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움에 대한 추도가

손국연展 / mixed media   2002_0320 ▶ 2002_0407

손국연_나의 도시-영원함_쿤밍에서의 행위_2002

초대일시_2002_0320_수요일_04:30pm

갤러리 아트사이드 서울 종로구 관훈동 170번지 2,3층 Tel. 02_725_1020 www.artside.net

손국연 작품의 여성적 眞心 ● 미술대학을 졸업한 대부분의 중국화가들과는 상대적으로 손국연은 중국 현대화단에서 아주 독특한 신분을 지니고 있다. 북한 국적을 지니고 있다는 점도 그렇거니와 전문적인 미술 교육을 받지 않았다는 점도 매우 보기 드문 일이다. 손국연과 중국과의 인연은 반세기 전의 조부의 선택에 의해 맺어진 것이다. 1920년 손국연의 부친은 일본에서 유학을 하던 조부를 따라 중국으로 건너 왔으며, 이 곳에서 초등학교, 중학교, 비행전문학교를 졸업하였다. 졸업후 장개석의 개인 비행조종사로 일하면서 항일전쟁 중 중국여인(손국연의 모친)과 결혼하였으며 그 후 계속해서 중국에 남아 있게 된 것이다. 손국연이 그림과 인연을 맺게된 것은 젊은 시절의 사랑의 산물이다. 그녀는 한 화가를 사랑하게 되었으며 그 때부터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여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멈춘 적이 없다. 이제 손국연의 일생 중 가장 가슴속 깊이 새겨졌던 사랑은 이미 心底에 먼지로 덮였으나, 일찍이 그녀의 생명과 떼어놓을 수 없었던 예술은 여전히 쉼 없이 발전해가고 있다. ● 손국연은 거의 20년 동안 작품활동을 해왔으므로 "연로" 화가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초기에 그녀는 정물이나 풍경을 주로 그렸으며, 대부분의 그림들이 손에 잡히는 크고 작은 종이들 위에 그려진 것들로 화면은 곧 방안의 한 모퉁이 이다(「꽃·풍경」, 「석류」, 「풍경이 보이는 방」 등). 손국연은 "아주 오랫동안 나는 정물을 대하면서 그림을 그렸다. 그것은 바로 꽃, 열매, 나뭇잎에 대한 나의 감동과 깨우침에서 우러나온 것이다."라고 말한다. "정물을 대하면서 그림을 그린다"라는 것은 곧 사생을 가리키는 것이고 전문교육을 받지 못한 손국연에게 있어 원래는 아마도 쉽게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였겠지만, 실제 이러한 연유로 인하여 그녀의 사생은 전문적인 사생처럼 그렇게 사실감이 나지 않는다. 원근법이 없어 멀고 가까운 곳의 사물들은 거의 하나의 평면 위에 놓여졌으며 조형감도 없어 꽃이나 사물은 닮은 듯하나 닮지 않고 심지어는 매우 괴상한 모습이다. 색채도 보이는 대로 표현하려하였으나 역시 그녀가 느끼는 애상이 엷게 뒤덮여 있다. 당시 손국연은 매우 감상적인 청춘기에 즈음하여 직업화가가 되겠다는 명확한 생각도 없이 단지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가장 친한 친구에게 하소연하거나, 어떤 때에는 혼자말로 중얼거리는 것과 같은 것이었다. 따라서 이처럼 마음대로 감정을 털어놓는 정물, 풍경은 그녀가 꽃, 열매, 나뭇잎에게 하소연하게되는 그녀 자신의 순간 순간의 심경인 것이다.

손국연__잎의 변형 No.11_캔버스에 유채_150×130cm_1998

이후 몇 년 동안 손국연은 붉고 노란 얼굴의 인물들을 그리기 시작하였다(「조용한 욕망」 시리즈, 「붉은 인체」 등). 이 인물들은 닫혀진 가정에서부터 시끌벅적한 도시의 거리로 걸어나와 조용히 감춰진 욕망을 풀어놓는 이들로, 끊이지 않는 차들의 소음 속에서 현대인의 적막함과 욕망을 표현하려 하고 있다. 초기의 정물풍경화와 비교해보면 이 작품들은 더 이상 마음껏 감정을 털어놓은 것이 아니라, 한 작가로서의 사고와 표현에 대한 갈망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 중 내가 제일 좋아하는 작품은 「붉은 인체」로, 단순한 조형구도와 강렬한 색채의 대비가 강렬한 정서적 대조를 만들어 내고 있다. 화면 앞에는 어두운 녹색을 배경으로 눈을 자극하는 검붉은 인체가 그려져 있으며, 일종의 욕망으로 가득 찬 감정상태를 거세게 대비시키고 있다. 화면 뒤에 보이는 푸른색 배경의 샛노란 풀은 마음 저변에 깔려있는 한 줄기의 부드러우면서도 정다운 심정을 노래처럼 이야기처럼 암시하고 있다.

손국연__잎의 변형 No.18_캔버스에 유채_65×85cm_1998

그러나 자신감과 욕망으로 충만한 것은 손국연의 일반적인 상태가 결코 아니다. 스스로의 내적 감성에 대한 지나친 미련은 이후의 손국연의 예술관념뿐만 아니라 그녀의 생활태도가 되어버렸다. "그림을 그리는 것은 마치 내가 살아가는데 필요한 사랑, 思考, 고독과 마찬가지로, 나의 삶이며 나의 길이며 자신의 길을 향한 것이다"라고 그녀는 말한다. 이 같은 자기 연민으로 인한 연약한 정서상태는 작품을 대하는 그녀의 심경을 단순하게 만들었으나, 오히려 현실생활에 부딪쳐서는 無能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오랜 시간이 흐른 후, 강박에 의한 자폐 상태는 손국연의 삶의 한 부분이 되어 버렸다. 1995년, 나는 쿤밍(昆明)에 있는 손국연의 집을 방문하였다. 너무나 놀라웠던 것은 쿤밍의 청명하며 건조한 대기와 달리 그녀의 방안은 어둡고 눅눅한 기운으로 가득 찼으며, 그녀의 신경질적인 표정과 쿤밍 사람들의 밝고 심지어 나른해 보이기까지 하는 모습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대조를 만들어 내고 있었던 것이다. 나에겐 당시 자폐로 인한 고독감이 홀로 있는 이 여인을 삼켜버린 것처럼 느껴졌다. 1996년 손국연은 지나친 자폐 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해 쿤밍에서 북경으로 올라왔다. 북경의 예술분위기는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새로운 소식들을 손국연에게 전해주었으며 이는 그녀의 예술로 하여금 새로운 사고와 문제에 직면케 해주었다. 손국연은 마치 원점으로 되돌아가 다시 시작하듯 초기의 정물풍경을 다시 그리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사고의 변화에 따라 감정도 변하듯이 그녀는 곧 자신의 내적 정서가 초기의 정물풍경을 그릴 당시와는 완전히 달라졌음을 깨닫게 되었다. 손국연이 자신의 내적 느낌에 따라 그린 「마음의 꽃」시리즈는 완전히 느낌화되어 꽃인 듯 꽃이 아닌 듯 점점 형체가 모호해진 색채의 집합으로, 눈을 자극하는 분홍색은 마치 세균처럼 밖으로 퍼져나가 온 화면에 부패한 듯하면서도 찬란한 생명의 의미를 가득 채우고 있다. 이 그림들도 역시 단순함을 함축하고 있으나 생각 치 못한 곳에서 일종의 전복과 선동의 의미를 드러내고 있다. 이 시리즈를 통해 손국연은 여성 심리와 생명의 체험에 대한 미련을 보여주고 있으며, 동시에 예술언어를 개인화시키는 전환을 시험해보고 있다.

손국연_감미로운 화장대_실물 오브제에 설탕,분유,꿀 등_가변크기 설치_2000

「감미로운 화장대」에서부터 손국연은 관념예술을 이용하여 좀 더 명확하게 여성문제에 관심을 가지는 시도를 하고있다. 「감미로운 화장대」는 일련의 "性別" 어의를 지닌 물품들로, 화장대 및 화장도구, 화장품의 선택은 이곳이 바로 의심할 여지없는 여성 공간이라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다. 살짝 열려진 상자문과 서랍에서 새어나오는 매혹적인 분홍색 불빛은 이러한 여성 공간에 은밀한 색채를 덧칠해준다. 그러나 머리를 내밀어 드려다 보면 상자와 서랍 안의 물건들 즉 온전치 않은 장난감, 날짜가 적히지 않은 연하장, 내력을 알 수 없는 머리카락 등은 도무지 '사리'에 맞지 않다. 이 물건들 하나하나는 마치 연관성 없는 줄거리를 지닌 이야기와 같이 모두 모호한 뜻을 내포하고 있다. 그러나 이 작품의 가장 중요한 언어 부호는 바로 '하얀 설탕'의 선택과 사용이다. 손국연은 설탕이 지니는 속성인 '감미로움'을 이용하여 세심하게 꾸며진 여성의 은밀한 공간을 온통 뒤덮어 버렸다. 또한 하얀 설탕은 마치 눈과 같은 시각적 효과를 연출하여, 순결한 의미까지 더해준다. 게다가 온 방안에 번져있는 달콤한 향수 냄새로 인해, 이 여성의 은밀한 공간은 시·후각적으로 假想의 달콤함과 조작된 식욕을 만들어 내고 있으며 바로 이러한 느낌은 여성의 은밀한 공간이 지니는 보편적이며 정확한 상징 의미인 것이다. 하얀 설탕과 향수라는 두 가지 언어부호의 사용은 참으로 절묘한 것이 아닐 수 없다.

손국연_영원한 달콤함_실물 오브제에 설탕,꿀,촛불 등_가변크기 설치_2001

나는 여성의 아름다움이나 감미로움에 대한 미련과 갈망이 선천적으로 타고난 특성인지 아니면 오랜 남성사회의 규범에서 나온 것인지 모르겠다. 그러나 대다수의 여성들은 감미로운 느낌을 만들어내는 데 대단한 재능을 지니고 있다. 여성은 자신들의 생활 특히 감정과 관련된 생활에 대해 이야기 할 때, 항상 시큼해도 감미롭고 써도 감미로우며 달콤할 경우에는 더욱 더 감미로운 것이다. 젊었을 때, 나는 여성들의 이러한 재능에 대해 미혹되었던 적이 있었으며, 당시 여성의 현실 생활이란 이렇듯 다양한 맛을 지닌 다채로운 것으로 심지어는 자신의 변함 없는 삶에 자괴를 느낀다고 여겼었다. 삶을 진정으로 대하게 되는 성숙기에 들어서서야 현실 생활이란 결코 감미로운 것이 아니며 여성들 스스로가 이야기하는 것보다 훨씬 더 복잡하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러면서도 여성들의 감미로운 생활에 대한 공상은 나에게 매우 깊은 인상을 남겨주었다. 여성들의 사적 공간은 여러 유형이 있는 듯하나 실제 열 명의 핸드백을 열어보면, 핸드백의 생김새는 서로 다를지라도 그 안에서 쏟아져 나오는 소지품들은 모두 비슷한 것들임을 볼 수 있다. 자질구레하며 예쁘며 감미로우나 질서가 없으며 실용적이지 못하다. 그런데도 여성의 개인 공간은 너무나 달콤하여 식욕이 도는 것인가?

손국연_영원한 달콤함_실물 오브제에 설탕,꿀,촛불 등_가변크기 설치_2001

「영원한 감미로움」에서 손국연은 보다 직접적인 방법을 시도하고 있다. 더 이상 젊지 않은 자신의 온 몸에 감미로움을 상징하는 하얀 설탕을 바르고 고전적인 초상화처럼 찍은 이 사진은 잔잔한 애상과 스스로를 동정하는 듯한 비애감이 배어있다. 이 작품은 이미 죽어버린 자신의 젊은 용모와 달콤한 감정에 대한 중년여성의 그리움을 보여주는 동시에 여전히 여성의 아름다움을 주도적으로 소비하는 남성화된 심미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영원함(天長地久)」에서도 손국연은 계속해서 자신의 신체를 매개로, 하얀 설탕이 감미로움을 상징한다는 언어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이는 무한히 해낼 수 있는 작업계획으로 손국연은 고향인 쿤밍의 특정한 곳에서 매년 한 두 차례에 걸쳐 온 몸에 설탕을 바른 자신의 신체를 촬영하고 있으며, 이 작업은 이미 3년이나 진행되었다. 손국연은 "나의 용모와 나의 신체는 시간이 흐름에 따라 변해갈 것이며 나의 표정과 정신도 시간과 환경에 따라 변해갈 것이다. 매년 행하게 될 이 촬영은 이러한 과정의 기록으로, 내가 느끼지 못하는 사이에 시간이 자신의 일상 폭력을 사용하여 나를 늙게 하고 쇠락시켜, 하얀 설탕이 상징하는 감미로움으로부터 점점 멀어져 가게 하는 과정을 목격하려는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이 작품은 단지 여성의 아름다움에 대한 추도가일 뿐 아니라 유한한 인간에게 있어 영원의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것이다. 유명한 중국의 고시(古詩) 중, '하늘이 감정이 있다면 하늘도 역시 늙을 것이다(天若有情天亦老)'라는 구절이 있다. 사람은 감정이 있기 때문에 반드시 노쇠하게 되며 따라서 불멸은 항상 인류의 마지막 꿈이었다. 외국영화 중 감정을 지닌 로봇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를 본 적이 있다. 이 로봇은 그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대를 거듭하면서 하나씩 노쇠하여 죽는 것을 목격하였다. 그는 너무나 외로운 나머지 온갖 노력을 다해 스스로를 인간과 비슷하게 변화시켰으며, 아울러 법률상의 인가를 원했다. 그러나 법정은 죽지 않는 다는 사실을 근거로 그가 여전히 인간이 아니라는 결정을 내렸다. 왜냐하면 로봇만이 죽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마지막에 그는 사랑을 위해 자신을 유한한 생명의 인간으로 바꾸었으며 결국 늙어 죽기 전에 법정의 인가를 얻고,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평온한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다. ● 손국연은 감정이 풍부한 사람이다. 그녀 또한 한때는 아름다운 용모와 달콤한 사랑을 지녔었다. 손국연의 작품은 여성의 아름다움에 대한 추도가이며 여성의 진심에 대한 탐색이다. 아름다움이 영원할 수 없다면, 진심도 영원할 수 있을까? ■ 랴오 원(廖雯)

Vol.20020325a | 손국연展 / mixed media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