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일시_2002_0612_수요일_05:00pm
덕원갤러리 5층 서울 종로구 인사동 15번지 Tel. 02_723_7771
시간이란 개념은 철학가들을 비롯한 많은 예술가들이 다루어 온 주된 담론 중의 하나이다. 아마도 그 이유는, 인간이 경험하는 제한되고 상대적 시간이외에 무한하고 절대적인 시간이 존재한다는 믿음 때문일 것이다. 인간이 현재 서있는 시간은 완전한 시간이 아니다. 아우구스티누스의 `시간은 곧 시련이다'라는 언급은, 인간이 오직 시간의 종말을 통해서만 영원한 시간으로 이동할 수 있다는 점을 언급함으로써 인간의 불완전한 시간에 대해 상기시킨다. 그러나 인간은 자신의 생애를 통해 시간의 지속과 다수성을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지만, 그것을 거부하지 않는다. 이 자신이 실재하는 귀속된 시간으로부터 벗어나 영원한 지속과 초월에 대한 갈구는 예술가들을 통해 꾸준히 대상화와 개념화 되어 왔다.
이제 대학원을 졸업하고 새로 첫 발을 조심스럽게 내딛고자 하는 최은정의 관심도 이 지속적 시간의 문제를 반영하는 것이다. 그는 자신의 졸업 논문에서 그 개념을 초월적 시간보다 `일상적 시간'이라 표현한 바 있다. 그가 시간의 개념을 `일상'이라고 밝히는 데는 두 가지 이유와 관련이 있어 보인다. 겹침과 축적이라는 행위가 일상의 속성을 반영시켜주는 표상이라는 점이 그 첫 번째 이유이다. 즉 작가는 일상의 반복성을 축적된 무수한 겹을 통해 개념적으로 연결하고자 한 것이라 하겠다. 어떤 의미에서 차곡차곡 쌓아가는 행위는 흡사 반복되는 시간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삶의 한 단편인 것이다. 두 번째 이유로는 신문지라는 일상적 매체와의 연결 때문이다. 작가가 언급했듯이 그 버려지고 쌓여진 신문지들은 가장 일상적 흔적일 수 있다. 이제 최은정에 의해 새롭게 번안된 신문지는 일상적 시간의 지속을 반영하는 도상으로서 효과적인 분위기를 창출하고 있다.
그러나 최은정의 작품에서 드러난 시간의 개념은 단순히 일상적인 것만은 아닌 듯하다. 신문지죽을 건조시켜 겹을 쌓아 만든 축적물, 동심원의 형태가 보여지는 부조물, 그리고 아크릴 반구 등을 캐스팅해 만든 조형물 등은 전체적으로 퇴락한 시간의 층위를 느끼게 한다. 그것들은 끊임없이 지속된 시간이라는 추상적이고 비밀스러운 현상을 마치 도려내어 한 단편으로 형상화시켜 놓은 것처럼 보여진다. 결과적으로 그가 보여주는 층위는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연결시켜주는 시간의 층위이다. 동시에 그 층위의 간격은 한 순간의 시간차일 수도 있으며 무구한 시간차를 보여줄 수도 있는 것이다. 하나의 층위는 한 실재가 경험한 한정된 시간이지만, 그 겹이 연결되어 어느덧 거기에는 지속적 시간의 개념이 탄생되었다.
신문지죽을 자연의 풍화로 건조시키고 그것을 쌓는 행위, 혹은 아크릴 반구를 통해 다양한 크기 형태를 창출해 내는 작가의 행동은 일종의 제식 행위 처럼 느껴진다. 인공적 방법이 아닌 자연스러운 외부 노출을 통해 자연풍으로 건조시킨 과정은, 그 건조된 대상물이 다른 조건과 상황들, 즉 다른 시간의 개념이 포괄된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그것을 쌓거나 구축하는 행위는 각각의 다른 개념이 포함된 시간을 이어주는 의식이다. 관람자들은 최은정이 창출해낸 조형물에서 일목요연하게 지속된 시간의 개념을 이해하게 된다. 최은정 작업에서 흥미로운 점은, 시간의 개념을 반복과 축적의 개념으로 파악하고 있다는 점 이외에, 이러한 작업이 지층과 화석 등의 고대로의 시간을 연상시킨다는 점이다. 지층과 화석의 단면도와 같은 형태와 철가루의 산화와 부식의 과정에서 발생된 색감 등은 충분히 시간의 누적을 효과적으로 보여준다. 더구나 동심원의 형태가 있는 부조물에서는 퇴락하고 시들어버린 유기적 식물이 연상되어 초현실적 분위기까지 창출한다는 점은 재미있는 현상이다. 전체적으로 그의 작업의 매력은 이와 같이 관람자를 마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 떠나게 한다는 점이다. 최은정의 작품은 시간을 담은 도해도이다. ■ 김지영
Vol.20020618b | 최은정展 / CHOIEUNJUNG / 崔銀貞 / sculptu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