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dification

정물시선 2002 사진展   2001_1205 ▶ 2001_1211

조성연_untitled_디지털 프린트_2001

초대일시_2001_1205_수요일_06:00pm

참여작가 강성민_김광수_김대수_김형섭_윤현길 이상영_조성연_주상연_황정혜

가나아트 스페이스 서울 종로구 관훈동 119번지 2층 Tel. 02_734_8621

Modifications - 변모, 변형, 변화. ● 사진은 외부현실을 있는 그대로 재현한다고 일반이 믿는 매체이다. 아무개의 사진은 아무개의 모습 그대로, 단풍이 든 설악의 사진은 가을의 설악산 그대로를 재현한다고 사람들은 믿는다. 또한 사진은 육안의 한계를 넘어서, 인간이 보지 못하는 혹은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는 사항을 포착한다고 일반은 믿어 의심치 않는다. 아주 가까운 것이나 너무 멀리 있는 것 혹은 너무 빨리 움직이는 동작을 제대로 포착하기 위해서는 우리 눈의 약점을 보완한 사진의 눈이 절대적이라고 모든 사람은 믿는다. 그러니까 1839년 프랑스에서 사진의 발명이 공표된 이후 사람들은 사진을, 진실만을 보여주고 육안의 오류와 착각을 교정시켜주는 '진정한 학자의 망막'으로 간주했다. 그러나 사진과 관련된 사태의 흐름은 객관적이고, 무사 공평한 사진만이 존재하는 것은 아님을 슬금슬금 일깨우기 시작했다. 아무개의 사진은 아무개의 실제 모습보다 더 멋질 수도 혹은 더 추할 수도 있으며, 가을의 설악산은 사진만큼 아름답지 않을 수도 혹은 사진이 재현할 수 없을 만큼 더 아름다울 수도 있다고 생각하며 사람들은 종종 사진의 진실성, 객관성을 의심했다. 게다가 사진으로 포착한 아주 작은 것이나 아주 멀리 있는 것, 혹은 아주 빠르게 움직이고 육안의 가시 영역밖에 있는 것들은 엄정하고 엄밀한 과학적 시선을 부양하기도 했지만, 종종 오류의 원천인 인간의 상상력, 환상을 부추기기도 했다.

주상연_dust_흑백인화_2001

사진의 객관적 진실성을 빙자하여 현실을 왜곡하고, 허구적 현실을 생산하는 사진의 이율배반성과 과학적 진실을 증거하는 사진이 오히려 상상력의 환영을 불러일으킨다는 모순에 몸과 마음을 판 사람들은 다른 누가 아니라, 바로 사진을 업으로 삼은 사람들이었다. 객관적 현실의 대용물, 과학의 증거물로서의 사진을 그들의 조형감각, 상상력을 발동시키는 질료로 삼아, 주관적 현실, 기상천외한 아이디어의 구현 매체로 삼았다. 그들과 더불어 '진정한 학자의 망막'은 거짓 학자, 환상가의 망막이 되어, 사진을 보는 일반은 그 개인적 편견과 그 허망한 환영에 속고, 매료되었다. 그들은 마치 사진의 임무가, 특히 예술 사진의 임무가 보통 사람의 눈으로 보고 인지하는 현실의 모습을 파괴하는데 있는 것처럼, 객관적 현실을 변모시키고, 변형시키고, 변화시켰다. 어느 다른 재현매체보다도 객관적으로, 과학적으로 현실을 재현한다고 여겨지는 사진을 활용하여 그들은 변모된 현실을 창출했고,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자신의 상상력, 미학적 의도에 기대어 변화, 변형시켰다. ● 2002년 '정물시선'이 기획한 양상은 사진이 재현하는 객관적 현실, 일상의 현실을 변모, 변형, 변화시킴을 그 특징으로 삼고 있다. 조성연은 그녀의 조형감각, 미학적 의도에 따라 알로에를 담은 백자라는 객관적 현실을 삼분절하여 일상적 시지각을 해체한 후, 굽이치는 유연한 선형에 맞추어 그 정물을 재조립한다. 김형섭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모, 변해 가는 사물들의 운명을 응시하기 위해, 녹슨 쇠붙이, 제조불량으로 변형된 쇠붙이만을 녹슨 배경지 위에 배치한 후, 다른 어느 사진적 프로세스보다 광학과 화학의 재현작용에 순응하는 직접적, 즉각적 프로세스인 폴라로이드로 시간의 파괴작용을 일깨우는 정물을 기록한다. 그리고 전사transfer 프로세스를 활용하여, 폴라로이드가 기록한 변형된 대상들의 칼라와 톤을 을씨년스럽게 변화시킨다. 김대수의 작업은 우리의 일상적 공간감각, 방향감각을 흩트리기 위해서만 정치하게 사물들을 배열하여, 한 곳에만 초점을 맞추는 단일 시점으로는 공간의 형상을 판별할 수 없게끔 한다. 그의 카메라의 앵글은 삼차원의 현실을 객관적으로 재현하기는커녕 오히려 착란과 혼란을 야기하기 까닭에, 꽃과 나비가 있는 정물은 일종의 만화경으로 변해버린다. 김광수는 갓 딴 사과의 단면에서 여성 생식기에서 항문에 이르는 여체의 씨방을 도해한다. 여기에서 식용의 사과는 아담을 유혹한 금단의 열매로 변모한다. 강성민은 얼음과 깃털로 새의 형상을 만든다. 그리하여 얼음은 두 마리의 새가 향하는 태양으로 변모하고, 차갑게 언 태양은 새를 부화시키는 노른자로 변한다. 주상연은 클로즈-업과 반전 프로세스를 통해 하찮은 현실의 변신을 극단화한다. 그녀는 티끌, 메마른 풀을 우주를 떠도는 행성들로 변모시킨다. 지상의 먼지들은 무한한 우주의 어둠 속에서 빛나는 은하수가 된다. 하찮은 정물사진이 거대한 천체사진을 꿈꾸는 것이다. 황정혜의 단아하게 놓여진 수저가락은 식탁을 차리는 정결한 모성애로 변하고, 윤현길의 코발트 인공조명은 어두운 하늘을 가르는 혜성으로 둔갑한다. 이상영의 정물작업은 죽음, 주검의 현실을 생명의 발아, 삶의 잉태로 변모시키는데 있다. 시들어 말라죽은 화분의 식물은 주검과 죽음의 메타포이지만, 작가는 그것을 삶의 상징으로 만들기 위해 앙상한 가지에 가까스로 붙어 있는 새싹을 어두운 배경으로 강조했다. 그것은 죽음을 생명으로 바꾸는 생명의 녹색이며, 이를 통해 작가는 삶을 잉태한 죽음이라는 모순의 진리를 작은 목소리로 선포한다.

이상영_사에서 생을 보다_컬러인화_2001

'정물시선'의 작가들이 객관적 현실을 있는 그대로 인지한다고 여겨지는 사진의 특성을 멀리하는 것은 일반의 길들여진 상투적 시각, 상식적 믿음을 거부하는 까닭이다. 상투적 믿음, 상식적 시각의 이면을 사진이라는 객관적 재현수단으로 뒤집어 보면서, 자신들의 사진은 결코 객관적 현실을 있는 그대로 재현하는 수단이 아니라, 자신만의 상상력, 자신이 깨달은 앎을 구현하는 수단임을 나지막이 말한다. 그들에게 있어서 사진은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인식을 방해하는 장애물이다. 사진은 언제나 그들의 일탈적 상상력, 탈선적 시각을 조장하는 매개물인 것이다. ■ 최봉림

Vol.20011209a | 정물시선 2002 사진展

2025/01/01-03/30