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전원주택이 아니다.

2002_0216 ▶ 2002_0302

박태홍·백영_숲속의 엘리베이터_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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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작가 김나영_장뤽 소르_박소라_박태홍_백영 엄형석_성우철_정기훈_윤웅원_김정주_윤평헌 함성호_황태주_김기용_조관용

갤러리 피쉬 서울 종로구 관훈동 187-28번지 백상빌딩 1층 Tel. 02_730_3280

푸른 숲과 맑은 물이 있는 자연 속에 뒤로는 나무가 있고 앞으로는 텃밭이 있는 생활공간. 창가에 비친 눈부신 아침 햇살에 눈을 뜨면 상쾌한 공기가 콧등을 간질이는 삶의 공간, 이것이 과연 우리가 원하는 삶의 장인가? ● 아니면 거대한 고층빌딩 안에서 그 날의 일들을 처리하며, 차를 마시고 저녁을 먹고, 연인과 영화를 볼 수 있는 , 한번에 모든 것이 해결되는 편리한 삶의 공간, 그것이 우리가 원하는 삶인가? ● 지난 30여년간 우리가 이루어낸 경제적 번영과 기술적 발전은 우리의 생활과 문화를 크게 변화시켰다. 도한 우리의 삶을 담는 주거공간의 물리적 형태와 내용의 발전도 급진적으로 변화되었다. 아파트라는 고밀도 주거유형의 대량보급은 주택공급의 경제성, 생활방식의 편리성이라는 관점에서 환영받았다. 그러나 생활방식의 획일성, 자연으로부터의 고립감, 거주자 개인의 정체감 부재라는 심각한 문제점을 보여주었다. 이렇게 획일적 주거방식에 식상한 도시민들의 전원생활에 대한 동경은 전원지역에서의 주거생활에 대한 욕구를 급속히 증대시켰고, 도시로 출퇴근이 가능한 도시 근교지역에서의 새로운 주거유형으로 전원주택을 탄생시켰다. 그러나 이것들 또한 또다른 형태적 획일성과 문화적 이질성을 보여주고 말았다. 아파트가 사회주의와 자본주의 양자 모두에 다리를 걸치고 있을 때, 과연 전원주택은 삶의 질과 편리, 양장의 어디에 위치하는가? 지금 이 시대 우리의 전원주택은 과연 무엇일까? ● 우리는 이 전시를 통해 우리들이 살아야 할 새로운 주거유형으로서의 전원주택의 개념을 정립하고 미래의 변화를 예측하여 새로운 삶의 태도와 공간을 제안하고자 한다. 우리가 이 전시의 제목으로 마그리뜨를 차용하고 있는 것은 전원주택이란 과연 가능한가? 만약 가능하다면 무엇이 전원주택인가? 그렇다면 전원이란 무엇인가? 20세기에 과연 전원은, 그리고 자연은 존재하는가? 라는 다양한 질문을 제기해보고자 하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말하자면 "이것은 전원주택이 아니다"라는 부정을 통해 역설을 꾀해보자는 것이다. ● 우리는 우리의 이 전시가 단순한 아이디어에 머물지 않고 실천적인 효용을 가지게 되기를 원한다. 아마도 이번 전시가 다른 건축전시회와 구별될 수 있다면 아마도 바로 그점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단순히 우리의 건축적 입장을 늘어놓는 것이 아니라 현실에 필요한 수요를 예측하고 이 전시를 기획했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전원주택에 대한 시대적 요구에 동시대를 사는 건축가로서 부응하기 위함일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전원주택이라는 아이템에서만 끝나는 것이 아니며, 인간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자연이라는 문제와 전지구적인 환경차원에서의 건축을 생각해 보는 소중한 첫발일 수도 있을 것이다. ■ 함성호

김나영·장뤽소르_아무나 혹은 누군가를 위한 전원주택_2002

이따금, 이 집이 커지고 넓혀진다. 어떤 상상 속에서 조금 덜 구상된 집, 바로 여기서 상상력의 유연성이 이 집에서 살기 위해 필요하다. 이 집은 내게 있어 시간의 입김 위로 어떤류의 가벼움으로 옮겨다닌다. 이는 정말로 다른 시간의 바람 위에 열려져 있어서, 이 집은 마치 우리를 맞이하여, 매일 마침마다 우리에게 삶에 대한 신뢰를 주기 위함인 것 같다. _ 가스동 바슐라흐 『공간의 시학』 중에서

박소라_Maison N-비물질성화를 통한 경계의 모호함_2002

투명성과 반사성을 통해 자연으로 확장되는 Maison N은 내부와 외부, 건축물과 주변환경 사이의 경계의 애매모호함을 보여준다. 단순한 직사각형 매스의 저층부는 투명함에 의해, 명백한 경계를 가지는 상층부의 유형학적 집의 형상은 반사를 통해 비물질성화 되어진다. 건축물과 자연의 경계는 모호해지고 주택의 실체는 주변환경 안으로 사라져버린다.

성우철_엄형석_정기훈_전원주택은 없다._2002

자연은 스스로 그렇게 살아있다. 우리는 제 살에 흠집을 내고자 한다. 아프지 않게, 참을 만큼만, 새 살이 돋아날 수 있을 만큼만... 그렇게 돋아 생긴 봉합선은 아름답다고 말하리라. 적어도 그러길 바란다. ● 건축이라는 단어를 쓰고 싶지 않다. 일상의 이야기를 두들겨 공간의 울림을 만들고 싶다. 일상의 모습을 담아내는 장치 내지는 사물에 대하여 말하고 싶다. 그 이야기의 행간에는 건축은 스스로 드러날 것이다. 적어도 그러길 바란다. ● 전원주택은 없다. 그 곳에 삶이 있을 뿐... 환경에 대한 우리 삶의 태도와 형식의 문제이다. 그것은 시계 속의 시간이 아니라 해와 달의 움직임에 기대어 살아가고자 함이며, 어머니 앞가슴의 흙내음을 기억하고자 함이며, 내가 흙속으로 쓰러져 가는 꿈을 꾸는 것이다. 산허리에 돗자리를 깔고 배낭을 내려놓았다. 베개 꺼내 놓고 침실, 그릇 꺼내놓고 주방, 숟가락 꺼내 놓고 식당, 기대어 앉으면 거실, 허리 벋어 낭가면 마당... 나는 그냥 자연 속에 있을 뿐이다. 집은 없다. ■ 2002년 2월 Lieux

윤평헌_이것은 전원주택이 아니다_2002
함성호_인간을 위한 건축은 망했다_2002

인간을 위한 건축은 망했다. 아울러 휴먼스케일의 위대한 신화는 산업사회화 된 도시의 도구적 스케일에 그 의미를 상실해 버렸다. 이제 모든 건축적 스케일에는 자동차의 모듈이 적용되게 되었다. 도시의 길은 자동차의 속도에 점령당하고 인간은 그 한 귀퉁이에서 생존의 위협에 시달리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전원이다. 전원은 장송의 문제가 아니라 태동의 문제이다. 어떤 태도를 가지느냐에 따라서 이곳은 삭막한 도시도 되고 벅찬 자연의 감동으로도 느겨진다. 당신은 어떤 태도로 지금, 여기를 보고 있는가?

황태주_유경이와 보나네 집_2002

남쪽으로 한라산이 한눈에 들어오는 작업실이 있는 집 ● 대지위치_제주시 아라동 1162-1 ● 대지면적 189.7평 ● 건축면적 73.7평 주택 56.2평 스튜디오 17.5평 ● 철근콘크리트조 및 조적조

김정주·윤웅원_제주도 중산간지역의 자립형 전원주택_2002

Vol.20020222a | 이것은 전원주택이 아니다展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