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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선영展 / BYUNSUNYOUNG / 卞善映 / painting   2002_0820 ▶ 2002_0829

변선영_part of installation_풍선, 금속, 인조털_240×360×300cm_2002

초대일시_2002_0820_화요일_05:00pm

갤러리 인 서울 종로구 팔판동 141번지 Tel. 02_732_4677 www.galleryihn.com

불구의 울타리, 떠도는 집 ● 예술이란 무엇일까라는 질문을 늘 한다. 그 질문이 어제오늘에 제기된 것은 아니지만, 여전히 그 물음은 계속되고 반복된다. 요즘처럼 영상문화가 위세를 떨치고, 디지털 기술을 통한 이미지 문화의 엄청난 변신과 확장을 체험하는 시대에서 이런 질문은 더욱 절실한 것일지도 모른다. 예술이란 뭔가 위대한 그 무엇일까. 디지털 시대에 예술이 의미 있다면 그것의 실체는 어떤 것일까. 예술 개념은 시대적 상황과 변화 속에서 새롭게 자신을 갱신시킬 수 있지만, 예술 자체가 갖는 근본적인 질문은 여전히 유효한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예술의 힘은 삶을 맥으로 하는 데서 오는 것이지 않겠는가. 삶에 대한 관찰력과 주의력, 끝없이 반추하고 성찰하는 실천적 사유를 통한 지속적인 물음을 던지는 일이 아니겠는가. 예술가의 주의 깊은 시선이 우리들의 일상화된 삶을 깨우치게 하고, 정체되고 안주하는 삶의 양식을 흔들어 놓을테니 말이다. 여전히 예술은 우리를 불편하게 하는 역할을 통해 그 존립이 가능한 것이지 않을까. 우리를 불편하게 만드는 일을, 예술은 디지털 시대에도 여전히 같은 힘으로 수행해야 할 터이다.

변선영_home & house_혼합재료_19×24cm_2002

변선영의 작업은 집과 가정을 담은 것이다. 하나의 소재로서 제안되는 집이지만, 사실 집은 작가에게 가장 친밀하고 직접적인 공간을 말하는 것이다. 그래서 작가의 시선이 가장 구체적인 내용으로 멈추는 공간이 된다. 그래서라도 작가의 사유는 결코 예술의 거대한 신전 주변을 맴도는 식의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틀에 의존하지 않는다. 체험적이어서 생생하고, 몸으로 부딪히는 공간이어서 실제적이다. 또 작지만 왜소하지 않고, 거대하지 않지만 소중한 언어로 말하고 있다. 지극히 개인적인 맥락에서 출발하는 이야기지만, 바로 그런 이유로 인해 충분한 공감대를 만들어주는 것이 변선영의 작업이다.

변선영_home & house_혼합재료_22×27cm_2002

무엇보다도 작가는 집을 단순히 사랑받고 보호받는 공동체 개념만이 아니라, 가족 구성원이 나름대로 자신들의 갈등을 쏟아내고 충돌시키는 현장으로 이해한다. 가족들은 각자의 사회활동과 자아성취의 욕구 및 갈등이 얽혀 있는 상태로 서로를 만나고 떠난다. 적어도 따뜻하고 행복한 스윗홈의 이미지는 그런 집안의 현실과 생생함을 담아내기에는 너무 추상적이다. 오히려 기능적인 차원에서 가족들이 쉬고 잠자고 배설하고 다시 세상에 나가 일하고 부딪히며 살아가는 여정에 잠시 머무르는 '길목'의 개념이지 않을까. 변선영의 시선이 바로 그런 지점에서 우리를 불편하게 만든다. 홈 스윗홈의 상징적 의미를 무산시키는 일에서 그의 작업이 출발하기 때문이다. 때로는 여성으로서 겪는 가정과 집의 의미가 자아성취와 사회활동을 위한 언덕이기보다는 어려움을 생산하는 '불구의 울타리'와도 같이 드러나기도 한다. 어쩌면 집에서 드러나는 불구의 의미가 이 세상의 구조와 많이 닮아있다는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온존한 몸을 마음과 영혼으로 받쳐주지 못하고 상처받고, 억제하며, 그 나마의 조건을 좇아 안주하는, 그런 여의치 못한 환경으로서의 집을 그리는 것이다.

변선영_home & house_혼합재료_17×22cm_2002

이번 전시를 위해 변선영은 두 개의 공간을 마련했다. 하나의 공간은 100점의 평면작업으로 구성하였고, 다른 하나는 비교적 큰 규모로 된 설치작업 공간이다. 100점의 평면작업은 마치 작가의 무의식의 흐름을 따라 적어 내려가는 내면의 일기장과도 같은 고백체의 결과물이다. 집의 도상은 어린아이들이 흔히 그리는 지붕과 몸체가 있는 형상이고, 대체로 달콤한 분홍빛이다. 100개의 도상이 작가 내면의 이야기와 어우러져 다양한 변형을 겪는다. 집의 상징인 행복과 평안의 도상이 겹치는가 하면, 작가 자신의 몸과 분리되지 않고 붙어다니는 기형의 몸체로도 그려져있다. 집은 에로스의 형상과 일치되기도 하지만, 날개의 디테일로 연결되어 있기도 하다. 행복의 불안한 완성이 부러진 날개의 한 쭉지로 이어지면서 불완전의 평온을 말한다. 집은 또한 작가의 머리와 연결되어 있기도 하고, 유방으로 이어져 젖줄의 형태가 되기도 하며, 심장 한 가운데로 집이 박혀있기도 하다. 집이란 여성에게 몸과 같은 생명체라는 사실이 무얼 의미하는 것일까. 자신이 움직이는 대로 집도 같이 움직인다는 가설의 표현이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그것이 때로는 자유로운 활동에 버겁고, 더디며, 그래서 늘 마음을 산란하게 만드는 몸체로서 같이 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변선영_home & house_혼합재료_19×24cm_2002

다른 한편 집은 존재와 부재의 공간이기도 하다. 집 한구석에 놓여있는 고무신이 누군가의 존재를 말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자체가 어떤 '부재'와도 같은 의미로 읽힌다. 사람이 있되 사람이 없는, 가족이라는 존재로 있되 진정한 자아와 자신이 결여되어 있는 그런 의미가 와 닿는다. 때로 집은 작가의 마음과 환경을 담기도 한다. 집 주변으로 바람이 불기도 하고, 그 바람결 따라 스산함과 서늘함, 쓸쓸함이 서려있는 표정이 발견된다. 그런 분위기는 다시 대형 설치작업에서 이어진다. 가로 220cm에 세로 90cm의 바닥에 핑크빛 깃털이 가득하게 널려있고, 가운데는 침봉이 위협적으로 놓여있으며, 그 위로 190cm 규모의 분홍빛 풍선으로 만들어진 집이 붕 떠있다. 풍선으로 만들어진 집은 깃털의 힘을 받아 날아갈 것 같기도 하고, 반대로 침봉 위로 떨어져 그만 터져 버리고 말 것같은 위기감이 공존한다. 덧없음과 허망함, 그러나 그 뒤로 가볍고 떠다닐 수 있는 자유로움의 의지가 희미하게 새겨져 있음을 본다. 유랑하는 집과 떠도는 몸, 그것이 목표하는 바가 무엇일까 누구나 생각해 볼 일이다. 그 정처없는 부유감 속에서 무엇을 찾으려는지, 어떤 의미를 찾을 것인지... ■ 박신의

Vol.20020817a | 변선영展 / BYUNSUNYOUNG / 卞善映 / painting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