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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화랑 서울 종로구 인사동 23-2번지 Tel. 02_735_9938
아파트, 작은 움직임의 메시지를 그에게 보내다 ● 송하규, 그는 마음이 끌리는 대로 발길을 옮길 줄 아는 작가이다. ● 먹이를 사냥하는 독수리처럼 피사체를 단숨에 낚아채는 식이 아니라, 계속 무언의 신호를 보내는 피사체들에 의해 걸음을 멈추고 셔터를 누를 줄 아는 작가이다. ● 본디 그의 마음을 끄는 것은 탁 트인 지평선 혹은 사막과, 그에 어울리는 아름다운 실루엣을 가진 건물이다. 하지만 카메라를 들고 서울 한복판에 서 있게 된 그는 암담했으리라. 실어증에 걸린 것처럼 그렇게 카메라를 뒷전에 놓아두고 잠시 침묵하던 시간도 있었다.
하지만 아이러니컬하게도 그의 마음을 연 것은 다름 아닌 우울한 회색 도시의 상징인 '아파트'이다. 발길에 채여서 눈길조차 안 가는 이 아파트들은 무수히 많은 신호를 보낸 후에야 그의 시선을 붙잡을 수 있었다. ● 그는 아파트가 보낸 신호가 무엇인지 발견하기 위해 많은 시간을 기다렸다. 고독하지만 외롭지는 않았을 시간이 켜켜히 쌓이면서 삭막하고 서글픈 외형 속에 숨어있는 아파트의 모습을 하나둘 발견하기 시작했다. ● 시간이란 박자에 합주를 하듯 명멸하는 형광등 불빛들, 그리고 충분히 짐작 가는 일상들, 아직 사람을 불러들이지 않아 고압적이기까지 한 미분양 아파트에서부터 재개발을 기다리는 노인같이 무기력한 아파트까지. 아파트들을 모아 또 다른 아파트를 만드는 그의 작업은 무얼 말하고 있는 것일까. 콘크리트 덩어리라도 사람이 들어앉으니 생명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일까.
물론 그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는 끊임없이 신호를 보낸 아파트에게 그저 따뜻한 회신을 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다만 그뿐이 아니었을까. 기승전결(起承轉結) 구조의 익숙한 패턴에서 벗어나 어떤 결론도 내지 않고 '여기까지'만 보여주고 싶은 게 그의 심정이 아니었을까. ■ 강혜진
Vol.20011224a | 송하규 사진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