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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1_1205_수요일_06:30pm
인사갤러리 서울 종로구 관훈동 29-23번지 Tel. 02_735_2655
너무나 인간적인, 인간에 대한 경의적(敬意的) 시선 ● 적막한 공간에 어떤 풍경이 생경하다. 그곳에 부유하듯이 떠 있는 사물들의 구조들은 매우 도발적이며, 사건적이다. 그곳에는 존재에 대한 고뇌의 흔적이 있고, 현실을 관조하는 삶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인간에 대한 겸허한 물음을 위해, 혹은 인간을 위한 혹독한 고뇌의 궤적을 따라서 가면 비로소 자유로운 명상적 공간과 만난다. 출구도 입구도 필요치 않는 관념의 뜨거운 공간에는 침묵의 소리들이 메아리친다. ● 보이지 않는다고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닌 것처럼, 보이는 것 또한 인간의 기억 속에 영상화 된 하나의 잠재적 표상에 불과하다. 우리 앞에 놓인 사물의 형체들이 심상의 사고와 만나게 되면, 침묵이 반전되어 소리로 화하고 소리가 역류하여 무한한 상상의 강으로 흘러든다. 이런 의미에서 홍성석의 그림들은 상상력의 극점에 존재한다. 상상력이란 예술가의 무기고이다. 그것은 기교 이전에 이미지의 독창적 생산을 위해서 필요한 관념의 독백으로서 예술의 주제와 질을 결정하게 만든다. 상상력의 폭이 넓고 자유로울수록 예술의 호흡은 길고 오래간다.
홍성석은 자유로운 상상을 즐겨한다. 그는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허물기도 하고, 생명과 물질의 관계에 주목하며, 존재에 대한 즉흥적인 나레이션을 준비하면서 불합리한 현실의 모순 속에 존재하는 다양한 인간상을 긴장감 있게 연출한다. 사실 삶의 모습에는 희노애락의 물결이 나래를 친다. 슬픔이 연주하는 우울한 리듬은 인간이 비극적인 면을 더욱 비장하게 부각시킬 터이고, 즐거운 상념들은 일상의 나날을 환하게 해줄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홍성석은 관객을 즐겁게 해주는 삶의 미술가이다. 그의 그림에는 패러디가 가득하다. 비밀스럽기도 하고 심각한 듯하다가도 그 느낌들은 어느새 새로운 차원의 생각에 의해 해체된다. 그의 패러디들은 권위적인 것에 대해서 묵시적으로 저항하거나, 권력적인 규범이나 제도들에 대해서 상념의 뜬구름을 띄워보내는 여유를 갖기도 한다. ● 홍성석은 생명을 존중한다. 삶, 희망, 순수, 아름다움을 위해서 그는 일반적인 생각에서 바라보기보다 거리를 두고 바라본다. 관념이 자유롭다는 것은 일방향적인 관념을 소유하는 것이 아니다. 합리적 사고를 위해서 불합리성을, 이성을 위해서는 비이성적 행위들을 면밀하게 관찰해야만 한다. 이런 맥락과 연관지어보면, 홍성석은 규범적이기보다는 일탈적이고, 고정된 지지체적(支持體的) 사고보다는 전방위적(全方位的)인 해체적 사고방식을 선호하는 것 같다. 인간의 심층적인 면을 들여다보면서 비밀스런 인간성의 이면을 드러내고자한다. ● 그의 이와같은 인간탐구는 인간과 사회가 얼개처럼 엮어진 우리시대의 모순에 깊숙히 관여하는 듯이 보인다. 그 모순을 바라보는 그의 시선은 인간이라는 생물적 인자로서의 육체와 영혼의 모순, 인간들이 사회와 만나면서 생기는 개인과 조직의 모순, 개인과 개인의 계급적 모순들에 직설적으로 다가서기보다는 단계적이고 층위적으로 접근한다.
홍성석의 화면은 대비적 질서로 구성된다. 고요한 상황을 깨뜨리기 위해 사물을 불안하게 배치한다. 시간이 정지하는 듯한 상황은 더욱 고요한 적막에 쌓인다. 육체의 동세를 더욱 속도감 있게 보이기 위해 딱딱하고 경직된 물체로 가로막는다. 육체는 더욱 탄력적이고 소리를 내뱉는 것 같다. 때론 인간 고뇌의 탄성을, 인간의 순수성을 지향하는 무언의 몸짓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의 화면은 반전(反轉으)로 가득하다. 그는 인간이 보다 인간적이기를 원한다. 왜냐하면 그는 현시대의 인간사회는 순수성이 결여된 가공된 인간성을 강요하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인간을 해석하는 방식에서 그는 고정된 상식보다는 즉흥적인 해석으로 인간의 불합리한 순수성을 극복하려고 한다. ● 홍성석의 그림에는 리듬이 있다. 그것도 인간의 내면에 잠재된 욕동(慾動)의 에너지가 넘쳐난다. 삶 속에서 획득한 그만의 인간적 질서와 규범을 그는 묵시적으로 응시하듯 그리다가도 숨가쁜 현실의 지류(支流)에 흔들리는 존재에 대해서는 민감하게 반응한다. 그러기에 그의 그림은 인간의 내면적 질서와 외부적 모순들을 섭렵하려고 하는 점에서, 너무나 인간적이다. 홍성석은 너무나 인간적인 그림을 위해 동시대적인 현실을, 그 현실 속에서 부조리하게 존재하는 인간의 내면을 묵묵히 응시하고 있다. 이 묵시는 궁극적으로 인간에 대한 또하나의 경의적(敬意的)인 시선으로 남을 것이다. ■ 김유정
Vol.20011210a | 홍성석 회화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