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일시_2002_0220_수요일_06:00pm
인사갤러리 서울 종로구 관훈동 29-23번지 Tel. 02_735_2655
출구가 없는, 그래서 수수께끼를 풀어야만 벗어날 수 있는 비밀의 정원, 생활의 기쁨과 활기는 마법에 걸린 듯 사라지고 대화를 거부하는 듯 모호한 자세와 태도를 취하는 사람들. 곧 무슨 사건이 생길 것 같은, 아니 무슨 사건이 벌어지기 직전 완전히 멈춰버린 시간과 세계. ● 인공잔디를 깐듯 잘 정돈된 정원 위에 현대 부조리극의 무대를 떠올리는 단순한 몇가지 소품들과 초현실주의풍으로 띄엄띄엄 서있거나 앉아있는 사람들은 창백한 혈색과 몽롱한 혹은 몽상적인 동공으로 관객과 눈을 맞춘다.
추리소설과 데이빗 린치풍의 컬트영화에 단골 출연하는 음산한 고양이, 범상치 않은 쌍둥이, 비밀을 간직한 신비한 여인, 쌍둥이와 난장이와 고양이와 왼손잡이는 불길한 운명과 기운을 상징하며 신비한 여인은 악마와 교접하는 마녀거나 연금술사. 검은 원피스의 중성적 여인은 북유럽계 인종의 이국인. 이 모든 것들을 밝음과 정반대에 위치한 것으로 희망과 미래와 의미가 부재하는 어둠과 공허와 무의미를 나타낸다. ● 여인은 석화되어 사라진 시간을, 주위를 맴돌다 멈춰버린 시간을, 돌아올 수 없는 누군가를 위해 혹은 자기 자신을 위해 사과를 깎는다. 여인인 사과를 깎는 순간 멈춰버린 목마와 그 기다림의 주인공은 그림 밖에 있음을 암시하는 고양이. 양팔이 없는 뒷모습의 여인, 잠옷차림의 테디베어, 젤 형태의 그림자 유령, 정체를 알 수 업는 과일을 떠먹는 마네킹 인간, 불면증과 불치병을 앓고 있는 인물들과 그들 마저 떠나버린 빈 의자들로 가득찬 정원. ● 모두들 떠나버린 뒤의 적막함 또는 떠나버린 존재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리지만 시간은 이미 정지되어 결코 되돌아 올수 없는 정원. 정원은 아담과 이브가 떠나버린 정원일지 모른다. 아담과 이브가 떠난 정원은 아담과 이브가 도착한 정원과 같다. 순수한 인간의 원형상은 사라지고 퇴락하고 변질된 인간만이 정주하는 정원은 불길하다. 태양은 잿빛 구름에 가려 밝고 화사한 정원을 우울한 녹색으로 채색하고 있다.
화면에서 길게 펼쳐진 채 흐트러져 있는 빈의자와 짙은 그림자가 드리운 녹색의 정원과 배경은 심리적 기제로 기능하며 바라보는 사람의 마음을 고독, 공허, 회환 등을 떠올리게 한다. 빈자리 빈공간은 누군가 채우기 마련이고, 그 빈자리를 그대로 방치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빈공간과 시간은 우리의 기억으로 채워지기 시작한다. ● 무언가 끊임없이 채우려는 만족할 줄 모르는 욕망, 채우려는 욕망의 끝자락이거나 그 욕망이 멈춰버린 시간을 보여준다. 욕망 하는 유령들의 정원은 현실세계의 몽환적 변형이다. 한편의 심리극을 연출하는 이번 전시의 풍경은 키리코의 형이상학적 풍경과 마그리트의 부조리한 풍경을 연상시킨다. ■ 김기용
Vol.20020217a | 이효경展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