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인미술관 서울 종로구 관훈동 30-1번지 Tel. 02_733_4448
작은 고라니의 몸통에 자라는 잡풀들은 모양새가 낯설다. 물오리나 멧돼지의 몸에 뿌리내린 야생화를 대하더라도 낯설기는 마찬가지이다. 동물과 식물이 일체가 되는 형상은 꿈이라면 악몽일 것이요 현실이라면 초현실의 영역에 속해 있을 법하다. 양태근의 최근작업이 보여주는 새로움은 이렇듯 흙을 입힌 플라스틱 오브제의 설치를 통해 낯선 상황을 연출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머리나 꼬리 부분을 절단해 화분처럼 쓰인 작은 동물 오브제와 그 위에 자라는 식물을 바라볼 때의 낯섬은 그의 작업을 대하면서 겪게되는 특이한 감정이다.
관객에 있어 양태근의 낯섬은 사실 순간적 체험이다. 우리의 눈은 생리적으로 낯선 상황에 동화되어 곧 익숙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른 시각에서 보면 익숙해짐은 작가의 동물 오브제가 예술적 방법으로 연출된 작품임을 깨닫는 순간에 일어난다. 과장된 분장을 한 연극배우를 대할 때처럼 상징적 코드로의 의미전환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잡풀을 배양하는 야생동물의 몸은 하나의 기호로 인식되고 이질적인 것들이 교합(交合)은 흥미로운 해석의 대상으로 수용되는 것이다. '수술대 위에서 우산과 재봉틀이 만남'이라는 로트레아몽의 싯귀처럼 우리의 의식은 대립적인 것의 충돌을 통해 제3의 의미를 생산하게 된다.
양태근의 작은 동물 오브제들이 지시하는 상징적 의미란 무엇인가? 이에 대한 해답은 정해져 있지 않으며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만이 존재한다. 잡풀에 초점을 맞추어 볼 때 동물의 몸은 무엇보다도 생명을 담아 내거나 보호하는 그릇이다. 동물은 물오리나 멧돼지의 형상을 하고 있으나 동시에 한줌의 흙으로 채워진 화분인 것이다. 그것의 비어있는 내부는 씨앗을 받아드리고 성장시키는 자궁의 역할을 맡고 있다. 나아가 양태근의 동물 오브제는 생명의 안식처인 터를 상징하며 궁극적으로는 모태성징(母胎性徵)으로서 대자연과 연결된다. ● 생명을 담아내는 터로서 동물 오브제는 주변에 펼쳐진 뿌리와 관계함으로서 좀더 복잡한 의미를 지니게 된다. 뿌리가 강인한 생명의 상징이자 자연인 흙으로부터 에너지를 흡수하기 위한 사물이듯 뿌리와 연계된 동물 이미지는 다시 한번 야생의 끈질긴 생명력으로 무장된다. 자신의 몸 속에 자리잡은 실재 잡풀의 뿌리는 작가에 의해 철근 용접으로 꾸며진 가상적 뿌리 이미지와 결합하여 그 힘이 오버랩 되는 것이다.
양태근의 뿌리는 이번 개인전에 중심 주제를 이루고 있다. 아마도 작가는 자신이 몰두해 있는 생명현상의 근원으로 이 주제를 인식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그의 뿌리는 땅속에서 벗어나 지상을 뒤덮듯이 표현되어 있거나 공중에 매달린 채 줄기를 아래로 드리우고 있어 여전히 낯설다. 때로는 공간을 향해 위로 뻗어있는 형상을 취하기도 한다. 그것들의 중심에는 무쇠 주물로 캐스팅 해낸 나무둥치가 구심점을 이루며 아래로 잔가지들을 펼치고 있어 연체동물의 모습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 실재로 뿌리의 형상과 가지의 형상은 나무둥치를 사이에 두고 아령(啞鈴)처럼 대칭형을 이루고 있다. 나무는 두 개의 영역인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신비한 생명체이다. 나무 가지는 공중을 향해 자라며 나무 뿌리는 흙 속에서 세력을 펼치고 있다. 온전하게 자란 뿌리는 하늘을 향해 뒤집어 놓으면 그대로 나뭇가지처럼 보인다. 그러나 위치의 전도는 자연의 순리를 거스르므로 위기 혹은 죽음을 나타낸다. 이러한 것들은 양태근의 뿌리연작 작업을 이해하는 하나의 중요한 단서가 된다. 상황을 역전시키는 방식은 세계를 해석하는 작가의 자유로운 상상력과 조형관에서 온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이번 개인전에 소개된 그의 철근 용접의 뿌리들은 대개의 경우 공중에 떠 있거나 지면에 펼쳐져 있는 형상을 하고 있다. 작가는 이 상황에 대해 지하의 뿌리를 흙을 제거한 상태로 표현한 것이라 말한다. 그런데 그것은 각각 하나의 오브제들을 끌어안은 듯 매달고 있어 파노라마를 이룬다. 의자, 냉장고, 개스 스토브, 괘종시계, 유제 상자, 자전거 바퀴 등이 뿌리에 의해 관통되어 있다. 이러한 방식은 그의 뿌리연작으로는 새로운 유형의 작업으로 보인다. 낯선 상황이 여전히 그의 작품을 지배하고 있다. 하지만 연출된 뿌리는 일상적 오브제들의 기능과 의미를 새롭게 전환시킨다. ● 관객들에게 의자가 권력의 기호로 읽힌다면 냉장고와 스토브는 현대적 삶의 상징이며, 정지된 괘종시계는 시간과 역사를 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공업용 유제 상자와 바퀴는 문명 또는 노동을 은유하는 소재로 해석될 수 있을 것이다. 오브제와 그것의 의미는 이렇듯 연출된 상황에 따라 다양한 상징성을 지니게 된다. 양태근의 오브제는 뿌리라는 매체의 도움으로 그것들이 원래 지니고 있던 의미들을 다른 것으로 뒤바꾸어 놓고 있다. 장소의 변화가 의미의 변화를 유도하는 방법론은 미술사에서 일관되게 사용되어온 기법이라 할 수 있다.
이상과 같이 양태근의 설치작업은 기존의 규범과 논리로부터 자유롭다는 점에서 초현실주의 혹은 상징주의와 연계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의 작업태도의 중심에는 리얼리스트의 의식이 견고히 자리잡고 있다는 것이다. 그간의 발자취를 보면 자신이 체험한 삶과 일상에 대한 성찰의 흔적이 작품에 일관되게 녹아 흐르고 있다. 자연 속에 살면서 생명의 근원과 삶의 뿌리를 이루는 환경, 생태의 문제들에 관심을 보이고, 사회적 현실을 비판적 시각으로 검증해 왔음을 알 수 있다. ● 이러한 점들은 저급함과 가벼움, 유희, 무정부주의, 방황, 실종 등의 창작개념으로 얼룩져 중심을 상실하고 있는 현대미술의 현장에 하나의 돌파구를 제공한다. 개념 숭배의 미학뿐만 아니라 혼성과 잡종으로 포장된 포스트모더니즘의 미명을 넘어서 리얼리스트의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양태근은 이 시대가 안고있는 표준의 부재 현상을 극복하고 새로운 미학적 가치를 추구하는 작가의 한사람으로 생각된다. 그 동안 작가가 추구해온 삶의 원형적 공간으로서 「터」 연작이나 최근에 보여주는 생명의 근원으로서 「뿌리」와 「동물」 연작 그리고 환경의 문제를 표현한 「산업 오브제」 연작들은 이러한 사실을 뒷받침 해 준다.
현대의 리얼리스트로서 양태근의 설치작업은 개성적이면서도 현대조각의 다양한 실험적 성과들을 동시에 수용하고 있다. 자연 오브제로서 잡풀과 나무둥치 그리고 바위나 돌을 다루는 그의 조형능력은 이미 국내의 평론가들 사이에 높이 평가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무쇠 캐스팅과 철골 용접에서 할로겐 조명과 영상 프로젝션 등을 망라하는 그의 설치작업의 경험은 작가로서 그가 지닌 본능적 감각과 더불어 새로운 세계를 향해 있다. ■ 김영호
Vol.20020812a | 양태근展 / YANGTAEGEUN / 梁太根 / sculptu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