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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2_0905_목요일_06:30pm_대구MBC Gallery M
대구MBC Gallery M 대구시 수성구 범어동 1번지 대구문화방송 1층 Tel. 053_745_4244
신라갤러리 대구시 중구 대봉1동 130-5번지 Tel. 053_422_1628
한 장의 캔버스 위에 버무려진 상사물들은 다듬지 않은 필체와 무성의하게 지워버린 붓자국들은 거칠되, 그것이 그림임을 강하게 환기시켜주고 있다. 또한 결국 중첩되고 지워지며 나열된 온갖 기호들은 연상의 속도를 그대로 쏟아낸 것 같아서 조금도 지체하지 못하는 작가의 열정이 느껴지기도 한다. 조금도 지체하지 못하는 작가는 무엇에 들뜬 것일까. ● 고운 노란 화면/거칠고 무성의한 화면 위의 단어와 형상. 이것들은 다시 '순수한 것(二分이 무의미하다는 의미로)'이라는 범주 속에 하나가 된다. 이 '순수한 것'이라는 범주가 바로 '그림'은 아닐까. 긍정적이면서도 대립을 해소하고, 방식은 수공적이되 미련하지 않고 가벼운 것. 그리고 끝까지 이미지(로 상상하는 것)를 포기하지 않는 것. 그래서 결국, 그림으로의 통합은 예술이 품어야할 것을 실현하고자 하는 것은 아닐까. 이명미 작가의 시선은 여기에 먼저 도달해있는 것 같다. 바로 그 시선이 도달한 드높은 지점 때문에 들뜬 감정의 어수선한 화면 뒤로 안스러움이 베어나오는 것일지도 모른다. 작가가 보는 드높은 지점이란 정주할 수 있는 최종심급의 근본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곳은「그림그리기」의 화면처럼 기호들끼리 미끌어지는 끊임없는 차이와 최종 결정의 유보 속 어딘가에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가을엔 떠나지 말아요 꽃밭에서 그림그리기 보았다 날아 다니는 것 애니멀 마셔버리자 컵 화분 물고기 서니(sunny) 게임, 오 솔레미오… 이명미 작가가 자신의 작품에 붙인 제목이나 작품에 등장하는 형상·단어들을 나열하면 대중가요 가사나 무심하게 우리 주변에 놓여있는 것들이다. 우리가 붙잡기 전에는 그저 있다가 흘러가 버리는 것들을 호출해서 작가는 그림이라는 사건으로 만들고 있는 것이다. 어느 날 작가가 빵집에서 빵을 산 것과 날마다 흘러나오는 대중가요들 그리고 컵 화분 같은 일상기물 그리고 읽고 본 많은 풍경들이 은유의 바다를 이루어 작가의 호출과 함께 그림이라는 사건으로 전환되는 것이다. 이것들을 봉합하는 것은 색채, 오리기, 붙이기, 붓으로 지우기(덧칠하기), 바느질하기 등 정말 그림처럼 수공적인 것들이 모두 동원된다. 이렇게 해서 전화된 한 점의 그림이 기호들의 재빠른 탈주와 충돌 그리고 의미 확정을 끊임없이 유보시키는 이 탈주의 놀이를, 하나의 공간에 통합해낸 것이다. 아마도 의미나 실체·존재를 보증해주는 중심적인 것들과 그 모든 부수적인 것들의 오랜 위계질서가 아닌 모든 차이와 최종 의미의 보증을 피해 가는 상태 그대로를 화면 안에 써버림으로써( cruture) 음성의 모호함과 불확실성을 드러내고자(그림으로 painture) 하는 것 같다. 작품이란 무엇인가 구분을 넘어선 총체적인 어떤 것일 것이다. 이명미 작가의 작품을 그래서 '쓰는 그림( cri-peinture)'이라 부르고 싶다. 이렇게 작가의 은유체계는 미생물처럼 번져가고 동심원처럼 퍼져가며 화면 속에 통합된다.
장난의 끝에서(작품 앞에서) 분탕질을 하거나 시침뗀 침묵 뒤로 쌓인 작가의 은유체계를 고고학자처럼 추적해 들어가는 것은 참으로 유쾌하다. 고고학이라는 단어의 무게와 '아니면 말고' 라는 가벼운 의미의 배반이 얼마나 유쾌한가. ● 이명미 작가의 작품을 보며 '나도 그릴 수 있다'는 단 한마디의 호기 어린 감상으로 우리의 은유의 바다에는 무엇이 흐르는지 둘러보는 것도 또 하나의 재미일 것 같다. ■ 남인숙
Vol.20020902a | 이명미展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