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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lection, Quotation, Design, Art Work & Direction Image, Text, Object & Installation
금호미술관 서울 종로구 사간동 78번지 Tel. 02_720_5114
가벼움에서 무거움으로, 진지함에서 숭고함으로, 버거움에서 유희로 1 ● Collection & Quotation & Design & Art Work & Direction ● Collector & Quoter & Designer & Artist & Director - 전시의 제목으로부터 이야기를 시작해보자. 본 제와 부제사이에 어떤 연관성이? 그 제목들은 개인전의 형식을 빌어 이번 전시에 임하는 나의 입장과 태도와 작업의 방향이 어떤 것인지를 암시한다네. 이번에 나는 독창성이나 창조성의 신화를 먹고사는 '작가'로서보다는 '인용자'나 '수집가(채집가)' 혹은 '연출자'의 입장으로 전시를 준비했네. ● 당신 말대로라면 이번 전시에서 당신은 작가임을 일정정도 유보한 듯한데, 가능한 일인가? 당신은 분명 작가다. 혹시 앞으로도 그런 태도를 지속할 요량인가? 그 의미가 좀 강하게 전달된 듯한데, 물론 앞으로 내가 작가임을 접을 뜻은 전혀 없다네. 다만 이번 전시에 임하는 내 입장이 종전과는 다소 다른 방향으로 설정되었던 고로 그에 걸맞을 법한 명칭들을 사용해본 것이야. 실제로 작업개념을 잡는 단계로부터 작업이 전개되어 완료되는 과정 내내 그런 관점이 지속적으로 작용하였지. 나는 제목을 통해서 그 점을 솔직히 부각시키고, 나아가 그런 개념과 방식을 의미 있는 일로 견인해보고 싶은 욕심도 있었다네. ● 그렇다면 제목으로 제시된 단어들이 이번 작업을 이해하는 출발점이 되겠군? 헌데 현재의 미술흐름을 보면, 전과는 사뭇 다른 양상들이 감지된다. 종전의 작가중심미술에서 요즘은 기획(인)중심의 미술 혹은 비평중심의 미술로 전이되고 있다는 인상을 주지. 그러면서 작가의 像도 달라지고 있는 듯한데, 그런 분위기로 당신의 그 태도를 파악해볼 수 있을까? 나도 당신처럼 그 점을 많이 느낀다. 물론 관점에 따라 그런 현상을 다르게 대할 수 있겠지만, 전시의 운영과 작가들의 참여방식에서 적잖은 변화들이 엿보임이 사실이야. 작업실에서 묵묵히 제작한 작품들을 잘 정돈하여 보여주는 정도에 그치지 않고, 미술의 확장과 재 정의를 노린 도전적인 실험들이 심심찮게 목격되고 있지. 물론 미술의 경계에 대한 담론과 실천 사이에서 파생된 긴장이 비단 어제오늘의 일만은 아니지만, 디지털 등 매체의 다변화로 인한 미술환경의 급변이 그런 현상을 더욱 부채질하고 있는 듯해. 아울러 거기에서 '기획'이 그런 활동들의 중심으로 올라서고 있는 점도 특징적인 현상이지. 한편 종전보다 작가들이 말도 참 많이 하는 것 같다. 거의 비평수준이거나 때로는 논지를 그 이상으로 첨예하게 전개하는 사람들도 등장했어. 왜 그 작업과 비평을 겸하는 사람들 있잖아. 뭐 그런 현상은 문화의 지형이 많이 달라진 가운데 이제 우리미술이 그런 양상을 절대 필요로 하는 지점에 섰기 때문일 게고, 나도 그것을 긍정적으로 대하고 있긴 하지만, 그런 만큼 예술하기가 수월찮아졌다는 걱정이 들 때도 한 두 번이 아니라네. ● 하하! 맞아. 그런 점이 있지. 내가 봐도 그들이 정말 놀라워요. 실상 자기작업에 대해 말과 글을 곧잘 하는 사람들이 적진 않겠지만, 자기논지를 술술 펼치는 그들의 출중한 언어사냥능력이 마냥 존경스러울 따름이야. 하여간 이번에 나는 작가적 입장을 축소시킨 대신 그 빈곳을 '인용자'나 '수집가'의 입장으로 채워보기로 했어. 구체적인 계기는 이래요. 내 작업 안에서 별로 시도해본 적이 없는 '열린 미술' 혹은 '열리기 위한 미술'을 이참에 많이 생각해봤어. 잘 될지 확신할 수는 없었지만, 내 자신을 포함하여 이제까지 작업을 하면서 가둬놨던 것들-하다보니 그리 되었지만-을 풀어서 객관화시켜봄과 아울러 다른 요소-관람자, 맥락-들이 개입할 여지를 지닌 그런 방향의 작업을 그려본 것이지. 그래서 금호미술관에서 전시를 하게된 만큼 기왕이면 '미술관'을 작업기획의 출발점으로 삼아 그 장소성의 맥락을 작업에 도입하고 또 부여해보기로 한 것이라네.
● 열린 미술! 음 참으로 쉽지 않은 목표를 세웠구나. 그러면 당신작업에서 '인용'과 '수집'의 대상은 무엇인가? 미술관 맥락에서 내가 주안점을 두기로 한 것은 바로 Collection(이하'수집')이야. 그것은 미술관이 수행하는 가장 중요한 기능이자 권리이기도 하지. 당신도 잘 아는 바, 미술관의 사회적 의미는 실로 크다. 미술문화를 증진시키고, 미술의 사회교육기능을 담당하고, 미술판단척도의 마련에 크게 일조하고, 미술사구성의 지표들을 재구성하거나 새롭게 창출하고, 미술기록자료와 작품의 수집과 보존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지. 거기에서 '수집'은 아마 그러한 제반기능들의 상징적 표식행위임과 다름없을 게야. 한편으론 그 과정에서 일정정도로 시장기능-우리에겐 미미하지만-이 행사되기도 하는데, 아무튼 미술자료의 축적으로부터 지식과 개념들의 생산으로 이어지는 요로에 위치한 '수집'은 미술관의 중요한 존재가치임이 분명해. 또한 그것은 해당미술관의 이념과 기호가 엄밀하게 적용될 소지가 많은 영역일진데, 그렇게 '수집'은 미술관이 행사하는 정치 문화적 권능의 축이랄 수 있는 거지. ● 잠깐! 당신이 설정한 '수집'의 범주가 상당히 넓은 것 같다? 작품수집이상의 차원으로 그 의미를 확장시킨 듯한데... 맞아. 나는 미술관이 수행하고 행사하는 기능과 권리들 모두가 결국 '수집'의 의미와 연계되어 있다고 생각한다네. 물론 '작품의 수집'이 겉으로는 가장 중요해 보이지. 미술관이 그 위상을 획득하는 과정에서도 매우 요긴한 판단지표로서 작용됨은 자명할 테니까. 보라! 로댕의 원작을 소장하고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모 갤러리가 누리는 신화를... 국립현대미술관은 두말할 나위도 없겠지? 허나 나는 '수집'의 범주를 비단 작품뿐만이 아니라 그곳에서 여는 각 종 전시에 '일시적으로 채집된' 작품들과 그 기획에 의미를 부여하고 전파하기 위해 '동원된 개념과 이념'들까지 그리고 그러한 일련의 과정을 통하여 미술관이 얻게되는 '위상 이미지'로부터 향후 미술제도에 행사하는 '영향력'과 '사회 문화적 효과'까지를 포함한 맥락들을 다 그 범주에 넣어보고 싶다네. 그렇게 되면, 거기에서 자연 '언어의 의미'가 매우 중요하게 부각될 수밖에 없을 게야. 그런 맥락이 구성되고 유통되고 조직화됨에 있어서 결국 '언어'가 그 핵심역할을 맡게 될 테니까 말야. 그래서 이번 전시에서 나는 그렇게 넓게 해석된 미술관의 '수집'에 얽힌 맥락의 중추인 '언어'를 작업의 주 대상으로 삼고, 그와 관련된 텍스트자료들을 채집하여 작업에 적극 활용한다는 그런 개념을 설정한 것이란다. 그런 고로 기획전시평문들이 작업의 소스로 많이 활용되어졌는데, Quotation(이하 '인용')개념도 그런 과정 속에서 자연스럽게 작업에 도입되었지. 기실 '인용'은 언어의 유통과정에서 필연 아니겠어? ● 인용? 음, '차용'의 문제로도 제기될 수 있겠군? 얘기를 들어보니까 당신의 작업에 임하는 입장과 그 방식이 포스트모더니즘의 어떤 경향들과 연결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글쎄? 내게는 그 얘기가 그리 반갑지만은 않네. 평소 나는 그런 식의 사고를 별로 긍정하지 않기 때문이지. 일부이론들이 어떤 현상을 분석하는 과정에서 자꾸 뭔 가로 연계시켜 규정하려는 습성들을 적잖이 보여주곤 하는데, 나는 그런 태도를 좋아하지 않는 편이야. 물론 어떤 현상을 객관적으로 짚어서 그 의미와 가치를 당대맥락의 큰 틀 안에 올바로 자리 매김하려는 노력들은 극구 인정해야지. 허나 분석대상을 객관성 혹은 보편성의 논리를 지나치게 적용하여 재단하거나 이론의 틀에 경도되거나 어떤 습관에만 의존할 경우, 상황과 맥락을 발생시킨 요체의 내밀한 동기와 복합적인 국면들을 간과할 우를 범할지도 모른다는 점이야. 또 그런 이론적 용례들의 빈번한 사용자체가 불쾌한 점도 없진 않고. 과연 언제쯤 우리사연을 우리의 상황으로부터 우러나온 우리의 말과 개념으로 속 시원하게 얘기해볼 수 있을까?
● 후후. 사대와 국수의 틈바구니에서의 질식? 음 그래도 우리를 분석하는 데에 유익한 선진개념들은 긍정의 시각으로 받아들여야 하지 않을까? 그러면 당신자신의 얘기를 더 들어봐야 되겠군? 내가 이번에 펼치려는 작업도 어떤 이론과 이념들의 영향을 받아서 그렇게 했다기보다는, 올해로 작품활동 11년째를 맞는 가운데 그 시간의 무게가 나로 하여금 그런 방향으로 유도했다는 점을 먼저 말하고 싶네. 그러니까 이제까지 치른 개인전의 방식을 벗어나 작품과 나 자신을 '어떻게 하면 열어놓을 수가 있을까'에 대한 고민이 바로 그 무게가 내게 안겨준 선물이었던 셈이지. 그래서 그 '열음'의 단초를 전시할 미술관의 맥락에서 찾았고, 거기에서 얻어진 텍스트자료나 이미지들에 '환경'의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 설치감각으로 다스려 재구성해 놓았네. 그렇게 해서 '열음'의 종지부는 연출된 공간의 작품들 속으로 들어가는 관람객들의 몫으로 남겨 놓았지. 그렇게 이번 작업은 바로 '나'로부터 비롯되었네. 한편 '인용'이라는 의미도 그리 간단치만은 않은 듯하이. '인용'은 어떤 책임을 수반하는 문제이기도 한데, 특히 학제적 제도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인용'은 어떤 윤리의식-잠시 '표절'을 보면-을 바탕에 깐 객관성과 합리성의 인증절차이자 언어의 권위획득과도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지. 그렇다면 '인용'은 언어를 매개로 한 '힘' 혹은 '권력'의 의미로까지 연계될 수밖에 없을 터인데.....게다가 어떤 언어 혹은 문맥을 '선택함'은 곧 선택주체의 이념과도 직결되는 일 아니겠어? 그런데 나는 그 부분에 있어서는 좀 부드러운 입장을 취하기로 했다네. 내 논지를 굳히기 위해 문맥을 엄선하기보다는 그냥 스쳐지나가듯 인용해서, 되도록 내 입장이 개입되지 않게, 가능하면 원문에 손상을 가하지 않은 채로, 마치 무심한 듯 그냥 던져놓는 그런 방식을 취해보기로 한 것이지. 뭐 굳이 말하자면, 그런 식으로 '인용' 본래의 의미에 약간의 거스르기를 시도해봤다고나 할 수 있을까? ● 그러면 당신의 금호전시평문 인용작업은 전투적이고 노골적인 정치적 책략의 성질이 아닌 것으로 받아들이기로 하세. 그런데 혹시 당신이 원한 그 '열린 작업'이 굳이 미술관에서 시도되었을 때, 피치 못하게 많은 한계를 노정할 것이란 점을 예상해보진 않았는가? 좋은 질문이야! 사실 그 질문은 작가들에게 늘 따라다니는 고민거리이지. 요즘은 매체환경의 변화가 그 가능성을 높여주고 있으나, 아직은 공식적인 미술유통구조 외에 작업을 마음껏 펼칠 공간이 그리 충분치 않음은 작가들에게 큰 불만거리임이 틀림없어. 게다가 현 미술제도의 틀 안에서 그리 녹녹치 않은 입지마련의 문제도 작가들을 고단하게 하는 괴로움인 것이야. 그리고 본시 미술관은 소위 이성과 규범의 역사와 밀접한 제도산물의 전형 아니겠어? 비교적 단단한 편이지. 그런 만큼 나도 운신의 폭이 좁아질 수밖에 없겠지. 솔직히 말해서 나는 작업의 시작단계부터 그 점을 미리 감수하고 들어갔었어. 아니 포용하고 들어갔다고 해야 더 적절할까? 난 '제도'라고 해서 다 부정적으로 볼 이유는 없다고 봐. 궁할 땐 기존의 것이라도 자알 활용해야함이 평소 나의 소신(?)이기도 해. 어쨌든 이 시도가 분명 내게 의미 있음을 말하고 싶어. 거의 10년 이상 내 의식 속에 깃들어있던 '창작신화의 망령'을 축소시켜보는 일! 잘하면 이번 시도를 계기로 혹시 작업에 대한 어떤 긍정적인 전망을 챙길 수도 있을 지 그 누가 알겠어? ● 음! 잘되기를 바라네. 그런데 아무리 창작자의 입장을 일정부분 버렸다 해도, 당신개인전에 他작가의 작품을 사용한 점은 문제의 소지가 있을 법한데? 우선 작품의 사용을 흔쾌히 허락한 4人의 작가(성능경, 공성훈, 한계륜, 최우람, 김진미)분들에게 심심한 감사를 드리고 싶네. 내겐 참으로 고마운 일이었지. 하지만 이번이 처음은 아니야. 특히 성능경 님과는 공동작업을 두어 번 정도 해봤고, 그 작품들을 함께 소유함은 물론 서로의 전시에 번갈아 가며 사용할 정도로 의기투합한 적이 있었지. 공성훈氏, 한계륜氏, 최우람氏, 김진미氏는 이번이 처음인데, 그 작가들의 비디오나 설치작품 중의 일부가 내 전시개념에 잘 맞는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정중히 요청하여 설치허락을 받아낸 것이야. 그러니까 마치 미술관이 하는 것처럼 내가 다른 작가들의 작품들을 '수집'하여 내 전시에 함께 구성하게 된 셈이지. 보통 작가들은 他작가들의 작업개념과 작품에 서린 감각 등에 영향을 받아 그것들을 수용하거나 때로는 곁눈질해가며 곧잘 차용하곤 한단다. 그런 면에서 이번에 내가 他작가들의 작품을 사용하는 것은 자료로서의 '승인된 인용'인 동시에 이미 완성된 독자적인 작품들을 '작업의 재료로서 수집'한다는 두 개의 의미가 중첩된 그런 행위로 볼 수 있지 않겠어?
가벼움에서 무거움으로, 진지함에서 숭고함으로, 버거움에서 유희로 2 ● Collector & Quoter & Designer & Artist & Director ● Collection & Quotation & Design & Art Work & Direction - 전시가 끝나면 작품들이 다시 그 작가들에게 반환되는 거니? 물론이지. 그러니까 '소장'을 전제로 하지 않은 '수집'인 셈이야. 그것을 '감각과 개념의 공유'라고 할 수 있을까? 하여간 그들이 요청하면, 나도 언제든지 내 작품이 인용되고 수집되는 데에 대해 주저하지 않을 생각이라네. ● 어쨌든 개인전의 관례로 보면 당신의 그런 시도는 좀 별난 경우에 속하네? 완전한 공동작업이 아닌데도... 그러면 이번 전시에서 나는 그 시도를 계기로 내 입지를 '기획자'로까지 잠시 넓혀본 셈이 되는 건가? 물론 '기획'은 어떤 성격의 전시에서나 필연적으로 수반되는 것이긴 하지만 말이야. 호호호. ● 생각은 자유겠지? 탑 모형과 Artextopia라는 명칭의 건축적 장식물이 이채롭군? 다소 키치적인 분위기야. 바닥전면에 깔아놓은 로고그램 이미지들도 그렇고. 어떤 의미들이 내포되어 있는가? 그간 금호미술관에서 유통시킨 기획전시텍스트자료들을 살펴보면서 내가 받은 인상은 '대단하다'였어. 자기주관의 옹호를 위한 그런 말들이 어떻게 떠올랐고, 어디에서 그런 말들을 끌어왔으며, 과연 그런 신념을 가질 만큼 저자들이 삶을 그렇게 투철하게 살았던 것인지 내겐 그저 놀라울 따름이었어. 좀 투박한 느낌도 없진 않았으나 그 단호한 입장과 시대진단들, 미술과 문화에 대한 기민한 평가와 분석, 공격적 견해와 비장한 사명감 등을 드러내기 위한 어휘구사력은 내게 신기에 가까워 보일 정도였지. 또 시간의 흐름에 따라 조금씩 달라지는 논조의 분위기도 꽤 흥미로웠어. 그 모든 것들을 바로 '언어'가 실어 나르고 있었다니..... 그래서 나는 그것들을 '신화 쌓기'로 명명해보기로 했네. 그리고 상징적인 대체물로서 탑 모형을 구상하게 되었지. 내게 Artextopia 혹은 Storehouse(저장고)라는 명칭은 그런 신화들의 처소로서 언어에 의해 구축된 각 종 자료들이 광범위하게 축적되어 있는 어떤 가상의 세계를 가리킨다네. 그리고 바닥에 깔린 미술관의 로고그램(이하 '로고')들은 그런 신화를 만들고 쌓아 가는 '場' 혹은 '제도'를 상징하는 기표라 할 수 있지.
● 잠깐! 그렇다면 바닥전면에 깔린 반전된 문양들은 금호미술관과 모기업의 공용로고이고 배열된 입방체들은 국립현대미술관의 로고일텐데, 음 사기업과 국가공공기관의 로고활용이라... 혹시 그런 측면으로 어떤 정치적인 언급을 노린 것은 아닌가? 응당한 질문이지만, 나는 위에서 로고사용과 관련하여 언급한 것 이상으로의 의미확장은 꾀하지 않기로 했어. 물론 작업당시 당신이 지적한 맥락을 의식하지 않은 것은 아니야. 분명 '수집'이라는 작업개념으로부터 로고이미지활용의 아이디어는 시작되었고, 그런 정도의 의미로 작업에 활용했다손 치더라도, 보는 사람의 시각에 따라서는 애초 내가 의도했던 것보다 그 의미를 더 무겁게 부여할 수도 있겠다는 점을 예상했었지. 허나 미술관맥락의 작업과 관련하여 그것들이 관람객에게 '환경'의 의미정도를 상기시키는 역할만으로도 내겐 충분했어. 사실 로고이미지를 매개로 한 정치적 사고의 종점은 거의 뻔하지 않겠는가? 내가 굳이 그 부분을 건드리지 않더라도 이미 결론이 나있는 셈이나 마찬가지지. 한편으로는 금호미술관에서 개인전시를 하게 된 만큼, 그런 예민한 부분까지를 들춰냄이 내겐 예의가 아니라고 여겨지기도 했고..... 에! 그러니까 말야, 그 점은 당신의 상상력에 맡기는 편이 더 낫겠어. 한편 로고이미지들의 사용에는 이번 전시에 함께 연출된 대중문화맥락과의 조형적인 연결성과 의미적인 연관성을 지탱해주는 차원의 역할과 그 시각효과를 염두에 둔 점이 있었지. 하여간 관람객에게 그런 특정한 기호들로 둘러싸인 미술제도 안에서 언어를 매개로 한 '신화와 이미지 쌓기'가 줄기차게 진행되었고 또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는 점을 예시하는 정도의 상징물로서 받아들여진다면, 나는 만족해. ● 그러면 그런 생각과 작업들로 이번 전시에 임하는 당신의 명확한 입장이나 이념은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어려운 질문이구나! 그런 질문 좀 하지 않을 수 없니? 글쎄... 나도 그것을 뭐라고 한 마디로 답변할 수는 없다네. 어떤 정치적 입장을 명백하게 표방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그런 양상들을 마치 '풍경처럼' 대하는... 이를테면 이번 전시를 통해 그런 맥락들에 대한 '담담한 관찰자'로서의 입장을 공간에 시각화시켜보고 있다는 정도의 말밖에 할 수가 없네 그려. 어떤 개념이나 이념의 명확한 정립과 실천을 작업의 최우선 가치로 여김이 현 미술의 규범 아닌 규범이지. 실상 그런 주문이 작가들에게는 제일 부담스러울 진데, 현재 나는 그런 풍토가 부과하는 짐으로부터 비켜선 채로 어떤 자유로움을 은연중 더 즐기고 있는 지도 모르겠네. 어쨌든 현재 내게는 '담담한 관찰자'의 입장이 더 좋다네. 반대로 보면, 그것도 내 작업에서 나를 비우거나 객관화시키는 한 방편이 될 수도 있지 않겠니? ● 글쎄다. 그것이 분명하지 않을 때에는....물론 나는 '모호함'이 그리 부정적인 것은 아니라고 보지만, 그래도.... 작가와 예술이 언제나 명확한 입장과 이념을 가질 필요는 없지. 어때? 당신은 예술가가 마치 정답 같은 명확한 개념을 가져야 하고 또 작품에 그것을 명징하게 드러내야 한다고 여기는가? ● 그런 편이다. 물론 그래야 된다는 어떤 절대규칙이 있는 것은 아니지. 하지만 되도록 그렇게 해야하지 않겠어? 예술이 현실로부터 출발한다고 가정할 때, 나는 말야 작가가 현실상황에 대한 모든 답과 결론을 내려서 작업에 담아내야 하는 의무를 가진 존재만은 아니라고 보네. 사실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기도 하고. 왜냐하면 현실은 늘 유동적이며, 덩달아 우리의 삶과 감각과 감정도 어느 것 하나 고정되지 않은 채로 꿈틀대고 분열되기 때문이지. 오히려 그런 순간과 변화들에 더 민감하고 또 충실해야 하지 않을까? 작가는 그저 어떤 방향정도를 제시할 수 있을 뿐인 그런 존재랄까....공을 그냥 툭 던져놓는 것처럼 말이지. 그 다음은 그 공을 보는 사람들 개개인의 자유로운 판단에 맡겨두는 편이 더 낫지 않을까? 물론 그런 주문의 타당성을 다 부인하는 것은 아니지만, 나는 작가가 뚜렷한 신념과 태도와 이념을 갖춰야한다고 요구하는 것 자체가 바로 작가를 옭아매는 또 하나의 '신화'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네. 한편 로고입체작업에서 분명한 점은 하나 있었네. 거기에는 언어를 매개로 한 신화 쌓기의 상징이라는 뜻 외에 순수성과 기능성의 충돌로 빚어지는 미술의 해묵은 문맥들을 함축시켜보려는 의도도 함께 개입되었지. 物과 실재에의 집착 혹은 강박에 대한 얌전한 문제제기랄까....아니면 미술에 있어서 '형태'와 '기능'과 '심미'의 유기적인 통합을 향한 작은 실험이라고나 해 볼까? 어때? 그 박스들! 앉아서 쉬기에 적당하고 또 예뻐 보이잖니? ● 음 '형태'와 '기능'의 분리! 잠시 그런 시기가 있었으나 미술이 결코 순수해질 수 없다는 점은 이제 누구나 다 인정하는 바일 게야. 사실 원래부터 그러했었고...그런데 당신은 술을 무척 좋아하나 봐? 당신 말처럼 입장을 자유로이 하니 술이 많이 당기나 보지? 하기야 예술가치고 술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겠지? 하하하! 아니야. 나는 술을 잘 못해요. 소주 두어 잔만 마셔도 얼굴이 홍당무가 된다네. 하하!
● 그래? 그건 나도 마찬가지야. 술 석 잔이면 얼굴이 검붉은 핏덩이로 변하고야말지. 호호호! 우리가 그런 면에선 동병상련이로구만. 그래도 술을 좋아하는 작가들이 워낙 많으니까. 서로 어울릴 때, 그냥 구색정도는 맞춰보려고 노력은 하는 편이지. 음성학적 측면으로, 듣기에 따라서는 '藝술'도 '술' 아니겠어? 사실 그 작품은 그런 단순한 아이디어로부터 나와서 이번 전시개념과 만났지. 사실 좀 장난을 쳐봤어. 기존의 Art System과 Art History에 대해 유머러스한 풍자를 가볍게 시도해본 것이라네. 어때? 술맛이 어떤지 궁금하잖니? 허나 그 술들을 나 몰래 마시진 말게나. 절대로! 곧바로 병원신세 질걸? 하하하! ● 당신의 프로필과 당신이 겪고있는 듯한 실존적 상황을 시니컬하게 정리한 텍스트를 담은 현수막들은 무엇인가? 일견 '수집'과 '인용'의 전시주제와는 성격이 좀 다른 듯한데 말야. 음, 그 점은 나도 인정해. 하지만 예술이 삶과 아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음은 자명하지. 물론 '삶'이라는 영역과 범주가 해석에 따라 그 진폭이 달라지겠지만, 내가 현수막작업들을 통해서 굳이 드러내고 싶었던 것은 작가적 삶의 이면에 서린 실제의 삶이 그리 녹녹치 않다는 점이었어. 그래서 나를 대상 삼아 작가적 삶의 신화와 욕망으로서의 경력 쌓기를 유머러스하게 재구성하거나, 그 속내 즉 삶에 얽힌 사연들의 일부를 담은 텍스트작업을 통해 삶과 예술사이의 긴장과 분열의 표리를 노출시켜보기로 한 것이지. 예술신화 이면의 삶의 죽음.....어쨌든 예술과 삶은 서로 애증의 관계가 아닌가 싶어. 그런 면에서 그 작업은 신화 쌓기와 관련된 다른 텍스트작업들과 상대적인 의미로서 서로 섞이게 된 셈이네 그려. 하여간 이 시대의 예술가란 그 존재자체가 모순과 분열덩어리인 것만은 분명해 보여. 뭐 자본주의시스템이 예술가에게 부여한 어쩔 수 없는 숙명이기도 하겠지. 까놓고 보면, 결국 예술도 다 '먹고살기 위해서' 하는 것 아니겠어? 너무 비관적인 표현인가? 허나 이 시점에서 내 자신을 다시 돌아보더라도, 현재 내게는 예술을 한다는 것 자체가 점점 더 '생존의 문제'와 직결된 행위로 전이되고 있음을 나도 부인키 어렵다는 점이야. 헉! 내가 여기에서 또 한번 망가지고 있구나. 허허. ● 가슴이 저려지려고 해. 음 그래도 꿋꿋하게 살아야지! 지존의 정신으로! 오호! 그래 지존의 정신! 참으로 멋진 말이다. 가슴에 찌릿 와 닿는 구만! 그 말이 바로 예술이네 그려.
● 풋풋풋! 이번 전시의 큰 특징은 한 공간에서 두 가지 내용이 서로 얽혀있다는 점일 게다. 텍스트중심의 고급문화맥락과 이미지중심의 대중문화맥락이 함께 섞인 채로 연출되어 있고, 임시저장실(Storeroom)이라는 별도의 공간도 따로 설정되어 있는데, 어쨌든 어울리기 쉽지 않은 성질의 것들이 한 자리에서 복잡하게 중첩되고 있구만? 사실 내가 두 내용을 한 공간에 섞어서 구성해본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야. 비록 미약했지만, 지난해 초여름의 개인전에서도 시도해봤었지. 내게 이번 전시는 그 시도를 좀 더 확장시켜보는 場이나 마찬가지야. 소위 고급문화와 저급문화(이하 대중문화)의 대립 혹은 경계 허물기의 담론과 실천은 20세기미술의 전반에 걸쳐서 제기된 논란거리였지. 비록 우리미술은 그 양과 질의 깊이가 서구에 비해 부족한 점은 있으나, 1980년대 이후로는 그런 담론의 형성과 함께 실천적인 실험들이 많이 늘어났다. 앞으로도 그런 시도들이 더 많이 전개될 것으로 예상되는데, 특히 요즘의 30대 초반아래의 젊은이들은 대중소비문화의 혜택을 그나마 진하게 누리면서 성장하고 있는 세대들이 아닌가? 그런 그들에게 기대를 걸어 볼만하지. 나의 이번 시도도 바로 그런 큰 흐름의 연장선상으로 보면 큰 무리가 없을 것으로 판단되네. 단 '수집'과 '인용'이라는 전시주제에 비춰봤을 때에 과연 그 시도가 같이 어울릴 수 있는 지가 관건이겠는데, 나는 그 문제를 이렇게 봐주었으면 하네. 우선 내 입장은 우리의 삶 혹은 현대의 삶 자체가 대중문화와 밀접하게 연계된 매우 복합적인 양태의 것이라는 점일세. 실상 대중문화는 현재 우리가 몸담고 있는 고급문화의 영역보다도 훨씬 더 밑바닥으로부터 우리의 삶에 영향을 주고 또 삶을 규정짓고 있지. 그 핵심에 바로 '이미지'가 서 있는 것 아니겠어? 나는 우리 삶의 그런 측면의 실상을 작업에서 굳이 배제시킬 필요가 없다고 여겼네. 내가 이번 전시의 작업을 두 맥락의 중첩으로 끌고 간 주요한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지. 그리하여 고급문화도 결국 그렇게 얽히고 설킨 삶의 전체에서 한치도 벗어나 있지 않다는 점을 부각시키려 했다고나 할까?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두 맥락이 섞여지는 과정에서 미술관로고들은 바로 그런 시도의 연결 고리로 사용되었지. 게다가 나는 한술 더 떠 대중문화를 대상으로 한 작업을 전시공간의 중심부를 점하도록 위치시켜서 연출했네. 미술이상으로 욕망을 갈구하고 신화를 발산하는 도시의 구조물들, 고급과 저급의 감각이 얄밉도록 절묘하게 교차하는 '造花'시리즈, 오늘날 전쟁터로 비유되는 '신체이미지'에 텍스트를 부가하여 연출한 작품들이 바로 그것이지. 그 뒤로 다시 고급문화의 맥락으로부터 수집 편집된 내용의 작품들이 설치된 공간으로서 임시저장실을 설정했어. 그 결과 내 전시를 보러온 관람자들은 동선을 따라 '고급-저급(대중)-고급-저급(대중)-고급문화'의 맥락 순으로 연출된 공간 속을 이리 저리 옮겨다닐 수 있게 된 것이야. 소위 문화의 '가로지르기'를 경험할 수 있다고나 할까? 하하! 뭐 의도한 대로 잘 될지 모르겠지만... ● 얘기 잘 들었네. 좋은 성과가 있기를 바라네. 앞으로 보다 더 진전된 작업으로 거듭나기를 기원하고 또 건투를 비네. ■ 이강우
P.S_이 글은 2월 중순경에 쓰여졌습니다. 그 후로 작업에 일정정도의 변모가 있었습니다. 그 내용들은 전시가 끝난 후 정리하여 다시 자료화시킬 예정입니다. 그리고 영상편집과 연출기자재사용에 많은 도움을 주신 일주아트하우스와 인포아트코리아 관계자분 들에게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 Collection ● 자료_금호미술관 역대기획전(1998-2000, 개인전 제외)들의 기획 및 비평문 자료들 ● 이미지_금호미술관 & 국립현대미술관 로고, 기획전 도록 편집감각들 ● 오브제, 기성품재료_금호미술관의 조각받침대 27개, 건축장식용 몰딩 자재들, 거울, 아크릴 등 ● 他작가 작품들_ 성능경(퍼포먼스, 사진-이강우)_ 공성훈(비디오-전구를 입에 물고 중얼거리기)_ 한계륜(비디오-말)_ 최우람(입체설치-디지털 배양기)_ 김진미(영상편집연출, 텍스트-이강우)
■ Quotation ● 강성원_작가 김용익과 한국 모더니즘미술_김용익展, 1997.3.25~4.12 ● 박영택_자본주의적 문화와 삶의 위기에 맞선 미술의 모색_오늘의 삶 오늘의 미술展, 1992.5.12~6.11 ● 박찬경_90년대 속의 70년대-김용익과 한국의 개념적 미술_김용익展, 1997.3.25~4.12 ● 엄혁_어머니의 눈으로 본 여성미술_윤석남展, 1993.6.8-6.14 ● 김형숙_미술, 전시, 미술관_예경출판사, 2001.5 ● 국어 영어사전의 개념풀이 글 ● 금호기획전시 초대서문
■ Direction_ Collecting & Quoting & Planning & Designing & Installing
■ Art Work ● 사진(Photography)_ 造花로부터 추출한 6가지 문맥 ; 6점(Color negative print, 각 40×50cm)_ Image·그대를 향한 獻辭 ; 3점(Cibachrome print, 각 76×100cm)_ 키치·아노미적 풍경 ; 2점(Color negative print, 각 50×60cm)_ 압(뒷)구정동의 집들 A ; 4점(Color negative print, 각 76×100cm)_ 압(뒷)구정동의 집들 B ; 5점(Color negative print, 각 50×60cm)_ Body Scape·Young Persons ; 11점(Slide color print, 각 80×245cm)_ 디지털편집사진들(A4) ● 글쓰기(Text)_ 개인전시 자필 기획문/ Collection on Art Context(미술을 둘러싼 모호하게 복잡하고 복잡하게 모호한 미술문맥에 관하여 1,2,3)/ 말과 거울의 7단 논법/ 언어(신화)쌓기로부터 추출한 말과 예술의 가설(31항목)/ 현수막 텍스트(나를 보여주기, 나를 망가뜨리기)/로고 박스부착 텍스트들/ 造花로부터 추출한 6가지 문맥/花에 대한 단상/ System酒Collection 상표문(6항목)/ Image*그를 향한 獻辭/ 절대 상징자*기표들을 위해 경배!(8항목)/키치*참을 수 없는 감각적 아노미의 촌스러움/ 압(뒷)구정동의 집들/ Mass Cult Area(대중문화구역) 텍스트/ 신체풍경-Young Persons / 거부할 수 없는 삶과 예술의 설(12항목)/ 지극히 근대적인 나/ (Im)memorial-넌센스 이분법적 가 역설/ 저장고(Storehouse & Storeroom)안내문 ● 현수막&문자&상표디자인(김재민, 박소영 도움)_ 다용도박스제작, 그 외 기타 설치작업들
Vol.20020407a | 이강우展 / LEEGANGWOO / 李康雨 / installation.photograph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