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일시 2002_0612_수요일_06:00pm
갤러리 라메르 서울 종로구 인사동 194번지 홍익빌딩 Tel. 02_730_5454 www.gallerylamer.com
"여관 방 찍어요". ● 주인은 "왜? 더러운 여관방을 찍느냐"고 물어본다. ● "여관"이라는 단어 앞에 '은밀한', '퇴폐적', '불륜적'등의 강력한(?)수식어가 따라오는 것은 여관이 매스컴에서 떠들어대는 여러 사건, 사고의 현장 즉, 도피처 역할로 이용되기 때문일 것이다. 따라서 음성적인 의미가 내재하게 된다. ● 사적/공적 공간의 의미를 동시에 생성하는 "여관"은 일정 금액만 지불하면 계약된 시간동안은 사적인 공간으로 전환되면서, 개인의 사생활을 완전하게 보호받을 수 있는 공간으로써 기능한다. 또한, 원하는 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는 공적 공간이기도 하다.
여관사진이 갖는 의미는 무엇일까? 나는 왜 여관사진을 찍을까? 내 자신 스스로가 수 없이 문제제기를 하게 된다. ● 1990년대 초, 사회현실에 대한 열띤 토론, 집회 준비가 한창이었던 대학시절, 경기도 부근 어는 여관에서 며칠 동안 머무르게 되었다. 그 곳에서 지내는 동안 집과 학교에서 느낄 수 없었던 '강렬한' 공간감이 잊혀지질 않았다. 미묘한 밤꽃 냄새와 짤막한 형광등, 두꺼운 커튼과 조악한 패턴의 이불이 자아내는 '평면적 이미지'가, 내가 있어서는 안될 곳에 덩그러니 떨어진 기분 이였다.
요즘은 '몰래 카메라'에 찍힌 성관계 장면이 인터넷 상에서 공유되며, 그와 관계된 뉴스들을 쉽게 접할 수 있게 되었다. 이 때문에 조심스러워하는 여관 주인들을 설득하기 위해, 전시 도록을 보여주고 작업에 대한 장황한 설명을 해도 "(멀쩡하게 생긴 처녀가 이상한 걸 찍고 다니는 군...)" 한마디로 거절한다. 인테리어가 유출되고 손님이 촬영을 보게되면 당장 소란이 나고 다시는 안 들어온다는 설명이다.
자동카메라가 아닌 큰 카메라를 보게되기라도 하면 문제는 더 커진다. 비디오 카메라로 오해한 여관 주인은 당장 나가라고 모함을 질러대는 것이다. 내심 놀래 쫓겨 나오기가 일수고 창피함과 자존심이 일순간 머리를 복잡하게 한다. 잠시동안 멍하게 서 있다가 또 다른 여관을 기대하며 출발한다.
앙리 르페브르(Henri Lefebvre;1901∼1991)는 사회 내에서 집단적으로 행해지는 공간적 경험을 "공간적 습관 (spatial practice)"이라 칭했다. 이것은 우리가 하나의 공간에 대해서 공통된 습관과 인식을 가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 여관이라는 장소는 완전하게 '내 공간'으로 소유할 수 없는 임시 휴게소와 같은 곳이며, 동시에, 르페브르의 "공간적 습관"에서 보여 지듯이 '모두의'공적 장소가 되기도 한다. 때문에 한국에서 "퍼블릭 모텔"이라는 이름이 가능한 것이다.
"여관"이라는 공간에 대한 인식적/ 시간적인 공간성을 감각적ㆍ시각화하고, 이런 공간에 대한조건들이'장소-특수성(site-specificity)'을 하나의 '상황-구체성(situation-concreteness)'으로 넓혀서 '당신이 보는 것이 보는 것이다'라는 '수용상황'을 강조하고 싶다. ● 구체적으로 현대의 여러 군상들이 스치고 지난 1만8천원대 여관부터 15만원대의 호텔까지 사진들의 다양한 경험들로 인해 제약 없이 읽히며 손님이 자고 나간 자리가 또 다른 손님을 맞이하기 위해 깨끗하게 정리되는 것처럼 전시장에서의 전시공간이 사적 여관체험을 "서술적 공간(representational spaces)"으로 전환되길 바란다. ■ 이은종
Vol.20020619a | 이은종展 / LEEEUNJONG / 李恩鐘 / photograph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