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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로 이야기하기 ● 작가는 스스로 이야기꾼을 자처하였다. 이 전시는 그 자체가 작가가 지어낸 동화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소극이라 할 수 있다. ● 동화 속에는 여분의 '머리와 두팔'을 가진 소녀가 등장한다. 남들과 다른 신체로 인해 '두 이마를 맞대고 두 손을 꼭 잡는' 인사 예식에 참여할 수 없는 소녀는 견고하고 배타적인 공동체 내에서 늘 이방인이다. 함께 인사를 나누고 이야기 할 수 있는 누군가를 끊임없이 갈망하던 소녀가 긴 여정 끝에 만나는 사람. 겹겹이 닫힌 문을 열고 마침내 맞닥뜨린 타인은 결국 거울 속의 자신이다. ● 이 이야기는 익숙한 동화들을 차용하고 있으며, 주체와 타자, 소통의 욕망, 정체성의 확인 등 그다지 새로울 것 없는 주제들을 답습하고 있는 듯이 보일 지도 모른다. 그러나 속단은 이르다. 기, 승, 전, 결의 완결된 구조를 취하지 않고 순환하는 내러티브. 게다가 그 안에서 작가가 이용하는 거울, 문, 잘린 머리 등은 전통적인 해석과 미묘하게 어긋나는 의미를 숨기고 있다. 이처럼 작가는 명쾌히 파악되지 않을 내밀한 의미들을 작품 곳곳에 배치해 두고 있는 것이다.
변용된 나르시시즘 ● 이 동화의 결말은 나르시스 신화와 크게 다르지 않다. 소녀가 온전히 인사할 수 있는 타자인 거울 속의 자기자신과 만나는 순간은 전통적인 나르시스 신화 속의 자기 함몰, 죽음의 순간을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이 순간을 작가는 자기애의 최정점이 아닌, 자기인식에 이른 깨달음의 순간으로 그리고 있다. 이는 엄밀히 말해 나르시시즘의 변용이다. 거울 속의 나는 단지 표면에 어른거리는 영상이 아니라 분열된 또 다른 자아인 동시에 나의 존재를 자각시켜줄 타자, 소통의 대상인 것이다. 이러한 이중적 자아는 작품 전반에 걸쳐 지배적인 모티브로 등장한다. ● 작가의 영상작업을 살펴보자. 이 작업은 종이로 오려 만든 형상들을 이용해 타자와 소통이 단절되고 특정 집단에서 배제되는 주체를 암시하는 내용들로 구성되어 있다. 흥미로운 것은 이 작업 속에서 자아는 바라보는 자인 동시에 보여지는 자, 소통을 희구하는 자인 동시에 거부하는 자로 분열되어 있다는 점이다. 연작 가운데 하나인 'I don't want to be a stranger'에서 여섯 번째 손가락은 stranger인 까닭에 절단되어 버린다. 이는 다른 다섯 손가락의 입장에서는 비정상성의 제거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잘린 손가락의 입장에서는 죽음 혹은 단절을 통한 자기정체성의 확인이다.
죽음에 빗댄 정체성의 확인은 작가의 또 다른 동화에도 등장한다. 성벽에 갇혀 있던 라푼젤은 왕자의 도움 없이 자신의 머리를 잘라 늘어뜨린 머리카락을 타고 성을 벗어난다. 이는 잘린 머리가 곧 죽음이 아닌 자아의 확립으로 연결되는 것이다. 결국 작가에게 있어 동일률을 벗어난 타자로서의 자아와 조우하게 하는 거울은, 죽음에 이르는 나르시스의 거울이기보다는 온전한 자신을 인지하게 하는 라깡의 거울에 보다 가깝다고 말할 수 있겠다. 나아가 거울뿐만 아니라 작가가 작품으로 형상화하고 있는 집, 문, 잘린 머리 등과 같은 것들이 모두 단선적인 이해의 범위를 넘어서는 숨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들어설 수 없는 문, 편안하지 않은 집, 내가 아닌 나 ● 작가가 종이를 이용하여 드로잉으로, 입체작품으로, 영상으로 제작한 작품들은 동화의 내러티브 선상에 삽화처럼 삽입된다. 하지만 단지 동화의 내용 전개를 돕는 삽화가 아니라 보다 다양한 의미를 가져와 이야기의 단선적 전개를 중층의 구조로 세워나가는 역할을 하고 있다. 흔히 다른 세계로의 진입 가능성을 담지하고 있다고 여겨지는 문. 그러나 그 너머에 존재하는 것은 거울일 뿐이다. 결코 안으로 들어서지 못할 이 문을 열었을 때 마주치는 것은 생경한 자기자신의 모습이며, 오직 그러한 자신의 모습을 바라볼 수 있을 뿐이다. 안락한 주거공간인 집, 향수의 대상인 고향, 이것들 역시 작가에게는 그 안에 머무르지 못하고 배제되는 어떤 배타적인 공간으로 그려진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이방인인 작가는 문을 두드리지만 안으로 들어서지 못하고, 말을 걸지만 그에게 귀기울이려 하지 않는다. 따라서 자기 존재를 확인하고 싶은 작가의 소망은 영원히 반복될 불가능의 원환 속에 머물러 있는 듯이 보이며 이는 존재의 불가해함에 대한 작가의 솔직한 고백일 것이다. 하지만 결국 작가는 해답을 찾았다. 거울 속의 자신에게서. 우리는 거울 앞에 선 작가가 확인하게 될 정체성이 어떤 것인지 알 수 없다. greeting. 아마도 거울 속의 나와 마주볼 순 있어도 손을 맞잡고 머리를 맞대며 인사하는 순간은 영원히 오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작가는 결코 '오래 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로 이야기를 끝맺지 않는다. 다만 자아와 타자가 원초적으로 관계 맺고 있음을, 나아가 자기 정체성이란 동일률의 지배를 벗어난 자기 자신을 인지할 때에 가능한 것임을 이 짤막한 동화를 빌어 이야기하고 있을 뿐이다. ■ 황진영
Vol.20020623b | 김시연展 / KIMSIYEON / 金始衍 / install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