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순환

김병주展 / installation   2002_0821 ▶ 2002_0827

김병주_반딧불이-조명_종이에 직접염료, 혼합재료_가변크기 설치_2002_부분

갤러리 라메르 서울 종로구 인사동 194번지 홍익빌딩 Tel. 02_730_7711

염색 기법을 통한 '생명의 순환성' 표현 ● 동이전'에 의하면 이미 변한과 진한 시대에 청색의복을 사용하였으며 청색, 적색, 자색 등의 색실로 문양을 넣어 짠 금직이 사용되었다고 한다. 고구려 등 삼국시대의 염색은 고분 벽화 등에 나타낸 것에서 볼 수 있으며, 고려시대에는 관. 사영에서 염직물을 생산하였다고 한다. 조선시대에 들어서는 가내 수공업이나 작은 공장에서 교역품과 귀족충당의 염색물을 생산하였다고 하는데 이때는 천연 염색을 사용하였다. 그러다가 약 1800년대 말경에 화학염료가 들어와 본격적인 화학염색의 시대가 열였던 것이다.

김병주_수세미-윤회_수세미에 직접염료, 혼합재료_가변크기_2002_부분

종이는 미술 재료로서 이미 스케치나 밑그림 제작 그리고 다양한 용도로 이미 많이 사용되어 왔다. 그리고 현대에 들어서는 공예에 있어서도 재료로 이용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곧 종이를 실험을 통하여 작품화 할 수 있는 모체의 종이로서 새로운 예술의 방법이 제기되고 있으며 오늘날에는 그러한 작품을 많이 볼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점은 입체주의의 빠삐에 꼴레 등에서 종이의 미술품 제작에 대한 가능성을 보아왔다. 그러한 가운데 오늘에 와서는 종이의 다양한 성질을 이용하여 찢고, 자르고, 접고,…… 가늘게 하면서 여러가지 기법으로 종이의 다양한 성질을 이용하여 작품을 표현하고 있음을 볼 수 있는 것이다.

김병주_묶음_종이에 담배염, 혼합재료_가변크기_2002_부분

김병주의 작품세계는 종이에 염색을 하는 것이다. 종이에 염색을 한다는 것은 종이 표면 위에 색채로서 표현한다는 것이 아니라 종이 재료에 염색료를 침윤시켜 재료인 펄프의 상태에서부터 염색을 하는 것을 말한다. 그러니까 완결된 종이에 관심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종이를 만드는 과정에서 보여지는 종이 재료의 독특한 질감과 그 창조성에 관심을 가지는 것이다. 김병주는 종이가 되기 이전의 펄프 상태에서 염료를 사용하여 종이가 아니라 미술품을 만들어 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 김병주는 이러한 종이를 재료로 하여 염색을 표현하는 작품세계를 구축해온 작가이다. 우리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신문지나 갱지 그리고 휴지를 이용하여 그 제조 과정을 거친 후 여러 가지 작품을 만들어 왔던 것이다. 그러한 김병주의 작품세계는 1회 개인전 (97년 조형갤러리)에서 다양하게 펼쳐졌다. 종이의 모체인 펄프를 이용하여 자르고, 꼬고, 묶고, 설치하는 등 실험적 요소를 보여주었다. 그리고 2회 개인전(2002년 구올담 갤러리)에서는 종이 펄프에서 나타나는 질감의 효과와 그 위에 착색을 통하여 회화 표현에까지 넘나들고 있음을 볼 수 있었다. 특히 종이의 질감을 통하여 돌에서 느낄 수 있는 투박성과 거침은 질감 속에 문자나 부처가 새겨져 있음을 볼 수 있었다.

김병주_묶음_종이에 담배염, 혼합재료_가변크기_2002

이번 작품전에서는 이전의 작품세계 표현법을 이어 가면서 크게 세 개의 무리로 나누어 볼 수 있다. 하나는 종이를 재료로 하여 마치 나무껍질과 같이 만든 형상이다. 이 작품에서는 나무껍질 부분으로 나타나는 표피층을 침염을 통하여 염색한 것인데 침염한 부분들을 철망에 엮어 하나의 나무껍질 형상으로 만들어 낸다. 부분의 조각들을 서로 엮어 하나의 나무껍질 같은 덩어리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이 부분은 대체로 침염으로 처리되어 있다. 침염은 염색료의 조제와 농도에 따라 각기 다른 명도 차를 나타내는데 김병주에게 있어서는 침염의 순서에 따라 명도 차가 다르게 나타나고 있다.

김병주_나무-세월_종이에 먹물, 철망, 혼합재료_가변크기 설치_2002

두 번째 무리는 종이를 재료로 하여 마치 나무의 속을 얇게 깎아 묶어 놓은 것 같은 작품이다. 이러한 묶음은 묶는 줄도 염색을 하여 작품에 일조하고 있다. 그리고 묶음은 나무의 속살 부분의 표피층을 대패로 깎아 놓은 것 같아 보이며 그러한 표피층을 차곡차곡 쌓아서 그 쌓여진 느낌을 보여주는 것 같다.

김병주_나무-세월_종이에 먹물, 철망, 혼합재료_가변크기 설치_2002_부분

세 번째는 수세미에 다양한 색으로 염색하여 설치한 작품들이다. 천연 수세미를 말려 염색으로 착색한다. 염색된 수세미를 지끈으로 장식하여 새로운 장식품으로 나타낸다. 이렇게 작품화된 수세미가 여러 개로 무리 지어 나타나는 부류이다. ● 이러한 세 가지 부류에서 겉으로 드러나는 효과는 서로 다르다. 그러나 이러한 세 가지 부류들에서 나타나는 함의(含意)는 같음을 볼 수 있다. 나무 껍질이나 속살 부분의 층을 모은 묶음 그리고 수세미에서 나타나는 기본적인 함의는 '생명의 순환성' 이다. 곧 나무 껍질은 자연의 순환체계, 생명의 생성과 소멸의 의미체계를 상정하고 있다. 그리고 나무껍질에서 엮어진 관계성들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러므로 나무껍질을 표현한 작품에서 나타난 질서와 얽히고 설켜 하나의 껍질을 이루어 내는 관계성의 모습들은 인간 삶의 질서와 관계성의 표현인 것이다. 껍질은 실제 껍질이 아니라 종이 재료를 이용하여 만든 껍질이다. 그리고 껍질은 철망에 얽혀 조직화되어 있는데 이러한 껍질의 의미는 생명의 윤회를 나타낸다. 껍질은 몸을 덮고 있는 껍질이며 생명의 허물이기 때문이다.

김병주_세상_종이에 혼합재료_60×60×3cm_2002

얇은 종이의 묶음으로서 나무의 속살같이 보여지는 것에서도 생명의 순환관계가 보여진다. 마치 나무 속을 이루는 나무의 질서 같기도 하다. 그리고 수세미 작품을 자세히 보면 수세미를 다양한 색채로서 염색하였는데 젊음을 나타나는 푸른색, 장년기를 나타내는 붉은색, 그리고 노년기를 나타내는 노란색이나, 청색의 표현이 그러하고, 수세미 자체에서도 씨가 곳곳에 박히고 흘러내려 하나의 열매로서 새로운 씨를 만들어 내며 자신의 변화된 몸을 보여주는 상징적 매체로서 수세미가 보여지기 때문이다.

김병주_기하학_종이에 혼합재료_70×74×3cm_2002

이상과 같이 김병주 작품세계의 근저에는 인간의 생로병사(生老病死)와 같은 윤회(輪廻)와 '생명의 순환성'이 바탕 되면서 작품세계가 형성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러한 작품세계는 단순히 공예의 개념에서 벗어나 회화 나아가 설치의 개념으로 나아가기도 한다. 여기서 염색공예의 새로운 가능성을 볼 수 있는 것이다. ■ 오세권

Vol.20020820a | 김병주展 / installation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