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일시_2002_0821_수요일_05:00pm
갤러리 창 서울 종로구 관훈동 106번지 창조빌딩 Tel. 02_736_2500
알레르기 ● 여러분도 짐작하겠지만 이번 전시에서 다뤄지는 작업은 신체의 알레르기Allergy로 나타나는 한 개인의 삶과 정신의 알레고리이다. ● 광범위한 임상적 관찰을 기초로 신체의 이색작용(異色作用)인 알레르기 개념이 도입되었다면 작가는 자신의 의식관찰에 기초한 일종의 마음의 알레고리Allegory로 알레르기를 도입한다. 알레르기는 누구나 가지고 있는 신체-콤플렉스이다. 특정 물질과 사건에 접촉하였을 때 신체에 나타나는 이상증세와 특이체질 현상을 가리킨다. 이러한 임상의학에서 사용하는 알레르기를 작가는 문화적 혹은 실존적 의식의 맥락으로 도입한다. 여기서 신체에 나타나는 알레르기는 하나의 상징이 된다.
작가는 1991년부터 알레르기와 신체를 다뤄왔다. 붉은 기운이 감도는 분홍색의 살과 뚝뚝 떨어지는 물감덩어리로 피와 체액을 표현했다. 1993년에는 붉고 푸른 반점이 온 몸에 퍼진 신체를 평면과 입체로 표현하기도 했다. 작가 자신의 피부에 나타나는 알레르기 증세를 사진으로 나타내기도 하였고, 금색과 은색의 번쩍이는 마네킹의 표면에 나타나는 반점들을 표현하기도 하였다. 이는 한때 현대문명을 강타한 AIDS충격을 염두한 것 같은데, 작가는 알레르기가 나타나는 혹은 잠재하고 있는 신체를 그림으로써 정신과 마음의 문제를 생각하려한다고 말한다. 욕망이 요동하는 육체와 정신의 공황을 그린다는 것이다.
이번 전시에서 금색그물로 싼 평면화와 반복적으로 명멸하는 조명을 사용했다. 조명의 켜짐과 꺼짐의 반복은 시간의 단속적 흐름을 나타내거나 또는 의식과 무의식을 가리킨다. 밝음과 어둠에 드러나고 다시 암전에 빠지는 외부로 노출된 속살과 지방, 혈관, 체액, 찢겨진 골격... 외부로부터 주입된 사건이나 운동에 의해 내적인 시간과 심리가 흐른다.
또는 알레고리 ● 실제 다루고자 하는 주제나 추상적 개념을 언급하지 않고 전혀 다른 구체적인 대상을 이용하여 표현하는 일반적인 알레고리형식은 대상의 유형화와 의인화 형태로서 나타난다. 그러나 알레고리는 지나치게 유형적이며 교훈적인 까닭에 관객의 입장에서 볼 때 그 해석의 여지가 매우 제한적이고 닫혀있다는 단점이 있다. ● 작가는 이러한 제한적 해석의 단점에도 불구하고 알레고리 형식을 도입해 알레르기라는 병적 징후로서 현실을 살아가는 개인의 내적 의식과 심리를 표현한다. 표현의 형식은 궁극적으로 주관적이며 개인적인 차원으로 귀결한다. 따라서 보다 다른 차원 이해와 감상은 관객의 몫이 된다.
작품은 일관되게 작가의 개인적 체험과 작가와 사회의 관계를 간접적인 체험의 형태로 나타낸다. 작가는 무엇보다 작품창작에 집중하지만 관객은 제3자로서 감정이입이라는 구태를 벗어나서는 새로운 경험과 이해의 세계로 도약하고자 한다. 이는 관객에게 작품이 어디까지나 의식과 사유운동의 출발점으로서만 기능한다는 것이다.
나는 이번 전시에서 다른 무엇보다도 명멸하는 조명으로 인해 나타나고 사라지는 신체와 신체그림을 단지 욕망이나 정신이나 마음의 그릇 혹은 집으로서만이 아니라 작품과 작가의 실존적 관계를 회고하는 사유와 감상을 위한 하나의 분위기로서 체험하길 권하고 싶다. ● 파헤쳐진 신체는 유동하는 시간이 머무는 장소이며 일그러진 살과 뼈는 우리의 마음이나 영혼의 알레고리다. ■ 김기용
Vol.20020816a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