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재홍展 / ANJAEHONG / 安在洪 / sculpture   2002_0710 ▶ 2002_0718

안재홍_벽_구리선_가변설치_1991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수원미술관 수원시 장안구 송죽동 409-2번지

꿈꾸는 몸의 기억 ● 조소예술의 기원 이래 끊임없이 다루어져온 소재인 인체가 오늘에 와서도 예술가들에 의해 개성적 의미생산의 매체로 다루어질 수 있는 여지가 남아있는 것일까? 만일 그렇다면 전통적 장르를 넘어 다양한 시각매체를 통해 수없이 침체되고 그에 대한 비평원리도 다각도로 분류된 지금 인체의 새로운 언어는 무엇인가? 로댕에서 쟈코메티, 무어에서 브랑쿠지를 거쳐 시걸과 부르주아에 이르는 현대 조소예술의 문맥에서 신체이미지는 시대의 단편적 마디를 규정하는 의미생산의 도구일 뿐인가? 아니면 시대의 변화에 대응하는 주체로서 예술가들이 남긴 자아 표현의 흔적, 혹은 두려움과 기쁨이라는 생명현상의 자취로 받아들여야 하는가?

안재홍_침묵속의 욕망_구리선_높이 170cm, 가변설치_1991~2
안재홍_침묵속의 욕망_구리선_높이 160cm_1991

안재홍의 작품에 등장하는 중심 화두는 인간이다. 조소예술의 보편화된 소재로서 그가 선택한 인체의 형상을 보면 인간존재의 원형적 메시지들과 개체적 삶의 기억들이 뒤섞여 복잡하게 얽혀 있다. 이는 그의 작업을 통해 유추할 수 있는 해석의 가능성이 다채롭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기도 하다. 엉거주춤한 자세로 서있거나 군집 흉상으로 나열된, 혹은 파편화된 두상의 모습으로 제시된 인체의 표정은 억압된 자유의지와 침묵 속에 갇혀있는 영혼의 존재상황을 암시적으로 드러낸다. 그이 인체들은 이미 이상세계를 지향하는 고전주의 전통을 따르지 않을 뿐 아니라 낭만주의자들의 숭고한 정서도 배제되어 있다. 박제된 동물의 껍질처럼 제시된 형상들은 물성을 강하게 보여주므로 즉물적이다.

안재홍_꿈꾸는 나비야_구리선_높이 95cm_1991
안재홍_나를 본다_구리선, 자연석_높이 160cm

이러한 이유로 안재홍이 표상하는 인체 이미지는 로댕이나 아바카노비치 그리고 루이 부르주아의 그것을 떠올리게 한다. 억제된 몸짓을 취하는 인물상은 상처받는 영혼을 담아내는 듯 뒤틀려 있으며, 몸의 표면을 떠낸 듯한 인물은 의식이 빠져나간 육체처럼 공허한 물질감을 드러낸다. 상실의 기억 속에 파편화된 신체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초적이고 육감적인 감각이 은밀하게 숨 쉬고 있음을 전해준다. 한편, 안재홍의 인물은 신체를 강조하고 있기는 하지만 거기에는 특정한 성에 대한 구별이 없어 보인다. 작가 스스로가 말하듯이 여성 혹은 남성의 이미지를 표상한다는 것은 관심 밖의 일이며 인간 그 자체가 관심의 대상이기 때문일 것이다.

안재홍_벽_구리선, 화강석_높이 170cm_1992
안재홍_벽_철, 석고, 스테인리스 스틸_가변설치_1992

인체조각을 둘러싼 해석의 보편성에도 불구하고 안재홍의 인체작업에는 개성적인 요소들이 엿보인다. 그가 사용하는 매체로서 표피를 벗긴 청동선 뭉치가 그것의 하나이다. 사실 섬세한 인공섬유처럼 실선의 모양을 하고 있는 동선들은 그의 신체작업과 비평에 중요한 단서로 쓰인다. 육체의 피질을 제거한 신경조직이나 미세혈관을 연상케 하는 동선은 철골로 용접된 기초 모형작업의 틀 위를 겹겹이 덮고 있다. 시간이 흐르면서 피어난 청동의 부식현상은 불타거나 부패한 인체를 보는 듯 강렬한 시각체험을 유도하기도 한다. 때로 통나무나 바위를 감싸고 있는 청동 뭉치는 물질과 인간의 교합되는 효과 속에서 서로의 관계성을 강화시키고 있다.

안재홍_침묵속의 욕망_구리선, 나무_높이 170cm_1992

철사작업의 조형적 완결성이 강화되어야 할 필요를 느낌에도 불구하고 안재홍이 차용하고 있는 조형형식은 그가 드러내려는 주제와 긴밀한 연결고리를 형성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특히 동선 뭉치를 씌우기 이전 과정에서 제작되는 인체의 기본 틀을 보면 작가의 조형적 전문성이 엿보인다. 마무리 작업에서 인체를 결박하듯 묶어 지탱하는 두꺼운 철사의 조형성은 작품의 폭력과 억압의 의미를 강화시키는 간접적인 요인으로 보인다. 결국 동선과 부식 그리고 철제 골격 위에 거친 살 붙임의 과정을 통해 드러난 볼륨과 빈 공간 등의 요인은 작가가 드러내려는 시간의 굴레 위에 실려 있는 욕망과 방황 그리고 삶의 무게를 지탱하고 대응하려는 작가의 의지를 반영하고 있다.

안재홍_침묵_구리선, 스테인리스 스틸_45×90×90cm_1994

대부분의 예술가들의 작업동기가 그러하듯 안재홍의 인체작업은 자전적인 특성을 지니고 있다. 예술이란 현대를 살아가는 자신의 주변과 그 환경에 대응해 자신을 보호하려는 본능의 결과물이듯이 그의 작업 역시 욕망과 상실의 기억인 것이다. 안재홍의 인체는 이 대목에서 보편적 가치와 이어지는 연결고리를 가지며 소통의 가능성을 만들어내고 있다. 남성 혹은 여성을 떠나 합일된 인간의 모습이나 머리를 감싸고 있는 뒤틀린 신체 그리고 물질화 혹은 박제화 되어가는 자신에 끊임없는 자성의지가 21세기를 사는 우리들의 자화상이라면 안재홍의 인체는 너가 아닌 바로 나의 모습으로 다가온다. ■ 김영호

Vol.20020710b | 안재홍展 / ANJAEHONG / 安在洪 / sculpture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