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일시_2002_0309_토요일_05:00pm
대안공간 루프 서울 마포구 서교동 333-3번지 B1 Tel 02_3141_1377
잠들어 있던 기억을 일깨우는 것은 뜻밖에 아주 사소한 것이다. 귀에 익은 노래, 밥냄새, 낡은 사진, 서랍을 무심코 열었을 때 굴러나오는 작은 장난감 같은 것들. ● 한때 아주 유용했을 일상의 물품들은 결국 용도폐기되어 버려지게 마련이고, 간혹 그런 잔혹한 과정에서 이탈해 나온 파편들은 용케 서랍 한 구석에서 숨을 죽이고 있다. 우연히 그런 파편들과 마주치는 순간 우린 당혹한다. 이것을 버릴 것인가 말 것인가 결정짓기 위해 우리는 그놈의 온전한 형태를 애써 기억해 내야하고 그래도 알 수 없을 때 그것은 아직 버릴 수도, 달리 사용할 데도 마땅찮은 천덕꾸러기가 된다. ● 작가는 이러한 것들을 주워모아 자신의 작업의 출발점으로 삼는다. 그것이 최초에 어떤 형태를 가지고 있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것은 다시 구성되면 그만이다. 그것들은 작가에게 잊혀진 기억의 세계를 더듬어 나가 새로운 환상의 세계로 진입하게 하는 지도와도 같다. 문득 방문을 열었을 때 마주친 손가락 한 마디 만한 플라스틱 인형은 이것이 왜 여기 와 있는지 따져 묻기도 전에 아득한 과거를 현재로 이끌어낸다. 그 쓰잘데 없는 쪼가리가 과거와 현재 사이의 어떤 매개가 되며, 그 순간 되살아나는 과거의 기억은 시간적 간극을 뛰어넘어 나의 현재와 중첩된다. 이때부터 작가의 작업이 시작되는 것이다.
우연한 만남이 촉발하는 기억과 그로부터 생겨나는 감정들을 작가는 작은 나무 조각들로 조심스레 쌓아나간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에서 작가가 공간 속에 펼쳐 놓는 것은 이제껏 한번도 지어진 적 없는 상상 속의 구조물들이다. 이 구조물들은 작가가 부여한 내러티브를 가지며, 끊임없이 새로운 형태로 자라나고 변형된다. 공간 구축적인 그의 행위와 그 산물들은 한편으론 어린아이의 놀이를 연상시킨다. 유년시절에 누구나 갖고 있던 자신만의 환상의 세계, 엄마의 눈에라도 띌까 전전긍긍하며 구석에 조심스럽게 지어나가던 비밀도시를 작가는 성인이 된 현재에 다시 복원해 낸다. 게다가 그의 작업 곳곳에 숨은 잡동사니들은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하나의 열쇠가 된다.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장난감 비행기는 하늘을 날고 싶은 과거의 꿈이나 만족스럽지 못한 현재의 삶을 반영하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어떻게 읽어내건 전시장 바닥에 펼쳐진 이러한 구조물들이 주는 느낌은 즐겁다.
작가의 행위가 변모와 망각 속에서 상실된 자아를 그 어떤 시간의 궤적도 뛰어넘어 다시 회복하려 함인지, 그저 유년시절의 기억을 끄집어내어 쓰다듬고 싶은 것인지는 분명치 않다. 그는 다만 우리에게 각자 느껴지는대로 편안히, 즐기라고 말한다. ■ 황진영
Vol.20020311a | 경현수展 / KYUNGHYUNSOO / 慶賢秀 / install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