획과 구성보다는 유리를 통한 반사 효과를 통해 안과 밖의 구분이 없어지는 공간 체험을 유도하는 점과, 밖으로 무한히 확장해 가는 공간의 시간적 움직임을 즉각적으로 연상하게 하는 점 등이 그렇다. 다른 한편 자연 풍경을 건축적 공간 구획을 위한 큐빅 시스템과 병치시킴으로써 대비되는 두개의 공간을 동시에 체험하게 하는 점도 흥미롭다. 그리고 공간의 체험에서의 연속성을 단절하여 비선형적인 흐름을 가지고 공간이 공존하도록 하는 점도 디지털 어법에 가깝다.
가상 건축이란 디지털 기술에 힘입어 시뮬레이션이 자유로와지면서 주어진 개념이다. 시뮬레이션이란 자신이 개념적으로 생각하는 공간을 자유롭게 기록하는 작업의 하나이다. 적어도 회화적 작업을 통해 할 수 있는 원근법적 바라보기란 대상과 그것을 바라보는 주체간의 거리감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가능한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우리가 공간을 체험하는 것은 어떤 대상과의 거리감을 통해서가 아니라 대상과의 관계를 통해서 가능한 것이다. 그 대상에 대한 이해와 해석, 판단 등에 따른 관계 말이다. 따라서 내가 눈높이를 가지고 대상을 본다하더라도 우리의 공간 체험의 욕구는 그 수준에서 결코 멈추지 않는다. 가상의 조건을 만들어서 각도의 자유로운 변형과 개념적 차원에서의 자유자재함을 구사하기 마련이라는 것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이귀영의 회화가 갖는 공간 체험의 고유함이 있다. 그 자유자재함을 통해 오랜 세월 원근법적 바라보기에 충실했던 회화적 언어의 감옥을 스스로 벗어나는 것이다.
공간의 출구와 통로 ● 근 10년만에 개인전을 재개한 이귀영의 작품전은 크게 평면 작업과 설치로 구분된다. 그 가운데서도 평면작업은 도시 공간을 소재로 한 「출구-무한공간」 연작과 자연 풍경을 소재로 한 「통로-시간의 이동」 연작으로 구성된다. 두 연작이 갖는 공간에 대한 의미와 체험의 문제는 앞서 말한 버추얼 방식에 근거하고, 동시에 영상 설치작업인 「Virtual Vision」 역시 동일한 맥락에 따르고 있다. 「출구-무한공간」은 도시적 공간이지만 늘 이질적인 공간과 병치되어 있다. 그러나 그것이 주는 공간감은 자력이 센 지남철을 대면 흩어진 쇳가루가 한 방향으로 모이는 것처럼 무한공간의 어떤 꼭지점을 향해 엄청난 속도를 가지고 달려가는 듯한 느낌이다. 여러 각도에서 다양하게 그려진 서울역과 중앙청 건물은 건물의 뼈대를 말하는 선작업과 함께 마치 무한한 우주공간으로 강한 흡입력을 가지고 빨려 들어가는 듯한 느낌으로 그려져 있다. 유리 천정과 기둥, 복도와 창문 구조가 얽혀있는 그림에서는 묘한 탈주의 의지를 강하게 제공한다.
「통로-시간의 이동」은 마치 낭만주의의 회화를 연상하는 듯 장엄한 자연의 풍경을 그린 것이다. 그러나 자연은 다시 건축물의 공간 구조물을 나타내는 선작업과 중첩되어 있다. 그 자체가 다시 공간의 순수성을 넘어서 이질적인 공간과의 중첩을 말하는 것이 된다. 그것은 어찌 보면 자연과 대비되는 인위적 공간 개념으로서 건축물의 큐빅 시스템을 적용한 것이기도 하고, 그래서 자연과 인공의 이질적 공간의 체험을 동시에 하게 하는 것이 되기도 한다. 혹은 다시 컴퓨터 상에서 자연 풍경을 가상의 것으로 만들어 시뮬레이션하는 과정의 선작업일 수도 있다. 그러다 더 자세히 보면 풍경은 사각의 큐브로 잘려져 박스처럼 안으로 들어가 있다. 안으로 파인 박스형 테두리에는 거울이 액자의 틀처럼 만들어져 있다. 그래서 다시 공간은 거울에 반사되어 공간의 연속성은 교란되고 깨져버린다. 공간의 연속성의 혼돈은 곧 시간의 이동을 파괴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귀영의 자연 풍경은 그래서 시간과 공간이 비합리적으로 이동하는 통로가 되는 것이다.
설치작업인 「Virtual Vision」은 순수하게 영상설치작업이다. 하지만 「출구-무한공간」에서도 캔버스 위로 작은 모니터가 붙박이로 배치되어 있어 이미 이귀영의 작업은 좁은 의미의 회화작업이라기 보다는 영상작업이라 해야 할 것이다. 실제로 그녀는 회화로서 디지털 공간 개념을 제안하고 그 체험을 구현했으며, 동시에 동영상 작업에서의 가상성의 문제를 꾸준히 적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캔버스 작업에 부착된 영상 이미지는 서울의 근대적 건축물의 영상이거나 폭포수의 자연 풍광인데, 궁극적으로 정적인 이미지와 동적인 이미지의 만남은 현실과 가상의 경계를 흐트러 놓는 역할을 한다. ● 「Virtual Vision」에서는 거대한 자연의 풍광이 소리와 동영상으로 도시적 풍경과 겹쳐 나타난다. 이제 시선은 원근법적 눈높이로 존재하지 않는다. 개념의 가상공간에서 우리의 시선은 기나긴 사유의 터널을 지나, 자유로운 시선의 움직임을 따라 무한하게 존재하는 것이다. 그 지점에서 회화적 표현의 당대적 의미가 있다. 결코 회화가 디지털 기술에 반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기원이 되며 연장선상에 있다는 사실을 던진다는 의미에서의 당대성 말이다. 결국 회화가 여전히 새로울 수 있는 근거도 바로 여기에 있으리라. ■ 박신의
Vol.20020918a | 이귀영展 / LEEGUIYOUNG / mixed med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