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디자인하우스 홈페이지로 갑니다.
디자인하우스 전문단행본 편집부 서울 중구 장충동 2가 186-210번지 Tel. 02_2275_6151
라즐로 모홀리나기가 활동하던 20세기 초반은 서양 미술사에 있어 가장 많은 사조들이 등장한 시기였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과 러시아 혁명, 파시즘의 창궐과 제2차 세계대전 등 1914년에서 1945년에 이르는 짧은 시기 동안 유럽은 심한 격동의 시간을 보내야 했으며, 그 속에서 미술계는 다다이즘, 초현실주의, 구성주의, 절대주의 등을 통해 현실과 대상의 재현을 부정하고 인간의 내면 세계와 순수 조형 요소를 추구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라즐로 모홀리나기는 새로운 삶과 문화를 주도해 갈 통합적 예술, 즉 인간의 삶과 예술의 유기적인 결합을 꿈꾸게 됩니다. ● 그는 모든 인간은 재능을 갖고 있다고 믿었으며, 재능의 개발을 통해 감각적 체험이 창조적 활력으로 전환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에게 감각의 체험을 넓힐 수 있는 가장 강하고 새로운 수단은 사진, 영화와 같은 매체였으며, 그는 이 매체들에 대해 수단으로서의 작업과 함께 매체 자체에 대한 예술적 실험을 시도함으로써 삶과 예술을 결합시키고자 했습니다. 이를 위해 회화, 조각, 무대 미술, 타이포 그래피, 북 디자인, 사진, 영화, 건축 등 다양한 분야에서 미학적 가능성에 대한 실험을 행한 그는 전통 예술 영역을 침해할 것이라 우려되었던 과학 기술 매체를 이용하여 오히려 예술 영역을 넓혔으며, 디자인을 인간의 삶을 고양시키는 새로운 예술적 실천으로 자리잡게 하였고, 빛과 소리, 움직임에 대한 탐구로 미디어 아트의 기원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 라즐로 모홀리나기가 논의되어야 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 영상 문화에서 자주 거론되는 '기술 매체의 발달과 예술의 관계'에 대한 그의 선험적 고찰, 시각 이미지와 문자 언어의 통합적 사고를 통해 도달한 디지털 문화에 대한 예감과 인식은 그의 선구적 예술관을 더욱 돋보이게 하는 요소들입니다. 또한 예술의 사회적 영향력에 대한 그의 신념 역시 디자인의 근본과 전망을 살피는 데 꼭 필요한 논의점이 아닐 수 없습니다. ● 저자는 이러한 쟁점들에 대해 결론을 제시하기보다는, 우선 풍부한 지식과 이해를 기반으로 그의 예술 세계 중 모호할 수 있는 부분들을 꼼꼼하게 짚어 내고 있습니다. 어느 미술 사조나 경향의 틀을 빌리지 않고, 그의 생애 구석구석을 들추며 여러 예술가들과의 교류, 예술 성향과의 흥미로운 접촉을 통해 그가 추구하던 '총체 예술'의 궤적을 보여 주는 라즐로 모홀리나기와의 '대화'는, 그의 예술이 디자인 활동으로 번져 가는 과정을 궁금해 하는 이들에게 흥미로운 만남이 될 것이며, 자기 성찰의 기회를 갖고자 하는 예술가와 디자이너들에게도 좋은 자극이 될 것입니다. ● 인간의 삶과 예술의 유기적 결합을 위해, 순수주의 예술 이념보다 문화적 당대성을 중요시함으로써 새로운 문화 현상과 기술 매체를 예술적 전환의 도구로 삼은 라즐로 모홀리나기. 『멀티미디어 아티스트 라즐로 모홀리나기』에는 그의 적극적 예술관이 담겨져 있습니다. ■ 디자인하우스
■ 라즐로 모홀리나기 Laszlo Moholy-Nagy, 1895~1946 ● 유태인의 피를 이어 받은 라즐로 모홀리나기는 1895년 헝가리 남부 지역 바보소드Bacborsod에서 태어났다. 1914년 부다페스트 대학에서 법학 공부를 시작했으나, 1차 세계 대전의 발발로 학업을 중단하고 포병 장교로 참전한 그는 부상으로 러시아의 오뎃사에서 입원 치료를 받는 동안 시작詩作과 드로잉에 몰두한다. 제대 후 라즐로 모홀리나기는 헝가리 문학지 등에 시를 기고하거나 살롱 전에 그림을 출품하기도 하면서, 결국 법학도의 꿈을 접고 예술가로서의 삶을 선택했다. 1918년 10월 혁명으로 헝가리에 소비에트 의회가 들어서자 공산당 입당을 신청했던 그는, 지주 집안의 장교 출신이라는 이유로 입당 신청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비엔나로 이주하면서 그의 전 생에 걸친 망명의 역사를 시작하게 된다. 예술가로서의 라즐로 모홀리나기의 삶은 크게 두 시기로 나뉘어진다. 1차 세계대전과 파시즘의 창궐 등 격동의 유럽에서 보낸 첫 번째 시기에, 그는 바우하우스를 무대로 모더니즘과 유토피아 사상의 정점을 달리며 끝없는 예술적 실험과 실천을 주도했다. 그리고 나치의 박해를 피해 건너 간 미국에서의 두 번째 시기에, 그는 시카고에 바우하우스의 후신인 '스쿨 오브 디자인'을 설립하고, 디자인 교육과 예술의 사회적 실천이라는 신념을 학교와 산업 디자인의 영역에서 추구했다. 라즐로 모홀리나기는 회화, 조각, 무대 미술, 타이포그래피, 북 디자인, 사진, 영화, 건축 등 디자인과 시각 예술의 모든 분야를 넘나들며 다면적인 활동을 펼쳤던 전방위 예술가였다. 그는 예술과 삶의 유기적 결합을 추구하는 '총체 예술'을 지향했으며, 특히 과학 기술의 진보로 등장한 사진, 영화와 같은 매체들이 인간의 경험과 감각의 지평을 넓혀 주는 예술의 새로운 수단으로 기능한다고 보고, 이들 매체의 미학적 가능성에 대한 다양한 실험을 선보였다. 디지털이라는 새로운 매체를 통한 예술적 성취에 대한 논의가 분분한 지금, 그의 멀티미디어적 예술관과 작품 세계는 디지털 시대의 예술과 디자인의 행로를 전망하는 데 매우 유용한 참고가 될 것이다.
■ 『멀티미디어 아티스트 라즐로 모홀리나기』 차례 1. 라즐로 모홀리나기와의 가상 인터뷰·009 2. 작가탐색 ....모홀리나기의 현재적 의미·103 ....인텔리겐차로서의 예술가, 그리고 디자이너·106 ....빛에서 미디어로 - 서명 없는 작품·109 ....새로운 시각이 새로운 세계를 낳는다·112 3. 부록 ...라즐로 모홀리나기 연보·120 ....참고문헌·125
Vol.20020901a | 멀티미디어 아티스트 라즐로 모홀리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