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달진미술연구소 서울 종로구 평창동 465-5번지 Tel. 02_3217_6214
나의 발언_서울시립미술관은 정말로 개관했는가? ● 30여년간 서울고등학교 교사로 사용되어왔던 곳이며 조선시대의 경희궁터였던 자리에 1988년 8월에 문을 연 서울시립미술관은 미술관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부족한 모습으로 10년을 넘게 운영되어왔다. 몇 년전까지만 해도 거기에는 관장도 없었고 큐레이터도 없었으며 미술관(이라고 불리는 기관)의 성격과 비젼을 제시해줄 소장품도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았다. 예전의 학교 교실 창문을 막고 조명을 설치한 다음 약간의 변형을 더하여 이것이 전시시설을 갖춘 미술관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 이렇게 설립된 서울시립미술관은 서울시의 부서별 소관업무표에 의하면 문화관광국 문화과에서 '운영 지도ㆍ감독 및 등록에 관한 사항'을 관장하며 운영되어 왔다. 이러한 출발에는 행정관료들이나 행정 공무원들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갖고있는 미술관이나 박물관에 관한 문화의식이 잘 드러나 있다. 가시적 성과, 계량적 수치 등에 익숙한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건물과 행정 중심으로 적당히 돌아가는 체제가 마련되고 이를 잘 '지도, 감독'하면 대부분의 일이 잘 풀려나갈 것으로 보고 있다. ● 그런데 얼마전에 옛 대법원 건물 자리에 번듯한(?) 건물을 지어 이사해 놓고 개막식 행사까지 치루어 놓았으니 이제 그들의 기준으로 보면 서울시립미술관 건립사업은 '완성'을 본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실은 이제부터 시작인 셈이다. 지난 5월 공식적으로 이전 개관한 미술관의 모습을 자세히 살펴보면 염려스러운 점이 많다. 우선 건물의 규모에 맞는 소장품이 있는지, 소장품과 관련된 전문적인 연구와 전시 활동을 할 수 있는 큐레이터들이 제대로 확보되어 있는지 궁금하다. 게다가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행정 절차나 전문 영역에 관한 적절한 의사결정 방식 등이 제대로 도입되고 있는지도 의문이다. ● 외국의 사례를 들어 이야기를 하면, 우리는 그들과 다르다며 거부감을 보이는 사람들이 많겠지만, 외국이라기보다는 미술관 설립과 운영에 있어서 선배 역할을 했던 기관으로서의 선진국 미술관을 간단하게 살펴보자. ● 외국의 미술관은 공,사립을 막론하고 대부분의 경우 전문가와 협조적인 재력가로 구성된 이사회에서 중요한 사항을 결정한다. 그리고 이렇게 결정된 사항의 세부적인 집행은 관장에게 일임된다. 서울시립미술관의 경우 운영자문위원회라는 기구를 두고 있지만 자문과 이사회의 결정은 다르며 의사결정에 적극적으로 반영되지 않는 형식적인 자문이라면 이 기구는 눈속임일 뿐이다. 그리고 관장이 행정적 간섭이나 견제 없이 소신껏 일을 집행하고 거기에 따르는 결과에 책임을 지면 된다. ● 다음으로 큐레이터에 대해서 말하자면 마치 축구시합은 축구를 잘하는 사람이 중심이 되는 것처럼 미술관은 미술을 잘 아는 사람이 주도권을 가지고 운영하는 것이 당연하다. 축구장을 잘 짓거나 체육행정 사무직원들이 앞에 나선다고 우승하는 것이 아니며, 선수들이 제대로 연습하고 경기할 수 있도록 행정적으로 뒷받침해주는 것이 승리의 조건인 것처럼 큐레이터가 마음껏 연구하고 전시를 기획할 수 있도록 행정적으로 뒷받침 하는 것이 미술관의 성공의 첫째 조건인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제대로 자격을 갖춘 유능한 큐레이터의 경우라는 단서가 붙는다. ● 마지막으로 소장품에 관해서 말하자면 소장품을 제대로 갖추어 놓지 않고 출발하는 미술관은 마치 제대로 된 운동복과 축구공이나 축구화 없이 선수들에게 시합을 하라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리고 충분한 예산을 확보하지 않고 섣부른 기증이나 기부에만 의존한다면 몸에 맞지 않는 옷과 신발, 그리고 질나쁜 축구공을 선수들에게 제공하는 격일 수도 있다. ● 지난번 학예직 시험에서 미술이론 전공자들이 제외되어 논란을 일으켰고, 곧 새로 채용된 큐레이터 4명이 일을 시작한다. 지난 5월 서울시립미술관은 새건물로 이전 개관했다. 그러나 그것은 행정적인 개관일 뿐이다. 진정한 의미에서 서울시립미술관은 이제부터 개관을 준비하는 셈인 것이다. ● 앞에서 축구에 비유한 것처럼 관중들은 축구장 시설을 보러 경기장에 오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진행 요원과 행정직원들이 나서서 선수들에게 지나치게 간섭하려 든다면 관중들은 눈살을 찌푸릴 것이다. 꼭 외국처럼이라기 보다는 상식적인 차원에서 미술관 운영의 합리화를 기대하고 빠른 시일 안에 서울시립미술관 이 진정으로 '개관'되기를 바라면서 애정을 가지고 지켜본다. ■ 하계훈
나의 발언_'문화적 퍼포먼스'로서의 월드컵 축제 ● 4천 5백만 국민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준 월드컵 축제도 끝났다. 아쉽게도 독일에게 패함으로써 결승 진출의 꿈은 무산되었지만, 전국 방방곡곡의 거리와 광장, 공원에서 펼쳐진 우리의 성숙한 응원 문화는 전 세계인들에게 감동을 안겨주기에 충분했다. 지연, 혈연, 학연 등 그동안 우리 사회 곳곳에 만연됐던 온갖 부정적 요소는 '대∼한민국', '오∼필승 코리아!'라는 우렁찬 구호 소리와 함께 깨끗이 씻겨나갔다. 드넓은 거리와 광장을 가득 메운 750만 '붉은 악마'의 응원 모습은 우리 민족이 일찍이 경험해 보지 못한 감동의 물결이었고, 환희의 절정이었다. 그것은 하나의 장엄한 퍼포먼스였다. ● 우리가 언제 이처럼 진정한 해방의 기쁨을 맛본 적이 있었던가. 툭하면 반공구호가 적힌 플래카드를 들고 광장에 집결해야만 했던 경험이 있는 40대 이상의 국민들은 보기만 해도 섬뜩한 느낌의 붉은 색을 이제 새로운 감회로 바라볼 것이다. 우리에게는 붉은 색 물감으로 그린 그림이 북한을 연상시킨다는 단 하나의 이유로 국전에서 낙선을 해야했던 어처구니없는 시절도 있었고, 심지어는 가르마도 왼쪽으로 타는 것을 금기시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에 비하면 지금 우리의 눈앞에서 벌어지는 이 발랄하고 생동감 넘치는 거리 응원전의 모습은 하나의 새로운 의식 혁명임에 분명하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물결이 자발적인 참여에 의한 것이라는 점이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고 그 누구의 강요에 의한 것도 아닌, 스스로의 열정에 의한 참여인 것이다. 현대예술의 용어를 빌면 '관객참여(audience participation)'인 셈이다. ● '붉은 악마'의 응원 장면을 항공 촬영한 사진을 보면 온통 거리에 붉은 물감을 풀어놓은 것처럼 붉은 색 일색으로 보인다. 그러나 인파 속을 헤집고 들어가 보면 거기에는 우리 국민들의 무한한 창조력이 숨겨져 있음을 알 수 있다. 붉은 색과 태극기를 소재로 다양한 독창적 아이디어들이 무명의 예술가들(?)에 의해 표출되고 있다. 보디 페인팅에서부터 가면, 의상, 응원용 소도구에 이르기까지 거기에는 미술이 있고, 연극이 있으며, 음악(난타)이 있고, 무용이 있다. 이 모두를 총칭하여 하나의 거대한 퍼포먼스라고 부르자. ● 정규 미술시간이나 음악시간에는 발휘되지 못했던 기발한 예술적 아이디어가 이 해방의 축제를 통해 마음껏 발산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이보다 더 훌륭한 예능 실습의 현장을 본 적이 없다. 암울했던 70년대의 군사독재 시절에 태극기는 외경의 대상이었다. 그 무렵 국기강하식을 알리는 음악소리가 거리에 울려 퍼지면 아무리 바쁜 사람도 가던 길을 멈추고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해야만 했다. 당시 길거리에 즐비하게 늘어선 사람들은 가슴에 손을 얹고 태극기를 바라보며 과연 무엇을 생각하고 있었을까. 혹시 태극기는 가까이에 있었지만,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은 멀리 있었던 게 아니었을까. ● 그런데 보라. 오늘 우리의 밝고 티 없는 신세대들은 태극기를 이용해 만든 멋진 모자와 악세사리, 옷으로 치장하고 거리를 누비고 있지 아니한가? 태극기는 이제 외투처럼 무거운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라, 애완동물처럼 친근한 우리의 벗이 되고 있는 것이다. 억압과 통제의 사슬에서 벗어나 해방과 창조, 승화의 경지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월드컵 축구를 기폭제로 우리 사회에 새로운 의식의 물갈이가 시작되는 첫 신호탄인 셈이다. ● 붉은 악마들이 펼치는 거리 응원전을 하나의 거대한 문화적 퍼포먼스로 간주할 때, 이제 우리 사회가 '집단적 반성'의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음이 자명해졌다. 반성은 개인의 경우 혼자 고독하게 이루어지지만, 집단적인 양상을 띠면 다양한 표현 형식과 기호를 빌리게 된다. 미술, 음악, 무용, 연극 등이 한데 어울려 총체적으로 전개되는 가운데 말 그대로 집단적 퍼포먼스의 형태로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탁월한 인류학자인 빅터 터너(Victor Turner)는 이러한 현상을 가리켜 '문턱성(liminality)'이라는 용어로 불렀다. ● 빅터 터너에 의하면, 리미널(liminal)한 순간은 "잠재력과 가능성이 충만한 상태"이다. 매일의 일상생활을 영위하고 법과 규범을 지키며 살아가는 가운데 꼭 무슨 일이 일어날 것만 같은, 극적이며 광휘에 휩싸인 순간이 바로 '리미널'한 경지인 것이다. 나는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영광되고 축복된 시간이 바로 '리미널'한 순간이 아닌가 하고 생각한다. 정치적 쟁투와 경제적 불황, 이념의 갈등을 초월하여 우리 민족의 희망찬 미래를 열 수 있는 기폭제가 바로 이번의 월드컵 축제인 것이다. 그것은 한 마디로 우리 민족이 보여준 위대한 한판의 '빅 퍼포먼스(big performance)'였다. ■ 윤진섭
이경성 칼럼(8)_백남준님을 아껴드립시다. ● 백남준은 우리나라가 낳은 세계적인 미술가로서 20세기 미술가 몇 명을 꼽아도 끼울 자격이 있는 예술가이다. 그것은 현대예술이 과학화하는 과정에서 가장 구체적으로 비디오라는 매체를 써서 새로운 예술을 창조했기 때문이다. ● 그는 한국사람으로서 자기 자신을 포함해서 한국이 무엇이란 것을 잘 알고 있을 뿐더러 박식한 지식은 세계역사를 잘 알고 있다. 몇 년전 베니스비엔날레에 출품된 작품 속에서 유목 민족인 샤머니즘 흐름을 쫓아 단군과 징기스칸 등을 아울러 다루었다. 오늘날 백남준하면 세계에서 으뜸가는 예술가로서 평가되고 있다. 그러한 백남준을 낳은 한국에서 그를 아끼고 미술관을 세우고 그에 대한 예술가적인 업적을 영원화 시키는 당연하다. 그가 1988년 서울 올림픽 때 제작한 국립현대미술관의 「다다익선」은 백남준의 천재성을 구체화 시킨 예이다. 그 후, 많은 모뉴멘탈한 작품들이 계속적으로 발표되었다. 그리하여 나 자신도 올림픽미술관 관장 재직 당시, 올림픽 기념공원에 백남준기념관을 계획하고 이미 수중에 영상을 반영하는 작품을 만들어서 정기적으로 발표하고 있다. ● 최근 많은 사람들이 백남준에게 달려가서 백남준미술관을 만들 계획중이다. 지금처럼 무원칙대로 백남준의 명예에 끌려서 너도나도 백남준미술관을 세운다면 그의 말대로 다다익선인지도 모르지만 오히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결과를 이른다. 이미 경기도 용인의 한국민속촌에는 미술관이 개관하며 백남준 컬렉션을 선보였고 경기도에서 가까운 장래에 본격적인 미술관을 건립한다는 발표도 있었다. 일부에서는 서울에 백남준미술관을 설립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백남준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작가로서 대우를 받을 만한 존재이다. 그러나 여기서 생각해 볼 것은 과연 이와 같은 백남준 붐이 그에 작품적 가치를 저하시키지 않을까 걱정이다. 더구나 최근에 백남준의 건강이 그리 좋지 않아서 폭주하는 작품의 주문에는 혹시나 작품의 질이 떨어질까 염려스럽다. ● 그에게 있어서 이것은 하나의 기우가 아니고 진정 그를 생각하는 사람은 누구나 다시 생각해 보아야 될 점이다. 너도나도 백남준을 쟁탈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명성에 알맞은 수준 높은 미술관을 짓는 것이 문제이다. ■ 이경성
■ 서울아트가이드 2002년 8월호 주요 내용 이경성칼럼_백남준님을 아껴드립시다. 나의 발언_'문화적 퍼포먼스'로서의 월드컵 축제_윤진섭 나의 발언_서울시립미술관은 정말로 개관했는가?_하계훈 다시 읽기_축구에도 인문정신을_유홍준 8월의 미술소사 미술평론가가 평가한 7월의 전시_김종근_박영택_윤진섭_정준모_최태만 10건 피서지에서 '책이 바다'에 빠져 보자_새로나온 미술서적 16권
2002 상반기 전시회 평가 / 8장르 24건_각 장르 전문가가 3건씩 추천 고미술·박은순_한국화·김상철_서양화·고충환_조각·조은정 공예·장동광_서예·이완우_사진·김승곤_공공미술·김준기
Vol.20020801a | 서울아트가이드 2002년 8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