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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작품을 순수한 형식적 구성물로서 받아들이거나, 작가의 정신적 성향 또는 사회적 현상의 즉각적 반영물로서 받아들이는 경향은 예술적 구조의 자율적 실존과 본질적 역학 모두를 간과하기 마련이다. 이러한 맹점에 대한 인식이 창작자나 수용자로 하여금 예술작품의 구조에 대한 보다 심층적인 접근을 모색하게 하는 것이리라. 본 전시에 참여하는 작가들 역시 이러한 요구에 대면하여 나름의 방법을 개척해 가고 있는 작가들이다. ● 인간이 만들어 낸 기호(記號)가운데 가장 뛰어난 것은 화살표라고 한다. 하긴 어느 누구도 화살표의 반대방향을 따라갈 일은 없을 것이다. 난생 처음 그것을 접했다 해도 말이다. 하지만 기호 전반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사정이 좀 다르다. 사나흘 공부하면 된다던 운전면허 문제지를 수차례 다시 펼쳐본 사람이라면 더욱 잘 알겠다. 교통표지판을 포함한 모든 종류의 기호들은 수신자와 발신자 간에 합의된 동일한 수용방식, 그 의미를 습득하는 과정을 필요로 한다. 기호란 태생적으로 어찌할 수 없는 문화적 자의성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작가 윤아진은 이처럼 완결된 의미의 고정이 불가능한 기호의 특성에 주목한다.
윤아진이 관심을 갖는 것은 각종 금지, 주의, 안내 표지판들이다. 작가는 이미 일상에서 널리 활용되는 표지판들에 약간의 변형을 가하여 새로운 표지판들을 만들어 낸다. 당연히 의미의 지평은 열려 있고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이 존재한다. 하지만 의미가 정박지점 없이 부유할지라도 자의성의 늪 속에 침몰하지는 않는다. 작가의 변형은 그것을 지각하는 사람에게 가능한 연상범위 내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exit란 문자를 sexit로 변형시키거나 뒤샹의 '계단을 내려오는 나부'가 '미끄럼 주의' 표지판이 되는 식이다. 한걸음 더 나아가 작가는 자신의 표지판이 적용되는 상황 자체를 연출해 낸다. 직접 제작한 입체작품에 부착된 각종 표지판들은 그 작품을 다루는 방법을 친절히 안내한다. '파손 주의', ● '과적 금지', '휴대 가능', '가까이 두고 즐길 것' 등등. 이러한 표지판들은 다소 부조리하게 보이는 오브제와의 연관으로 인해 역설적으로 느껴진다. 하지만 이러한 표지판을 빌어 작가가 겨냥하는 바가 예술작품의 위상과 의미, 그것의 수용이라는 문제에 닿아 있음을 깨닫게 되면 그러한 부조리와 역설 자체가 작가의 전략임을 수긍하게 될 것이다.
윤아진의 작업이 의사소통적 기호 자체를 이용하여 예술작품의 기호론적 특성을 환기시킨다면 장우석은 구체적, 개체적 예술작품이 가진 불변의 기체(基體)로서의 성질에 의문을 제기한다. 그는 비닐조각이라는 다소 생소한 방법을 택했다. 즉 익숙한 회화 작품이나 전통 문양들을 원화로 삼아 그 이미지들을 투명한 비닐 위에 옮겨 놓는다. 이러한 과정에서 원화가 가진 색채, 질감, 물성과 같은 성질들은 제거되고 투명한 이미지만이 남게 된다. 비닐이라는 재료의 특성상 각인된 이미지는 조명을 비추었을 때에만 확연히 드러난다. 따라서 관람객은 일차적으로 비닐 위에 새겨진 이미지를 지각하고 이어 빛의 투과로 벽에 형성된 그림자를 지각하게 된다. 이는 고전적 회화 특유의 사실적인 환영도, 조각의 질료가 가진 물성도 부정하는 극단적인 허상의 창조에 다름 아니다. 이 투명한 이미지가 원화와 가진 관계를 고려한다면 일종의 기호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그것은 반 재현적이고 텅 빈, 공허한 기호들이다. 따라서 예술이라는 레테르에 걸맞는 어떤 유의미함을 찾고자 하는 관람객이라면 당혹스럽겠지만, 그것이 바로 작가가 의도하는 바일 것이다. ● 이처럼 다양한 방식으로 예술작품이 불러일으키는 다기한 문제의 변방에 접근해 들어가는 작가들의 시도는 한창 진행중이다. 그러나 아직 견고하게 완성되지 않았기에 더욱 많은 가능성을 내포한 듯 보인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러한 가능성이 본 전시의 가장 큰 의의일 것이다. ■ 황진영
Vol.20020531a | 記號, 基體-윤아진_장우석 2인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