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일시_2002_0528_화요일_05:00pm
금호미술관 서울 종로구 사간동 78번지 Tel. 02_720_5114
사진은 사람의 생활을 대상으로 할 때 가장 큰 힘을 발휘한다. 사진이 시간 예술인 탓이다. 시간은 생활 속에서 의미를 갖는다. 생활이 증발한 곳에서는 시간도 발을 멈춘다. 시간이란 변화의 단위이거니와, 인간에게 의미 있는 변화란 우리 삶의 변화, 곧 생활인 것이다. 사진이 시간 예술이라는 말은 이렇게 생활 기록의 수단으로 쓰일 때에 사진의 가치가 극대화된다는 데에서 온다. ● 사진은 시간의 예술이지만, 빛의 예술이기도 하다. 빛은 우선, 대상의 재현을 위한 기본 수단이다. 그러나 이에 그친다면 빛의 예술이라는 말의 내용이 너무 빈약해진다. 빛은 사진의 수단일 뿐 아니라, 대상 그 자체이기도 하다. 빛으로 사진을 찍지만, 사진으로 빛을 찍기도 한다. 어쩌면, 빛이 스스로를 찬양하기 위해 사진술을 발명한 것인지도 모른다. 특히, 생활이 배제된 사진, 이벤트가 없는 존재론적 사진에서 빛은 더욱 빛난다.
사진「고요」는 존재의 근원에 대한 나의 관심이다. ● 존재는 고요하다. 고요해서 고요한 것이 아니라, 존재의 상태가 근원적으로 고요한 것이다. 「고요」라는 제목은 여기 유래한다. 존재는 홀로 존재한다. 홀로 있음으로써 외양이 외로워 보일는지는 모르나, 그 외로움이라는 것이 그렇다고 인간적 고독감과 관계되는 것은 물론 아니다. 홀로 있음의 실존적 양태가 외로울 뿐이다. 이 홀로 있는 존재란 그래서 고요할 수밖에 없고. ● 이들 사진에서 나는 물과 그 속의 풀이나 돌들을 대상으로 삼았다. 그러나, 존재가 물에 근원한다는 뜻에서 물로 접근한 것은 아니었다. 나의 발길이 가는 대로 따르다 보니 물가였고, 그 물가에 앉아 보니 그 속의 돌이 보이고 풀이 보여 그들을 그대로 잡아 본 것이다. 작품이 그 사람이라는 말이 그래서 나온 것일 게다. 물가를 찾은 것이나 그 속의 풀과 돌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이 모두 결국은 내 심성이 그려낸 나의 모습일 테니까.
「고요」라는 제목은 대상의 근원의 경지를 말한 것이지만, 실은 내 이름이기도 하다. 내 이름은 '정식'이지만, '식'은 돌림자, 곧 형제간의 공통된 이름이고, '한'이라는 성은 가족의 이름이니, 순수한 내 이름은 '정'뿐인데. 이 '정'이 한자로 '고요 정(靜)'자인 것이다. 말이 씨가 된다고 하더니, 결국 이름이 씨가 되어 나도 모르게 내가 끌려 든 것이 아닌가 모르겠다. 더구나 돌림자인 '식(湜)'자도 물이 맑다는 뜻이니, 이름 근처에서 맴을 돌다 만 것만 같다. 아니, 어쩌면 이제 비로소 내 사진이 제 자리를 찾은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이름이 나라면, 이름 근처에서 맴을 돌고 있는 사진이 내 사진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팔자 도망은 못한다더니 이름도 팔자인지, 결국은 이름에 묶여 이름 근처에 주저앉고 만 느낌이다. ■ 한정식
Vol.20020606b | 한정식展 / HANCHUNGSHIK / 韓靜湜 / photograph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