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일시_2002_0821_수요일_06:00pm
덕원갤러리 3층 서울 종로구 인사동 15번지 Tel. 02_723_7771
인물 또는 사물 등 어떤 객관적 대상을 주관적 이미지로 전환하는 표현 활동은 여러 각도에서 가능하며 많은 주제를 제시 할 수 있을 것이다. 사진이라는 매체는 어떤 방법들을 동원하든지, 개인적 표현에 특전을 준다. 현대의 사진 이미지는 더 이상 실재 사물이나 사실을 정확한, 있는 그대로의 재현뿐만 아니라 조작, 합성, 변형에 의해 실제 대상의 이미지와는 상관없이 또 다른 새로운 이미지로 재생시키는 곳까지 이르게 되었다. 사진의 독자적 속성을 갖고 전환된 이미지를 표현하는 이들의 시각을 따라가며 우리의 현실을 새롭게 해석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 최진호는 세계를 보는 개별적 인식인 '주관성'을 유일하게 표현 할 수 있는 방법은 사진에 고유한 모든 수단을 실험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결국 사진은 사람의 손에 의해 조작되고 현실의 어느 대상이 선택되고, 시간이 잘리고, 공간이 잘려지고, 작가의 의도에 따라 사진의 이미지는 만들어지게 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사진이 가지는 중요한 의미 중 하나는 사진을 만들어 가는 작가의 눈과 마음, 현실을 바라보는 관점과, 가치관, 대상을 바라보는 고유한 시각이 사진 속 이미지에 담겨 보여진다는 사실이다. 이 말은 사진이 가지는 객관적 사실 표현에 앞서 사진의 주관성을 보여주는 것이며 사진은 객관적 이미지로써의 의미 이전에 작가의 주관적 해석이 있고 난 다음에야 만나게 되는 결과물이라는 것이다. 이제 사진은 그 건조한 도구적 특성에도 불구하고 작가의 예술적 심미안과 상상을 충족시켜줄 수 있는 표현 매체가 된다.
사진은 어떤 형상을 담고있든 간에 첫 출발은 대상을 찾고 그 대상을 담보로 하기 때문에 기록적이고 사실적이며 그래서 객관적이라는 속성을 강하게 내포한다. 최진호는 이러한 사물에 대한 강도 높은 사실성을 포착하는 사진의 새로운 시각적 모험을 시도한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마주치는 사물을 선택하여 한 장의 사진으로 찍은 후, 그것을 여러 등분으로 분할하여 그중 한 부분의 이미지를 다시 좌우로 뒤집고, 복제하고, 다시 대칭구도로 화면에 재결합 시켰을 때 원래 사진 속에 있었던 현실의 구체적 대상은 보이지 않고 불확실한 새로운 조형적 이미지가 눈앞에 다가선다. 그러나 분명 각각의 사진 속엔 현실의 대상이 존재하지만 그것을 눈으로 정확히 무엇이다 라고 확인 하기는 어렵다. 처음 그의 작업을 보면서 무엇을 찍었는지, 어떤 사물인지를 확신할 수 없지만 작품이 주는 조형적 미는 이미 사물의 근원적인 형태를 파괴하며 전혀 새로운 전환된 이미지를 느끼게 만든다. 즉 그가 최초에 선택한 사물에 대한 강도 높은 사실성은 사라지고 작가가 변환과 반전을 시도한 부분들의 모음으로 작업은 마무리된다. 그의 이번 사진 작업에서의 이미지 전환의 여러 가능성을 느낄 수 있다. 이러한 작업은 사진이 가지고 있는 객관적 사실성의 애매모호함과 불확실성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결국 사진은 완벽한 사실의 객관성도, 완벽한 주관성도 갖지 못하며 객관적인 사실과 주관적인 해석, 그 사이의 경계에 항상 서있는 사진적 특성과 한계를 보여준다.
최진호의 이번 작업은 사진이미지와 함께 사진의 방법적인 면인 검프린트 기법을 동시에 보기를 요구한다. 검프린트 기법은 은염 사진이 발명되기 전에 쓰이던 비은염 기법으로 아라비아고무와 중크롬산을 이용해서 감광유재를 직접 만들고 그 유재를 종이에 바른 후 햇빛(자외선)에 감광시킴으로써 이미지를 만들어 내는 1:1밀착인화 방식이다. 이처럼 검프린트는 현재 사용되는 은염사진의 고도로 발전된 기술적 프로세스에 비해 매우 단순하며 윈시적인, 이미 사멸화 된 기법이다. 검프린트가 가진 기술적 단순함은 사진의 고유한 원리와 근원적 속성을 더욱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발달된 기계에 의해 만들어진 재료가 갖는 프로세스는 정확하며 일정하다. 사물의 재현 능력 또한 뛰어나다. 이러한 능력은 사물을 좀더 정확하고 사실적으로 재현 가능하게 함으로써 사진이 객관성을 갖는 매체로 바라보게 한다. 이러한 은염사진의 프로세스적 장점들은 작가를 작업에 있어 직접적이고 적극적인 개입을 막으며 수동적인 입장으로 만들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에 비해 검프린트는 기술적, 재료적으로 단순하지만 수공적 속성으로 인해 이미지를 얻기까지 그 과정은 복잡하고 많은 시간과 시행착오를 요구한다. 그러나 이러한 기술적 불리함은 오히려 작가를 그 작업에 좀더 직접적이고 능동적으로 개입하기를 요구한다는 사실이다. 다시 말하면 각각의 과정들 속에서 작가는 스스로 그 문제점을 해결하고 재료적 특성과 가능성을 자유롭게 실험함으로써 보다 폭넓은 표현의 상상력을 발휘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번 작업이 보여주는 사진이미지는 현실에 존재하는 사물을 새로운 이미지로 재환원 시키는 작업이며 작가 스스로 선택한 사물의 새로운 표현과 그 주관적인 해석을 통한 적극적인 개입이라고 본다면 작가가 선택한 검프린트 또한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사진표현의 목적에 부합하는 것이며, 그 기법이 갖는 표현능력의 가능성과 자유스러움이 이번 전시에서 검프린트를 이용하게된 가장 정확한 이유일 것이다. ● 오늘날 발전된 기술문명과 그에 따른 다양한 기록 매체와 대중문화 속에서의 사진 개념과 의미는 변형과 왜곡을 계속하며 현대의 디지털 기술에 와서는 그 정점에 있는 듯 보인다. 이러한 사진 현실에서 검프린트가 갖는 기술적, 단순함과 수공성 그리고 근원적 속성은 동시대 사진을 어떻게 보고 이해할 것인가, 어떤 시각으로 사진을 판단할 것인가를 우리에게 되묻고 있는 것이다. ■ 임은미
Vol.20020819a | 최진호展 / photograph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