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일시_2002_0608_토요일_05:00pm
참여작가 김월식_김유라_김태수_김해민 이정희_정용훈_정은유
비주얼갤러리 고도 서울 종로구 명륜동2가 237번지 아남301-103 Tel. 02_742_6257
"사람에게는 근원적인 두 욕망이 있습니다. 안정에의 욕망과 자유에의 욕망이죠. 인생이란 늘 이 두 욕망 사이에서 줄다리기를 합니다. ...... 그것이 우리에게 늘 긴장과 갈등을 가져다주죠. 이것은 완전한 해소가 불가능합니다. 영원히 지속되는 긴장이죠. 이런 문제에 있어서는 자신의 태도를 분명히 해야 합니다. 자유롭게 살고 싶다면 고독을 감수해야 하고, 안정되게 살고 싶다면 갑갑함을 감수해야 합니다." _이정우 『시뮬라크르의 시대』
'독신'이란 결혼하지 않고 혼자 사는 사람을 말한다. 그렇지만 결혼하지 않은 모든 미혼이 독신은 아니므로 독신이라는 말에는 결혼적령기가 지난 성인이라는 전제가 있다. 하지만 결혼적령기란 개념은 사실상 애매한데 그것은 개인들마다 결혼해야할 적당한 시기에 대한 기준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독신의 나이를 어느 특정한 나이로 한정지어 구분하기는 어렵지만 편의상 독신의 분기점은 35세로 본다. 독신의 형태로는 미혼으로 독신이 된 경우도 있지만 일단 결혼했다가 배우자와 이혼하거나 사별한 경우도 있다.
미국이나 유럽의 독신자 비율은 알려져 있다시피 상당히 높고 지속적으로 증가 추세에 있다. 그 중에서도 특히 독신자 비율이 높은 프랑스는 25세 이상의 성인들 약 6명 가운데 1명은 독신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의 독신자 숫자도 증가하고 있는 추세인데 통계청이 5년마다 발표하는 자료에 따르면 2000년 전국 총 1439만 가구 가운데 독신가구는 222만여 가구. 1990년 102만 가구. 1995년 164만 가구였다. (이 통계자료는 독신 상태와 관계 없이 혼자 살고 있는 1인 가구에 관한 자료이므로 독신자 숫자에 관한 정확한 자료는 아니며 실제 독신자의 수와는 차이가 있지만 독신자 수가 늘어나고 있음은 분명한 것 같다.)
독신의 증가 배경으로는 갈수록 심화되는 개인주의 성향, 가부장적 가족주의에 대한 반발, 여성의 경제적 자립 및 의식화, 이혼증가 등을 들 수 있다. 여러 가지 많은 이유들이 있지만 경제적 이유가 독신 증가에 미치는 영향도 적지 않다고 생각하는데 과거에 경제적 자립능력을 갖지 못한 여자들이 어쩔 수 없이 남자들의 경제적 능력에 의존하는 결혼을 선택했었지만, 요즘은 여자들도 경제적 능력을 많이 가짐으로써 경제적 이유의 결혼의 필요성은 줄어들고 있다. 반면에 남자들은 역사적으로 경제적 능력을 가졌었고 사회적 우위를 차지했었지만 현대 사회의 불안정한 경제구조는 미래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을 제공하므로 책임과 부담이 따르는 결혼에 남자들이 적극적이지 못한 것 같다. ● 독신은 적극적인 선택이기보다는 결혼을 택하지 않은 수동적인 선택의 경우가 많다. 자발적인 혹은 적극적인 독신주의자가 없지 않겠지만 독신들은 대부분 독신주의자가 아니며 결혼을 전적으로 거부하지도 않는다. 만약 거부한다면 그것은 결혼자체이기보다는 결혼제도에 대한 것이다. 그들은 결혼을 안 하려는 것이 아니라 굳이 결혼하려고 노력하지 않을 뿐이다.
이정우는 『시뮬라크르의 시대』에서 들뢰즈와 가타리의 '독신기계'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데 "혈연과 결연 이라는 격자를 벗어나 움직이는 것이 독신기계이며 독신기계는 혈연과 결연에 의해 구성되는 주체가 아니라 격자를 가로지르는 주체이기 때문에, 이 주체를 노마드적 주체라고 부른다. 그것은 한편으로 낭만적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투쟁의 계속이기도 하다. 즉물적으로 말해, 혈연과 결연을 벗어나 독신으로 산다는 것은 영광과 비참을 동시에 준다"고 말하고 있다. 이것은 격자를 가로지르고 독신으로 사는 것이 낭만적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격자를 가로지르기 위해서는 많은 것을 포기해야 하므로 그리 쉬운 일이 아님을 말해주는 것이다. ● 요즘 결혼 전 부모로부터 독립해서 혼자 사는 독신을 '싱글족'이라 부른다. 이들은 이전의 독신자들과 달리 연령대가 낮으면서 경제력과 디지털 활용 능력을 갖추고 있어서 자신들만의 독신 문화를 형성하고 즐긴다. 예를 들면 인터넷을 이용하는 독신자들은 독신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인터넷 사이트와 동호회에 회원으로 가입하여 독신자 상호간에 정보를 교환하고 친목을 도모함으로써 연대감을 형성하며 나아가 이성과의 만남의 기회를 제공받기도 한다. 가정을 가진 사람에게 부과되는 무거운 책임감, 구속감에서 벗어나 타인에게 방해받지 않으면서 마음껏 자유를 누릴 수 있다. 혼자 이어서 가능한 자유를 최대한 즐길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자신을 위해서만 누릴 수 있는 자유가 크기는 하지만 때로는 혼자로서의 고독, 공허감이 따르기도 할 것이다. 그리고 성적 욕구 해소의 어려움이 있고 가정에 소속되지 않음은 안정감의 결핍을 가져올 수 있다. 하지만 그 정도는 무한한 자유를 얻은 대가로서 감수해야 하지 않을까?
우리 사회는 자신과 다른 종류의 사람들에게 그다지 관대하지 못하다. 자신의 잣대로 타인의 삶을 규정짓고 간섭하기 좋아하며 자신과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비난하고 무시하는 풍조가 있다. 대다수 사람들의 그런 집단의식은 독신자를 결혼을 안 했다는 이유만으로 뭔가 이상한, 결핍된 사람으로 취급하여 공정하고 정당한 대우를 받을 권리조차 박탈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독신자들이 세금을 적게 내는 것도 아닌데 부양가족이 있는 세대주가 받는 세금공제 혜택을 독신 세대주는 받지 못하고 있으며 각종 주택 전세자금 대출도 같은 조건에서 부양가족이 있는 사람은 가능하고 독신자인 단독 세대주에게는 가능하지 않다고 한다. ● 우리 사회의 각종 제도는 결혼한 사람 중심이다. 그런데 가족중심으로 모든 사람이 똑같이 살아가는 사회는 지나치게 획일적이지 않은가! 많은 사람들이 사랑하면 결혼하는 것을 당연하고 바람직한 것으로 여기지만 사실 사랑과 결혼은 아무런 필연적 상관관계가 없는 별개의 것이다. 그러므로 결혼만이 사랑하는 사람들이 선택해야 하는 유일한 선택은 아니다. 독신으로 사는 것은 결혼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좋은 점과 불리한 점을 함께 갖고 있는 것으로 개인의 자율적인 선택이 가능한 것이다. 결혼하지 않으면 행복하고 성숙한 삶을 살 수 없다는 혈연적 가족을 중심으로 하는 유교사회의 잘못된 신념이 독신자들을 이방인으로 만들었다. 그러나 인생의 본질적인 행복이 결혼에 있지는 않다. ● 우리는 이제 주변에서 독신자를 어렵지 않게 만난다. 그들은 이미 우리의 가족, 친척, 이웃의 한사람인 것이다. 단지 결혼이라는 종족보존을 위해 인류가 편의상 만들어 놓은 제도에 따르지 않았을 뿐 그들도 보통의 삶을 사는 평범한 사람이다. 결코 별종은 아닌 거다. 독신은 남녀가 결합해서 가정을 이루는 전통적 가족양식에서 벗어나 있지만 분명 정서적 장애는 아니며 사회의 어떤 규범을 어기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독신자들은 경제적, 심리적으로 독립적이며 독신 생활방식에 적응되어있는 그들 자신은 특별히 결핍을 느끼지 않는다. 이제 사회는 독신도 하나의 삶의 방식으로 받아들이기를 거부하지 말아야 한다. 삶의 다양성이 보장되는 사회가 진정 건강한 사회라고 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전시는 작가들이 모두 독신으로 구성되었다는 공통점을 가지지만 단지 그것만으로 이 기획전의 의미가 있지는 않다. 작가가 독신이라는 것 자체가 독신이 아닌 작가들의 작업과 차별화 될 수 있는 조건이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재 독신인 작가는 좋든 싫든 독신이 아닌 작가들과 다소 차이가 있을 것이다. 독신 작가가 경험하는 삶과 독신이 아닌 작가가 경험하는 삶은 엄연히 다른 것이기 때문이다. 때로는 독신의 선택이 작가에게 미치는 영향이 극단적인 경우에는 작가로서의 삶의 존폐를 결정하는 결정적인 원인을 제공하기도 한다. 우리는 활발하게 작업을 하던 작가가 결혼을 계기로 작가생활을 접는 경우를 보아왔다. ● 독신에 대한 사회적 편견이 예전에 비해 많이 줄었다고 하지만 여전히 존재하는 것이 사실이다. 현재 독신인 작가들은 그 동안 주변의 이유 없는 부당한 시선, 무언의 압력을 받아왔고 힘겹게 저항해 왔다. 그들은 누구보다도 주체적으로 자신의 삶을 살기를 희망한 사람들이다. 이 전시를 통해서 작가들은 각자 자신의 일상의 삶의 모습이기도한 독신에 대한 감상, 기억, 경험 등을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해석하고 작업으로 풀어내게 된다. ■ 이정희
Vol.20020615a | 독신 獨身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