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

한정식展 / HANCHUNGSHIK / 韓靜湜 / photography   2002_0528 ▶ 2002_0623

한정식_고요_흑백인화_2002

초대일시_2002_0528_화요일_05:00pm

금호미술관 서울 종로구 사간동 78번지 Tel. 02_720_5114

사진은 사람의 생활을 대상으로 할 때 가장 큰 힘을 발휘한다. 사진이 시간 예술인 탓이다. 시간은 생활 속에서 의미를 갖는다. 생활이 증발한 곳에서는 시간도 발을 멈춘다. 시간이란 변화의 단위이거니와, 인간에게 의미 있는 변화란 우리 삶의 변화, 곧 생활인 것이다. 사진이 시간 예술이라는 말은 이렇게 생활 기록의 수단으로 쓰일 때에 사진의 가치가 극대화된다는 데에서 온다. ● 사진은 시간의 예술이지만, 빛의 예술이기도 하다. 빛은 우선, 대상의 재현을 위한 기본 수단이다. 그러나 이에 그친다면 빛의 예술이라는 말의 내용이 너무 빈약해진다. 빛은 사진의 수단일 뿐 아니라, 대상 그 자체이기도 하다. 빛으로 사진을 찍지만, 사진으로 빛을 찍기도 한다. 어쩌면, 빛이 스스로를 찬양하기 위해 사진술을 발명한 것인지도 모른다. 특히, 생활이 배제된 사진, 이벤트가 없는 존재론적 사진에서 빛은 더욱 빛난다.

한정식_고요_흑백인화_2002

사진「고요」는 존재의 근원에 대한 나의 관심이다. ● 존재는 고요하다. 고요해서 고요한 것이 아니라, 존재의 상태가 근원적으로 고요한 것이다. 「고요」라는 제목은 여기 유래한다. 존재는 홀로 존재한다. 홀로 있음으로써 외양이 외로워 보일는지는 모르나, 그 외로움이라는 것이 그렇다고 인간적 고독감과 관계되는 것은 물론 아니다. 홀로 있음의 실존적 양태가 외로울 뿐이다. 이 홀로 있는 존재란 그래서 고요할 수밖에 없고. ● 이들 사진에서 나는 물과 그 속의 풀이나 돌들을 대상으로 삼았다. 그러나, 존재가 물에 근원한다는 뜻에서 물로 접근한 것은 아니었다. 나의 발길이 가는 대로 따르다 보니 물가였고, 그 물가에 앉아 보니 그 속의 돌이 보이고 풀이 보여 그들을 그대로 잡아 본 것이다. 작품이 그 사람이라는 말이 그래서 나온 것일 게다. 물가를 찾은 것이나 그 속의 풀과 돌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이 모두 결국은 내 심성이 그려낸 나의 모습일 테니까.

한정식_고요_흑백인화_2002

「고요」라는 제목은 대상의 근원의 경지를 말한 것이지만, 실은 내 이름이기도 하다. 내 이름은 '정식'이지만, '식'은 돌림자, 곧 형제간의 공통된 이름이고, '한'이라는 성은 가족의 이름이니, 순수한 내 이름은 '정'뿐인데. 이 '정'이 한자로 '고요 정(靜)'자인 것이다. 말이 씨가 된다고 하더니, 결국 이름이 씨가 되어 나도 모르게 내가 끌려 든 것이 아닌가 모르겠다. 더구나 돌림자인 '식(湜)'자도 물이 맑다는 뜻이니, 이름 근처에서 맴을 돌다 만 것만 같다. 아니, 어쩌면 이제 비로소 내 사진이 제 자리를 찾은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이름이 나라면, 이름 근처에서 맴을 돌고 있는 사진이 내 사진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팔자 도망은 못한다더니 이름도 팔자인지, 결국은 이름에 묶여 이름 근처에 주저앉고 만 느낌이다. ■ 한정식

Vol.20020606b | 한정식展 / HANCHUNGSHIK / 韓靜湜 / photography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