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작가 김남수_김영길_김준영_허정호_이주형 유현민_정세영_최강일_홍일
갤러리 룩스 서울 종로구 관훈동 185번지 인덕빌딩 3층 Tel. 02_720_8488 www.gallerylux.net
길은 왜 그런 표정을 지을까 ● 길이란 순탄할수록 환대 받는 이차원의 세계다. 길이라는 게 어디 좀 가자고 낸 것이니 만큼 그 환대를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누가 뭐라 하든 길은 반듯해서 빠르고, 편평해서 편안해야 좋지 않은가.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통행료를 감수하면서도 너나 없이 다니기 좋은 길로 몰려든다. 하지만 누군가 "그 국도(國道), 참 아름다웠어!"라며 감탄했다 치자. 딱히 아스팔트의 아름다움을 뜻한 경우가 아니었다면 그가 말한 길은 사람이며 차가 오가는 단순한 이차원 평면 이상의 것을 의미한다. 그가 길가 풍경의 아름다움을 말하고 싶었던 것이라면 우리도 어렵지 않게 알아들었을 테니 말이다. 그러나 곰곰 생각해 보면 그 찬사는 '길은 좋지 않은데 길은 좋더라'는 모순된 말장난처럼 들린다. 이런 문장을 그냥 둬도 괜찮은가.
모든 길은 (통로 구실을 하느라 정신없는 메트로폴리스의 길마저도) 우리에게 표정을 짓는다. 그래서 어떤 길은 사람들이 더 느리게 지나 주길 바라고, 머물게도 하며, 뒤를 돌아보게도 한다. 길은 주변을 하나하나 끌어들여 자신의 부속으로 만들고 함께 호흡한다. 요컨대 우리가 '다니는 곳'은 길이라는 평면이지만 '보는 것'은 경계 짓기 어렵고 끊임이 없는, 길이라는 공간인 것이다.(그런 의미에서 이 전시의 이름을 정확하고 멋없게 고친다면 '길 안에서'쯤이 되지 않을까.) 이처럼 길은 그 내포가 크고, 또 물리적인 것에 그치지 않기 때문에 때때로 인생을 은유하기도 하고, 흔히 추상 명사가 되기도 한다. 그러니 앞의 모순은 그냥 두더라도 오해를 사진 않을 것 같다.
사진가란 도로공사 직원도, 교통방송 리포터도 아니기 때문에 노면 사정이나 시내 교통 상황을 염두에 두지는 않는다. 사진가가 담고자 하는 것은, 무어든 사연을 가지고 그 '공간'을 오갔을 사람들의 체취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저 이름난 66번 국도가 전하는 집단적인 애환까지는 아니라 해도 모든 길은 사연과 체취로 뒤덮여 있다. 이를테면 흙먼지 날리는 비포장 도로는 자동차보다 사람을 이야기하며, 흔적뿐인 잡초 속의 들길은 과거의 시간을 이야기한다. 그런가 하면 팝콘 같은 왁자함, 죽음 같은 고요를 하룻밤새 보여 주는 서울의 8차선 도로는 도시와 문명의 사연이 어떤 종류인가를 드러내기도 한다. 자고로 길은 불도저가 아니라 그런 사연들이 내 왔다. ■ 김승현
Vol.20020814a | 다시, 길위에서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