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일시_2002_0313_수요일_05:00pm
인사갤러리 서울 종로구 관훈동 29-23번지 Tel. 735-2655
한 작가를 알게 될 때 내 경우 대부분 사람보다는 그의 작품을 먼저 만나게 된다. 그러나 강서경의 경우는 개인을 먼저 알고 한참 후에 작품을 보게 되었었다. 처음 그의 작업을 봤을 때 내가 그렸던 강서경이라는 개인의 이미지와 그의 그림이 어찌나 똑같이 일치했던지 그냥 막 웃음을 터뜨렸던 기억이 난다. 한지 위에 부드러운 먹선으로 그린 낙서 같은 그림들에는 엉뚱하고 천진난만하면서도 정감 있는 그의 성격이 그대로 배어있었다. ● 강서경은 주위를 둘러싼 일상적인 물건들이 자기 자신으로 변화되는 코믹한 환상을 그린다. "만약 내가 스탠드가 된다면 얼마나 뜨거울까? 만약 내가 변기가 되어 물 속으로 빨려 들어가 본다면? 자동차 엔진 내부로 들어가 본다면?" 물건들과 자신을 연결짓는 아이디어는 생활 속에서 만나는 모든 상황에 대해 그가 취하고 있는 만화적인 상상력에서 비롯된다. 때때로 그와 함께 길을 걷다보면 순간적으로 지나가는 대상의 부분들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기발하게 코멘트하는 것을 보고 그 끝없는 호기심과 기지에 대해 놀라울 때가 많다. 대상에 대한 왕성한 관심에도 불구하고 그의 시선 속에는 대상을 탐구하거나 정복하려는 집요함이 느껴지지 않는다. 대신 그것과 자연스럽게 교감하고 함께 노는 유머러스한 즐거움이 드러나고 있을 뿐이다.
강서경은 대상을 객체화하지 않고 자기 자신과 동일시한다. 그의 작품 속 대상들은 눈에 보이는 대로의 객관적인 의미에 머물러있지 않다. 그것은 작가의 개인적인 감정 속에 용해되어 이미 자신의 일부로서 경험되는 사물들이다. 그는 매일의 생활 속에서 스쳐 가는 대상의 특성을 인격화하고 그 안에 대상에 대한 감정을 담아낸다. 자아와 대상간의 거리가 존재하지 않는 이러한 미분화된 세계관은 마치 자아인식 이전의 어린아이의 의식과도 같다. 그는 그림을 그리는 방법에 있어서도 의식적인 태도를 버리고 아이처럼 자유롭고 꾸밈없이 접근하고 있다. 특정한 형태를 미리 정해놓지 않고 선의 자연스러운 움직임을 따라 즉흥적으로 낙서를 해나간다. 그리다보면 어느덧 사물의 어떤 부분을 연상시키는 이미지에 이르게 된다. 그 사물은 자동차, 의자, 변기 등 대부분 작가의 생활과 밀접한 관계를 맺으며 일상의 동반자처럼 의식 속에 깊이 자리잡고 있는 대상들이다. 강서경은 이들과 더불어 만나게 되는 매일의 새로운 상황들을 마치 그림일기를 그려나가듯 재현해나가고 있다.
강서경의 그림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대부분 놀라움과 즐거움을 가득 담은 표정을 띠고 있다. 그 표정은 매일의 지루한 일상 속에서도 새로움과 기쁨을 발견할 줄 아는 작가의 태도를 보여주는 깜찍한 단서들이다. 그의 작품 속에서는 어린아이의 원초적 유희 속으로 퇴행하려는 의도적이고 작위적인 장치 대신 자연스럽고 생동감 있는 분위기가 넘쳐난다. 그것은 아마도 작가 스스로 아직도 잃지 않은 채 간직하고 있는 아이같이 천진한 호기심과 낙천성 때문일 것이다. 그의 그림을 바라보면서 일상의 행복에 자신도 모르게 스르르 전염되는 것. 그것이 바로 강서경의 그림이 우리에게 주는 가장 큰 즐거움이자 선물이 아닐까? ■ 이은주
Vol.20020314a | 강서경展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