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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_0723 조선일보 ● 아무나 미술자료 정리하나....● 흔히 전시가 끝나면 남는 것은 빚과 도록(圖錄) 밖에 없다고 한다. 가족들의 눈치를 보며 어렵사리 확보한 며칠간의 전시는 그나마 아르바이트로 벌어놓은 쌈짓돈 마저 앗아가 버린다. 여의치 않은 형편에 힘겹게 제작한 도록의 상당수는 다른 사람들 손으로 전해지면서 무심히 휴지통에 버려지거나 '찌개받침'으로 전락하기 일쑤다. 그래서 막상 전시 관련 자료를 찾으려면 여기저기 수소문해도 구하기가 쉽지 않다. 도록을 비롯해서 미술자료들을 모아놓고 관리하는 전문 자료실과 전문 인력이 없기 때문이다. 그리 크지 않은 나라에서 너무나 안타까운 현실이다. ● 그나마 국립현대미술관에는 자료실이 있다. 20여년간 미술자료전문가로 활동 중인 미술자료 전문가 김달진씨의 첫 직장이며 17년간 유순남씨가 근무했던 부서이다. 짧지 않은 세월 동안 이 두 사람의 노력이 없었다면 국립현대미술관 자료실도 그저 그림책 많은 헌책방 정도로 생각되었을 것이다. 어느 분야나 전문 인력이 필요하겠지만 미술분야 자료전문가는 몇 명 없기에 안정적인 일자리가 매우 절실하다. 아무리 자료정리를 깔끔하게 잘 한다고 하더라도 공예품을 조각으로 분류한다든가, 동명이인의 작가를 구분하지 못한다면 자료로서의 가치를 찾을 수 없을 것이다. ● 문화가 돈이나 권력의 힘으로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듯이 미술자료 또한 오랜 시간과 노력이 있어야 축적이 가능하다. 며칠 전 국립현대미술관 자료실 유순남씨의 부서변경 소식을 들었다. 또 한 명의 미술자료 전문가를 잃는 것 같아 씁쓸한 마음 뿐이다. ■ 최금수
2002_0818 조선일보 ● 현대미술관 사표낸 '자료전문가' 유순남씨 ● 유순남(劉淳男·39)씨는 자료 축적 불모의 우리 미술계에서 손꼽히는 미술자료전문가다. 만 16년 넘게 국립현대미술관 도서자료실에서 자료담당으로 일해왔다. 그런데 유씨가 지난주 사표를 냈다. 지난 7월8일자 미술관 별정직 인사에 대한 항의다. 그는 당시 다른 부서로 발령이 났다. "그간 줄곧 한 우물만 팠다. 그런데 미술관은 나를 '자료 담당자'가 아니라 '6급 통역직'으로만 취급했다." 유씨의 주장이다. ● 이에 대한 미술관측의 해명은 전문가 홀대를 넘어 아예 전문가에 대한 개념 조차 서 있지 않음을 보여준다. "지난해 문화관광부 감사에서 '왜 '통역직'이 '사서직'에 있냐'는 지적이 나와 시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화여대 문헌정보학과를 나온 유씨는 지난 86년 국립현대미술관에 취직했다. "당시 '사서직'에는 이미 다른 사람이 내정돼 있었기 때문에 통역직으로 시작했다"는 것이 유씨의 말이다. 통역직이냐, 사서직이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전문가를 키우지는 못할 망정, 스스로 자기 분야를 개척한 전문가까지 몰아내는 시스템이 문제다. ● 유씨는 화가도, 평론가도, 큐레이터도 아니다. 화려한 자리는 아니라 해도 미술자료 담당은 전문가의 몫이다. 미술을 모르면 자칫 전각(篆刻)을 조각에 포함시켜 버릴 수도 있고 한국화가를 '호'따로, '이름'따로 분류해 버릴 지 모를 일이다. 실제로 지난 96년, 현대미술관에서 열린 한 전시회에서 큐레이터의 실수로 화가 K씨 본인의 작품 대신 장르가 다른 동명이인 작가의 작품이 내걸리는 해프닝도 있었다. ● "눈에 보이는 것이 다 자료입니까. 통계화, 색인화 작업을 거쳐야 자료입니다. 자료가 난무하는 상황에서 이를 제대로 분류, 전달하는 것이 전문가의 역할입니다." 유씨는 묵묵히 도서 자료실을 지킨 공로를 인정받아 지난 88년과 97년에는 미국에 국비 연수까지 다녀왔다. 내셔널 갤러리와 스미소니언 박물관 자료실에서 인턴으로 일하며 쌓은 경험을 바탕으로 '미술관과 자료'라는 책자도 냈다. '미술사를 공부하라'는 주변 조언도 있었지만 '나는 어디까지나 자료 전문가'라는 소신으로 성균관대 대학원에서 정보처리를 전공했다. 석사학위 논문은 '미술자료의 전자 서비스'였다. 작년에는 '미술인 자료 데이터 베이스'구축으로 문화관광부 장관 표창도 받았다. ● "'국내 갤러리 현황', '해외 미술관 직제' 같은 간단한 자료도 찾기 힘든 것이 우리 미술관 현실입니다. 작고 작가, 재외 작가 인명록같은 것도 제대로 돼 있기나 한가요?" "스미소니언은 도서실 직원만 45명"이라는 유씨는 "직원 숫자를 떠나 전시 담당을 '아트 핸들러'라고 부르는 등 각자 맡은 영역을 인정해 주는 분위기가 부럽다"고 덧붙였다. "우리나라 미술관에서 전문가 대우를 맡는 분야는 학예연구관 정도입니다. 나머지는 보존과학 담당이건 미술관 사진담당이건 그저 '기능직' '별정직' 등으로 분류될 뿐입니다. 미술관이란 운송·보험·전시 등 여러 분야가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굴러가야 하는 곳 아닙니까."유씨는 "할 일을 다 못하고 미술관 자료실을 떠나는 것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 정재연 기자
2002_0821 중앙일보 ● [문화 노트] "미술자료 달인"의 이유있는 사표 ● 유순남(39)씨는 미술계에서 김달진(47.김달진미술연구소 소장)씨와 함께 미술자료의 달인이라 불린다. 1986년부터 과천 국립현대미술관 도서자료실을 지키며 묵묵히 국내외 미술 자료들을 보석 갈듯 다듬어왔다. 그의 정확하고 잰 손끝에서 신문 전시 기사 하나, 몇 쪽 짜리 도록 1권이 한국 미술사를 기록하는 소중한 자료로 갈무리됐다. 국립현대미술관 도서자료실이 관련 자료의 보고로 우뚝 서기까지 그가 흘린 땀은 미술계 사람들이 더 잘 안다. 16년을 개근하며 국립현대미술관 터줏대감을 자처하던 그가 지난 12일 사표를 냈다. 자료실 귀신이 되겠다던 유씨 능력과 뜻을 아는 이들이 말리고 나섰지만 그의 결심은 확고했다. ● 그는 "다시는 돌아가지 않겠다. 전문직을 홀대하는 미술 행정에 경종을 울리기 위해, 원칙 없이 사람을 자르고 들이는 일이 반복되는 인사정책에 항의하기 위해 나는 내 삶을 바쳤던 일터를 떠나겠다"고 말했다. ● 유씨가 사표를 내게 된 원인은 7월 8일자 미술관 별정직 인사 때문이었다. 그가 맡아온 자료실에 신임 박문석 문화관광부 차관이 국립중앙도서관 근무 시절부터 비서로 데리고 있던 L씨가 자료정리 담당 별정직 8급으로 들어오며 유씨는 전시과로 발령이 났다. L씨가 사서 자격증을 갖췄고 별정직이 기관장이 임명하는 자리라 절차상 하자는 없다. 그러나 17년째 전문성을 키워온 사람을 하루 아침에 다른 부서로 보낸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미술관 쪽 해명은 유씨가 사서직이 아니라 통역직이기 때문이라는 궁색한 변명이다. ● 국립 현대미술관이 덕수궁에 있던 81년부터 과천 시절인 90년까지 일용잡급, 별정직 7급, 기능직 10급을 떠돌다 사직했던 김달진씨는 "자료실 담당 자리가 없어 통역직으로 뽑아 일을 시켜온 행정 자체가 모순이었다"고 말했다. ● 이에 대해 유씨는 "그럼 지난 16년 동안 통역직인 나를 사서직으로 쓴 인사 책임자들, 88년과 97년에 미술자료 연구를 위해 국비유학을 보냈던 윗분들, 지난해말 미술인 자료 데이터베이스 구축으로 문광부장관상을 준 담당관들은 다 징계 받아야 마땅하지 않느냐"고 되물었다. 미술관 내 간부들이 막연하게 "9월까지만 기다려달라" "자료실로 복귀시킬테니 조금만 참아달라"고 달래는 것조차 그는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전문성을 헌신짝 취급하는 우리 사회 어둔 구석을 보는 듯해 씁쓸하다. ■ 정재숙 기자
2002_0821 한겨레 ● 국립현대미술관의 부당 인사 ● "노하우(축적된 기능, 능력)라는 것이 이른바 '낙하산'에 비하면 하잘 것 없다니 비감하군요. 힘없고 의식없는 미술인의 한 사람으로서 부끄럽고 미안한 마음을 전합니다."(조은정) ● 문화관광부 산하 과천 국립현대미술관(현대미술관) 인터넷 사이트의 게시판에는 지난 12일 사의를 밝힌 도서자료실 자료담당자 유순남(39)씨에게 조씨가 전하는 글이 남겨져 있다. 17년 동안 현대미술관 자료실에서 근무한 유씨는 박사급인 '정사서 1급' 자격증 소지자로, 지난해 미술인 자료 데이터 베이스를 구축한 공로를 인정받아 문화관광부 장관 표창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현대미술관은 지난달 8일 유씨를 전시과로 발령내 통역 업무를 맡게하고, 공채가 아닌 내부채용 형식으로 오랫동안 비서직을 주로 맡아온 이아무개씨를 그 자리에 채용했다. ● 지난 1988년과 97년 유씨를 미국으로 국비연수 보내 내셔널 갤러리와 스미소니언 박물관 등에서 경험을 쌓도록 '배려'했던 현대미술관이 갑자기 납득하기 힘든 인사발령을 낸 것은 무슨 까닭일까. 현대미술관쪽은 "지난해 문화관광부 감사에서 6급 통역직인 유씨가 왜 사서로 일하느냐는 지적을 받아 어쩔 수 없었다"고 밝혔다. 말하자면 유씨를 도서자료실에서 내몬 것은 "잘못된 '직렬'을 바로잡은 결과일 뿐"이라는 설명이다. ● 대형미술관들도 이름은 같지만 연령이나 작품경향이 현저히 다른 작가들의 작품을 구분하지 못해 전시회에서 '사고'를 저지르곤 하는 게 우리 미술계의 현실이다. 미술인들은 현대미술관이 "미술자료 전문인력을 잃는 국가적 손실을 감수한 데에는 유력인사의 입김이 작용한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 유씨 대신 자료담당자로 일하게 된 이씨는 신임 박문석 문화관광부 차관이 국립중앙도서관 지원연수부장과 종무실장을 지낼 때 그의 비서로 일했다. 올해 국립중앙도서관의 9급 사서직 특채에 응시했다 고배를 마셨던 그가 이번 내부채용에선 별정직 8급으로 발탁된 것이다. ● 임기말이다 보니 정부청사 주변에선 요즘 '장관 위에 차관'이라는 농담이 나돌고 있다지만, 설마하니 별정직 8급 인사에까지 간여했을까. ■ 임주환 기자
2002_0822 네오룩 ● 오비이락의 참뜻을 아는가? 그대는... ● 오비이락(烏飛梨落)은 우리 속담에 '까마귀날자 배 떨어진다."는 말의 한자 고사성어이다. 까마귀가 날자 배떨어진다는 말을 만약에 국립현대미술관의 관계자가 했다면 이는 이실직고이다. 이실직고(以實直告)는 '모든 사실을 있는 그대로 고한다'는 뜻의 고사성어이다. ● 그렇다면, 이미 신문(한겨레신문, 2002년 8월 21일자)에 밝혀진 대로 박문석 신임 문화관광부 차관이 국립중앙도서관 지원연수부장과 종무실장을 지낼 때 그의 비서로 일했던 사람(까마귀)이 난데없이 발령을 받자 유순남씨(배)가 다른 부서로 발령이 났다는 사실을 그대로 직고(直告)한 셈이다. 이 분이 누구신가는 모르겠지만, 참으로 존경스러운 분이 아닐 수 없다. 조직내부의 치부를 차마 손으로 햇빛을 가릴 수 없다고 믿고 화를 내듯이 고사성어를 빌어 외부로 이 사실을 고의로 유출시킨 셈이 아닌가?. ● 새로 발령받은 분이 무슨 죄가 있겠는가마는, 사실 이 일로 바늘방석일 것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 그런데 문제는 그 분이 올해 국립중앙도서관의 9급 사서직 특채에 응시했다 고배를 마셨다가 이번 내부채용에선 별정직 8급으로 발탁된 것이다. 그렇다면 이 분을 발탁시킨 장본인이 바로 까마귀를 날게 한 원인제공자 즉, 천둥이나 번개 혹은 먹이감의 역할을 한 신임 박문석 문화관광부차관이 아니라고 믿을 사람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다. 우리나라는 왜 이렇게도 아직도, 모든 것이 제멋대로인 것인가? 미술이나 문화 분야로의 자리이동이 공직사회에서는 한직이나 유배처럼 여겨져 온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니 더 이상 말할 것이 못되지만, 너무한 것 아닌가? ● 미술계에서 유순남씨는 그간 미술계의 자료통으로 국립현대미술관의 데이터베이스화를 주도한 인물로 주목을 받아온 사람이 아니었던가? 사실 필자는 이번 사실을 접하면서 너무나 충격을 받았다. 그 충격은 유순남씨가 사표를 냈다는 것을 포함하여 사서직이 아니라 통역직으로 근무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국립현대미술관의 직제나 보수가 다른 미술관에 비해 열악하다는 것은 만천하가 다 아는 사실이지만 어떻게 16년 동안 임시직, 별정직 통역직 8급으로 전전하면서 일을 할 수 있었단 말인가? 미술관을 찾아다니면서 자료수집을 하던 열성적인 그녀가, 스미소니언미술관등의 유명한 곳에서 연수까지 다녀온 미술계의 자료전문가가, 기실 통역직이었단 말인가? 그러면 유순남씨는 통역을 해야 하는데 국립현대미술관에 외국사람이 오지 않은 탓에 또 다른 일거리로 자료실 업무를 담당해 왔단 말인가? ● "그럼, 지난 16년 동안 통역직인 나를 사서직으로 쓴 인사 책임자들, 88년과 97년에 미술자료 연구를 위해 국비유학을 보냈던 윗분들, 지난해 말 미술인 자료 데이터베이스 구축으로 문광부장관상을 준 담당관들은 다 징계 받아야 마땅하지 않느냐?"(중앙일보 8월 21일자, 「문화노트」중에서) ● 아, 이 한마디에 얼마나 울분에 찬 조직에 대한 항의와 문화관광부의 잘못된 인사에 대한 저항의 몸짓이 깃들어 있는가? 오호 통재라.....1910년대 일제에 주권을 넘겨줘 36년 동안 지배의 사슬을 붙잡아야 했던 역적들도 관료들이었고 자결로 항의했던 이들도 관료들이었다. 90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우리 사회의 질긴 제도적 모순과 고질적인 관료주의의 병폐에 대해 다시금 통분의 울음을 쏟아야만 한다. 그런데, 이번 문제 역시 시간이 지나면 유야무야되겠지와 같은 사건원인제공자의 착각이 그야말로 사실로 되도록 미술계의 힘을 모아야겠다는 사실이다. 사실 이런 말을 서슴없이 하는 필자는 앞으로 다가올 여러 가지 피해에 대해 생각해 보지 않은바 아니다. 나는 어쩌면 제도권에 대한 저항자, 문화관광부와 관련된 곳에 취직이나 프로젝트를 맡을 수 없는 찍힌 자가 될지도 모르니까. 때론 그래서 익명이나 필명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런데, 나는 이번 일에 대해 과감하게 문제의 본질을 파헤치는 문화부 기자들의 용감한 글쓰기에 깊은 감동을 받았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 언제 우리 미술계의 문제점에 대해 이처럼 많은 문화부 기자들이 쉴 틈 없이 펜을 눌러쓴 적이 있었는가? 사실 그들이 기자정신에 입각하지 않고서 어떻게 감히 문화관광부의 잘못된 인사에 대해 이러니 저러니 기사화할 수 있었겠는가? 사실 필자 역시 큐레이터직에 종사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유순남씨의 퇴출이나 개관까지 갖은 노력을 한 서울시립미술관의 큐레이터들에게 징계조치를 취한 사건들을 보면서 이 사회가 얼마나 썩어있고, 병들어 있는 가를 보고 그들의 아픔에, 모든 것을 젖히고 동참하지 않을 수가 없다. ● 우리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깨어있는 시민정신이고, 전문가를 전문가로 인정하는 풍토를 만드는 것이고, 건물이나 돈보다 사람을 우선하는 인간주의의 회복이다. 그것 없이는 문화도, 권력도, 미술도 아무것도 이 사회의 썩은 물을 정화시킬 수는 없다. 잘못된 것에 대해 잘못되었다고 말하고, 그것을 시정하도록 요구하는 것은 세금을 내는 국민으로서, 이 사회에 조금이나마 기여하고 있는 미술인의 한사람으로서 응당한 역할이 아니겠는가? ● 필자는 이번 일에 대해 상호주의 입장에서 몇 가지 해결책을 제시하고자 한다. 그것을 받아들이든지 아니든지 그것은 당사자들의 자유이겠지만. ● 우선 가장 먼저 사건의 원인제공자인 박문석 신임 문화관광부 차관은 이번 사건에 대해 사과문을 발표하고 문화관련기관의 인사원칙을 공개하여 국민의 평가를 받기를 바란다. 그리고 이번 발령의 해당자는 별정직 관장의 잘못된 인사관행을 바로잡기 위해서라도 미술관이 아닌 다른 기관의 사서직으로 자리이동시키는 것이 바람직하리라 본다. 별정직 특채를 할 수 있는 정도의 권력이라면 이것 정도는 아무것도 아닐 것이다. 이미 그 자리에 누가 있는지를 알게 된 이상, 미술인들을 대해야 할 장본인은 늘 자유롭지 못할 것이 아니겠는가? 그리고 국립현대미술관의 관장 역시 이번 일의 책임으로부터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 신문보도에 의하면 "기관장이 임명하는 자리라 절차상 하자는 없다."(중앙일보 위 기사)는 것을 보면 인사권을 행사했다고 할 수 있는데, 직제상의 오류나 인사상의 문제를 왜 제대로 바로잡지 못했던 것일까? 문화관광부의 지시 하나에 좌지우지될 만큼 국립현대미술관 관장자리가 허약한 자리인가, 아니면 거절할 수 없는 피치 못할 사정이 있었던 것일까? 이유없는 죽음이 어디 있겠는가마는, 부디 유순남이라고 하는 사람하나 퇴출시킨 것 가지고 무엇이 그리 대수냐고 가볍게 넘기시지 않으시기를 바란다. 이일에 대해 관련공무원들에게 책임을 미룰 것이 아니라 책임있는 답변이나 해명이 있어야 할 것이다. ● 모든 것은 사소한 것에서부터 출발하는 것이고, 대한민국 미술의 대표기관인 국립현대미술관이 전문가를 아끼지 않는다면 어떤 곳도 사람을 아끼지 않을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 그리고 부디 더 나은 다른 곳에서 유순남씨가 일하게 되기를 바라지만, 그것이 한 사람에게는 죽을 때까지 상처로 남을 것임을 깊이 인식해 주기를 간곡히 바란다. 만약 이 일을 소홀히 한다면 유순남씨가 토했던 처절한 울부짖음이 자신의 것으로 돌아올 수도 있다는 사실을 언젠가 역사는 말해 줄 것이다. ● "다시는 돌아가지 않겠다. 전문직을 홀대하는 미술 행정에 경종을 울리기 위해, 원칙 없이 사람을 자르고 들이는 일이 반복되는 인사정책에 항의하기 위해 나는 내 삶을 바쳤던 일터를 떠나겠다." ● 두 번째로, 앞에서 잠깐 인사원칙에 대해 언급했는데, 문화관광부는 고위공직자의 업무관련기관의 임명은 퇴직후 2년이 지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공직자윤리법」을 철저히 지켜주기 바란다. 그리고 지금 이러한 현실에서 이 정부에 기대할 것이 없기에 하는 말이지만, 차기 정부에서는 문화관광부 산하기관의 수장을 비롯하여 관련공무원들이 정당한 절차 없이 임용되었는지를 철저히 가려서 부당한 인사에 대해서는 조치를 취해줄 것을 강력히 요구한다. 지금도 전문가들이 일해야 할 문화기관 자리에 관련공무원들이 자리를 차지하려고 한다는 소문들이 무성하다. 이것은 공무원의 밥그릇을 빼앗으려는 전문가들의 이기주의적인 문제가 아니다. 사회가 정상적으로 돌아가고 경쟁력있는 21세기 문화입국의 문제인 것이다. ● 세 번째로, 차제에 학예사자격제도를 원점에서 재검토하는 문제를 강력하게 제기하는 바이다. 특히 이번 유순남씨 사태의 본질적인 문제는 큐레이터의 자격 즉, 큐레이터라고 하는 개념의 문제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점을 알아야 한다. 현대적 개념에서 특히 미술관과 같은 제도적 기관에서의 큐레이터는 단순히 전시기획만을 하는 사람이 아니다. 학예연구실은 1)전시기획 2)연구 및 조사 3)소장품의 수집 및 보존 4)대중을 위한 교육 및 미술교육 연수프로그램 5)자료실의 기록관리 및 보존 6)미술관의 운영 및 관리 7)공간디자인 및 그래픽 디자인, 사진, 표구, 영상기록, 통역 등이 총체적으로 결합된 조직인 것이다. 모든 전시는 이러한 모든 분야의 협업이자 공동작업에 의한 결과물이다. 이러한 직분에 따라 큐레이터(Curator), 연구원(Researcher), 자료관리자(Register), 전시장 디자이너(Space Designer), 인쇄물 및 전시장사인, 홈페이지 디자인(Graphic & Web Designer), 사진가(Photographer), 표구가(Frame Worker), 보존관리자(Conservator), 교육프로그램운영자(Educator) 등이 각 영역별로 학예연구실에 포진하게 되고, 각 영역마다의 책임자는 학예연구실장의 지휘 하에 놓이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관장은 미술관의 모든 전시마다 미술사적, 행정적 책임을 지며 대외적인 교섭의 우두머리가 되는 것이 세계적인 추세이다. 그리고 이러한 조직을 행정적, 예산적으로 뒷받침하는 행정실이 있게 되는 것이며, 이 안에 관리, 운영기획, 인사 및 직제, 안전, 미술관 보험 등의 업무를 담당하는 부서가 배치되는 것이다. 이러한 미술관의 조직은 궁극적으로 미술관 발전계획, 예산수립, 예산집행을 심의하는 이사회가 있어 정기적인 이사회의 의결사항에 의해 학예연구실의 행동반경이 결정되는 것이다. 이 이사회 내에는 소장품구입심의위원회, 미술관 발전위원회, 자문위원회, 후원회 등이 있어 관장의 운영을 보좌하고, 재원을 조달하고, 감시하는 것이 유수한 미술관의 사례이다. 따라서 우리의 미술관들도 이러한 틀을 하루속히 마련해야 하는데, 전근대적인 인사정책이나 행정직 우선의 직제를 개편해서 학예연구실의 기능을 강화하는 방안으로 21세기 문화경쟁시대에 대비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 이러한 직제개편의 문제는 국립, 공립, 사립미술관이나 박물관을 막론하고 법제화해야 하는 당면문제이며, 더구나 학예사자격제도 역시 이러한 다양한 인력을 수용하는 관점에서 폐지시키거나, 원점에서부터 다시 개편하여야 하여야 한다는 점이다. 즉, 학예사자격제도는 준학예사, 정학예사 1, 2, 3급으로 구분하는 19세기적 직위개념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선진국에서 보면 웃음거리가 아닐 수 없다. ● 직능별로 자격이나 경험이 있는 지를 판단할 수 있는 최소한의 요건을 갖춘 사람에게 자격증을 주고, 이를 선발하는 것은 미술관의 자율에 맡겨야 한다. 또한 1, 2, 3급으로 근무 연륜에 따라 국공립 미술관과 박물관 근무자에게만 자격 승급요건이 주어지는 것 역시 불합리한 제국주의적 발상임은 물론이다. ● 사립미술관에 근무하는 것은 무슨 죄가 있길래 이러한 승급자격에 불이익을 당해야 하는 것이며, 학예사(큐레이터)면 나이가 어리건 많건 자기 분야에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이지, 1급, 2급, 3급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미술학이나 예술학, 미술사학 대학원 석사, 박사를 거친 학예사(큐레이터)가 무슨 기능직인가. 1급하다 그만 두면 다른 미술관에서 1급으로 채용해 주는 무슨 법이라도 있단 말인가. 왜 월급을 이유도 없이 많이 주어야 하는 1급을 뽑는단 말인가. 3급이면 어떤가. 정학예사면 그만이지. 이 학예사자격제도가 얼마나 원초적인 모순으로 가득 차 있는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인 것이다. ● 따라서 직급이나 보수, 직제는 각 미술관의 직제에 영향을 받을 수 있지만 그 자격에 무슨 구분을 두는 것은 현실적으로도, 시대적 추세에도 맞지 않은 구시대적 잔재인 것이다. 또한 준학예사 자격시험에 무슨 객관식시험을 보는가. 대부분 학예사(큐레이터)가 되고자하는 사람은 대학이나 대학원에서 전문교육을 받지 않으면 안된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관심영역에 관한 논술식이라면 몰라도 객관식 시험이 있다는 것은 행정편의주의적 발상이자 전문분야를 이해하지 못한 구태의 소치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심각한 문제는 준학예사자격시험에 합격하더라도 의무적인 2년 실무경험이라는 제도로 인해 울며겨자먹기식으로 저임금의 인턴들이 미술관/박물관에서 일을 해야 만 한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얼마나 고학력자들의 노동력을 헐값에 착취당하는 일이며, 미술관에 대한 불신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는 일인지 그 실태를 살펴본다면 학예사자격제도를 입법화한 당사자들은 후세에 두고두고 후회할 일을 했음을 자각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당시 문화관광부가 주최한 학예사자격제도시행에 관한 형식적인 공청회에서 많은 비판을 아랑곳하지 않았던 추진 당사자들의 면모를 보면 전혀 그런 생각을 갖지 않을 것임은 너무나 자명한 사실이지만. ● 더구나 이들이 「미술관/박물관진흥법」을 손질하면서 큐레이터를 두어야 했던 강제조항을 교묘히 수정하여 큐레이터를 두지 않아도 되게 법제화를 했던 것은 사립미술관 관리자 혹은 설립자들과 결탁한 의혹을 짙게 남긴 역사적 기록이다. 언젠가 특별조사가 필요한 사안이 아닐 수 없다. 이로 인해 현재 사립미술관들은 넘치는 인턴들을 골라서 쓰고 정규직원으로서 큐레이터들을 두지 않아도 되는 명문화를 초래하고 말았다. ● 이들은 미술관만 지어놓고 설립자 마음대로 전횡할 수 있는 조건과 인건비를 줄일 수 있는 호기를 만났고, 일부 대학에서는 큐레이터 관련학과를 개설하여 학생들을 모집하여 교육 장사를 벌일 수 있었고, 비싼 등록금을 내고 과정을 마친 사람들은 준학예사시험에 합격하기 위해 도서관에 파묻혀야 했고, 시험에 합격했다 하더라도 어떻게 해서든 미술관에 들어가 인턴으로 2년을 근무해야 정학예사가 되는 자격을 얻을 수 있었기에-그렇다고 직원으로 채용된다는 보장도 없는-온갖 수모와 고생을 감내하며 일을 해야 하는 현실이 되었다. ● 이제 큐레이터들은 일년에 끝없이 배출되는 개미와 같은 신세가 되었고 일본의 10분의 1도 안되는 미술관들은 인턴수급 인력의 포화상태로 받아들일 수도 없는 좁은 문으로 자리 잡은 터이고 보면, 학예사(큐레이터)는 마음대로 쓰고 버릴 수 있는 배터리와 같은 임시직 신세를 면치 못하게 되었다. 한때 마르셀 뒤샹이 역설적으로 표현했던 자신의 이름 '장밋빛 인생'처럼, 광개토대왕과 같이 한 문화관광부 장관이 외쳐댔던 미술관 1,000개 설립이라도 제대로 실현되었으면 좋으련만. 그런데, 큐레이터를 안두어도 좋도록 만든 진흥법에 의해 1,000개의 미술관이 들어선들 퇴직금도 의료보험도 가입이 안 되는 인턴들만 미술관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을 것이 아닌가. 언제나 정규직원이 될 것인가를 오늘도 내일도 설립자, 인사권자의 눈치만을 보면서. 설립주체에게는 진흥인지는 모르지만 실무를 담당하는 전문 인력에게는 퇴보나 발전저해가 되는 것이 우리나라 진흥법인 것이다. ● 이 슬픈 스토리는 사이버상의 서바이벌 게임의 하나도 아니며, 가까운 일본의 미술관 일도 아니며, 지금 여기 우리의 현실인 것이다. 따라서 하루빨리 미술관/박물관진흥법을 고쳐 반드시 전문직인 큐레이터를 그 규모에 따라 적정인력을 확보하도록 법제화하여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은 미술관/박물관은 행정처분이나 법제상의 불이익을 받도록 법을 개정하여야 하는 것이다. 전문가들이 제대로 자신의 직분에서 활동할 수 있도록 해야 하고, 사회적 임시고용직이 아닌 정규노동력으로 고용되어야 한다. 그래야만이 세계적인 미술관/박물관과의 문화적 경쟁력을 갖는 일이 될 것이며, 말로만 전문가와 문화행사가 있어 한다고 외치는 국가행사때마다, 왜 메뉴가 없느냐고 애꿎은 행정직원들만 다구치는 문화관광부 장관이 나오지 않는 근본 대비책이 아닐까. 이는 무엇보다 중요하고 선결되어야 할, 우리시대 '지금, 여기'라는 눈앞의 현안인 것이다. ● 이 시대의 잘못된 미술관/박물관진흥법과 학예사자격제도의 폐단은 유순남씨의 인사파동으로 인한 사표제출, 서울시립미술관의 계약직 큐레이터들에 대한 징계조치와 퇴출압력의 문제와 한 치도 떨어져 있지 않는 것이다. ■ 장동광
Vol.20020822a | 미술자료 전문가의 이유 있는 사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