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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건 ● 세수를 하고 얼굴에 물기가 흐를 때, 수건 걸이에 걸려있던 수건을 집어들어 얼굴을 감싼다. 잘 건조된 수건의 표면에 젖은 내 얼굴이 묻히고 나는 굳이 물기를 닦아내기 위해 수건에 얼굴을 비비지 않는다. 그냥 얼굴을 묻고 면의 감촉을 기다린다. 어김없이 느껴지는 수건의 반가운 냄새와 잘 마른 면의 바삭한 촉감이 내 두 손안에서 나를 흡수한다, 나의 일부를 빨아들인다.
나는 최근에 수건을 재단하고 재봉하여 원하는 형태의 화장실을 만든다. 그 중에는 내가 살던 집의 화장실을 그대로 재현한 것도 있고, 화장실을 이루는 요소들, 즉 변기나 세면대, 욕조, 타일, 수도꼭지, 샤워기, 하수구, 배관 등이 나에게 보여주는 인상을 개인적으로 해석하여 표현 한 것도 있다. ● 바삭하게 잘 마른 수건에 얼굴을 묻고 물기를 닦을 때마다 그 친밀한 흡수력에 기분이 좋아진다. 그건 어떤 것을 수용하는 긍정적인 반응 같아서, 내가 알고는 있지만 말로 설명할 수 없었던 것들을 비언어적으로 전달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안도를 갖게 하기 때문이다. ● 화장실에 감추어져있는 여러 배관들의 비밀스러운 외부와의 소통, 문을 닫고 들어선 화장실 안에서 스스로에게 좀더 가까워진 자기자신, 그리고 가장 자기다와진 순간의 자신과 바깥의 그 무엇과의 가느다란 연결을 수건의 감촉과 우리에게 익숙한 화장실의 직접적이거나 은유적인 형태로 표현해보려고 하였다. ● 나는 진정으로 아름다운 것은 이 세상에서 눈에 잘 띄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감추어진 아름다움은 비밀스러운 암호 같고, 그 암호의 열쇠는 가깝고 평범한 곳에 던져져 있을 것만 같다. 열쇠를 손에 쥐고도 그 의미를 깨닫지 못해 놓아버리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나는 작업을 한다.
너무나 사적이어서 안도하였던 화장실이라는 공간은, 그 안에 내재 되어 있는 배수관과 환기구 덕분에 완전하게 밀폐되어있지 않고 오히려 내가 모르는 타인의 사적인 장소와 비공개적으로 연결되어있었다. ● 아파트처럼 여러 세대가 모여 사는 주거형태에서 옆집과 이 집의 화장실이 데칼코마니처럼 마주보고 있고, 그 안에 들어 선 나는 이 두 공간을 물리적인 면을 넘어 거울 속의 상象처럼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다. ● 여전히 나에게 어떤 특정한 공간은 운반 가능한 것이어야 하고, 물리적으로 보존될 수 없는 기억이라는 것도, 실제로 존재하던 어떤 추억의 공간을 삼차원적으로 드로잉하여 접어서 보관하고 만져서 확인할 수 있는 것으로 보존시키고 싶다. 그러한 방식을 통해야만 나는 새롭게 인식할 수 있고, 비로소 안심 할 수 있을 것 같다. ■ 김희경
Vol.20011221a | 김희경 조각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