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일시_2002_0522_수요일_05:00pm
덕원갤러리 서울 종로구 인사동 15번지 Tel. 02_723_7771
욕망은 닿을 수 없는 신비다. 쉽게 드러나지 않는 희미한 그림자다. 그 희미한 욕망을 좇는 고단한 여정이 삶이다. 사실 삶이 끝나는 순간까지 욕망은 한번도 제대로 채워지지 않을 것인데 아이러니컬하게도 삶은 그렇기 때문에 유지되는 것이다. 허구임을 알면서도 결코 떨치지 못하는 욕망은 결국 주체가 삶을 영위하는 절대적 수단이기 때문이다. 정영자는 그 시작도 끝도 없이 되풀이 되는 인간의 욕망을 가시화 하고자 한다. 욕망의 긍정과 부정의 메시지 위에 작가 자신의 사적이고 은밀한 욕망이 투영되기도 하고 오브제라는 대상의 욕망이 덧붙여지기도 한다. 본능적이고 유희적인 이미지의 욕망에서 절망적 형태로, 욕망을 위한 형태로, 혹은 내면의 공허를 훑고 지나가는 그물망의 궤적으로 정영자의 공간에는 편재된 조각난 욕망들이 흩어져있다. 그곳에서 삶의 근원적 에너지로서의 욕망의 흐름을 본다. 인간의 육체는 '욕망의 실체다.' 라는 절규와, "욕망의 끝은 어디인가?" 라는 자조적 물음사이에 탐욕의 강이 길게 흐른다. 그리고 그 머나먼 강의 여정 위에 입을 벌린 욕망의 부스러기들이 먼지처럼 걸려있다.
그렇게 정영자가 만들어내는 스테인레스 육체와 거울처럼 투명한 F.R.P 오브제들, 갇혀진 돌들, 거미줄 같은 원형 철판들은 인간의 내면과 자의식을 반영하며 욕망의 두께와 깊이를 폭로 하고 있다. 가령 F.R.P로 만들어진 얼굴 형상들 위에 아크릴 반구들이 부착되어 있는 「욕망의 단계」는 몸의 욕망으로부터 발현되는 성적 욕망의 에너지를 시선이 제거된 얼굴 형상으로 압축시키고 벌어진 입술 사이에 에로스의 가벼운 유희를 반구 형태로 실어 얹음으로써 관람자의 망막 속에서 증폭되는 이미지의 욕망을 꿈꾸고 있다. 감각적 연출이 동원되어 허공에 매달려 있는 그 이미지들은 결국 대상을 향한 매혹의 본질인 환상, 곧 신기루를 상징한다. 거기서 우리는 관음증적인 욕망의 '시선'과 오브제라는 대상의 '응시'의 어긋남을 목격하게 된다. "모든 시선에는 이미 거 스릴 수 없는 욕망이 실린다"고 했던 사르트르의 말처럼 우리의 '시선'은 대상과 접촉하는 촉수를 통한 포착을 꿈꾸나 시선이 제거된 얼굴이라는 대상이 거꾸로 우리를 바라보는 '응시'는 결코 대상을 직접 움켜쥐는 '소유'를 허락하지 않는다. 거기서 주체의 욕망은 또 다? ?좌절하고 만다. 그러므로 공중에 부유하는 욕망의 신기루란 "대상이 주체의 욕망을 완벽하게 충족시키는 것은 착각에 불과하다"고 한 자끄 라깡의 지적처럼 결국은 대상의 소유가 아닌 이미지의 바라봄으로 희미하게 사라져 버리고 마는 것이다. 거미줄 형상의 그물망이 원판 위에 펼쳐지는 「욕망의 궤적」이라는 작품도 '눈은 손의 연장이다'라고 말한 질 들뢰즈의 관점처럼 시선 속에 이미 촉각의 쾌락이 담보되어 있음을 조형화 하여 결국 욕망의 궤적이란 '시선'이라는 탐욕의 외침의 종점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끝없는 인간의지의 전송임을 암유한다. ● 한편 자연에서 채취한 돌이라는 오브제 위에 채색을 한 후 그것을 투명 F.R.P속에 화석처럼 굳혀버린 「내면 풍경」, 「앎의 의지」들은 자아와 사회, 자연 속에 얽혀있는 욕망들의 관계성을 발언하고 있다. 철로 된 인간 군상이 F.R.P를 떠 받치고 있는 의자 형상인 「내면 풍경」에서는 의자의 놓여진 방식과 기능성이 상징하는 하나의 '정황'을 통해 사물화 , 물질화된 조각의 한계상황을 극복하려는 작가의 일차적 욕구를 반영하며, 이차적으로 인간 심리의 내면과 사회적 상황의 관계성을 적절히 암시한다. 그리고 F.R.P라는 돌로 된 밭에서 경작된 욕망이 싹트고 자라나게 함으로써 자신을 옭아매는 자폐와 끓임 없이 갈망하는 사회적 상승의 욕망이 혼유하는 프란츠 카프카적 사이트를 연출하는 것이다. 그리고 역시 채색된 돌들이 F.R.P두상 형상 속에서 꽃처럼 피어나고 있는 「앎의 의지」 또한 작가 특유의 제작 방식인 '비움'과 '채움'의 과정을 욕망의 그것에 비유하며 몰개성의 상징으로서 시야가 거세된 동공의 무표정함을 통해 지식에서 지혜로 , 분별력으로 진화하는 '앎'을 향한 욕망이라는 기표의 증식을 투명하게 비추고 있다 . 그런가 하면 「내면 풍경」과 「앎의 의지」 의 컨텍스트 위에 권력의 의지를 망치의 놓임이라는 상징으로 표현한 「지배자의 꿈」이나 철 막대기를 대장간에서 망치로 두들겨 에너지 파장의 흐름처럼 펴낸 「내적 에너지」라는 작품들을 유심히 바라볼 때 그것들이 견고한 실체로서 '형태', '장식', '구성', '유혹' 이라는 코드로 자족하고 있는 동시대 '조각의 욕망'을 FRP 재료와 교우 시키거나 '정황'의 가미를 통하여 조각의 '사물화', '물질화'의 극복을 꿈꾸고 있다는 재미있는 사실을 발견하게도 된다.
그렇게 정영자는 이미 형성된 조각의 유형론적 욕망을 때로는 더욱 공고히 하려는 강박증을 비추기도 하고 때로는 유형론의 경계를 초월하려는 태도를 동시에 보여줌으로써 조각의 형태를 구사하려는 작가적 욕망과 좌절 사이에서 매일 일어나는 감정의 진폭을 차라리 진솔한 '자기반영'의 기제로 몰고 가고 있는 듯 하다. 그 지점이 물질에서 물건으로, 상황으로 확장되거나 혹은 그 사이들을 부단히 왕래하고 있는 정영자 작업의 현주소다. 그러므로 일견 형식적 일관성이 없어 보이는 그의 작품들은 이미 재료에 대한 성찰을 넘어선 단계들을 공통적으로 보여준다. 그가 선택한 스테인레스 스틸의 표면은 금속 속살의 표면을 반사시키는 '광택'이라는 욕망의 빛을 산란 시키기 위한 뚜렷한 목적으로 등장하고, 눈, 코, 입의 표정들은 빛의 굴절에 의해 일렁이는 유혹의 에너지라는 생동감을 담아내기 위한 의미소로 존재하며, FRP와 거울, 철 단조들 또한 알몸인 육체처럼 '표피'로서 대상의 창백함을 강조하며 욕망의 투영과 변형이라는 아나모르포즘을 생산하기 위한 절실한 기제들인 것이다. 그가 신체를 원천으로 하는 욕망과 자유의지의 주체! 로서 몸을 주목하게 된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된다. 즉 모더니스티적 재현이나 모델링의 대상으로 접근하는 것이 아닌, 단지 지각의 주체로서 경험적이면서 초월적인 상징으로서 욕망으로 대변되는 몸인 것이다. 그런 점에서 그의 육체는 정신 중심의 이원론을 거부했던 메를로-퐁티의 사고를 반영한다. 그러므로 그의 육체는 반 데카르트적 명제를 외친다. '나는 욕망한다. 고로 존재한다'로 제안된다는 의미다. 그러한 욕망의 단상 속에서 시간과 기억들이 파 넣어지고 상처와 이루어지지 않은 과거의 욕망들이 뒤섞여질 때 정영자의 욕망 덩어리들은 절망으로 종료되지 않고 자신의 수명이 다하는 순간까지 존엄성을 유지하고픈 생명체의 본능으로 되살아 나게 된다. 그러므로 욕망의 어두움과 밝음을 비추어 내는 정영자의 조각 여정은 '한계적 존재'로서의 인간이 완전자 '자연' 안에 거하면서 욕망의 좌표를 찾아 헤메이는 그 무수한 갈등을 닿을 수 없는 신비로 풀어내는 일이다. 욕망의 신기루라는 안개 같은 신비를 붙잡는 일 말이다. ■ 이원일
Vol.20020601a | 정영자展 / CHEONGYOUNGJA / 鄭榮子 / sculptu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