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일시_2002_0507_화요일_05:00pm
마로니에 미술관 GalleryⅠ 서울 종로구 동숭동 1-130번지 Tel. 02_760_4607
탈코드적 상상력을 유발하는 신체이미지 ● 그늘 속에 돌아와, 누워_뚫린 천장에서 심장을 그집어낸다._진피처럼 심장은, 살아_따가운 봄을 맞았다._침침한 바람은, 피어_그림 밖으로 성큼 다가온다._낡은 커튼은, 뚜벅_심장을 사고 바람을 막았다. (짧은 봄에 대한 명상, 2002) ● 필자에게 봄은 성장이 아니라 정체요, 죽음이다. 봄 내음새와 함께 오는 또다른 향기를 필자는 아직도 그리워하는 까닭 때문이다. 최루탄과 5월의 함성을 말이다. ● 필자가 작가 김기연을 만난 건 순전히 형식적인 이유에서였다. 난 기자로서, 작가는 전시를 위해 서로 만났다. 그가 이번 전시에서 내건 「성장」시리즈는 필자에겐 매우 곤혹스런 주제다. 이 봄에 말이다. 그런데 선뜻 필자는 그걸 감내코자 하였다. 그의 생기발랄함, 봄볕 같은 미소에 작품이 숨을 헐떡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필자에게 봄이 정체요, 죽음이라면, 작가 김기연에게 이러한 죽음과 정체마저도 성장의 또다른 표상일 것이다. 그가 이번에 선보이는 「성장」시리즈는 화이트 벌룬에 신체의 일부분을 프로젝트로 비추는 작업이다. 성장의 의미를 신체를 통해 보여주고자 하는 이유에 대해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 "태어나면서부터 죽을 때까지 사람은 성장하죠. 뼈와 세포, 근육의 생성과 죽음이야말로 인간의 생의 한 부분이자 삶의 모든 과정을 담고있는 성장이라 보여집니다." ● 그래서 그에게 노화와 질병, 필자의 이런 정신적 질병은 하나의 성장 과정이다. 죽음까지도 포괄한 성장개념은 마치 자연주의 혹은 생태주의적 철학처럼 보인다. 바로 죽음을 통해 다시 순환되는 삶 말이다. 이러한 소멸과 성장, 공관과 신체의 충돌은 전시공간의 맥락화를 통해 이루어진다.
'회화는 전시공간을 내면화'한다. 무슨 말이냐면, 작가는 이미 전시공간을 염두에 두고 작업을 한다는 것이다. 이 전시공간의 의미화 작업은 사실 모더니즘의 산물이다. 모더니즘 이후에 와서야 작품은 교환과 소유의 가치로써 제작되고 배열된다. 그리고 '예술품이 아닌 요소만을 하나씩 배제하게끔 만드는 공간'인 전시장 공간을 통해 작품은 일정정도 공간을 염두에 두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전시공간은 다시 작품의 형식가지도 관여한다고 보여진다. 설치, 정확히는 비디오 설치 혹은 영상설치 작업인 김기연의 작업 역시 이러한 전시공간의 개념적 역사적 고찰과 맥을 같이 한다. ● 현대미술에서 오브제의 등장은 이미 설치라는 형식을 예견한 것이라고 보여진다. 미적 공간에 일상적 오브제를 등장시키는 것은 현실에 대한 환기, 현실 공간의 미적 공간으로의 수용 혹은 미적 공간과의 상호교섭을 드러내 놓기 위한 전략이었다. 설치는 이러한 오브제의 확장된 형식이 아니겠는가. 그래서 많은 작가들이 공간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부유하는 벌룬 이미지, 생명을 잉태한 둥근 알 모양들, 심장박동의 효과, 변형된 신체 영상은 '고정되지 않는 성장의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부유하고 고정된 벌룬은 생명의 존재를 명료하고도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면, 심장박동의 효과는 또 다른 청각 영상을 드러낸다. 벌룬의 유기적이고 변형적인 이미지와 심장 박동을 시각화한 청각효과는 하나의 불명료한 개념, 모호한 또 다른 영상 이미지를 생성해 낸다. 소쉬르가 말했듯이 청각 영상은 물질적 소리 그 자체가 아니라 '심적 흔적'이라는 말은 바로 이점에서 설득력이 있다. ● 우리는 김기연이 연출한 공간 속에서 하나의 명료한 성장에 대한 이미지보다 성장에 대한 불명료한 서사적 개념들을 떠올리고 느낀다. 바로 이 '탈코드적 상상력을 유발하는' 공간이야말로 하나의 생의 공간, 성장의 공간인 것이다. 설치작품이 영상과 결합해서 만들어내는 하나의 이미지가 이처럼 시각화되는 경우에야만 설치라는 장르의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싶다. 비디오 설치의 가능성은 둔각적이고 명료하게 잡히는 개념보다 잡히지 않는 예각적이고 경계를 넘나드는 개념의 충돌 속에서 보다 풍부한 창조력을 만들어낸다고 필자는 보고 있다. 이점이 필자가 김기연을 주목하는 이유다. ■ 정형탁
Vol.20020520a | 김기연展 / installation.vide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