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테이너 Containers

한국문화예술진흥원 자체기획展   2002_0802 ▶ 2002_0825

최정화_예술중독_FRP_설치_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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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2_0802_금요일_05:00pm

참여작가 김주영_박소영_박이소_안규철_윤진미 정재철_조덕현_조숙진_최정화

책임기획_김혜경_백지숙 어시스턴트_강성은_김형미_안현주

마로니에미술관 서울 종로구 동숭동 1-130번지 Tel. 02_760_4601

또 다른 여행을 준비하는 컨테이너 하역장에서의 단상 ● 시장경제가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오늘날엔 매 순간 막대한 양의 물류가 컨테이너에 담긴 채 세계 각 지역으로 이동한다. 이러한 물류이동은 전파나 여행, 그리고 최근 막강한 위력으로 등장한 정보화 혁명과 더불어 문화교류의 촉진제 역할을 하기도 한다. 21세기가 문화전쟁의 시대가 될 것이라는 진단대로 물류를 통한 다양한 교류는 매우 직접적이고 감각적인 문화체험과 함께 문화변동에도 적극적 영향력을 행사하게 된다.

김주영_바라나시에서 온 물고기_아크릴, 투명수지, 마른 꽃_설치_2002
정재철_무제_나무박스, 오브제_설치_2001

그런데 이처럼 국경이 허물어지고 물류이동이 보편화되면서, 각 문화권의 독특한 개성이 사라지고 미국이나 서구 등 강대국의 문화가 세계를 지배하는 경향이 더욱 빨라지고 있는 현상은 우리가 경계해야 할 세계화의 부작용이다. 사실 거대 자본과 선진 시스템을 갖춘 강대국들에 의한 문화적 공세는 이미 오래 전부터 근대화 기치의 우산 아래 우리에게 무차별적으로 행해져 왔었다. 미술계도 예외는 아니어서 우리의 현대미술사는 서구미술의 새로운 경향들을 앞 뒤 문맥 없이 형식적으로 수용해온 기록들로 가득 차 있을 뿐이다. 그러면서도 우리 미술의 정체성을 찾기 위한 노력은 끊임없이 병행되어왔는데, 전통회귀나 민속적 소재 사용을 통해 이를 해결하려는 초보적 단계의 노력을 거쳐 한국적 정서가 배어나는 형태나 질감, 색감을 강조하는 방식이 한동안 화단을 풍미하기도 했었다. 그런데 이러한 정체성 찾기 노력은 그 의도의 진정성에도 불구하고 자칫 서구인들의 이국 취미에 영합하는 오리엔탈리즘에 빠질 위험을 늘 내포하게 된다. 주체성과 자생성을 상실한 상투적 클리셰의 남발은 우리의 정체성을 찾고 싶어하는 작가들이 언제까지나 경계해야 할 유혹이자 함정이 아닐 수 없다.

조덕현_이서국으로 들어가다_컨테이너, 모니터_설치_2002
조숙진_명상공간Ⅱ(부제: 모든 것이 하나입니다)_버려진 나무_설치_2002

이런 관점에서 보면 세계화의 물결에 저항하며 고개를 치켜들고 있는 최근의 지역주의 양상은 문화의 다양성을 유지시키고자 하는 의미 있는 몸부림으로 해석될 수 있다. 물론 우리의 시스템이 이미 이러한 지역주의만으로는 살아갈 수 없는 지구촌 시대의 한 톱니바퀴로서 충실히 작동되고 있음을 간과할 순 없을 것이다. 이해와 관용이 더욱 요구되는 문화적 충돌의 시대에, 우리가 찾아야 할 미덕은 결국 세계화의 추세 속에서도 지역적 아이덴티티를 적극 추구하는 소위 글로칼리즘(glocalism)에 있다고 생각된다. 또 우리의 현대미술사가 수입과 수용의 일방적 역사였다면 이젠 수출과 상호침투라는 쌍방적 지평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어떻게 내보낼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미술행정가들의 몫이겠지만, 무엇을 만들어 낼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역시 작가들의 몫이다. 인천과 부산항엔 지금도 무수한 컨테이너들이 하역을 기다리고 있다.

박소영_조각의 껍질_클리어 필름, 유리_설치_2002
윤진미_Welcome Stranger Welcome Home_비디오 영상설치_2002

이 전시 시리즈는 한국현대미술의 허리 세대를 겨냥한 기획으로 작년부터 시행되고 있는데, 올해의 경우 세계적 보편언어와 지역적 정체성을 아우른 작업들 가운데에서도 특히 '유목'과 '이산'이라는 화두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전시의 주제인 동시에 전시제목인 '컨테이너'는 형태적 측면과 내용적 측면 모두를 통해 그 의미가 확산된다. 작품 경향들을 보면 담는 용기로서의 형태성이 강조된 경우와 확산된 의미로서의 컨테이너에 담겨진 컨텐츠 자체가 강조된 경우, 또 협의의 컨테이너가 지닌 기능성이 강조된 경우로 크게 나뉘게 된다. '컨테이너'라는 주제어가 상징하는 행위 역시 대략 세 가지 과정으로 압축된다.

안규철_움직이는 산_목재, 천, 철, 시멘트, 석고_설치_2002

첫째, 컨테이너의 기본적 기능은 '담기'로부터 시작된다. 초대되는 작가들은 모두 자기 세계가 어느 정도 확립된 중견작가들이다. 이들의 독자적 세계는 각각의 독특한 컨테이너에 담겨 표출되는데, 여기서의 컨테이너는 서술적 의미로서의 '용기(容器)' 자체인 동시에 의미론적으로 확대된 일종의 형식, 또는 미적 틀을 의미한다. ● 둘째, 내용물로 채워진 컨테이너는 결국 어디론가 이동하게 되는데, 이러한 '옮기기' 작업은 컨테이너의 존재이유를 드러내는 동시에 그것의 상징적 의미를 증폭시킨다. 틀에 박힌 생활에 안주하기보다 늘 새로운 경험과 만남을 위해 자신을 개방하며 국경과 문화를 가로지르는 예술가의 삶에서 '옮기는' 행위는 자동적으로 수반되게 마련이다. 안주와 정착을 거부하고 새로운 목초지를 찾아 언제나 떠날 준비가 되어있는 21세기 유목민으로서의 예술가… 이들의 정체성은 단순히 국내외 경계를 넘나들며 활동한다는 물리적 조건보다는 이러한 개방적 태도가 드러나는 작가적 행위, 곧 작업을 통해 비로소 확보된다.

박이소_무제_철재, 콘크리트_설치_2002

끝으로, 안에 담긴 내용물들을 풀어서 내려놓는 '부리기' 과정을 통해 컨테이너의 긴 여정은 일단락 된다. 이 '부리기'는 낯선 땅에서의 뿌리내리기 작업과도 상통하며 이민과 같은 현대의 디아스포라(離散)를 상징하기도 한다. 특히 해외거주 한인작가들이 좀처럼 내려놓지 못하는 이방인으로서의 고뇌와 자기정체성 탐구가 이 지점을 통과하며 이들로 하여금 또 다른 컨테이너를 준비하게 한다. ■ 김혜경

Vol.20020731a | 컨테이너展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