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간첩

이광호展 / LEEKWANGHO / 李光鎬 / painting   2002_0511 ▶ 2002_0520

이광호_이중간첩 #0007_캔버스에 유채_183×183cm_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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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2_0511_토요일_05:00pm

인데코 갤러리 서울 강남구 신사동 615-4번지 Tel. 02_511_0032

사적 상징과 공적 상징이 교직하는 의미의 망 ● 이광호는 하고자 하는 얘기가 많은 작가다. 즉 교감을 나누고자 하는 욕망이 강한 작가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하고자 하는 말을 굳이 이야기의 형태로 풀어내지는 않는다. 그저 그림으로 풀어내면 족할 뿐이다. 그는 종종 자신의 부정확한 언어구사에 대한 불만족을 토로하곤 하는데, 어쩌면 그에게 있어서는 기실 하고 싶은 얘기 그 자체가 언어의 형태라기보다는 심상과 이미지의 형태로 존재하고 있기 때문일는지도 모른다. 혹은 하고 싶은 얘기를 표현할 때 자주 개입하는 '부끄러움'의 정서를 극복하는 방법론이 '그림을 통해 이야기하기'라는 형태로 드러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어쨌건, 그가 전하고자 하는 바는 정확한 진술로 엮이는 설명적 서사체가 아니라 여러 단서를 통해 구성되는 감성의 서사체, 또 그것이 일구어내는 전체적 분위기와 그것이 일으키는 '심리적 동요'의 파장이다. 그는 관객이 그런 감정의 실체에 대해 최대한 섬세하면서 꼼꼼하게 접근해오길 바란다. 그렇다고 해서 그러한 접근이 단일하고 절대적인 진실에 대한 추구인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광호는 다양한 방향으로 뻗어나가는 교감의 망을 통해 그림이 빚어내는 파장의 진폭이 더욱 넓게 퍼져나가기를 바라는 작가다.

이광호_이중간첩 #0004_캔버스에 유채_183×183cm_2002

그는 주위의 세상 속에서 문득 그에게 다가오고 떠오르는 재현의 대상들을 잡아내고 시적인 감정의 서사체를 구성할 수 있도록 조합한다. 그의 그림을 바라보는 관객은 그림 속에 등장하는 여러 가지 단서를 이리저리 맞춰나가는 탐정이 된다. 이 탐정이 풀어내야 하는 수수께끼는 정확한 인과관계에 의한 사건의 전모가 아니라 작고 미묘하며 모호한 느낌의 재구성이라 할 수 있다. ● 어떻게 보면 분석이라는 매우 이성적인 과정을 통해 결국 도달하는 지점이 아주 감성적인 결과라는 게 강한 역설로 생각된다. 그가 종종 사용하는 '그림 속 그림'이라는 장치는 괄호의 역할, 즉 객관화의 기능을 담당한다. 이 장치들은 우선 감성보다는 이성적 분석을 요구하고 강조한다. 그런데 이 분석을 거쳐 만나게 되는 것은 사실 명쾌함과는 거리가 있어 보이며 흐릿한 안개 속의 풍경이다. 이성적 과정을 통해 다다르는 자리는 마침내 논리적으로 분석될 수 없는 감성의 영역이 되는 것이다.

이광호_이중간첩 #0002_캔버스에 유채_183×183cm_2002

그동안 그가 그려온 그림들은 분석과 추정을 위한 단서들이 다소 복잡하게 느껴질 정도로 풍부하게 베풀어져 있는 것들이었다. 한데 최근 그의 작품세계는 좀더 정리되어 가는 양상을 드러내고 있다. 즉 시각언어의 구사가 좀더 함축적으로 되어가고, 하고자 하는 얘기를 좀더 추스려 가면서 한다는 인상을 주고 있는 것이다. 그는 부끄러움, 나아가 거기서 유발되는 정서적 불안감을 부쩍 여유로이 극복해가고 있는 듯하다. 게다가 더욱 절제된 요소 속에 더 많은 내용을 담아내는 자신감은 점점 강해지고 있는 것 같다. ● 지금까지 이광호가 그려온 그림들은 매우 사적이고 주관적인 도상학의 세계에 기반을 두고 있는 것들이었다. 즉 작가 주변의 인물과 사물, 그리고 그것들을 둘러싸고 있는 정황들이 작품을 구성하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자신이 더 잘 알고 있는 것을 그리려고 함은 작가에게 있어 매우 자연스러운 태도이고, 스스로가 잘 할 수 있는 것만을 하겠다는 아주 정직한 자세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사적인 도상학은 작가가 지닌 자의식 과잉의 발로일 수도 있다. 이는 관객들에게 작가 자신과 그 주변에 대한 연구를 요구하는 다소의 게으름, 내지는 불친절의 결과일 수도 있지 않을까. 주변의 것들을 가지고 만들어 내는 세계는 작가에게 더욱 친근하고 편할 것이다. 그러나 객관적 도상이 될 수 있는 정보체계에 대한 작가의 연구나 학습이 부족한 상황에서의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는 혐의를 받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이광호_이중간첩 #0001_캔버스에 아크릴과 유채_90×110cm_2002

이제 이광호는 영화라는 매개체를 통해 좀더 보편적이고 객관적이며 접근용이성이 풍부한 이야기에 접근하고 더 많은 사람들과 교감하려 한다. 여기 이 자리에서, 『이중간첩』이라는 영화의 시놉시스가 작가에게 불러일으킨 연상과 생각의 파장은 그림으로 결과한다. 그리고 그림은 바라보는 이들에게 그들 자신의 내러티브를 직조하도록 한다. 다시 영화의 이야기, 작가, 그림, 관객이 이루는 소용돌이 속에서 마침내는 이야기의 망이 파생될 것이다. 또한 영화가 개봉된 후에는 영화, 그 영화를 본 관객, 영화를 보지 않은 관객 등의 새로운 변수가 추가되고 그림은 또 다른 방향의 이야기를 파생시킬 수 있는 텍스트로 변신하게 되리라. '영원히 생성 중인'(이광호_'知友와의 대화'_『inter-view』展 도록_1997) 그림으로 말이다.

이광호_이중간첩 #0005_캔버스에 아크릴과 유채_130×162cm_2002

지금 이광호의 그림은 내밀한 사적 이야기와 관련되는 도상학과 어느 정도의 보편성을 띤 객관적 도상학과의 대화가 된다. 그 두 종류의 도상학이 만나고 헤어지는 이야기 자체, 그 둘이 맺는 관계 자체가 그림으로 표현되는 스토리가 되는 것이다.

이광호_이중간첩 #0003_캔버스에 유채_183×183cm_2002

오래 전부터 그림은 내러티브를 만들어내고 전달하는 하나의 방식이어 왔다. 우리시대에는 영화가 그 주요한 방식이 되었다. 그러나 그림과 영화는 그 질감, 전달되는 상황, 여러 변수의 차이에 의해서 각자가 독자적인 측면들을 갖추고 있으며 다른 방식으로 관객에게 다가간다. 이제 여기 이 자리에서 그림과 영화는 독특한 만남 속에서 새로운 관계 맺기를 보여준다. 이 관계 맺기의 장을 탐험하고, 저마다의 경험에 비추어 그림 속의 수수께끼를 풀어나가는 여정을 통과하면서 관객들은 그림 읽기의 새로운 경지를 체험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림과 영화를 매개로 하는 독특한 만남 속에서, 새로운 차원의 소통에 도달하는 경험을 작가와 관객 모두가 같이 갖게 되리라고 생각하고 희망한다. ■ 김경운

Vol.20020523a | 이광호展 / LEEKWANGHO / 李光鎬 / painting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