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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_0719_금요일_02:00pm~06:00pm
미술을 위한 미디어인프라로서의 인터넷 네트워크의 발전방향에 대하여_사례와 제안
발제_이상윤(블라인드사운드)_최금수(네오룩)_김유숙(오픈아트) 질의_이영철, 김찬동 사회_유진상
일주아트하우스 14층 세미나실 서울 종로구 신문로 1가 226번지 흥국생명빌딩 내 Tel. 02_2002_7777
이 세미나는 '리얼_인터페이스 : 눈을 가로질러 헤엄치기' 전의 일환으로 이 전시에서 주된 전시방식으로 활용된 mediaart.org에서 구현한 인터넷 기반의 단채널 비디오 상영과 그것의 아카이브화에서 드러난 네트워크 상의 미디어인프라라는 개념과 관련해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 미디어인프라는 인터넷을 주어진 하부구조로 이해하고 그것을 어떻게 미술창작의 구조 속에서 활용할 것인가를 따질 때에 적용할 수 있는 개념입니다. 그것은 이제까지의 정보검색 및 오락, 상업적 목적의 기반시설로서의 인터넷 네트워크를 미술의 전시, 창작, 감상, 양방향 등의 차원으로 이끌어내는 방식에 대한 고려를 요구합니다. 즉 미술 미디어인프라로서의 구조들이 인터넷 사이트라는 지점들을 중심으로 서로 연계되어 활용될 때 어떻게 그 효용성을 제고하면서 의미있는 건축으로 발전할 수 있는지 보다 심도있게 살펴보아야 하겠다는 것입니다. ● 이와 관련해서는 이제부터라도 인터넷 네트워크 및 아카이브에 대한 생각을 보다 구체적으로 교환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그것이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할 글로벌/로컬에서의 형식적 수준과 질, 노력의 정도, 그리고 공공분야에서의 정책적 협조가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는지에 대한 공동의 이해도 따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그래서 여기서는 우선, 이제까지 인터넷 사이트를 최소한의 하부구조로서 다루어 온 세 개의 거점 즉, Blindsound.com, Neolook.com, 그리고 Openart.net을 중심으로 논의를 시작해 보려고 합니다. 이 세 개의 사이트는 실제로 미디어인프라라는 형태로 만들어진 많은 사이트들 가운데 실질적으로 작동하고 활용도를 증명한 몇 개의 사이트들 중 대표적인 것들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사이트들의 사례와 대안적 방향에 대한 의견을 들어보고 논의를 이끌어내보려고 하는 것입니다. 아래글은『아트인컬쳐』2002년 7월호에 실린글 입니다. 참조바랍니다.
전시형식과 미디어 인터페이스 ● 예술작품의 전시란 그것의 소비를 의미하는 것이면서 또한 그 소비형식을 결정하는 것이기도 하다. 전시형식에 대한 연구는 어떻게 보다 더 창작의 내용을 더 잘 보급하면서 그 효과를 제고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 이루어지게 된다. 그리고 이를 위해 오늘날에는 기술환경의 도움을 청하는 전시들이 늘어가고 있다. 수많은 전시들이 미디어를 동시대미술의 비평적 지평 안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노력해 왔다. 1995년의 2회 '리용 비엔날레'로부터 제10회 도큐멘타, 2001년의 '베니스 비엔날레', '요코하마 트리엔날레', 그리고 한국에서는 1998년의 '도시와 영상' 전과 2000년부터 열린 '미디어시티' 등에 이르기까지 많은 전시들에서 비디오-컴퓨터-인터넷 환경을 창작의 도구로서 해석하고 재해석하는 시도를 거듭하고 있다. 특히 '미디어시티2000'은 많은 예산을 들여 새로운 기술환경을 동시대미술의 창작 및 전시의 장으로 이끌어낸다고 하는 야심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많은 미디어 기반의 전시들이 비디오와 컴퓨터를 바탕으로 한 별개의 작품들을 보여줄 뿐 실질적으로 그것들이 창작과 사고의 환경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를 이해하도록 하는 데에는 충분한 영감을 주지 못하고 있다. 그 이유는 기술적 측면만이 유난히 부각된 미디어 기반의 예술작품 전시란 그 자체로선 수명이 짧은 '가제트'(gadget : 기발한 물건)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기술적 제시와 창작조건의 통합 사이에서 어느 쪽도 만족시킬 수 없는 이중구속의 양상은 이러한 테마가 얼마나 명확한 사고를 요구하는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여기에 덧붙여, 대부분의 미디어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거대예산의 전시들이 미디어 기술환경과 창작조건의 연계를 어떻게 이루어낼 것인가에 대한 규명에 다가서지 못하고 있는 것을 자주 볼 수 있다. 그것들은 특히 더욱 더 중요성을 더해가는 네트워크와 아카이브에 관심을 보이지 않음으로써 미디어 인프라에는 아무런 기여를 못한 채 소모성 축제가 되어가고 있다. 대규모 미디어 전시보다는 오히려 개인이나 소규모의 독립적인 기관들이 장기적으로 미술의 생산과 유통, 소비에 기여를 할 수 있을 미디어 인프라로서 활약하고 있는 것을 본다. 특히 인터넷 상에서의 활동이 두드러진데 그 가운데 Blindsound.com, Neolook.com, Openart.co.kr 등은 국내에서 컴퓨터-인터넷 기반의 동시대미술 환경을 개척해나가고 있는 많지 않은 거점들 가운데 대표적인 것들이다. Blindsound.com이 96년부터 끊임없이 인터넷 구조 안에서의 창의적 표현가능성들을 모색하고 그에 관한 정보들을 분류해왔다면 Neolook은 전시와 창작 아카이브로서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현재 대부분의 전시홍보와 관련 정보의 검색은 Neolook.com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Openart.co.kr은 국내외 미술 최신정보, 자료실, 비평검색 등의 기능을 자율적으로 구축해 거의 실시간대의 뉴스 캐스팅과 아카이브를 추구하고 있다. 이러한 다양하고 주도적인 시도들은 동일한 동시대적 윤리성, 즉 창의적 미술에 대한 공공의 항시적이고 용이한 접근을 향상시키고자 한다는 의지를 보여준다. 이러한 측면들은 미디어와 기술환경을 테마로 하는 많은 전시와 기획들이 더 이상 한정된 전시기간과 전시장이라고 하는 틀 안에서만 사고할 수 없다는 것을 반증하기도 한다.
미디어나 매체라고 하는 말 자체는 정보나 메시지를 중간에서 전달하는 '매개질'(媒介質) 또는 운반자(vehicle)의 의미를 지닌다. 사전적으로 medium 은 중간영역, 또는 '환경'의 의미도 포함하고 있다. 과학기술의 차원에서 '미디어'란 모든 종류의 정보를 매개할 수 있는 탐구 가능한 대상 전체를 일컫지만, 미술의 맥락에서는 전통적으로 표현의 수단으로서의 재료를 의미하고 있다. 그러므로 미술의 전통적인 관념에 입각해 왜 '미디어'를 다뤄야하는지에 대해 질문하는 것은 그것을 창작에 어떻게 이용할 수 있는가 라는 내용 정도의 질문인 셈이다. 즉 그것은 '매체'라는 말이 함축하고 있는 기술적 도구환경의 매개적 측면에 대해 어떤 생각을 지니고 있는가를 물어보는 것은 아니다. 창의적인 전시가 고려해야 하는 것은 당연히 후자의 경우이다 창의적인 동시대미술 전시에서 미디어를 다룬다고 하는 것은 다음 몇 가지 조건들에 대한 명확한 이해를 요구한다. 그 첫 번째 조건은 '동시대미술'이 무엇인가에 대한 것이다. 두 번째는 미술과 관련해 '미디어'의 위상이 무엇인지를 알아보는 것이며, 세 번째는 현재의 기술도구 및 기술적 도구환경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규명하는 것이다. 미디어를 통합적으로 다루는 '동시대미술' 전시는 반드시 이 세 가지 조건들을 어떻게 충족시키는지 보여주어야 한다.
첫 번째 조건인 '동시대미술'의 해석이란, 전시가 기술적 조건들에 구애됨이 없이 창작 및 비평의 논점들을 어떻게 다루고 있는가에 대한 것이다. 이 논점들을 구분하는 일은 또 다른 기나 긴 글을 필요로 할 것이지만, 그 핵심은 다음과 같은 말로 요약된다 : 미술이 아카데미즘을 넘어 어떻게 창의적 사유, 감성 또는 태도를 통해 동시대성을 보여주는가? 물론 이러한 창의적 사유와 감성적 태도는 평면적, 도식적으로 제시될 수 없다는 점에서 그리고 항상 창작과의 상호 위치설정에 의해서만 정당화될 수 있다는 점에서 모험의 형태를 띤다. 그러므로 창의적 전시형식이란 '아름다움'에 대한 반복적이고 고정된 '설명'이나 '예시'가 아닌 '본 것'에 대한 '재해석과 질문 그리고 그것을 가능케 하는 사고와 감수성의 생산'이라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리고 이것이 근대적 '아카데미즘'과 비교하여 발전시켜야 할 동시대미술의 '펀더멘털리즘'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두 번째 조건인, '동시대미술'과의 관계 속에서의 '매체의 위상'이란, 말 그대로 창의적인 동시대미술의 구현을 위해 매체가 어떻게 봉사하는가를 의미한다. 다소 논란의 여지가 있어 보이는 이러한 정의는 여전히 '동시대미술'이 무엇인지에 대한 이해가 선행된다면 (물론 그것은 어떤 것들이 '동시대미술'이 아닌지를 열거해나가는 부정적(否定的) 방법에 의해서만 가능할 것이다) 전혀 새로울 것이 없는 명제이다. 결국 이것은 전시가 무엇을 소비시킬 것인가에 대한 것이다. 기술인가? 아니면 어떤 동시대적 사유 또는 감성인가? 그런데 아무리 창의적인 의도라 하더라도 단지 도구로서만 미술의 형식을 소비하게 하는 것은 동시대미술이라고 할 수 없다. 그것은 미술의 방법을 차용한 탐구의 일환이 될 수는 있으나 결국에는 미술을 수단화할 것이기 때문이다. (예로서, MIT의 '미디어랩'이나 독일이 ZKM에서 공통적으로 추구하고 있듯이 '미술'과 '기술'의 융합을 '산업'이라는 관점에서 다루고 있는 사례를 들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을 동시대미술로 간주할 수는 없다. 물론 이들은 역으로 정부나 기업의 지원, 과학기술의 적극적 응용이 미술창작의 내용와 형식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예술가들은 항상 새로운 기술적 도전 속에서 예기치 못한 사고와 행동의 전개부를 발견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미술의 비-도구적, 비-목적적 존립을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는 조건이 되지는 않는다. 잘 알려진 백남준의 경우를 예로 들자면, 그의 비디오와 관련된 모든 탐구들은 비디오라는 기술적 미디어의 해석을 위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미디어가 사유와 감수성에 어떻게 봉사하는가를 미디어에게 가르치는 것에 가까운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비디오는 백남준으로 하여금 미디어의 기술적 해석이 아닌 전혀 그와는 전혀 다른 창의적 상념으로 유도하는 도구로 작동하였다. 아마도 언젠가는 전시 스스로도 미디어에 대한 상념을 통해 전혀 새로운 예술의 소비형식에 눈뜨게 될 지도 모른다. 세 번째로, 기술도구와 기술적 환경을 고려하자면 우선 비디오, 컴퓨터 그리고 인터넷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이들은 오늘날 전시의 내용과 형식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많은 작가들이 이 미디어들을 다루고 있을 뿐 아니라 점점 더 그 활용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이들은 각각 매우 상이한 기술적 발생의 역사를 지니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것들이 작용하고 있는 영역의 성격도 서로 상이하다. 하지만 이처럼 서로 다른 동기에 의해 성장해 온 이들 기술도구들은 그것들의 잠재적인 역량의 차원에서는 필연적으로 더욱 상호의존적인 방향으로 발전되고 있다. 이들을 묶어주고 있는 것은 물론 근 몇 년 사이에 더욱 더 가속적으로 형태를 바꾸어가고 있는 '디지털 호환기술' 이다. 그리고 이들을 통합적으로 다루는 기술은 디지털 동영상 편집기나 대중적으로 보급된 디지털 캠코더, 그리고 이것들로 제작된 동영상을 인터넷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해주는 디지털 인코더와 웹툴 등을 통해 점점 더 빠른 속도로 대중화되어가고 있고 접근성도 용이해져 가고 있다. 현재의 기술통합은 60년대에 맥루한이 이미 가르쳐 준 바 있는 다음과 같은 상황을 함축하고 있다 : 미디어는 도구가 아닌 환경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이제 창의적 해석의 대상을 넘어 세계의 조건으로서 사용하고 그 안에서 거주할 수 있도록 조직되어야 할 대상이다. 즉 그것은 일종의 도시와 같은 것을 의미하며 미디어를 다룬다고 하는 것은 그것에 건축을 부여한다는 의미처럼 들리는 것이다. 미술에 있어서도 이것은 마찬가지이다. 미술은 더 이상 생산물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둘러싼 환경과 과정의 건축적인 구성 전체를 의미하기 시작한다.
앞서의 세 가지 조건들을 충족시키기 위해 미디어를 다루는 전시는 그 내용에 있어 좀 더 입체적이 되거나 '미디어 인프라'로 고안될 필요가 있다. 그것은 네트워크와 아카이브를 지향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Mediaart.org는 하나의 예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전시 컨텐트와 미디어를 연결하기 위해 고안된 인터넷과 동영상 기반의 전시 프로젝트이다. 이것을 통해 진행된 첫 번째 프로젝트 '크로스토크'가 전시를 어떻게 네트워크를 통해 실시간대에 확산시키고 전달할 것인가에 대해 실험하였다면 두 번째 프로젝트인 '리얼_인터페이스'는 동영상 아카이브를 통해 관객의 시간대에 전시를 서비스할 수 있도록 VOD (Video on Demand)로 구축되어 있다. 이러한 미디어 인프라의 구축은 위에서 예로 든 이전의 많은 노력들로부터 영감을 얻고 있다. 이와 같은 프로젝트는 전시와의 공조 외에도 비디오-컴퓨터-인터넷 기반으로 되어있는 모든 종류의 자료 아카이브를 지향할 수 있다. 여기에는 비디오아트 작품들 외에 인터뷰, 도슨트, 비평, 토론, 다큐멘타리 등이 포함된다. 그러나 네트워크 상의 온라인 전시에는 몇 가지 고려해야 할 지점들이 있다. 그 첫 번째는 대부분의 동영상 컨텐트를 이루는 '싱글채널 비디오'(이하 SCV)를 어떻게 전시의 차원에서 다룰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SCV는 현재 전시장에 따로 설치된 부스에서 상영되는 것이 주된 형태로 되어 있으며, 점점 모니터에서 비디오프로젝터를 이용한 영사방식으로 옮겨가고 있는 중이다. 그것은 비디오프로젝터의 성능향상과 더 나은 감상조건의 요구 때문일 것이다. 전시장에서 관객들이 작품에 할애하는 감상의 시간과 한 작품의 감상에 필요한 최소시간 사이의 차이는 전시장에서 SCV의 예술작품으로서의 소비를 어렵게 하는 요인이 될뿐더러, 전시기간을 넘어서게 되면 그나마 재상영의 기회가 현저히 줄어드는 문제점을 갖고 있다. 반대로 SCV 작품의 생산은 디지털 촬영 및 편집기기/기술의 확산으로 더욱 더 늘어나고 있는 실정이다. 네트워크 상에서의 온라인 아카이브는 최소한 SCV의 상영과 접근의 어려움이라는 문제점을 해결해 줄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작품이 기본적으로 요구하는 화질을 아직은 기술적으로 충족시켜주지 못한다는 어려움을 지닌다. 이 부분은 현재의 디지털 기술의 향상속도를 고려할 때 가까운 장래에 해결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물론 그것은 또 다른 문제, 즉 복제가능한 작품의 원본의 위치에 대한 해묵은 문제를 제기한다. 두 번째로, 예술작품으로서의 SCV는 온라인 아카이브에서 정체성의 위기를 겪을 수 있다. 다시 말해, 작품에 대한 관심이나 감상의 의지를 지니고 있지 않은 대상들에게 작품이 무차별적으로 노출됨으로써 예술작품에 대한 선택적 접근의 기회를 없애버린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차별화된 관객이 다양하게 산재되어 있는 경우를 상정한다. 한국의 경우에 있어, SCV를 선택적으로 접근하는 차별화된 관객의 수는 아직은 충분하지 못하다. 앞서 말한 전시장에서의 SCV의 상영에 있어 비디오 프로젝터가 늘어나면서 더 많은 작품들이 특정한 설치방법에 맞게 제작되고 있는 점도 온라인 상영과 맞지 않는 부분이 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온라인 상에서의 SCV의 상영은 또 다른 가능성들을 열어준다. 그것은 아마도 본격적인 온라인 전시 큐레이팅을 통해 구현되지 않을까 한다. 네트워크 상의 SCV 상영실은 단순한 아카이브에서 보다 능동적인 창의적 전시표현의 공간으로 바뀌어 나감으로써 앞서 제기된 문제들을 극복해나갈 수 있을 것이다. 더 많은 네트워크 상의 미디어 인프라가 구축될 것임이 분명하다. 그것들은 새로운 형태의 전시형식으로 간주될 것이며 이것을 White Cube 또는 Black Cube와 비교하여 Internet Cube 또는 Digital Cube 라고 부를 수 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장래에는 전시 컨텐트에 대한 보다 선택적인 소비가 이루어질 것도 분명하다. 미술은 여전히 그 경계에서 사고하면서 이제는 특정 매체가 아닌 새로운 기술적 환경에게 동시대미술에 봉사하는 법을 가르치게 될 것이다. ■ 유진상
Vol.20020715a | 미술을 위한 미디어인프라_사례와 제안 세미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