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남과 헤어짐의 끝없는 여행

류예지展 / RYUYEJI / 柳叡志 / painting   2002_0424 ▶ 2002_0430

류예지_비가 왔다_천에 혼합재료_72×60cm_2002

초대일시_2002_0424_수요일_05:00pm

관훈갤러리 서울 종로구 관훈동 195번지 Tel. 02_733_6469

예술가들이 단순히 자연을 모방하지 않고 때로는 상상력을 통하여 덧붙이거나 확대해서 내면의 진실을 표현한다는 것이 예술가들의 창조적인 작품에 이르는 과정이다. 레이놀즈가 예술을 확대로 본 것이나, 미술사가 한스 제들마이어가 작가들의 작품을 재창조 또는 재해석이라고 한것은 그런 이유 때문이다. ● 그러나 때때로 화가들은 자신의 이념이나 감정을 독특한 자기만의 형식과 언어로 만들어 낸다. 어떤 형태나 형상에 의미를 부여하고, 그러한 믿음을 져버리지 않고 지속적으로 유사한 작업들을 보여줌으로써 마침내 그가 의도하고자 했던 언어들의 전달에 성공하기도 한다. 작가는 그러한 세계를 끊임없이 쉬지 않고 보여주는 사람들이다. ● 기본적으로 류예지의 작업들도 일정한 형상들을 통하여 자신의 관념이나 의지를 부여하는 방법을 택하고 있다. 그의 전달형식에서 우리는 눈여겨 볼 만한 화면속에 두 개의 독특한 특징을 엿 볼 수 있다. 하나는 불규칙적으로 이어져 있거나 걸쳐져 있는 선들이다. 엇갈리면서 때로는 규칙적으로 관계를 보여주는 이 선들은 또 다른 점들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이러한 패턴들은 그의 작품 곳곳에서 흥미있게 나타난다. 어떤 작품에서는 부분적으로 그리고 어떤 작품에서는 화면 전체에 전면적으로 이 형상이 자리잡고 있다. 이렇게 그의 화면속에 구성 요소들은 비교적 통일감 있게 점과 선들이 어울려 자기들끼리 화합하고 있다. 그 표현기법은 마치 동양화의 농담에 의해 잘 처리 된 발묵의 효과처럼 동양적 감성의 조용한 미를 보여준다. 특히 그 번짐의 효과와 사각 형태들이 빚어내고 있는 조화는 그가 회화성이라고 불리는 그림속에 감각을 충분히 소화해내고 있음을 뚜렷하게 보이고 있다.

류예지_실루엣_천에 혼합재료_30×75cm×2_2002

그는 이러한 자신의 모든 작업의 체계와 이념을 "생성과 소멸"이라는 용어로 설명하고 있다. 모든 세계가 태어남과 사라짐의 연속이며 진행이라는 것이다. 그가 남기고 있는 짧은 작업노트는 그런 자신의 예술세계를 명료하게 잘 집약 해내고 있다. "세상에 태어나서 처음 눈을 뜨는 순간, 우리는 여러가지 것들과 만나게 된다. 또한 자라나면서, 살아 가면서, 만나고 공유되는 것들은 더욱 늘어만 간다. 마치 거미줄처럼 뒤엉킨 채로... 싫어하는 것도 생겨나고, 좋아하는 것도 생겨나고, 싫어하는 사람, 좋아하는 사람... 여러 유형의 것들을 알아가며 공유하고, 관계한다. 자신의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이 관계의 형성이 이루어지기도 하며, 때로는 의식적으로 그 관계를 깨뜨려 버리기도 한다. 이러한 소멸과 생성의 관계들을 점과 선으로, 물성들로 또 다른 관계를 형성해 본다. 나와 관계하는 것들은 이렇게 계속되는 수 많은 소멸과 생성의 반복이다."● 말할 것도 없이 그가 삶의 관계 속에서 부닥치고 갖게 되는 이 불가피한 끈들이 예술가에게 있어서는 하나의 선과 점이 되어 화면에서 부활하고 있다는 것이다. 다소 도식적인 과정으로 보여지기도 하지만 그의 이런 세상과의 인연과 만남은 숙명적일 수 밖에 없다. 그는 이 사람들과의 관계를 화면 속에서 끄집어 내어 우리들에게 그의 세상 보는 법을 들려준다. 그러나 그의 부활은 속삭이듯이 차분하고 낮은 목소리로 이야기 하듯 풀어내고 있다. 그의 이 목소리 속에는 현란한 음색도, 눈부신 색채도 열광하는 색들의 향연이 모두 잠들어 있다.

류예지_관계02220_천에 혼합재료_100×100×12cm_2002

균일하게 무채색 톤으로 뒤덮힌 저 흰색과 검은 빛 그리고 회색빛 인생이 아닌가? 그 부활은 다시 사람들이 만나고 헤어지고 탄생하는 순환을 의미하며 그것은 인간 삶의 본질로 여겨진다.그는 인간관계의 삶의 양태를 화면 속에서 아주 잘 다양한 표정으로 엮어내고 있다. 그것도 조형적으로 먹과 아크릴로, 수묵 농담의 효과를 격대화 시키는가 하면, 나무나 종이, 천 등 재료를 사용하면서 꼭지점을 향하여 부단한 실험 세계를 멈추지 않고 있다. ● 한 작품 작품마다 그 분리 된 표현 체계들이 새롭게 구축하며 아우르는 통합적 시각은 그의 조형감각이 얼마나 다양하며 사려 깊은 기술에서 튀어나오고 있는지를 느끼게 해준다. 예를 들면 「움직임」이라는 작품 속에서 그는 한 곳에 머무르지 않고 부단하게 변화를 추구하는 인간들의 움직임을 읽어낸다. 「눈이 왔다」라는 작품 속에서는 눈이 내려 세상을 하얗게 뒤덮은 모습을 통해서 인간에게 존재하는 흔적과 소멸의 관계를 풍경으로 대비시켜 감추어진 이미지를 창조한다. 우리는 여기서 숨겨져 있는 그의 내적인 진실을 본다. 그것은 곧 인간 삶의 만남과 헤어짐의 윤회적인 시각이다.

류예지_48개 '원'들의 관계_천에 혼합재료_130×130cm_2002

만난다는 것은 헤어짐을 필연적으로 수반한다. 삶이 있으면 죽음이 있듯이 이처럼 류예지는 그 생성과 소멸을 통하여 삶의 다양한 파노라마를 수놓고 있다. 여기서 작가는 그 삶의 중심 가운데서 언제나 작품과 함께 여행하고 있다. 그러나 인간의 여행이 끝이 없듯이 그의 여행도 끝이 없다. 그러나 그것은 제들마이어가 작품은 만들어져 작가의 손을 떠나면 무한한 여행길에 오른다고 한것과 동일하다. ● 그 여행에서 우리는 또 다시 새롭고 낯선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그래서 생성과 소멸은 둘이 아니고 하나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다시 헤어짐이란 만남을 기약하지 않는가? 인간 삶이란 만남과 헤어짐의 질서와 섭리 속에서 영원히 교차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 김종근

Vol.20020503a | 류예지展 / RYUYEJI / 柳叡志 / painting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